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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을 잊어야 진보 정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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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을 잊어야 진보 정치가 산다

[프레시안 books] 이광수 외 <위기의 진보 정당,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진보 정당 운동은 위기라는 말이 호사스러울 정도로 그 존재감 자체가 의심스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위기의 비극적 결과는 파국이 아니라 흔적 없는 사라짐이라고나 할까? 6.4 지방선거의 혹독한 결과에 이어 지난 7월 30일에 끝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을 목도할 수 있었다. 2004년, 50년 된 불판을 갈아엎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진보 정치의 아이콘은 정확히 10년 후 오늘, 갈아엎겠다던 그 불판과 '담판'을 벌여 '야권' 단일 후보가 되었고, 옛 동지였던 '진보' 단일 후보와 연대보다는 경쟁을 선택했다. 말이 좋아 경쟁이지 '무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개구리 올챙이 적" 얘기도 SNS를 통해 돌아다니기도 했다. 지리멸렬 진보 정당. 과연 희망은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근거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제는 희미해지기까지 한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분당, 그리고 다시 비극과 소극을 반복했던 통합진보당 사태를 복기하면서, 지난 6.4 지방선거 평가와 더불어 새롭게 진보 정당을 복원하기 위한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서 "부산 지역 진보 정당 평당원 4인의 작은 목소리"를 담은 것이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할 <위기의 진보 정당, 무엇을 할 것인가>(앨피, 2014년 7월 펴냄)이다.

이 책은 크게 반성, 모색, 전망,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여기서는 그 구성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기획 의도인 "구체적 경험을 거르지 않고 속살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최대한 충실해서 그들 스스로 묻고 답한 몇 가지 화두를 중심으로 진보 정치에 대한 고민과 전망을 쫓아가보자. 출발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회고와 반성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오류? 필연?

민주노동당이 크게 양대 정파, 즉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 간 갈등과 협력, 그리고 반목의 정치 동거 집단이었다는 사실은 시쳇말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진보 정당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 동거 프로젝트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돌이켜보면, 2004년 4월은 정치사적으로 보면 분명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진보 진영에 부과된 정치적 과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출발점에 불과했다. 그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민주노동당은 들떠 있었다. 마치 정권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이다. 사실 좋았던 그 시절은 진보 정당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순간'이었고, 민주노동당은 국회 입성 이후 줄곧 정치적·조직적으로 위기의 연속이었다.

국회 입성 얼마 뒤 치러진 당직 선거에서 자주파가 대거 중앙당으로 진출했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2중대란 비난도 감수하겠다며, 여당과 함께 '4대 악법 철폐 투쟁'에 '올인'했다. 이후 독도 군대 파견 논란(이는 자주파의 내면을 알 수 있는 일종의 해프닝이었다)과 급기야는 '일심회' 사건까지 대담자들이 복기하고 있듯이 민주노동당 내부의 균열은 점차 확대되어갔다.

한편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은 '패배'했다. 민주노동당은 재보궐 선거를 포함해 각종 선거에 총력 대응을 원칙으로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지만, 2005년 4월과 10월 재보선, 그리고 2006년 지방선거의 당의 공식 평가 역시 '패배'였다. 정파 갈등이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제약하는 근본 요인 중 하나로 때마다 지적되었지만, 형식적이고 면피용에 불과했다.

자주파가 기획한 작품 중에 집권전략위원회가 있었다. 당 지지율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당 정체성에 관한 대중적 의문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집권 전략을 고민하다니. 굳이 위로부터 무엇이 필요했다면 그것은 당 혁신 위원회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자주파의 패권주의, 그 카운터 파트너였던 평등파의 정치력 부재가 이룬 앙상블은 2007년 대선 실패와 비대위까지 이어졌고, 분당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뛰쳐나가면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해서 자주파는 몰락하고, 우리가 좌파를 대표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 거죠. 땅을 치고 후회할 일입니다." (이광수)

분당 이후 진보신당에 낙관적인 기대도 있었지만, 한쪽에서 불안정한 조직적 토대에 대한 불안감도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8년 총선에서 '지못미' 바람만 남겨놓은 채 현실 정치의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촛불 정국 속에서 정치 운동으로서 진보 정치의 본령을 인식할 수 있었다. 문제는 버티지 못했다는 것이고 조급했다는 것이다. 2004년 원내 진입을 지난한 한국 진보 운동의 결과로 평가하던 그 엄숙함이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안에서 싸웠더라면 (…) 5년이고 10년이고 함께하면서 전체적으로 운동을 하건 진보 좌파의 복원을 추진하건 (…) 오류를 범했어요." (남종석)

대담자들은 모두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필자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오류였다거나 정치적 오판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와 조직의 지속성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미 내부 정치로부터 내파했던 민주노동당 내 균열과 갈등은 통합진보당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시간은 기억을 미화하면서 재구성하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진보 정치의 복원을 위해 첫 번째로 할 일은 민주노동당을 잊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 깨끗하게 지우는 것이다.

▲ 50년 된 불판을 갈아엎겠다던 진보 정치의 아이콘은 10년 만에, 갈아엎겠다던 그 불판과 '담판'을 벌여 '야권' 단일 후보가 됐지만 7.30 재보선에서 패배했다. 진보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노회찬 선거운동캠프

6.4 지방선거, 제2기 진보 정당 운동의 자연사?

노동 진영의 배타적 지지를 토대로 한 정파 간 긴장 관계를 주요 축으로 성립했던 민주노동당을 진보 정당 운동의 제1기라고 한다면, 세력 간 분립 체제를 제2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여기서 통합진보당은 자유주의 세력 일부가 합세하기는 했으나 민주노동당의 전철을 되풀이했다는 점에서 정치사적으로 크게 평가할 지점은 없을 것 같다). 대담자들은 6.4 지방선거 결과를 "사실상 새누리당의 승리"와 "진보 정당의 참담한 패배"로 요약했다. 광역단체장 17곳 중 9곳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승리한 것을 두고 '무승부'라는 평가도 있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보여주었던 집권 세력의 무능력과 오합지졸을 상기해본다면, 오히려 민심은 야권의 수권 능력에 더 많은 의문부호를 던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7.30 재보선은 그 극한점을 보여주었다.

거대 양당 간 이전투구 속에서 진보 정당들은 지방선거에서 광역의회 4석, 기초의회 51석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아들여야 했다. 진보 정당의 내로라하던 말 그대로 지역 정치 '선수'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이번 선거 대응을 특별히 잘못해서 망한 게 아니라,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이미 망가졌고, 이번에는 그냥 진단서를 받은 거죠." (이창우)

"분명한 것은 이제 새정치민주연합이 반새누리당 표를 거의 흡수해 가고, 진보 진영은 거의 외면당한다는 사실입니다." (남종석)

대담자들이 지적한 사분오열된 진보 정당의 현실, 그리고 정당 간 후보 조정과 같은 정치 공학의 문제가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와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여전히 중앙 정치에 예속된 지방 정치의 현실 속에서 지역 정치, 생활 정치로서 진보 정치의 정체성이 부각되지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진보 정치 복원의 출발점은 현재의 진보 정당 체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두 번째로 할 일은 지금의 진보 정당들은 어떤 정당들인가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진보 정당 간 연대의 최소 조건은?

▲ <위기의 진보 정당, 무엇을 할 것인가>. ⓒ앨피
"사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진보 정당 연대밖에 없어요. 그것이 합당이든 연합이든 정책 연대든 말이지요." (이광수)

국제 정치에서 동맹(연대)의 최소 조건은 외부의 위협이다. 국내 정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 정치의 위기가 내부에서 파생된 것은 분명하지만,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와 승자독식의 정치 제도 측면에서 주어지는 항상적인 성격도 있기 때문에 진보 정당 자체의 혁신과 함께 분명 진보 정치 세력들 간의 협력도 요구된다. 예컨대 '이석기 사건'에 대해 다른 진보 정당들의 입장은 대단히 비판적이지만, 그것을 사법 처리의 대상으로 몰고 가는 데 대해서는 모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힌 점도 진보 정치가 연대를 위한 최소 토대는 가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우선 노동당과 정의당은 어떨까?

"노동 운동의 중심성, 노동 자계급의 이해에 토대를 둔 급진적인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 입장이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당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대안적인 정책 정당을 지향하는 반면, 노동당에는 근본주의자들도 꽤 많아요." (남종석)

"노동 중심성에 대한 정의당과 노동당의 차이를 논할 때 제가 정의당을 변론한다면, (…)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없는 한계가 있더라도 당장 처한 현실에서 단기적 처방으로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면 긍정성을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창우)

노동 중심성은 철학과 사상보다는 현실적으로 조직 노동에 대한 입장 및 정당으로서 정치적 기획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 문제다. 즉 진보 정당으로서 조직 노동과 어떤 관계를 지향하느냐, 그것을 정치적 노동 운동이라 부르든 정당의 노동 정치라 부르든 말이다. 한편 노동 중심에 관해 녹색당의 입장은 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민중들이 노동 문제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들에게 노동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죠",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관계가 먹고사는 관계니까, 먹고사는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최희철)

다른 진보 정당 당원들이 녹색당에 요구하는 것은 "가치나 이념"보다는 현실적 개입의 의지와 조직화였고, 최희철은 이에 대해 "힘의 논리"라고 반박한다. 이 지점에서 녹색당의 고민이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구체적으로 밀양 송전탑 투쟁이나 원전 폐기 정책을 가치나 이념만을 앞세운 것으로 평가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미 현실 정치에서 각 당의 연대를 위한 구체적 사안은 다양하게 갖춰져 있는 셈이다.

진보 정당 운동의 생존 전략

세 번째는 구체적 생존 전략으로 들어간다. 진보 정당 간 관계뿐만 아니라, 야권의 일부로서 진보 정당의 위상을 함께 생각한다면 빅텐트론부터 정의당과 노동당을 필두로 하는 단계적 통합론, 경기동부 왕따론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저는 확신은 없습니다만, 새정치민주연합을 숙주로 삼아 그 속에 왕창 들어가서 힘을 키우고 독자적인 세력화를 모색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정당을 하는 이상 집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 정당과의 연정까지 열어놓고 (…) 중도 좌파적 정체성을 가지는 연합 정당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창우)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여타 진보 세력들은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서 새로운 통합 세력을 형성해야만 정치 세력으로서 자기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토대로 통합진보당과는 선거 시기 등 전술적 연대와 정책 연대를 통해 공동 블록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죠." (남종석)

진보 정당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감대는 있지만, 그 상황에 근거한 현실적 생존 전략에 관해서는 소속 정당에 따른 견해차가 보인다. 이러한 고민은 6.4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7.30 재보선 결과 분석과 함께 각 당 내부에서 더욱더 치열하게 토론되어야 할 것이다. 유레카라고 할 만한 최적의 해답을 쉽게 얻을 수 없겠으나,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 진보 진영에 마음의 습관이 되느냐에 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진보는 외면받게 될 겁니다. (…)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패러다임의 안과 밖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고 그 변화에 패러다임의 주체인 '사람'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최희철)

진보 정당에 필요한 '뱀 같은 지혜'

필자는 진보 정당의 정치를 진보 정당 운동이라고 표현했다. 굳이 운동을 붙이는 것은 무슨 사회 운동의 고결함이나 도덕성, 혹은 선명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논의된 것 중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정치냐 운동이냐 하는 것이었다. 운동은 문제 제기, 정당은 문제 해결이라는 도식은 오히려 현대 정치의 복잡성과 사회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보게 만든다. 그래도 정치로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보 정당이 가지는 최소의 정치적 의미라면, 운동과 진보 정치는 긴장과 협력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굳이 변혁론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낸 '민주적 계급투쟁'의 요체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필자에게 진보 정당에 필요한 "뱀 같은 지혜"란 현실 정치에 유연하게 개입하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은, 어쩌면 딜레마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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