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8년에 일어난 '동일방직 노조원 해고 사건'의 피해 여성 노동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동일방직 똥물 테러 사건'과 블랙리스트 작성의 배후로 지목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인천 동일방직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여성 노동자 11명이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국가가 각 100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원심을 취소하고 소를 각하했다고 3일 밝혔다.
'동일방직 똥물 테러'란 1978년 야간 근무를 마친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 지도부 선거에 투표하려고 노조 사무실에 가자, 구사대로 동원된 남성 노동자들이 느닷없이 여성 노조원의 얼굴과 몸에 똥을 끼얹고 코와 입에도 똥을 쑤셔 넣은 사건을 일컫는다. 이후 20대 여성 노조원 124명이 대량 해고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2010년 6월 동일방직 똥물 테러와 노조 와해, 대량 해고의 배후에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깊숙이 개입했다고 결론 내렸다.
'똥물 테러' 이후 회사가 '해고자 복직과 구속자 석방'이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중앙정보부의 지시로 124명이 대량 해고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앙정보부는 해고자 명단, 주민등록번호, 본적, 퇴사 회사 등을 수합해 '블랙리스트'를 만든 뒤 이를 전국 사업장에 뿌렸다. 이 때문에 해고자들은 10년 이상 재취업을 하지 못하는 피해를 겪었다.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2001~2004년에 걸쳐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해고된 동일방직 노조원 일부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생활지원금 50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국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업을 못한 피해는 민주화 운동 관련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후 진실화해위가 2010년 6월 국가가 동일방직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하자, 피해자들은 2011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라고 보고 생활지원금을 지급했으므로,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는 것은 '중복 지급'이라는 이유로 소를 각하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해고 개입 행위와 취업 방해 행위로 인한 해직 기간은 중첩되기 때문에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지급으로 이를 모두 보상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미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보상'을 했으므로, 국가가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는 데 동의했다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미친다고 봐야 한다"며 "취업 방해로 인한 위자료 청구에 대해서는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2001~2004년 당시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생활지원금을 받지 못한 피해자 6명에 대해서도 각 1000만~2000만 원의 국가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원심의 판결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국가가 "손해배상을 할 소멸 시효가 지났다고 항변"한 것을 서울고법이 배척한 데 대해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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