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증·개축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국정원이 두 차례의 해명 자료를 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 25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물 속에 잠겨 있는 세월호에서 발견된 세월호 업무용 노트북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국정원 지적 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하고, "국정원이 세월호 실소유주가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었다. 이에 국정원은 25일 저녁 보도자료를 내고 "국정원은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 요청으로 세월호의 국가보호장비 지정을 위해 3월 18~20일 '보안측정'을 실시했다"고 밝혔지만, 해당 문건의 작성 날짜가 2013년 2월 27일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이틀 후인 27일 재차 보도자료를 냈다.
두 번째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은 "사전 준비의 일환으로 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 등과 합동으로 2월 26~27일간 세월호를 방문하여 미비점 등을 점검한 사실이 있다"고 뒤늦게 밝혔다. 또한 국정원은 100개 항목 중 4개 항목인 △보안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CCTV 추가 신설 (2개 항목) △비상시 대비 객실 내 일본어 표기 아크릴판 제거 △탈출 방향 화살표 제작 및 부착 등을 보안·대테러상 개선 필요 사항으로 언급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문서에 나타난 것처럼 '직원 휴가계획서', '작업수당 보고서 제출' 등 나머지 사항들은 유관기관에서 제기한 사항 및 세월호 자체 설비 공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국정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 만약 증·개축 개입했다면…'국정원 실소유주' 의혹 핵심 쟁점은?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김광진, 문병호, 문희상, 박영선, 박지원 의원은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개입설 관련 8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을 통해 본 의혹의 핵심은 크게 4가지로 압축된다. △세월호 증·개축 과정에서 국정원 개입이 있었는지 △보안 예비 조사가 있었음을 왜 국정조사 등에서 미리보고하지 않았는지 △보안 측정이 최종 완료되기도 전에 세월호 운항 개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세월호 직원들의 휴가 계획이 왜 국정원 지적 사항 문건에 포함돼 있는지 여부 등이다.
국정원이 보안 예비 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만큼 이 문서는 '진본'이다. 문제는 직원 휴가 계획서 등을 포함한 100가지 사항이 모두 국정원에 의해 지적된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국정원에 의해 지적된 사안이라면,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은 4가지만 지적했고 나머지는 해양수산부 등 다른 기관에서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스스로 신빙성을 깎아먹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정치연합은 두 차례의 보도 자료를 통해 내놓은 국정원의 해명 뉘앙스가 다르다는 점에서 "국정원이 감추고 있는 것이 더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국정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며, 이 문건 작성자 등에 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새정치연합의 주장이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월 10일 국정조사 기관 보고와 7월 25일 1차 해명에서 2월 26~27일간 예비조사 보고를 누락하고 뒤늦게 인정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국정원이 지적했다고 인정한 4개 항목 중 "객실내 일본어 표기 아크릴판 제거작업", "탈출방향 화살표 제작 및 부착" 등은 보안과 무관한 내용이었다는 점을 들어 국정원의 주장에 일관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이어 "국정원은 100개 항목 중 4개만 지적했다고 해명했으나 상식적으로 문서 내용 중 단 4%에 해당하는 4개의 항목만으로 문서의 제목을 달지 않는다. 나머지 96개 항목 또한 국정원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노트북에 파일명을 '국정원 지적 사항'이라고 저장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국정원은 모른다고 발뺌할 것이 아니라 문건 작성자를 찾아 수사, 조사하고, 문건의 파일명에 대해서도 분명히 해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국정원 지적 사항 100개가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세월호의 증·개축에도 관여한 것"이라며 "특히 청해진해운이 '인천-제주' 황금 노선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국정원이 세월호의 증·개축 계획과 공사 과정에서 관여했을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증·개축에 관여했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질 경우, 국정원은 세월호 침몰의 주요 원인을 제공한 것이 된다.
실제로 사망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비롯, 유대균, 유혁기 등 세월호 실소유주들의 '세월호 증·개축 관여' 여부는 향후 법정에서 유 씨 일가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가릴 핵심 쟁점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어 "국가 보호 장비로 지정된 선박은 보안 경비 부담 주체가 항만공사, 항만청, 해운조합 등인데 세월호만 유일하게 청해진해운이 비용을 직접 부담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세월호 증·개축 과정에 무언가 개입하였기 때문에 세월호만 보안 경비를 직접 부담하도록한 것은 아닌지 밝혀야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국정원의 세월호 공식 보안측정은 2013년 3월 18일~20일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월호는 공식 보안 측정 이전인 3월 15일에 첫 출항했다. 세월호가 보안 측정을 마치기도 전에 출항한 것은 이 배가 국정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닌지 국정원은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단순 보안 점검일 뿐인데…선거 개입하려는 의도"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연합의 주장을 반박했다. 국정원 국장 출신이기도 한 이 의원은 "새정치연합이 발표한 8대 의혹은 전혀 근거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밝혀둔다"며 "국정원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단순히 일상적인 보안 점검 내용을 세월호에만 실시한 것처럼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새정치연합 측은 어제도 7.30 재보선을 하루 앞둔 29일 국회 정보위 긴급소집 요구서를 보내는 등 국정원과 세월호 사고를 연결짓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며 "당 지도부가 모두 재보선 현장에 나가 있는 와중에서 새정치연합 측이 주장하는 국회 정보위 소집 요구는 선거를 앞두고 국정원 관련 의혹을 부풀려 득표에 유리하도록 연결시키려는, 누가 봐도 선거용 전략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새정치연합 측은 이같은 의혹 부풀리기를 즉각 중단해 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정보위 소집은 불발됐지만, 새정치연합 측은 오는 31일 있을 국회 결산 보고에서 이병기 국정원장과 국정원 고위 간부들을 상대로 '8대 의혹'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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