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일을 사흘 앞둔 21일 어버이연합, 엄마부대봉사단 등의 이름을 내건 단체들이 광화문에서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을 찾아와 서명판을 뒤엎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17일부터 '세월호 특별법 반대'를 내세우며 광화문에 출몰했다. (☞관련 기사 : 이제는 폭력까지…보수단체, 세월호 농성장서 '난동')
공교롭게도 이들의 주장은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지인들에게 돌렸다는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과 유사하다. 심 의원이 "6월부터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것을 복사 전달했다"던 그 글은 '특별법'이 '특별대우 해달라'는 법으로 오해되게끔 쓰여 있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공분을 샀다. (☞관련 기사 : 심재철, '세월호 특별법' 왜곡 유언비어 유포 파문)

"자식이 돈으로 계산이 되나요?"
해당 글에는 1인당 총 10억 원 가까운, 근거도 없는 보상액이 언급된다. 멋대로 거액의 보상액을 던져놓고는 국가유공자의 보상액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를 요구한다는 비난도 곁들인다. 유가족들이 요청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의 의도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서이다.
유가족들은 의사자 지정과 대입 특례입학 등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보상과 배상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먼저'라며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자꾸 이러한 루머들이 퍼지는 것 때문에 상처받고 있다. 21일 국회에서 만난 단원고 2학년 6반 고 권순범 학생의 어머니 최지영(51) 씨는 피를 토하듯 분노의 심정을 쏟아내었다.
"어떻게 돈하고 계산해요? 자식하고. 내가 10억 주고 우리 아들 살려달라면 해줄 거예요?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어떤 짓을 해서라도 그 돈을 만들어 줄 거예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느냐고요."
최지영 씨에게 순범이는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위해 청소며 빨래를 도맡아 해놓던 "하는 짓마다 예쁜" 자식이었다. 엄마는 이름처럼 고운 막내아들이 사라진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가슴을 치고 있다. 자식을 잃고 나서 '돈'으로 '보상'이 될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최지영 씨는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는다.
같은 반 희생자인 고 이장환 군의 아버지 이세주 씨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살면서 돈이 있을 때도 행복했고, 없을 때도 행복했어요. 왜?…가족이 있으니까."
돈이 있어도, 없어도, 가족이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 가족 중 하나가 없다. 그 상실감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 사회는 무섭다.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성'이 파괴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생명마저도 돈과 바꾸며 '참사'를 반복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정말 '수사권'이 문제인가
새누리당에서는 진상조사규명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는 격한 말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걱정하는 것은 '정말로' 형사사법체계의 혼란인가.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단순히 조사권만 가진 진상조사규명위원회가 얼마나 유명무실한 존재인지는 이미 여러 '전례'를 통해 확인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지금 진행 중인 국정조사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이번 국정조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당일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대면 보고를 받은 사실도 없고, 대통령 주재회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사고 발생 후 7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으며, 사고대응과 관련해 어떤 일을 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유가족의 요구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성역 없이, 의혹을 남기지 않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의 원인이 밝혀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참사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울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결국은 이 단순한 목적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어떻게 해서라도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진심이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단지 '형사사법체계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말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 정부와 집권여당의 자세인가. 형사사법체계는 왜 필요한가. 죄지은 자를 벌주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지게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낳은 참사들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 사회의 형사사법체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관련 기사 : 세월호 유가족들 "박근혜, 악어의 눈물 아니라면…")
정부와 집권여당이 진상규명보다 정권의 안위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인상을 주니 유가족들의 불신이 깊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관련 기사 : '2기내각' 첫 각의, 朴대통령 '세월호특별법' 침묵)

'이제, 잊으라' 말하는 잔혹한 사람들
자식의 이름이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며 '순범이 엄마'로 불러달라는 최지영 씨는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삼켰다.
"우리 애들 한은 풀어줘야 할 것 아닌가요.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명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구조하려고 그랬으면 괜찮아요. 우리 애들 운명인가보다 생각하겠죠. 이건 운명이 아니잖아요. 너무 화가 나고 뒤집어엎고 싶은 데도요, 우리 애들 얼굴 깎일까 봐 못 해요. 우리 애들 얼굴 깎이면 안 되잖아요. 우리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유가족들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죽지 않아도 될 목숨을 사지로 몰아넣었으며, 살릴 수 있는 목숨을 제때에 살리지 않고 방치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만 다른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번 참사만이라도 정확히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혀서 재발을 방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이게 무서운 게 (사고를 당한 사람이) 내 조카가 될 수도 있고, 내 막내(아이)가 될 수 있고, 친구의 애기가 될 수 있고, 또 한참 어린 애기들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운이 나빠서 우리 애기들이 피하지 못했을 뿐이지. 이런 위험한 데에서 살고 있다는 거. 누구나 될 수가 있는 건데….
우리 애기가 거기 있었다는 것 자체가 로또 확률보다 낮은 사고였다? 전 그렇게 안 봐요. 시시각각 여기에 사고가 막 나고 있는데 발표가 안 되었을 뿐이지 사고는 계속 나요. 이런 세상에 있는 거예요. 이게 현실인 거 같아요. 이런 위험 속에 살고 있다는 자체가 무서운 거 같아요. 우리가 원하는 거는 그거에요.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
고 이장환 학생의 아버지 이세주 씨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낳은 사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런데 수많은 의혹을 앞에 두고도 '그만하자'는 이들, 제대로 슬퍼하기도 전에 '잊으라'는 이들, 좋은 노래도 삼일이면 '지겹다'는 이들, 자식이 죽었어도 적당한 돈이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말들 속에서 지난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참사가 일어났다 다시 반복되는 한 이유를 읽게 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배에 탄 목숨들을 죽게 했다면, '잊으라'는 말은 또 다른 목숨들을 사지로 내몰 것이다.
'그저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정말 알겠는가
세월호 참사 100일. 우리는 다시금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 고 이승현 학생의 아버지와 누나, 고 김웅기 학생의 아버지는 지난 8일부터 안산에서 팽목항을 거쳐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할 대전까지 십자가를 지고 걷는 800km의 순례길을 매일같이 걷고 있다.
7월 15일과 16일에 걸쳐 안산에서 국회까지 생존 학생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37km의 길을 도보 행진을 한 데 이어, 23일과 참사 100일을 맞는 24일에 걸쳐 유가족들이 같은 길을 걸어 서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죽어간 아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 고통을 참으며 걷고 또 걷는다. 지금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닿아보려고 애쓰는 마음.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에 저항하고, '다 들었다'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아픔을 느껴보아야 한다.
끝으로, 고 이장환 학생의 아버지 이세주 씨의 소망 하나를 덧붙인다.
"우리나라에 있는 애기들은 다 우리 애기들이에요. 이 애기들을 다 진짜 사고 없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엄마 아빠들이 이러고 있는 거예요. 우리 진짜 죽을 거 같아요. 힘들어서. 진짜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해요. 난 솔직한 얘기로 특별법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난 우리 애기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 꿈에서라도 한번 안아보고 싶고. 그게 다예요. 진짜. 그거밖에 없어요."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