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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56명인데,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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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56명인데, 갈 곳이 없다

[에이즈 환자와 치료받을 권리 ④·끝] 에이즈 환자에게 가혹한 한국의 사회복지

당신은 한 번이라도 에이즈 환자와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에이즈 환자와 가족들은 한국 사회에서 아마도 가장 큰 차별을 받지만, 그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에이즈란 질병에 대해 정확한 이해와 소통이 없다. 에이즈라는 '질병' 자체에 대해 선악으로 접근하거나 비과학적 믿음에 근거한 가치를 적용함으로써 에이즈 환자를 '환자'가 아닌 마치 '죄인'처럼 대하고 있다. 질병을 앓는 대다수 환자에 대해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거나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기도 한다. 적어도 환자에 대해 비난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이즈 환자에 대해서만큼은 인지상정에서 어긋난 태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가 굳어질수록 에이즈 환자들은 생활 문제부터 치료 및 요양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개인이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홀로' 두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차별을 용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마저도 보호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다면, 그 차별의 범주는 계속 확대될 것이다. 결국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외면으로 언젠가 우리 자신도 차별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외면당하고 차별받는 이 땅의 모든 존재에 대해 우리는 민감도를 높여야 한다.

단 56명의 환자가 갈 곳이 없다

1년 전, 국가로부터 에이즈 환자 요양사업을 위탁받은 S요양병원에서 에이즈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2014년 1월 질병관리본부는 위탁계약을 해지했다. 올해 초에 56명의 환자가 S요양병원에 입원했었다. S요양병원에서는 환자 방치, 부적절한 치료, 인권침해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56명의 환자를 안전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및 요양시설을 확보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S요양병원에서 다른 시설로 전원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에이즈 환자들이 있다. 환자를 잘못 돌봐서 숨지게 만든 병원에서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 머물고 있다. 더욱이 환자들 다수가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고, 위탁계약이 해지된 이후 병원에 대한 감시조차도 없는 상태에서 지내고 있다. 560명도 아닌 단 56명의 치료 및 요양시설을 찾는데 7개월이란 시간을 보냈음에도 국가는 해법을 찾지 못했다.

대안 시설을 찾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질병에 대한 공포와 편견으로 거의 대부분의 병원과 시설이 에이즈 환자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보건의료법 제10조 ②)”고 법으로 건강권을 보장했지만, 에이즈 환자의 권리는 보장되고 있지 않다. 법·제도적 측면에서도 에이즈 환자에 대한 보호가 미약할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한 공포와 편견을 제거하려는 국가의 노력은 거의 없다.

▲ 독일의 '건강한 교육을 위한 연방센터'에서 만든 홍보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HIV 양성이면서 엄마이기?', 'HIV 양성이면서 생존하기?', 'HIV 양성이면서 일하기?', 'HIV 양성이면서 친구이기?'라고 적혀 있다.

독일은 '건강한 교육을 위한 연방센터(Bundeszentrale fuer gesundheitliche Aufklaerung)'를 운영해 에이즈 질환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해 시민의 선입견을 완화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에이즈 환자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더불어 사회보험제도 내에서 에이즈 환자가 치료상 제약을 받지 않도록 법적으로 지원하고, 전국에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적극적인 국가 지원을 통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을 감소시켰고, HIV 감염인의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통제 가능한 사회 문제로 표면화시켰다.

넘쳐나는 요양시설과 갈 곳 없는 에이즈 환자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노인에 대한 돌봄이 개인의 책임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되었다. 사회보험에 기반을 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보편주의적 원리에 따라 기여와 급여가 일치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서비스 대상자가 65세 이상 노인 또는 65세 미만 노인성 질병을 가진 사람으로 6개월 이상 기간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65세 이상 에이즈 환자도 법적으로는 노인장기요양 급여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민간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대다수 요양시설과 재가서비스 운영기관이 에이즈 환자를 거부한다. 이렇게 거부될 경우 환자에게는 침해당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수단이 없다. 그러므로 요양의 욕구가 가장 큰 대상자임에도 제도의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또한 65세 미만의 에이즈 환자들이 앓고 있는 질병은 노인성 질병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은 노인장기요양 급여를 이용할 수 없고, 설령 이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거부당하면 법적인 권리조차도 행사하지 못한 채 방치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대다수 사회적 돌봄 서비스는 노인과 아동에 집중되어 있다. 또 인프라는 공적 전달체계가 아닌 민간 공급업자 중심으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복지서비스 확대가 복시 시장의 확대로 귀결되었고, 대다수 민간업자는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게 됐다. 이렇다 보니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나 공공성은 점점 취약해지고, 에이즈 환자와 같이 민감한 대상자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있다. 이러한 회피에 대해 국가는 통제 권한조차도 행사하지 않고 있다. 눈에 띄게 늘어난 복지기관 속에서 정작 에이즈 환자들과 같이 서비스의 욕구가 가장 큰 사람들이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 우리 사회복지의 모순이다.

권리의 우선성과 고위험 포괄의 필요성

한국 복지는 여전히 잔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복지의 잔여성'이란 인간의 욕구나 사회 문제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해서, 욕구의 주체가 스스로 필요한 욕구를 채우지 못할 경우 때만 국가가 최후적이고 단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잔여적 복지 국가에서는 개인과 가족이 생애 위험과 사회 문제에 대해 스스로 대처해야 할 책임이 강화된다.

한국 사회 역시도 잔여적 복지를 넘어선 보편 복지에 대한 갈망과 요구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보편 복지의 확대와 더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전제는 욕구의 우선도이다. 즉 욕구가 가장 필요한 주체에게 최우선적인 지원과 권리 보장을 우선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을 마치 선별주의로 간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사회적 재원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와 관련된 사회복지 할당의 원칙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욕구가 가장 큰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면서 최대한 보편성을 확대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복지국가의 발전 경로이다.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들은 학교, 직장, 심지어 병원과 요양시설에 이르기까지 외면당하고 차별받고 있다. 이들에 대한 권리 보호와 사회보장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제도화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사회복지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다. 국가는 에이즈 환자를 위한 공공병원 및 요양시설을 제공하고, 이들의 환자 권리를 회복시키며 복지권을 부여해야 비로소 존재 의미가 증명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위험이 가장 큰 사람들에 대한 우선성을 제고하고, 필요한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해야 한다.

복지부 장관이 2010년 위탁한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수행해온 S요양병원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와 치료 방치가 발생하였다. S요양병원의 문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낙인에서 기인하기도 하며, 요양서비스 제공자가 요양서비스 주체를 배제하고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악용하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은 이 문제에 맞서 싸워가고 있는 활동가들로부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다양한 문제와 맥락을 살펴보고는 기획 기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에이즈 환자와 치료받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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