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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영리화, 병원을 '제2의 세월호'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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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영리화, 병원을 '제2의 세월호'로 만든다

[노동자가 말하는 '안전'·⑤]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미국의 3배

<프레시안>은 지난달 27일부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직접 쓴 '시민 안전' 기고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철도, 지하철, 가스, 병원, 버스, 공항, 항공, 보육 및 요양시설, 건설, 화물, 화학섬유 관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 각 사업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안전 문제를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취지입니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연재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지난 5월 28일 전남 장성에 있는 효사랑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지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건강해지기 위해,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간 환자들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 사고가 벌어졌을까? 다행히 규모가 크지 않은 작은 불이었고, 불길도 빨리 잡혔지만 21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치는 등 인명 피해는 너무나 컸다. 여기에는 총체적인 부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화재 같은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근무인력이 부족했다. 의료법상 요양병원 근무기준은 의사는 입원 환자 40명당 1명,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는 입원 환자 6인당 1명이다. 야간 당직근무는 200병상당 의사 1명, 간호사 2명이다.

그러나 화재 당시 효사랑요양병원에는 324명의 입원 환자가 있었지만 당직 의사는 1명뿐이었다. 게다가 불이 난 별관에는 79명의 입원 환자가 있었는데 당직 의사는 없고 간호조무사 1명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요양병원 특성상 거동 불편 환자, 치매 환자들이 많은데, 인력기준 자체가 느슨한 데다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형 참사를 막지 못했던 것이다.

사망 원인은 불길 자체보다는 대부분 유독가스 때문이었다. 효사랑요양병원의 설계도면에는 벽면을 콘크리트로 만들게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했다. 화재 등을 대비해 열려 있어야 할 비상구는 잠겨 있었고, 소화기는 11개 중 8개가 잠긴 캐비닛 안에 들어 있었다.
④ 화물 : 운전자들은 안 믿는 '세월호 3608톤', 국가는 믿나

안전 점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장성군 보건소는 효사랑요양병원 화재가 발생하기 1주일 전에 안전 점검을 했지만 점검표에 문제가 없다고 표시했다.

관리감독도 엉망이었다. 효사랑요양병원은 규정을 어겼지만 관리감독 기관인 전남도와 장성군으로부터 단 한 차례도 지적받지 않았다. 정기 소방 점검에서는 모두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소방 점검을 맡은 대행업체가 대충대충 점검한 것이다. 연 1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소방 훈련과 안전 점검은 유명무실했다.

보건복지부의 인증 평가도 무용지물이었다. 효사랑요양병원은 1년 전에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 평가인증원이 실시한 의료기관 인증 평가를 통과했다. 인력 기준을 어겼지만 보건복지부는 통과시켰다. 형식적이고 졸속인 평가 인증제가 사고 무방비 상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시설물 기준도 너무나 느슨했다. 요양병원은 방화 셔터나 스프링클러 설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4년 전 경북 포항의 노인요양원에서 10명이 죽고 17명이 다치는 화재 사건이 발생한 후 모든 취약자 생활 시설은 면적과 관계없이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를 의무적으로 달도록 기준이 강화됐지만 요양병원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효사랑요양병원 참사가 벌어지고 나서야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설립되는 요양병원에는 스프링클러나 간이 스프링클러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기존 요양병원은 제외했다.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 수, 미국의 3배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참사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병원의 허술한 안전 조치와 인력부족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병원에서의 안전사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병원은 환자·보호자·노동자 등 수많은 사람이 24시간 상주하는 곳으로서 화재 사고뿐만 아니라 감염 사고, 낙상 사고, 폭행 사고, 의료 사고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전기 공급, 산소 공급, 냉난방, 방사능, 위험 의약품 등과 관련한 안전사고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병원에서의 대형 인명 사고를 피할 수 없다.

시설 안전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다. 얼마 전 인천의 모 병원에서도 전선 배관에서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병원에 있던 환자와 가족, 직원 등 40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120여 명이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는 사건이 있었다. 전기 시설과 소방 시설을 제때에 점검하고 노후화된 시설을 개조하지 않으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취약한 시설 구조를 안전 위주로 바꾸는 것도 과제이다. 대부분 병원들은 고층인데도 엘리베이터와 계단만 있지, 화재가 발생했을 때 휠체어나 침대를 신속하게 이동하여 대피할 수 있는 경사로가 없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병원 건물을 지을 때 경사로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 안전을 위해 시설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 안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이다. 병원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곳으로서 의료 인력의 양과 질이 곧 환자 안전과 직결된다.

ⓒ프레시안(최형락)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참사 이후 전라남도가 59곳의 요양병원에 대한 불시점검을 해봤더니 당직 의료인 근무 규정을 위반한 곳이 12곳으로 조사됐다. 법에 정한 인력기준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19일 천안의 한 정형외과에서는 학교에서 팔을 다친 초등학생이 골절 수술을 받으려 마취 주사를 맞았으나 깨어나지 못하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막을 살펴보니 마취주사를 놓은 사람은 마취 전문 의사도 아니고 마취 전문 간호사도 아니고 간호조무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병원은 의료법상 간호인력을 5명 이상 고용해야 하나, 정식 간호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연평균 1일 입원 환자당 2.5로 나눈 수만큼 정식 간호사를 고용해야 한다는 의료법 규정이 있지만 의료 현장에서 이 의료법은 거의 무용지물인 셈이다. 병원 중 86.2%가 의료법에서 정하고 있는 간호 인력 기준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간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는 낮 근무 기준으로 평균 17.7명이다. 미국의 5.7명에 비하면 3배 수준이다. 201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9.3명이다. 룩셈부르크·스위스는 16명이 넘고, 노르웨이·아이슬란드·덴마크는 14명이 넘는다. 한국은 간호조무사까지 포함한 간호 인력 수가 인구 1000명당 4.6명에 불과하다.
인력 기준을 강화하고 환자를 돌보는 인력을 충원하지 않으면 환자 안전을 위한 3중, 4중의 안전 점검 체계가 작동될 수 없다.

일반 병동의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를 6명에서 5명으로 줄이면, 사망률이 8~10%까지 줄어든다거나, 외과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6명에서 2~3.5명으로 줄면 환자 1000명당 15명의 생명을 추가로 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모 대학 교수팀의 분석 결과를 보면 2010년 한해 우리나라 의료사고 사망자는 약 4만 명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6830명의 5.7배, 산업재해 사망자 2089명의 18.7배나 많다. 의료 사고를 줄이고 환자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인력 확보가 필수요소인 것이다.

의료 사고를 줄이기 위한 '환자안전법'과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보건의료인력특별법'이 발의되었지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요양병원 화재 참사의 교훈에 따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국가 개조 수준의 조치를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법안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

의료 민영화, 병원을 '제2의 세월호'로 만들 것

그러나 정작 안타까운 것은 제2의 세월호 참사보다도 더 끔찍한 재앙을 초래할 의료 민영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환자 간 원격 진료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아 의료 사고 위험성이 높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출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절차를 간소화하게 되면 의료기기와 의약품 생산 업체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기겠지만 정작 국민들은 의료 사고의 피해자가 되고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병원이 환자를 대상으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영리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호텔업이나 숙박업, 운동 시설, 식품 판매, 건물 임대 사업 등 수익 목적의 부대사업을 대폭 확대하면 병원은 환자 안전보다는 영리 추구에 내몰리게 된다. 병원마다 수익을 위해 위험-안전 업무를 외주화하고 전문성과 숙련성을 갖추지 못한 비정규직 인력으로 대체할 것이고, 그만큼 의료 사고의 위험도 커지고 의료 서비스의 질도 떨어지게 된다.

의료 민영화 정책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으려면 의료를 영리 자본의 투자 대상으로 만들고 병원을 안전 사각지대로 만드는 의료 민영화 정책부터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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