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팜파라치'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말 그대로이다. 무면허 약사를 찾아 고발하여 상금을 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요즘 '팜파라치'로 약국들은 골치라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팜파라치'를 비난하기 전에 왜 그런 사람들이 생겼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약국에서는 약사가 아닌데도 복용에 대해 설명하며 약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카운터 약사'인데, 실상 그들이 약을 파는 행위는 불법이다. 문제는 약을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 약사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 약사회에서는 자정 노력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 올해 6월부터는 약사가 위생복과 명찰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한 규정을 폐기하는 약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환자 입장에서는 약사를 식별할 방법이 없어져 버렸다. 무면허 약 판매를 하더라도 고객 입장에는 알 방법이 없어져 버린 셈이다. '팜파라치'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도 있음을 예상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약사의 위생복 의무 착용 및 명찰 의무 패용은 형평성을 이유로 폐기됐다. '의사, 한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에는 위생복 의무 착용 규정이 없는데, 약사에게만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약사계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형평성 문제라면 모두 의무 착용하도록 하면 될 일을 굳이 없애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명찰 패용은 '이름' 하나 표시하는 단순한 일일 뿐이지만 이것이 주는 영향력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명찰 패용', 보건의료인과 환자 간 신뢰 형성에 도움
왜 '명찰 패용'이 꼭 필요한 것일까.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회원 403명에게 실시한 '보건의료인 명찰 의무 착용'에 대한 인터넷 설문조사에 그 답이 나와 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적법한 보건의료인인지를 어떻게 확인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확인하지 않고 병·의원, 한의원, 약국에서 일하면 모두 보건의료인으로 생각한다'는 답변이 38%였고 '가운을 입었으면 보건의료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은 24%였다. 이는 환자들은 병원이나 약국에서 일하거나 위생복만 착용하고 있으면 그냥 적법한 보건의료인이라고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문제는 환자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함으로써 무자격자들이 의료·약무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의사 역할을 하는 간호사인 PA(Physician's Assistant) 간호사이다. PA 간호사는 현행법상 허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수술 보조·상처 봉합·전문설명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2010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영희 의원(민주당)이 국정감사 당시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우리나라 의사보조(PA) 현황'을 보면 PA 간호사 인력은 2005년 235명에서 2009년 968명으로 4년 동안 4.1배 증가했다. 특히 PA 간호사 인력 968명 중 85%인 821명이 외과 분야에 집중되어 그들이 직접 수술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솔직히 PA 간호사가 월권행위를 하더라도 환자들은 그 상황을 알기가 어렵다. 위생복을 착용 여부로만 구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제5회 환자 샤우팅카페에서는 경기도 모 대학병원에서 자궁 근종만 절제하는 수술인 줄 알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자궁이 적출된 최남미 씨가 나와 억울함을 하소연한 적이 있다. 최 씨는 "수술동의서 작성 시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하지 않았고, 설명한 사람도 흰 가운을 입고 있어서 당시 담당 의사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PA 간호사였다"며 "대학병원이라는 데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분노를 표했다.
이러한 일은 비단 PA 간호사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의료기기 영업사원이나 간호조무사도 마찬가지이다. 새 의료기기나 의료용품을 납품하는 업체가 직접 수술실로 들어와 환자를 상대로 직접 시연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간호조무사 역시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치료행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이은영 사무국장은 "보건의료인이 유효한 면허증을 가진 적법한 보건의료인인지 알 수 없어 생길 수 있는 오해는 참 많은데, 이런 것들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것들이 명찰 패용"이라고 지적하며 "환자는 적법한 보건의료인들에게 최상의 의료·약무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수 있고, 보건의료인은 환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은 찬성, 보건의료인들 간에 의견은 엇갈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설문에서도 국민은 보건의료인을 인지하는 방법으로 위생복 착용보다 명찰 패용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99%가 적법한 보건의료인인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명찰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것'에 찬성했다. 이뿐만 아니라 설문조사 응답자들의 79%가 명찰에 '사진, 면허직종, 이름'을 모두 표시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름만 1%, 면허직종과 이름 20%)
현재 보건복지위 신경림 새누리당 의원도 보건의료인 명찰 의무 패용에 공감했다. 신경림 의원은 "누가 보건의료인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알리는 것은 환자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자격자로부터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보건의료인도 스스로 신분을 밝힘으로써 환자와 소통하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고, 더 책임감 있게 환자를 돌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의료법, 약사법, 의료기사법' 개정을 통해 보건의료인 명찰 패용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각계의 반응은 조금 엇갈렸다. 먼저 대한간호사협회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대한간호사협회 김원일 정책전문위원은 "명찰 패용은 우리 협회에서도 2008년부터 주장한 내용"이라며 "환자들은 병실 앞에 부착한 담당자의 사진과 이름, 혹은 명찰을 보고 의료인을 인식한다는 점이 2010년 우리 협회 연구 결과로 나온 것만 봐도 명찰 패용은 중요하다"고 했다.
대한약사회는 견해를 밝히기 좀 주저했다. 곽나윤 홍보이사는 "약사들 간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서 아직 명찰 패용에 대한 찬·반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송형곤 대변인은 "규제를 통해 환자들이 건강권을 확보하고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밑그림만 그린 상황에서는 큰 실익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의 원윤희 정책국장은 "지금 의료계 현장은 직능별로 보건의료인들의 역할과 업무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아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명찰 의무 패용 실명제가 시행된다면, 자칫 보건의료인 간 책임소지에 대한 갈등이 심화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환자에겐 더 큰 혼선을 줄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했다. 그러나 "현재 논란이 되는 각 직능 간 역할 및 업무 규정 재정비 선결을 전제로 한다면, 보건의료인의 서비스 실명제를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간호조무사들에게 명찰을 다는 것을 의무화할 법적 근거는 없다. 그들은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호조무사는 간호보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간호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며 면허는 '자격'으로, '면허증'은 '자격증'으로 한다"는 의료법 80조에 의거해 간호조무사도 명찰 패용을 의무화시킬 수 있다.
국민들 반응은 아주 긍정적이며, 이 제도가 어떻게든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명찰 패용에 대해 자율성보다는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명찰 의무 착용을 법제화했을 때 위반한다면 어떤 처벌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5%만이 '처벌 규정을 두지 않고 보건의료계의 자율에 맡긴다'는 답변을 보였을 뿐 대다수는 어떤 형태로든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과태료 40%, 벌금형 42%, 징역형 13%)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보건의료인의 전문성에 대한 환자의 신뢰는 의료 서비스나 약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유효한 면허증을 가진 적법한 보건의료인인지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름과 면허직종만 가슴에 기재된 위생복 착용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에, '사진과 이름, 면허직종이 기재된 명찰'을 가슴이나 목에 거는 방법을 제안했다.
안 대표는 "명찰 의무 패용은 보건의료인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가 아니라, 면허증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상당수의 병·의원, 약국이 이미 시행하고 있다"며 "보건의료계의 자발적인 시행을 촉구하면서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료법, 약사법, 의료기사법 개정 운동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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