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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만 입을 뻔한 후보들, 사연은?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 규제 중심의 선거법, 최대 피해자는 유권자

곧 있으면 6.4 지방선거가 열립니다. 길거리엔 후보들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출퇴근길 후보들이 나눠준 명함이 길가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거리 외관이 어지럽혀진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하지만 4년 동안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할 후보에 대해 알 방법이 현수막과 명함 외에는 없어 불평하기가 어렵습니다. 4년 임기의 공직자를 선출하는데 공식 선거 운동 기간은 13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든 선거 운동 기간 전엔 여러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당부할 수도 없습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당이 자신의 정책을 가지고 시민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정치발전소와 정치외교학부 연합동아리 '여정'으로 구성된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은 직접 선거 현장을 찾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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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3시 양천문화회관 해누리홀에서 서울시의원 양천구 제4선거구의 후보들을 대상으로 신정동의 재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여러모로 특별한 토론회였다. 서울특별시의원 양천구 제4선거구의 후보들의 정책을 검증하기 위해 뉴타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토론회였기 때문이었다. 신정3동은 10년째 뉴타운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아무런 진척도 없는 상황이다.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진행이 안 되는 거다"라고 말하는 찬성하는 주민들과, "여기서 나가면 죽으라는 거냐. 갈 곳이 없다"라고 말하는 반대하는 주민들의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지역 서울시의원 후보들이 뉴타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기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주민들이 토론회를 준비하는 것은 시작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선거법상 선거기간에 하는 토론회는 반드시 선관위에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신고를 해야만 했다. 또한 토론회 홍보를 위한 포스터 부착 등이 전면 금지됐다. 그래서 주민들 개개인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리는 수밖엔 없었다.

속옷만 입고 토론회에 참석할 뻔한 후보

토론회가 열리는 날, 선관위 직원들이 와서 중간중간 후보자들과 사회자, 그리고 청중들에게 이것저것 금지사항들을 이야기 했다. 사회자에게는 특정 후보에게 편향되지 않게 사회를 볼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당황스러운 것은 여기서부터였다. 토론회장 안에서는 후보자들에게, 직접적인 지지 호소를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다른 후보들보다 내가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토론회에서 "나를 뽑아주십시오"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소속 정당이나 후보의 이름과 기호가 들어간 잠바와 어깨띠도 금지 됐다. 그런데 잠바나 어깨띠 없이 상의 자체에 이름과 기호를 새긴 후보가 있었다. 그 후보는 상의 자체를 벗은 채 속옷만 입고 토론회를 해야 할 형편에 놓여버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선관위 직원들은 급히 자체 회의를 거친 후 형평성에 맞게 모든 후보들에게 잠바와 어깨띠를 허락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만약 그때 필자가 선관위에게 준법정신을 끝까지 요구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신정뉴타운재개발 서울시의원 후보초청 정책토론회. 새누리당 후보는 일정상 불참하였다. ⓒ한민호

박수는 후보 발언이 다 끝나면 치세요

최악은 관객들에게 하는 요구였다. 특정 후보에게 편중된 박수 등의 지지를 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지하지 않는 후보, 또는 마음에 안 드는 발언을 하는 후보에게 똑같이 박수를 쳐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후보 발언 중에는 박수 자체를 칠 수가 없었다. 반드시 후보의 발언이 다 끝난 후 맨마지막에 박수를 쳐야했다. 정말 '이상한 나라의 선거법'이 따로 없었다.

토론장 안에서는 피켓을 보이거나 명함을 나눠주거나 하는 등의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선거운동 점퍼 또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선거본부원들은 토론장 입구에서 피켓팅 등 선거운동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토론회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피켓을 뒤집어 내용이 보이지 않게 하고, 어깨띠와 점퍼를 벗어 절대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겨두어야 했다.

그리고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모든 후보를 초청했지만 새누리당의 후보는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는 안내로 토론회는 시작되었다. 기호 순서대로 새정치민주연합, 통합진보당, 노동당, 무소속 이렇게 네 명의 후보들의 인사 및 소신발언으로 본격적인 토론회가 시작됐다. 어떤 후보는 대화로 풀어보자, 다른 후보는 사람답게 사는 서울을 만들겠다. 또 다른 후보는 뉴타운을 철회하겠다는 발언들로 첫 인사말을 전했다. 이후에 뉴타운 찬반으로 인한 조합과 주민들 간의 갈등, 관공서와의 갈등, 뉴타운 공사에 이미 투입된 비용 처리의 문제, 여기에 관련된 여러 법들 그리고 대안인 도시재생사업에 관해 토론했다.

에둘러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이상한 정책토론회

모든 후보들이 대안을 제시하고 청중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선거법 때문에 "내가 이 문제를 풀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니 나를 뽑아달라. 열심히 하겠다"는 호소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대신 모든 후보가 이런 저런 표현들을 에둘러서 쓰며 본인이 더 나은 후보라는 걸 알리려고 노력했다. 지역 현안에 대한 시의원 후보들을 불러 정책토론회를 하면서, 왜 굳이 에둘러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토론회가 끝난 후 우리는 토론회에 나왔던 후보들의 발언 중 선거법에 위반될 게 있었는지부터 검토했다. 다행히 후보들 모두 선거법에 위배가 될 만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토론회에서 했던 발언들을 자체적으로 검열해야 하는 상황, 선거법이란 망령이 언제나 우리의 곁에 붙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이라는 무기로 후보들에게 과도한 규제를 한다. 그로 인해 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그리고 자주 다가갈 기회를 잃는다. 때문에 13일이라는 짧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정책선거보다는 좀 더 자극적이고 소란스러운 선거운동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나마 있는 정책토론회도 '(선거 중에 있는) 후보들 간'의 토론회라는 특징은 최대한 배제되어야 한다.

규제 중심의 선거법, 이 부조리극의 최대 피해자는 유권자

세상의 부조리한 것들은 뭐든지 꽤나 닮았다. 이번 토론회에서 다뤘던 뉴타운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은 뉴타운에 투자한 비용을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고 연대 보증 등 여러 법과 제도들을 이용해서 뉴타운 조합의 임원들을 압박한다. 그로 인해 조합임원들은 총회에서 가짜 서류, 날치기 등의 편법으로, 집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생긴 뉴타운 반대 주민들을 물어뜯는다. 이 부조리함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언제나 약자이다.

정책토론회에서마저 자신이 현안을 해결할 적임자임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게 하는 규제 중심의 공직선거법도 마찬가지다. 이 부조리극의 최대 피해자는 선관위도 후보도 아닌 유권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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