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이 결국 국회에서 밤을 샜다. 국회 국정조사 계획서 채택 합의를 기다렸으나, 여야 협상이 공전되면서다. 여당은 계속해서 국정조사 계획서에 청문회 증인을 미리 못박는 것은 불가하다는 태도다. 야당은 여당이 협상 의지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침몰하는 국회"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2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과 야당은 세월호 선장이나 1등항해사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병곤 가족대책위 위원장은 "여당 원내대표는 밤새 기다리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지방에 일이 있다고 떠나고 야당 원내대표는 이런 여당 원내대표를 '양해했다'고 한다"며 "가족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하는 의원들은 학생들, 선생님들, 일반인들, 승무원들을 찬 바다 속에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친 세월호 승무원과 다를 바가 뭐냐"고 말했다.
가족대책위는 호소문에서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당연한 우리 외침을 더 이상 외면 말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말로는 '슬프다, 죄송하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고 돌아서서 유불리를 계산하는 이런 작태를 더 이상 보여주지 말라"며 "하늘에 있는 아들딸들아, 정말 미안한 건 엄마 아빠야. 하지만 이제라도 미안하지 않은 엄마 아빠가 되려고해. 지켜봐줘"라고 했다. 한 학생의 어머니가 읽은 호소문은 숨진 자식에게 보내는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사랑한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고 회견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여야에 대한 요구 사항을 △즉각 국정조사 특위를 가동해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설 것, △여야가 주장하는 모든 조사 대상, 증인·자료 공개를 강제할 방법을 채택하고 성역 없는 투명한 국정조사를 할 것, △국정조사 계획서를 의결하는 본회의 당일에 바로 국정조사특위를 열 것, △국정조사특위는 업무 개시 즉시 진도로 내려가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들을 것 등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유 대변인은 그러면서 "양당이 합의를 끌어내고 실질적인 국정조사가 시작되지 않는 한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책무"라고 했다.
여당 "법 위반하면서 요구 수용할 수 없다"…야당 "여당,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여야는 전날 오후 3시 30분경부터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간사가 참여하는 이른바 '2+2' 회담을 가동했으나 18시간이 넘도록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야당은 국정조사계획서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주요 청문회 증인들을 미리 못박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여당은 "법 절차와 관행"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아침 비대위 회의에서 "어제 갑자기 유족 여러분들께서 오셔서 야당과 함께 국정조사계획서에 특정인 이름을 넣어서 통과시켜 달라고 했다"면서 "관련 법과 관행에 그런 경우가 없다. 법을 위반하면서 할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법을 무시하고 증인을 구체적으로 넣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2+2' 회담 당사자인 국정조사특위 여당 간사 조원진 의원은 이날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족들의 요구를) 법적 절차를 밟아서 다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는 여야 간 회담 진행 상황에 대해 "조금 진전된 상황은 있다"면서 "'여야가 요구하는 증인은 간사 간 협의를 거쳐서 반드시 채택한다'는 안을 가지고 협의 중"이라고 했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날 새벽 2+2 회의 중 별도 당내 논의를 위해 이석한 조 의원과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를 만나러 조 의원의 사무실에 들른 직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새누리당은 근본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나를 해결하면 딴 걸 꼬투리 잡는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 원내대표는 "김기춘 실장 때문에 못하겠다는 것"이라며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 당 한정애 대변인은 오전 브리핑에서 "여전히 청와대의 하명을 기다리는 여당의 태도는 그야말로 참담하다"며 "청와대는 여전히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고, 여당은 아직도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 대변인은 "가족대책위에서 요구하는 증인채택 문제 때문에 단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국정조사 실시 계획을 보며 국민이 얼마나 참담해할지 새누리당은 살펴보라"고 했다.
여야는 28일 오전 10시 현재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 오후부터 시작된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고, 한때 새누리당 측이 다른 일이 있다며 회의장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등 협상에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고 야당과 일부 유족이 항의하는 일도 빚어졌다. 전날 오후 6시경 여야 지도부가 다시 가족들과 만난 상황에서 김현미 의원이 "김재원 수석이 '잠깐 나간다'고 했다가 (회의 중단) 직전에 들어왔다. 그래서 사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자 김 수석부대표는 "사실이 아니"라며 "밖에서 여러 가지 협의를 진행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일부 가족들은 "(여당이) 청와대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다", "청와대 가서 대통령 만나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한 유가족이 심재철 국정조사특위 위원장 내정자의 자질 문제를 제기하자(☞관련기사 보기) 이완구 위원장은 "심 위원장이 위원장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돌연 밝혔다가 유족들의 "우리가 그런 얘기(사퇴)를 한 적이 없다", "교체하라는 얘기는 아니다"라는 반응에 사퇴를 번복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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