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6.4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길거리엔 후보들의 현수막이 나부끼기 시작했고, 출퇴근 길 후보들이 나눠줬을 것 같은 명함들이 길가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거리 외관이 어지럽혀진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하지만 4년 동안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할 후보에 대해 알 방법이 현수막과 명함 외에는 없어 불평하기가 어렵습니다. 4년 임기의 공직자를 선출하는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13일 뿐이기 때문입니다.이뿐이 아닙니다.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정당은 특별한 정치적 현안 없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계속적·반복적으로 확성장치 등을 이용하여 정책홍보 연설을 하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든 선거운동기간 전에 여러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당부한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당이 자신의 정책을 가지고 시민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에 정치발전소와 정치외교학부 연합동아리 '여정'으로 구성된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은 직접 선거현장을 찾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지난 기사 보기1편 : 선관위는 정말 정치적 중립일까?
2014년 4월 9일, 인도네시아에서 국회, 지방의회 총선거가 동시에 실시됐다. 1억9000만 명의 유권자가 국회의원 560명과 상원의원 132명, 주 의회의원 2112명, 시군의회 의원 1만6895명 등 모두 1만9699명을 선출했다. 어쩔 수 없이 유권자들은 식탁보만큼 커다란 투표 용지에 투표를 하게 됐다. 저 아저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연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지 꼼꼼히 따져볼 수 있었을까?
2014년 6월 4일, 대한민국에서 광역·기초자치단체장, 광역·기초단체의원, 교육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된다. 유권자들은 총 7개의 투표권을 한꺼번에 행사해 3949명의 선출직을 뽑게 된다.
더 쉬운 정치를 만드는 건, 선거 시스템의 책임이다.
필자는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4동에 살고 있다. 돌아오는 6월4일에 서울시장, 서울시의회의원 비례대표, 서울시의회의원, 양천구청장, 양천구의회의원 비례대표, 양천구의회의원, 그리고 교육감을 뽑는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항상 주변 친구들에게 부르짖는 기자는 양천구의회 의원 선거에 등록한 후보자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까? 슬프게도 아니다.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단 한 분도 모르겠다. 언론에서는 박원순 후보와 정몽준 후보(와 그의 아들…)만 다룰 뿐이다. 이건 시스템에 하자가 있는 거다. 비겁한 핑계라고? 아니다, 끝까지 읽어 보자.
어느 정도 성장한 시민사회에 기반을 둔 나라에서, 시민들은 누구나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는 정치란 건 가까운 것이며, 우리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홍보하는 동아리의 회장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먹고 살 궁리하기 바쁜 현대 사회에서, 집으로 배달된 두꺼운 공보물을 정성들여 읽는 대견한 유권자는 수많은 공약을 100% 지키는 정치인 만큼이나 드물다. 필자 또한 이것저것 하다가 양천구의회 의원 후보자들이 어떤 분들인지 알아보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꿈나라가 손짓을 한다.
이처럼 유권자들의 '자발적 정치 참여'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선거 시스템의 당연한 책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선거 시스템은 그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가?
동시선거 시스템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선거 앞에서 양천구의회 의원들은 시민들의 관심에서 철저히 밀려난다. 시민들의 참여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가장 낮은 곳에서의 정치는 4년에 한 번씩 짓밟힌다. 시민들은 기초자치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 자신들이 바라는 점을 생각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로 기표소로 끌려간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덧 기표소 안에서 이름도 모르는 미지의 후보자를 위해 인주를 든 자신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동시에 치러지는 7개의 선거 앞에서 유권자는 언제나, 한없이, 무력하기만 하다.
지금의 동시선거 제도에서 정치, 특히 기초자치는 그 시작부터 문제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에 대해 알아보고 표를 던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40여 명의 후보자들 가운데 누가 자신의 이익을 대표하는지 알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누가 당선되든지 간에 그들의 의정 활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는 건, 이쯤 되면 안 봐도 비디오다. 그들의 활동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전혀 닿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기초자치 정치인들은 열심히 정치할 의욕이 생기기 어렵다. 정치는 어느덧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이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볼 때마다 유권자들의 마음은 정치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져만 간다. 어쩌면 한국을 뒤덮은 정치 혐오의 물결은 여기에서부터 시나브로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체, 왜 하루에 몰아서 하나?
'그러면 따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같이 하지?' 그렇다!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 선거를 따로 분리하든,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선거를 따로 분리하든지 하면 어떨까? 그런 독자들의 간절한 궁금증을 예상하고, 선관위의 따끈따끈한 답변을 미리 준비해 왔다. 다음은 필자와 선관위의 다정한 대화 중 일부분이다.
Q) 6.4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항상 수고하십니다. 하지만 7명의 후보를 모두 하루에 직선으로 뽑아야 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공급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현실적으로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비용 절감의 문제라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국력을 가진 나라들에서도 같은 이유로 선거일의 제한이라는 제도를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현행의 선거일 제도는 시민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야 할 풀뿌리 정치인들이 그 소중한 권리를 사실상 모조리 빼앗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야기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광역자치단체장과 기초자치단체장의 선거를 분리했을 때, 추가적으로 추산되는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그 정도가 부담할 만한 것이라면, 선거일을 분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선관위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A) 선관위 측 답변
외국에서는 각 국가별로 제도가 상이하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오렌지카운티 08. 11. 4. 기준 20개 선거, 필리핀 10개 선거(대통령, 상·하원의원, 주지사, 광역·기초의회의원, 시장 등), 그리스 5개 선거(특별지사, 지사, 시장, 광역·기초의회의원), 스웨덴 3개 선거(국회의원, 광역·기초의회의원), 뉴질랜드 3개 선거(광역·기초의회의원, 지역보건위원회위원), 인도네시아 3개 선거(광역·기초의회의원, 도의회의원), 덴마크·노르웨이 2개 선거(광역·기초의회의원) 등과 같이 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거나 지방선거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의견과 같이 임기 만료에 따른 지방선거를 분리하여 각각 실시하는 경우 잦은 선거로 인하여 유권자들의 피로 및 혼란이 야기될 수 있으며 전국단위 선거의 연속 실시에 따라 선거 비용이 1천억 원 정도 추가되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동시 실시와 분리 실시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가? 끄덕끄덕하는 분들이 여기서도 보인다. 납득이 가는가? 이어지는 이야기까지를 끝까지 읽어 보시라. 여기서 덮으시면 정말 아니 되오~!
우리나라, 그 정도 밖에 안 되나요? 민주주의 비용으로 생각합시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은 전국동시지방선거라는 표어를 아무리 보아도, 선관위의 1인7표제 홍보를 수없이 지나쳐도, 왜 선거를 한꺼번에 치르는지에 대해 거의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 잠시 눈을 감고 지금 이 상황을 한번만 되새김질 해보자. 국민의 대표를 뽑는 민주주의의 꽃,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 무엇인가? 바로 선거다. 선거를 하루에 몰아서 뚝딱 치르는 것이 과연, 튼튼한 경제와 두터운 시민사회를 자랑하는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인가? 세계 10위권의 경제와 50여 년의 민주주의를 이뤄낸 우리나라 시민은, 자신들의 더 나은 정치적 선택을 위해서 선거를 늘리자고 요구할 자격조차 없는 것일까?
선관위의 동시선거 옹호 첫 번째 근거인 선거 비용에 대해 살펴보자. 물론 선거를 분리해서 치른다면 선거 비용의 증가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전국단위 선거를 한 번 더 진행한다고 해서 국가 재정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다. 선관위가 제시한 사례에서 오히려 드러나듯이, 우리나라는 선거를 아주 적게 치르는 편이다. 선관위는 지난 제5회 전국지방동시선거 예산을 7900억 원으로 잡았다. 선관위가 추산한 1000억 원의 추가 비용은 이미 커진 규모의 선거 비용에 큰 부담을 추가한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선거를 추가해서 실시하는데 드는 비용이 정부 재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라고 해도, 이 비용은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민주주의 비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서술했던 동시선거의 문제점-민주주의의 근간 파괴-의 기회 비용을 생각해 본다면, 분리 선거에 드는 비용은 아깝지 않다. 오히려 선거를 분리해서 치르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정치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제공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피로감·혐오감을 걷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피로에는 동시선거?! 아니죠~ 피로에는 분리선거!
선관위의 두 번째 근거를 보자. 선거를 많이 하면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혼란이 늘어나니까 한 번에 몰아서 끝내 버리자? 언뜻 보면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치 혐오는 정치가 과도하게 많아서 생겨난 정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 수 없게 하는, 정치 실종이 불러온 것이다. 따라서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 선거를 한꺼번에 얼렁뚱땅 하겠다는 건, 구더기가 무서우니 장을 못 담그겠다는 격이다. 오히려 자신을 대표할 후보자들을 알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글을 맺으면서, 다시 상식선에서의 물음을 던져 본다. 하루에 7개의 선거와, 몇 달로 나누어진 여러 번의 선거. 둘 중 어떤 시스템을 택했을 때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비교할 엄두가 날까? 그렇다면 후보자들을 면밀히 알아본 다음 투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민주주의의 대전제이니, 비용과 불편함을 무릅쓰고라도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한국사회 전체를 뒤덮은 정치 혐오의 두꺼운 안개를 한꺼풀이라도 벗겨내기 위해서는, 정치의 처음이자 끝인 선거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 유권자의 참여만 맹목적으로 강요하고, 정치 퇴행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돌리는 것은 시스템의 태만이다. 시스템의 하자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의 빼앗긴 권리를 찾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시민이어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