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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4.19 기릴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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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대통령, 4.19 기릴 자격 없다

[편집국에서] '4월혁명 계승' 헌법 전문은 장식품이 아니다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로 뒤덮였다.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 어이없는 대형 사고를 또 부른 안전 불감증 사회에 대한 분노. 마지막까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같은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한 후속 조치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때다.

이러한 때, 세월호 이외의 사안을 다루는 것이 편치만은 않다. 그러나 "후진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사고 당일, 정홍원 국무총리)은 세월호 침몰 사건만이 아니다. 세월호에 눈과 귀가 쏠린 것을 틈타,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다른 문제들을 슬쩍 넘기려는 시도도 미연에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공화국을 유린한 국정원, 그런 조직을 온몸으로 감싸는 대통령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다.

민주공화국 유린한 국정원, 또 눈감아준 박 대통령

14일, 검찰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남재준 국정원장 무혐의. 검찰은 남 원장에게 면죄부를 줬다. 이 사건의 수사 및 공소 유지를 담당한 검사들도 함께 면죄부를 받았다.

그다음 날, 남 원장은 국정원을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사퇴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남 원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단서를 달기는 했다. "또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쉬운 말로 풀이하면, 이번에도 눈감아주겠다, 이것이다. 혈세를 펑펑 쓰며 법을 짓밟은 무소불위 권력 기관에 대해,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는 최고 권력자가 내린 추상같은(?) 영(令)이 이러하다. 남 원장과 박 대통령의 이른바 '사과'를 들으며 수많은 국민들이 부글부글 끓은 건 다 이유가 있다.

지난 2년, 국정원은 걸핏하면 사회를 뒤흔들었다. 남 원장 취임 전엔 불법 대선 개입, 취임 후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누출에 증거 조작까지. 민주주의도, 헌법도 국정원의 발밑에서 신음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고도 국정원과 남 원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활보할 수 있게 됐다. 박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남재준 지키기 덕분이다. '셀프 개혁' 모양새는 취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국정원이 환골탈태하리라고 여길 근거는 조금도 없다. 손바닥으로 자기 눈을 가릴 생각이 아니라면. 정권 보위를 위해 만들어져 주인인 국민을 물어뜯어온 국정원의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대선 개입 문제와 관련해, 2012년 대선을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비견하는 견해가 있다. 이는 박 대통령 퇴진 주장으로 이어진다. 기자는 생각이 다르다. 지난 대선을 3.15 부정 선거와 같은 급으로 여기는 건 무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3.15 부정 선거 당시 이승만 정권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갖가지 부정을 노골적으로 저지르고, 야당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죽이며 세계 부정 선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관련 기사 : 민주당 간부는 왜 깡패에게 맞아 죽어야 했나) 2012년 대선이 그와 비슷했다고 여길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3.15 부정 선거는 이승만 정권 최고위층에서 기획했고, 부정 선거와 이승만·이기붕 당선 발표 사이의 인과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부정 선거를 기획했다거나, 관권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박근혜 후보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볼 뚜렷한 근거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 기관이 부당하게 개입해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든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를 바로잡는 건 헌법을 지켜야 할 대통령의 의무다. 다시는 국민을 물어뜯지 못하도록 국정원 등을 철저히 개혁하는 건 대통령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렇게 했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그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걸었다. 모르쇠, '나와는 무관하다', 다시 모르쇠, 그 후 '셀프 개혁' 주문. 그러면서 남 원장을 끝까지 지켰다. 이게 박 대통령이 취한 태도다. 15일 보인 모습은 그 연장선상이다.

그렇게 사실상 면죄부를 받은 국정원은 거듭나기는커녕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누출, 증거 조작 등 대형 사고를 연이어 쳤다. 그러는 동안, 상처 입은 민주주의 문제는 다시 뒷전으로 밀렸다. 이는 박 대통령이 민주공화국과 헌법을 지키는 과제에 충실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국정원 감싸면서 '4.19 민주 이념 계승'? 그건 모순이다

▲ 2013년 4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립 4.19 민주 묘지(서울 강북구 수유동)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4.19가 돌아왔다. 제2의 해방으로도 불리는 4월혁명은 목 졸려 죽을 뻔한 민주공화국을 되살렸다. 1년 후 5.16쿠데타 세력에게 짓밟히긴 했지만, 4월혁명은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인들의 투쟁에 늘 영감을 불어넣었다. 헌법 전문에 '4.19 민주 이념 계승'이 담긴 건 우연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19일, 국립 4.19 민주 묘지를 참배했다. 4.19가 국가 기념일인 만큼 재임 중 아마도 매년 그곳을 찾을 것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최고 권력자가 특정한 장소를 찾는다는 것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그것을 인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뜻을 살리지는 않고, 관행이니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의례적으로 가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 대목에서 짚어보자. 박 대통령은 4월혁명의 민주 이념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나? 그렇지 않다. 숱한 사안을 떠올릴 수 있지만, 국정원 문제에 취한 태도만으로도 근거는 충분하다. 4월혁명 정신을 이어받았다면, 민주공화국을 뒤흔든 국정원과 남 원장을 감쌀 수 없다. 4월혁명의 원인을 3.15 부정 선거에서만 찾는 건 곤란하지만,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민주주의의 최소한인 선거조차 제대로 치를 수 없게 한 세력에 맞서면서 4월혁명이 일어났음을 기억한다면, 대선 개입을 일삼은 국정원에 '셀프 개혁'이라는 허망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은 4월혁명을 기릴 자격이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4월혁명을 군홧발로 짓누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어서 그런 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유신 체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역사 인식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5.16쿠데타의 책임을 박 대통령에게 물을 수는 없다.

4월혁명을 기릴 자격이 없다고 보는 건 그 정신에 어긋나는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4월혁명을 짓밟은 쿠데타 세력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직 아닌가. 그런 국정원 등에 대한 철저한 개혁은 4월혁명 이념 계승의 필수 요소다. 4월혁명 정신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대통령을 기대한다. '4.19 민주 이념 계승'이라는 헌법 전문의 문구는 보기 좋으라고 넣어둔 장식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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