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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LG가 만든 눈물…"우린 정체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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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LG가 만든 눈물…"우린 정체가 뭘까요"

[현장] SKB·LGU+ 비정규직 노조 공식 출범

"두 주에 한 번이라도 주말에 쉬고 싶어요."

수도권 지역에서 일하는 SK브로드밴드 '행복 기사' ㄱ(34) 씨는 '무엇이 가장 절박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매주도 아니고 격주에 한 번이라도 주말에 쉬고 싶다는 ㄱ 씨. 인터넷·전화 설치 경력만 8년이다. 주말도, 퇴근 시간도 따로 없이 일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월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서울 중랑 지역에서 일하는 LG유플러스 기사 ㄴ 씨는 "늘 차 안에서 홀로 김밥을 먹었다"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개통·철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원청으로부터 페널티를 받아 급여가 차감되는 탓이란다. 그러다 보니 끼니때인 정오나 저녁 늦게 일이 접수돼도 마다할 수가 없다. 그는 양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제대로 된 대가를 받으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일이 많아도 걱정이지만 없어도 걱정"이라는 호소도 들린다. 양 통신 재벌 기업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정해진 기본급 없이 개통·철거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쉴 틈 없이 일해도 월 벌이가 200만 원을 밑도는데, 일감이 줄어들면 당장 다음 달 생활비부터 막막해진다. 행복 기사 ㄷ 씨는 "최근 이동통신사들이 영업정지를 받아 덩달아 인터넷·전화 가입자도 줄었다"며 "이렇게 일이 없으면 손가락을 빨아야 한다"고 했다.

▲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서 설치·개통·수리 업무 등을 담당하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민회관에서 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프레시안(최하얀)

SKB·LGU+ 노조 공식 출범…"우리는 정체가 대체 뭘까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서 설치·개통·수리 업무 등을 담당하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민회관에서 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노동계와 정치권 인사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SKB와 LGU+ 작업복을 입은 전국 700여 명의 노동자가 참석해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나눴다.

본 행사에 앞서 노동자들은 직접 만든 영상을 통해 "우리의 정체는 대체 뭘까요"라는 질문을 청중에게 던졌다. SKB와 LGU+ 마크가 선명한 작업복을 입고 일하지만, 사실은 각 서비스 센터를 운영하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전국 161개(SK 91개·LG 70개) 센터에 직접 고용돼 있기도 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 형태로 업체와 일대일 도급 계약을 맺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하도급 구조는 여러 단계의 '중간착취'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살인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결국은 각 센터 사장이 아닌 원청(SKB·LGU+)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청 노동자들의 일일 업무 스케줄, 정원, 수수료 단가를 결정하는 곳은 개별 센터가 아닌 원청인지라 '위장 도급' 의혹 또한 제기되고 있다. 이날 총회에 모인 노동자들이 '각개격파'가 아닌 노동조합 집단 가입이란 선택지를 고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출범 총회에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은수미 의원. 이날 총회에는 이들 외에도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과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 이시우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지부장,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 등 노동계와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프레시안(최하얀)

지난해 7월부터 비공개로 노조 준비…"가슴이 벅차다"

노조의 공식 명칭은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다. 이 두 이름이 적힌 노조 깃발을 대외에 공개하기까지 약 8개월이라는 시간을 쏟아 부었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국장은 "지난해 7월부터 비공개로 노조를 준비해 왔다"며 "이제는 현장에서 노조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조합원 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김 국장은 "수도권에 있는 센터의 3분의 2에 노조가 들어섰고 호남, 영남, 중부권으로도 노조가 확산하고 있다. 노조 상담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지부는 4월 중에 전국 과반수 센터를 조직하고 노조의 기틀을 잡아갈 계획이다.

경상현 LGU+ 지부장은 "늦게까지 일하고 일요일마다 당직 서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정말 아니다. 바꿔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 노조 설립 방법을 노동·사회단체들에 문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조합이 진짜 생기니 굉장히 벅차다"고도 했다.

ⓒ프레시안(최하얀)

"인건비가 아닌 인간으로 대접하라"

이날 총회에는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장하나 의원,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민변 권영국 노동위원장,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 이시우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 지부장 등 노동계와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환영'과 '응원'의 뜻을 전했다.

은 의원은 단상에 올라 "이 자리에 기업 사람도 와 있다고 들었다"며 "그렇다면 국회의 요구를 경청해 주길 바란다. 국회와 싸우고 싶지 않다면 여기 있는 이 하청 노동자들을 협상의 주체로 인정하고, 인건비가 아닌 인간으로 대접하라"고 외쳤다.

총회 말미에는 각 센터에서 노조 활동을 실질적으로 담당할 현장 간부 수십 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올랐다.

SKB의 한 노동자는 이 자리에서 "아무리 요청을 해도 명절 당일에도 일을 안 빼줬다"며 "결국 지난 설에도 급하게 차례를 지낸 후 딸 아이 세배도 못 받고 신당동에서 부평까지 시속 120km로 달려 10시 개통 서비스를 처리하러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은(가명)아. 아빠가 이러지 않으려고 이거 하는 거야"라고 총회에 함께 참석한 13세 딸에게 노조 가입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총회를 시작으로 양 지부는 본격적인 노조 활동에 돌입한다. 김진억 국장이 밝힌 대로 최우선 목표는 조직 확대와 안착이다. 통신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남기며 독점 재벌로 자리매김한 두 원청, SK와 LG를 '실제 사용자'로서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 축으로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조건 문제를, 다른 한 축으로는 '위장 도급'으로 설명되는 다단계 하도급 고용 구조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낼 방침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양 지부는 오는 16일 국회에서 '증언 대회'를 열고 각종 불법 사례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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