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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만든 '저임금 감옥'…"스스로 기계가 된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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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만든 '저임금 감옥'…"스스로 기계가 된 노동자"

[저임금 공단의 오늘·②] 세계 최장 노동시간 개선은 공염불

서울남부지역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녹산노동자 '희망찾기', 반월시화공단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 성서공단 노동조합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녹산공단, 반월시화공단, 성서공단의 네 개 공단에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3717명 노동자의 임금 실태와 임금 요구안을 조사했다. 이 조사를 통해서 무려 42.9%의 공단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는다는 사실과 낮은 시간당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생활할 수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노동자 요구에 근거하여 임금 인상 요구안을 마련하고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요구안을 전달하였다. 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안의 의미, 그리고 왜 공단 노동자들이 저임금일 수밖에 없는지, 대안은 무엇인지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프레시안>과 함께 5회에 걸쳐 기획 연재를 진행한다. <편집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 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노동자를 '저임금 노동자'로 규정한다. 지난해 발표된 'OECD 고용전망보고서(Employment Outlook)'에 따르면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5.1%로 미국(25.1%)과 함께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시간당 6524원 (여기서 시간당 임금이란 연장근로 수당만 제외한, 즉 통상시급에 가깝게 추정한 금액을 일컫는다.) 미만 노동자를 저임금 노동자로 볼 수 있다. 이 기준으로 보아도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4.7%에 이른다.

그럼 한국 사회의 부를 생산하고, 수출 산업의 근간이 되고 있는 공단은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얼마나 될까?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4개 공단에서 진행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무려 42.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설문조사는 서울, 반월·시화, 녹산 등 3개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인 대구성서공단에서 점심 시간과 퇴근 시간 무렵, 노동자를 대상으로 무작위 설문조사(3717명)를 한 것이다.

사장님들의 속셈…"장시간 노동에 매달리게 만들어라"

“한 달에 180만 원 벌 수 있는 직장이라고 했어요. 매일 2~3시간 잔업에 토요일 근무하고 하면 벌 수 있다고요. 자기 아니면 이런 직장 소개해 주는 곳도 없다고….”

공단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면, 이런 일을 흔히 겪는다. 파견 업체들은 이런 일자리를, 마치 노동자를 위한 것인 양, 자랑스럽게 소개해준다.

“그 언니는 한 달에 200만 원은 벌어야 한다고 했어요. 빚 갚고 하려면…. 그래서 매일 잔업해요. 남들 다 퇴근해도 불 켜놓고 일하고….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하고…. 몸이 어떻게 견디나 싶어요.”

공단 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저시급을 받는다. 지난해 기준 시급 4860원으로 180만 원을 벌려면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60시간을 일해야 163만 원 정도를 번다. 여기다 정기 상여금이나 식대, 교통비 등 수당을 더 주는 곳이라야 180만 원을 간신히 번다. 200만 원을 벌려면? 그녀의 선택은 한 가지다. 일요일에도 일하기. 밤늦게까지 일하기.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로 저임금 노동자들은 평균 49.7시간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해서 한 달 평균 136만2000원을 번다. 근로기준법에 쓰여 있는 것처럼 40시간만 일하면? 105만6000원 밖에 못 받는다. 그래서 남들보다 10시간 가까이 더 오래 일한다. 그리고 부족한 소득 30여만 원을 연장근로 수당으로 받는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주 40시간 일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8.7%에 지나지 않으며 대다수(66.6%)가 그 이상 일을 하고 있다. 53시간을 넘겨 일하는 노동자는 무려 33.9%에 이른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왜 장시간 일을 할 수밖에 없을까?

기본급, 정기 상여금, 식대, 교통비 등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금액을 고정급이라 한다. 반대로 연장근로 수당, 보너스 등은 매월 변동이 있다고 해서 변동급이라 한다. 고정급이 적으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가계를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한 달 소득을 벌기 위해 장시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공단의 사용주들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시간급과 고정급을 매우 적게 책정한다. 40시간 일해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적게 책정한다. 그렇게 하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장시간 일에 매달릴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탐욕·국가 임금 억제책이 만든 '저임금 감옥'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것은 너무도 적은 임금이다. 이런 저임금 구조는 국가의 다양한 저임금 정책에서 비롯한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억제하고, 최저임금 수준에서 임금을 억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책들을 개발해 '매뉴얼'이라는 형태로 제시하기도 한다. 최근 발표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 대표적이다. 공공부문에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실상 전 산업의 임금 억제책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부문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지침)이라는 것도 있다. 2008년 이후 공공부문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은 0~3%대 사이에서 머무르고 있다.

물론 가장 큰 것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장시간 노동에 매달리게 해, 저임금으로도 벌고, 오랜 시간 일 부려 먹으며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사용주들의 탐욕에서 비롯한다. 이 와중에 파견 업체들은 여기 일거리 많다고, 물량 많다고, 자기네 파견 업체 와서 다행이라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이 같은 저임금 문제를 외면한 채 장시간 근로를 개선한다? 노동자들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임금 얼마 받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니…"최저 생계비"

그럼 매주 49.7시간을 일해서 번 돈 136만2000원으로 한 달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까? 저임금 노동자의 66.6%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한다.


‘그럭저럭 가능하다’고 응답한 29.8%도 대체로 독신 가구이거나 부모와 함께 사는 20대다. 이런 특징을 고려하면 거의 모든 저임금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으로는 살기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저임금 노동자들이 50시간 가까이 일하면서도 버는 임금은 고작 136만2000원에 그치는데, 이는 2인 가구 법정 표준 생계비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2013년 법원이 산정한 최저 생계비를 보면 아래와 같다.

구분

1인 가구

2인 가구

3인 가구

4인 가구

5인 가구

6인 가구

법정 최저생계비

85만8252

146만1347

189만473

231만9599

274만8723

317만7849


법정 최저 생계비란 아무리 빚에 쪼들리고 압류당할 위기에 내몰려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려면 이만큼의 금액은 변제해 주어야 한다는 '최소 기준'을 말한다. 공단의 저임금 노동자 대다수가 이것보다 소득이 낮고, 그래서 현재 임금으로는 살 수가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10시간씩 연장근로를 해도 현재 임금으로는 살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기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파견 업체처럼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씩 더 연장근로를 하면 돼요’ 라고 대답해야 하나? 아니면 무슨 임금을 이렇게 적게 주느냐고, 노예처럼 부려 먹어도 정도껏 이어야 하지 않느냐고, 사회적 공분을 드러내며 연대의 뜻을 내비쳐야 할까?

평균노동시간

평균임금

임금인상

필요액

고정급환산

평균임금

고정급 환산

임금인상 필요액

저임금 노동자

49.7시간

136.2만 원

50.6만 원

105.6만 원

41.4만 원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희망액을 보자. 50만6000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주 50시간 일하는 걸 인정했을 때 금액이다.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보자면 186만8000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금액은 3인 가구가 최소 생계를 꾸려나가려면 필요한 비용이다. 노동자들이 최소 생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 40시간 고정급으로 환산하면 41만4000원이다. 고정급 평균임금에 비하면 147만1000원을 요구하는 셈인데, 이 금액은 2인 가구 최소 생계비다. 노동의 대가는 언감생심, 저임금 노동자는 말 그대로 최소 생계비만큼의 임금 인상만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40만 원은 올라야 최소 생계 꾸릴 수 있어

월급 40만 원(≒41만4000원) 인상, 시급 2000원(≒ 1984원) 인상 요구는 고정급을 기준으로 하는 공단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액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액으로서 이 금액은 공단 노동자 평균임금 200만 원(≒197만5000원) 대비 20%의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 박종규, '임금 없는 성장과 근로소득 분위별 실질임금 추이 및 시사점'(주간 금융브리핑 23권) 재인용

위 그래프는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억제되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기간 근로소득 하위 40%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했다고 한다. 짧게 잡아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은 억제되거나 삭감되었고, 그로 인해 지금 저임금 노동자들이 장시간 일을 하고도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 6년간 억제된 임금에 대한 뒤늦은 보상 차원에서 보면, 40만 원 인상 요구는 적으면 적었지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다.

100만 원을 벌었던 노동자는 140만 원을, 200만 원을 벌었던 노동자는 240만 원을, 300만 원을 벌었던 노동자는 340만 원을…. 공단 노동자의 이 같은 요구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최소한 생계를 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지난 6년간 억제된 임금에 대해 ‘내 노동의 대가를 뒤늦게나마 보상해 달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공동으로 필요한 최소의 인상 요구액이다. 공단의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해서 수출 경제를 유지하고, 그렇게 해서 축적한 부를 일부 재벌들만 누리는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지금부터라도 개선하자고 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다.
이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너무도 절박하고, 너무도 정당하지 않은가? 이젠 우리가 대답해야 한다.
□ [저임금 공단의 오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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