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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오디오보다 위험! 남자를 망치는 취미는

[금정연의 '요설']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③

☞금정연의 '요설' <부바르와 페퀴셰> 전편 바로 가기

'로또' 맞았으면, 책을 버렸어야지!
BL의 원조? 내일부터 지옥을 맞을 커플이여!


<제26장> "어떤 책이든 언제나 너무 길다!"


첫날, 부바르와 페퀴셰는 눈을 뜨자마자 농장부터 둘러보았다. 소작농과 그의 아내가 그들을 따라다니며 연신 불평을 늘어놓았다. 수레 창고부터 브랜디 증류소까지 모든 건물을 손봐야 하고, 치즈 창고도 짓고, 울타리도 새로 치고, 이층도 다시 올려야 하며 토질은 아주 나쁜데다가 자갈이 너무 많아 골라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는데 뭐가 대수겠는가?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집, 그중에서도 서재가 문제였다.

페퀴셰는 그중 한 방에 수집품을 넣어두었고, 나머지 한 개의 방은 서재로 쓰기로 했다. 장롱 문을 열자 다른 책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책의 제목조차 읽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장 다급하게 그들을 사로잡는 것은 정원이었기 때문이다. (38쪽)

1막에 총이 등장한다면 그 총은 반드시 쏘아져야만 한다고 말한 것은 체호프였다. 책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38(물론 18이 세 번이라는 뜻이다)쪽에 등장한 책이 조만간 읽히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부바르와 페퀴셰 1>(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한동안 그들은 잘 해나갔다. 두 팔을 걷어 올리고 땅을 일구며 잡초를 뽑고, 잔가지를 쳐내고, 풍뎅이 애벌레를 두 동강내고, 퇴비를 만들고, 말똥을 주우며 노동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쁜 날씨가 이어질 때면 철망을 짜거나 난롯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봄이 찾아왔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농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백작의 영지를 방문하기로 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래의 두 농학자는 잘 가꾸어진 백작의 농지를 보았고, 한 번 본 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그들이 본 모든 것에 매료되었다. 그리하여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날 저녁부터 그들은 서재에서 <농촌 가옥>이라는 네 권의 책을 꺼내어 봤고, 가스파랭의 강의록을 구해 읽었다. 그리고 농업 잡지를 구독 신청했다. (45쪽)

책을 읽은 부바르와 페퀴셰는 먼저 소작인을 괴롭혔다. 어떤 자기계발서를 본 팀장들이 그런 것처럼, 책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따르며 '일해라 절해라' 지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소작인이 일을 그만둬버렸다. 그들은 이만 프랑을 들여 직접 농사를 시작하기로 한다. 그들에게 남은 돈이 십삼만 프랑이었으니,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물론 잘 될 리 없다. 운도 능력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책이 문제였다. "서로 상의도 하고 이 책 저 책을 뒤적여보았지만 여러 가지 상반되는 (저자들의) 의견들 앞에서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었"(52쪽)던 것이다.

심사숙고한 끝에, 부바르는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분야는 대규모 농업과 집중적인 체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쓸 수 있는 현금 중에서 그에게 남아 있는 삼만 프랑을 투자하기로 했다. (53쪽)

부바르는 양귀비를 길러 아편을 만들고 자운영을 키워서 '가족 카페'라는 이름으로 팔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만 이번에는 불운이 그들의 앞길을 막는다. 소를 살찌운답시고 보름마다 피를 뽑다 소 세 마리를 죽였고, 무더위에 양 스물다섯 마리를 잃었으며, 풍뎅이의 유충을 없애려고 바퀴 달린 우리에 암탉을 가둔 채 쟁기 뒤에서 밀다 암탉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건초 더미에 불이 붙어 농작물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결국 삼만 삼천 프랑의 적자를 본 그들은 농장을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상심하기엔 이르다. 부바르가 호기롭게 외쳤다.


"전보다 더 불행해지지는 않을 거야! 단지 우리가 절약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61쪽)

한편, 정원을 가꾸는 일에 푹 빠진 페퀴셰는 부바르를 설득해 수목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한다.

그는 부바르의 상상력을 부추겨서, 곧바로 사야 할 식물의 목록을 책에서 찾아보았다. 진귀하게 보이는 이름을 골라서 팔레즈의 종묘업자에게 주문을 했더니, 팔리지 않던 묘목 삼백 그루를 서둘러 보내주었다. (61쪽)

페퀴셰는 하루 종일 퇴비를 주고 가지를 치고 접을 붙였지만 좀처럼 성과는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그를 위로하는 것은 이따금 일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입문서'를 꺼내 "속표지에 그려져 있는 정원사와 같은 포즈로 삽을 옆에 놓고 서서 책을 읽"(63쪽)는 순간이었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좋아졌고, 책의 저자를 더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의 저자가 아무리 그럴 듯한 말을 하더라도 그건 결국 (빌어먹을) 책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폭우가 그들의 나무와 돈, 땀과 희망을 한꺼번에 휩쓸어갔다.

상심에 빠진 그들은 그런 일을 겪은 대부분의 부부가 하는 일을 한다. 한 마디로, 말다툼을 한 것이다.

저녁을 먹은 후에(거의 먹지도 않았지만) 페퀴셰가 조용히 말했다.
"농장에는 별일 없는지 보러 갈까?"
"체, 뭣 하러! 끔찍한 모습을 또 보려고?"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도 운이 없을까?!"
그들은 하느님과 자연의 조화를 원망했다.
부바르는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앉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온통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가운데, 농업에 관한 예전의 계획, 특히 전분 제조소와 새로운 종류의 치즈에 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페퀴셰는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 줌의 코담배를 코에 갖다 대며 운이 좋았다면 지금쯤 농업 단체의 회원이 되고 품평회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올려서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렸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부바르는 슬픔에 잠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이지,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면 좋겠어!"
"좋을 대로."
페퀴셰가 말했다. (65쪽)

첫 말다툼에 이어 첫 회의가 찾아왔다. 책의 내용에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저마다 하는 말이 다르다면 도대체 원칙이란 게 어디 있고, 성공한다는 희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수목 재배라는 건, 아니 농업이라는 건 말짱 거짓말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들은 "열성이 지나쳤던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앞으로는 돈과 노력을 아끼기로 결심했다."(66쪽) 그렇다면 폭우에 쓰러진 나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할 건 없다. 그들은 서재에서 <정원 건축>이라는 제목의 책을 찾아냈고, 책에서 일러주는 대로 부러진 나무와 바위, 가짜 무덤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정원을 꾸몄다. 그런 책은 읽어본 적도 없을 무식한 이웃들이 그들을 비웃었지만, 비웃음을 당해야 할 건 오히려 이웃들이었다.

그들은 절약을 위해 손수 햄을 훈제하고 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가 온갖 종류의 통조림과 술, 절임 음식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그들의 연구는 날로 발전하여 그들은 모든 식료품에 부정행위가 있다고 의심하게 되었"(82쪽)으며, "스스로를 유익한 일에 몰두하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84쪽)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술에서는 감초 시럽 냄새가 났고, 통조림으로 만든 송아지 고기 조각은 삶아놓은 구두창 같았으며, 바다가재 통에는 더러운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설상가상 폭음과 함께 증류기가 산산조각 나 그들의 연구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깨진 조각들 속에서 벌벌 떨며, 움직일 엄두도 못 내고 같은 자세로 꼼짝 않고 있던 그들은 실패의 원인을 자문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마 우리가 화학을 몰랐기 때문일 거야!" (87쪽)



*

자신들의 부족함을 통감한 부바르와 페퀴셰는 먼저 레그노의 강의록을 구한다. 너무 어렵다. 좀 더 쉬운 지라르댕의 저서를 읽는다. 조금 이해가 가는 것도 같지만 아직 부족하다. 잘 알기 위해서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없고, 그들은 대신 의사를 찾는다. 그라면 화학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화학이 남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신 그들에게 해부학 도감을 빌려주었고, 그들은 알렉상드르 로트의 개론서와 함께 인체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근육을 연구하던 중 난관에 봉착한 그들은 인체 마네킹을 구입한다. 동네사람들이 마네킹을 진짜 시체로 오인해 소동이 벌어지자 그들은 생각한다.

굉장한 고장이군! 이렇게 어리석고, 미개하고, 퇴보적이라니! 부바르와 페퀴셰는 다른 사람들과 그들 자신을 비교하며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과학을 위해 고통 받기를 갈망했다. (94쪽)

물론 그들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400여 페이지가 남아 있었고, 그들이 읽어야 할 책들은 그보다 더 많았으니까. 최초의 고통은 바로 다음 페이지에 온다. 그들의 부탁으로 이런저런 의학서를 빌려주었던 의사가 어느덧 흥미를 잃고 마네킹을 상자에 넣고 있는 그들을 찾아와 이렇게 말한 것이다.

"브라보! 난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요."

그 나이에는 그런 연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미소 짓는 의사의 모습이 부바르와 페퀴셰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

무슨 권리로 그들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단 말인가? 과학이 자기의 전유물이라도 되는 것인가! 마치 자기 자신이 훨씬 우월한 인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95쪽)

의사의 도발은 그들을 더 나쁜 쪽으로 이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이 생리학 지식이라고 판단하고 책을 사러 바이외(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내게는 지리학 지식이 부족하고, 원고료를 받으면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를 살 예정이다)까지 간다. 그들은 이런저런 연구를 감행하지만 좀처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그들은 생리학이란 (구태의연한 말로 하자면) 의학적인 소설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102쪽) 하지만 우연히 만난 외판원이 그들에게 프랑수아 라스파유가 쓴 <건강 개론>을 권했고, 그것이 그들의 의학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몇 권의 관련 서적을 더 읽은 후, 직접 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나선다. 그들은 칼바도스(역시 어딘지는 모른다)에 간호인 학교를 세우기 위해 왕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는데, 물론 그들이 직접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들은 종종 의학적인 견해차를 두고 의사와 전문적인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식이었다.

"아무래도 좋소! 그에게는 음식물이 필요해요!"
"천만에! 맥박이 구십팔이란 말이오."
"맥박이 무슨 상관이람!"
페퀴셰가 권위 있는 책의 이름을 들먹거렸다.
"이론은 집어치우시오!"
의사가 말했다.
페퀴셰는 팔짱을 꼈다.
"그럼 당신은 경험만으로 치료하는 돌팔이 의사요?"
"천만에! 진찰해서 치료하지요."
"하지만 진찰이 잘못되었다면?"
(…)
"무엇보다도 실제 경험을 쌓는 게 필요하단 말이오."
"과학을 혁신시킨 사람들은 실제 경험이 없었소이다!" (108쪽)

108쪽이라니. 과연 의사 입장에서는 108번뇌를 떠올리게 하는 대화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의학에 대한 그들의 열정 또한, 농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들은 건강과 질병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원했으나 책 속에는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 독서를 한 까닭에 그들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111쪽) 그리하여 그들은 건강염려증에, 나아가 통증이 있나 생각해보다가 진짜 통증을 느끼는 경지에 이른다. 언젠가 볼라뇨가 말했듯 "문학+병=병"이라면 책 더하기 병 또한 그저 병인 것이다. 한 마디로, 좀처럼 나을 가망이 없다는 말이다. 결국 그들은 서재에서 모랭 박사가 쓴 위생학 개론서를 꺼내고, 베크렐의 개론서를 산다. 그리고 위생학 또한 빌어먹으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지만 아직도 책은 많다. 너무도 많다. 문득 모든 것의 기원을 알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 그들은 <자연의 기원>이란 책을 보고 <조화론>을 읽고, '프랑스에서의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관한 데핑의 저서를 사고, 뷔퐁의 책을 다시 펴보며 자연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흥미를 느낀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작은 것부터. 그래서 페퀴셰는 뒤무셸에게 현미경을 하나 보내달라는 편지를 쓴다. 페퀴셰가 끝내 이별을 고하지 못한 그놈의 작가 말이다. 부바르와 페퀴셰가 잘못된 사용법으로 미생물을 들여다보고, 서로 보겠다고 밀다 현미경을 망가뜨리며, 결국 현미경 제작자를 욕하고 현미경을 통해 이루어진 발견을 회의하는 동안 계산에 밝은 작가 나리께서는 그들에게 현미경 값을 청구한다.

뒤무셸은 계산서를 보내면서, 암몬조개나 성게, 또는 샤비놀에 많이 있는 진귀한 것들을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여전히 진귀한 물건에 대한 애호가였다. 부바르와 페퀴셰에게 지질학에 대한 흥미를 부추기려고, 뒤무셸은 베르트랑의 <서간집>과 퀴비에의 <지각의 변동에 대한 담화>를 보내주었다. (121쪽)

들은 뒤무셸의 계략에 넘어갔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런저런 지질학 책을 구해 읽으며 얼마 후에는 직접 화석을 찾고 지질을 조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해안에서 화석을 캐다 전원 감시원에게 들켜 혼이 나기도 하지만 기죽지 않고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 <지질학 여행자의 안내서>라는 책에 나온 대로 복장을 갖추고 '기술자의 자질'을 갖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아! 우린 기술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잖아!"(129쪽)라고 외쳤다고 해야겠지만. 그렇게 현장 조사와 이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던 그들의 생각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에서 세상의 종말에 대한 걱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언젠가 지구가 멸망하고, 모든 것들이 재로 사라질 그날로. 나무도 풀도, 악어도 개도 사라지고 부바르와 페퀴셰 자신들마저 사라질 순간을 향해서.

"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니야."
부바르가 말했다.
"그러기를 바라야지!"
페퀴셰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좋다! 아무리 먼 훗날의 이야기라지만, 이 세상의 종말은 부바르와 페퀴셰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갈이 깔린 해변 위를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걸었다. (132쪽)

▲ <통상 관념 사전>(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잠시 후, 생각에 빠진 페퀴셰를 뒤로 하고 백 보쯤 앞서 걷던 부바르 위로 자갈이 비오듯 떨어졌다. 때마침 대지진에 대한 생각으로 불안해하던 그는 패닉에 빠졌다.

미친 듯이 도망치는 부바르를 본 페퀴셰는, 부바르가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멀리서 소리쳤다.
"멈춰 서! 서라고! 세상이 끝난 게 아니야."
그는 부바르를 따라가 붙잡기 위해서 여행자용 지팡이로 커다랗게 점프를 하며 울부짖었다.
"세상 끝난 게 아니야! 세상 끝난 게 아니라고!" (134쪽)

물론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책조차 그렇다. 부바르와 페퀴셰가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도, 또한 우리가 읽고 있는 플로베르의 책도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플로베르 그 자신이 <부바르와 페퀴셰>의 2부로 여긴 <통상 관념 사전>(정확하게 말하자면 <통상관념 사전>의 서문으로 쓰기 시작한 게 <부바르와 페퀴셰>라고 해야겠지만)에서 직접 밝히고 있는 것처럼.

책 – 어떤 책이든 언제나 너무 길다! (<통상 관념 사전> 94쪽)

*

그러니 이미 충분히 시달린 당신을 위해 짧게 말하겠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그 후로도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고고학,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등을 두루두루 섭렵한다. 몇 번의 다툼을 하고, 분쟁에 휘말리며, 서로 다른 여자들과 연애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남자가 아닌 여자들과? 놀랄 필요는 없다. 역시 <통상 관념 사전>을 통해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한다.

남색가 – 모든 남자들이 일정한 나이에 감염되는 질병. (23쪽)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플로베르가 19세기 사람인 게 내 잘못은 아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형편과 계속해서 쌓이는 책,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권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계는 계속된다. 그리하여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그들은 어느 남매를 입양한다. 아이를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부부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물론 적법한 절차를 통한 정식 입양은 아니었지만, 루소의 <에밀>을 비롯한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실험하(고 또 실패하)기엔 부족함 없는 관계였다. 심지어 그들은 일말의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데, 수양딸(이라고 해두자)의 일탈과 수양아들의 고쳐지지 않는 손버릇을 탄식하며 비통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빅토린이 타락한 것은 독서 때문이야."
"나는 빅토르를 정직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카르투슈의 전기를 읽혔네."
(…)
"아! 그래! 교육이란 아무 소용없는 짓이야." (<부바르와 페퀴셰 2> 503쪽)

그렇다고 그들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실패가 뭐 어떻다고? 그들은 생각했고, "아이들에 대해서는 실패했지만, 어른들에 대해서는 좀 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한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그 부분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세상이 끝났다는 말이다. 그리고 당신은 영원히 그것을 읽지 못할 것이다. 축하한다.

교훈은 분명하다. 남자를 망치는 취미는 '통상적으로' 생각하듯 카메라도 오디오도 차도 아닌 바로 책이라는 사실. 그러니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부바르와 페퀴셰>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제발 참으시기를. 부바르와 페퀴셰의 생활이 궁금하다면 차라리 결혼을 하시라. 톨스토이가 말했듯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안나 카레리나>(박형규 옮김, 문학동네 펴냄) 11쪽) 온갖 불운과 독서라는 나쁜 습관에도 불구하고 부바르와 페퀴셰가 이룬 건 행복한 가정이었고, 당신이 이룰 것 또한 그것이 분명하니까.

▲ 남자의 취미 중 위험한 것은… ⓒ프레시안

+ 이 자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가난과 독서의 관계(부바르와 페퀴셰가 본격적으로 독서에 빠진 게 파산 이후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에 대해서라면 다음 기회를 기약하도록 하자. 그런 기회 따위는 없는 게 낫겠지만. 독서 다음으로 피해야 할 게 바로 가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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