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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여, '민중의 메시아' 노릇을 집어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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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여, '민중의 메시아' 노릇을 집어치워라!

[프레시안 books]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이현우 지음, 현암사 펴냄). 제목만 비슷한 게 아니라, 19세기 러시아 작가 한 명 한 명을 차례로 다루는 강의 형식까지 흡사한 두 권의 러시아 문학 강의록이 약 1년 반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출간되었다.

전자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40년에서 1959년까지 약 20여 년간 미국 대학 강단에서 강의했던 강의록(1981년 초판 출간)의 번역서이고, 후자는 '로쟈'라는 필명의 서평가로 유명한 저자가 90년대 중반부터 역시 약 20여 년간 대학 전공 강의는 물론 일반 청중 대상의 교양 강좌로도 꾸준히 해왔던 러시아 문학 강의의 내용을 강의록 형식으로 정리한 러시아 문학 입문서(19세기 편)이다.

▲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이현우 지음, 현암사 펴냄). ⓒ현암사
그동안 러시아 문학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가 읽을 만한 러시아 문학 입문서나 개론서가 변변치 않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 두 권의 강의록은 그동안 러시아 문학 독자가 느낀 갈증을 해갈해주는 한편, 러시아 문학에 대한 독서욕을 자극하며 자양분을 제공하는 든든한 러시아 문학 안내서 및 참고서 역할을 꽤 오랜 기간 전담할 것 같다. 제목과 강의록이라는 형식, 또 주로 다루는 등장인물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사실 이 두 권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어느 한쪽을 더 권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른 미덕과 효용을 가져서 일단은 두 권을 상호참조해가며 함께 읽는 게 가장 최선이라고 본다.

조심스러운 사견으로는, 그동안 러시아 문학을 꽤 많이 읽고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독자들이라도 <로쟈의 러시아 문학>의 정돈되고 정제된 러시아 문학사와 작가들에 대한 충실한 해설을 통해 러시아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을 찾게 될 터, 우선 <로쟈의 러시아 문학>을 통해 러시아 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점검한 후,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을 읽기를 권한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은 아무래도 다뤄지는 작품을 일독하고 읽으면 더 깊게 공감할 요소가 많으니, 러시아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로쟈의 러시아 문학>을 먼저 읽고 관심이 가는 작품을 골라 읽은 후 나보코프의 책을 읽는 방법을 추천한다.

로쟈의 친절한 스토리텔링 가이드

두 책의 목차를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이 (부록 격인 개별 주제 강연 글들을 제외하면) 고골로 시작해 고리키로 끝나는 반면, <로쟈의 러시아 문학>은 푸슈킨에서 시작해 체호프로 끝난다는 것이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쪽이 "푸슈킨에서 시작해 체호프로 끝나는 19세기”라는 시대 구분을 더 확실히 지킨 셈이다.

러시아 근대 문학의 토대를 만든 작가 푸슈킨이 빠진 건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쪽의 큰 공백이지만, 나보코프의 의도라기보다는 단순한 기술적인 탈락에 가깝다(나보코프의 푸슈킨론은 이 강의록이 출간되기 훨씬 전에 저자 자신이 출간한 <예브게니 오네긴>의 영어 번역과 이에 대한 방대한 양의 주석 판 속에 이미 다 흡수되었다). 어디까지나 이 책은 나보코프 자신의 편집과 정리를 거쳐 출간된 강의록이 아니라, 작가 사후에 작가의 강의용 원고와 노트 등을 취합해 제3자가 출간한 모음집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미주 1)
이에 반해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연속된 강의의 형식을 빌려 19세기 러시아 문학사를 흥미진진한 갈등요소와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득한 한 편의 연속극처럼 리듬감 있게 풀어가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돋보인다. 이는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로,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을 개별적인 장으로 다루면서도 작가들 간의 직간접적인 영향관계나 문학사적 흐름을 꼼꼼하게 짚어주어 책 한 권을 하나의 매끄럽게 완결되는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읽을 수 있도록 했다.

▲ <예브게니 오네긴>(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김진영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특히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에서 다뤄지지 않는 두 작가가 포함된, 푸슈킨-레르몬토트-고골로 이어지는 러시아 낭만주의 파트는 저자의 전문 분야이기도 하거니와, 러시아 문학사 전체를 놓고 봐도 중요한 고비가 되는 장면들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니, 저자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러시아 문학의 독특한 정체성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러시아 근대 소설의 토대를 마련한 이 세 작가의 소설들이 모두 일반적인 유럽의 근대 소설과는 다른 기묘한 형태를 띤다는 점, 즉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운문' 소설이고,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은 독립적으로도 읽을 수 있는 단편들의 '연작' 소설이며, 그나마 일반적인 근대 소설의 형식을 띤 고골의 <죽은 혼>은 작가 자신이 붙여 놓은 부제가 무려 '서사시'라는 점을 지적하는 대목은, 출발부터 독특했던 러시아 문학의 기이한 매력을 단적으로 요약하는 부분이다.

작가에 대한 전기적이고 문학사적인 맥락의 해설 후 이어지는 구체적인 작품 분석 파트는 해당 작품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먼저 읽을 일반 독자를 고려해 줄거리 요약 위주로 분석이 전개된다. 그 줄거리 요약 자체도 재미있거니와 중요한 대목마다 곁들여진 저자의 코멘트나 해석 또한 적절하고 참신해서 이미 줄거리를 다 아는 독자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해당 작가나 작품의 성과 및 문학사적 의미와 함께 그 한계 또한 명쾌하게 짚고 넘어가는 각 장의 마무리는 다음 장에서 만날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며 작가와 작품들을 문학사 전체의 맥락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시야를 마련하는 효과적인 서술 전략인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 문학의 유명한 꿈들(타치야나의 꿈과 라스콜리니코프의 꿈)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분석, 소설들의 마지막 장면이나 에필로그(가령 <죄와 벌>과 <첫사랑>의 에필로그)에 대한 저자의 참신한 해석 같은 부분이, 입문서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깊이 있고 다층적인 텍스트 독해라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나보코프의 집요하고 관능적인 가이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도 각각의 작품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담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둔 러시아문학 입문서를 표방하는 만큼, 치밀한 텍스트 분석보다는 러시아 문학의 틀을 형성한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러시아라는 나라의 역사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은 첫 강의록('러시아 작가, 검열관, 독자')부터 "거작을 둘러싼 틀이나 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거작 자체를 보라"고 당부하며 시작한다. 러시아나 러시아의 사상을 알기 위해 러시아 문학을 읽을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당대 정신에 대한 일종의 '예외'로 천재 개개인을 볼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나보코프는 "바보는 위험하지만, 유약한 바보는 그 위험을 최고의 스포츠로 둔갑시킨다. 혁명 전 러시아 관료들은 수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뛰어난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머리가 모자란다는 점이다"(33쪽)라는 말로 19세기 전반의 천재 작가들(푸슈킨이 대표적)이 어떻게 기발하고도 흥겹게 국가 권력의 검열을 풍자하고 비웃었는지 요약하며, 역사적으로 러시아 작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더 교묘하게 억압하며 괴롭혔던 건 작가들을 '국가(나치아)'에 복무시키려 했던 차르보다 차라리 '민중(나로드)'에게 복무시키려 했던 반정부적 비평가나 급진적 사상가들이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나보코프가 보기엔 19세기 전제정치 하의 이 사상가들이나 소비에트 체제나, 문학에 똑같이 무지하며 문학을 정치에 종속시키려는 속물적 태도를 견지하기로는 매한가지였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에서 저자도 지적했듯이, 사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그 태생부터가 '인텔리겐치아의 문학', 즉 비판적인 지성을 가진 반체제적 지식인 집단의 사상에서 배태된 것이라, 이상적인 러시아의 지향점을 문학이 제시해 민중을 선도해야 한다는 의식이 비평가들은 물론 작가들에게도 강박관념처럼 작용했다(나보코프의 표현을 따르면, "소위 메시지가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 소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 20세기 중반 즈음에는 러시아 소설을 말살시켰다"). 민중의 불만과 희망을 취합하고 반영해 사회적으로 호소력 있는 메시지로 분출하는 창구 구실을 하는 적절한 제도적 장치나 사상적 토대를 갖추지 못했던 19세기 러시아에서 여론을 선도하며 비전을 제시하는 '민중의 메시아' 임무를 떠맡은 건, 신학·철학·사회학·경제학의 영역까지 포괄했던 문학이었다.

자신이 제일 잘 그려낼 수 있는 '인간의 속됨' 대신 선하고 긍정적인 인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다 결국 원고를 태워버리고 발광해 생을 마친 고골, 문학은 결국 사회에 부도덕을 만연시키는 기만일 뿐이라는 생각에 문학을 단념하고 민중의 생활로 뛰어든 톨스토이 등 19세기 작가들이 말년에 봉착한 '예술적 궁지'는 19세기 거의 모든 위대한 작가들이 공통으로 겪은 이중고(국가 권력에의 저항과 민중에 대한 의무)의 여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천재 작가들의 거작들은 그저 생존한 정도가 아니라 세계문학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유례없이 눈부신 예술적 성취를 보였다. 나보코프는 그럴 수 있었던 배경으로 천재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예술적 섬세함으로 구축한 예술적 세계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지지한 러시아 독자들의 존재를 거론한다. "작품의 섬세한 디테일을 흡수하고 이해하고, 작가가 의도한 즐거움을 즐길 줄 알고, 위조의 달인, 상상의 달인, 마술사, 예술가가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에 전율을 느낄 줄 아는 독자"(44쪽), "러시아 작가가 다른 나라 작가의 모델이었던 것처럼 이상적인 독자상이었던"(45쪽) 러시아의 독자들이 "예술가를 황제, 독재자, 사제, 청교도, 속물, 정치 도덕주의, 경찰, 우체국장, 좀도둑들로부터 구제"(44쪽)해냈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바로 그런 독자의 눈을 갖기를 바랐다.

나보코프의 강의는 텍스트에 바짝 밀착하여 작품의 섬세한 디테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할 때 독자 앞에 펼쳐지는 무한한 발견의 지평을 집요할 정도로 반복해 보여준다. 그 같은 강의 방식은 자신이 사랑하는 19세기 러시아 문학 작품들을 당시 미국 독자들의 얄팍한 감상주의나 정치적, 사상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지나친 곡해로부터 '구해내려는' 절박한 고투이기도 했다.

나보코프가 러시아 문학과 서유럽 문학에 대해 강의하던 1940~50년대 미국 대학이라는 시공간에서 '러시아 문학'을 '러시아'(당시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내 오롯이 작품 그 자체로 접근하여 텍스트에 바짝 밀착해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즉 서유럽 문학과 같은 방식으로 강의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보코프 역시 미국에 온 첫해에 이미 여러 초빙 강연과 개인적인 만남 등을 통해 미국 대학생은 물론 소위 학계나 언론계 지식인들도 러시아 문학에 무지하거나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 그로서는 드물게 작가 이력을 간략히 먼저 소개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요약 설명한 뒤 작품에 대한 심층 분석에 들어가는 절충을 택했다. 이런 수업 방식의 절충 또한 학생들이 러시아 문학 텍스트 자체에 좀 더 친밀히 다가가 그 섬세한 디테일에 '매혹'되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수업 전략의 일환이었음은 물론이다.(미주 2)
▲ 니콜라이 고골. ⓒWikimedia Commons
나보코프는 두 번 이상 읽어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작품의 결(texture)을 문학의 정수로, 독자가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포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나아가 그런 디테일을 포착하는 섬세한 독서 행위를 세상에 숨겨진 무한한 경이를 발견하는 불굴의 인간 지성과 상상력의 예로 여긴 소설가였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바로 이 문학 텍스트의 결, 그리고 그 틈새로 언뜻언뜻 비치는 검은 심연을 포착하는 나보코프의 유연하고 기민한 인식이 작동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가령 고골의 작품에서 서술자가 갑자기 옆걸음을 하며 페인트 모션을 취하다 갑작스럽게 도약(예를 들어 고골 특유의 허구적 연결사 '그렇지만'의 마법)해서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의 틈새를 감지하게 하는 대목을 마치 현미경으로 서술의 미세한 곡률을 재듯 하나하나 짚어 가는 나보코프의 집요함과 정밀함은, 나비 연구가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핀셋으로 섬세한 나비 날개를 펴는 광경을 보는 듯한 감탄을 자아낸다.

"문학은 물약 삼키듯 단숨에 들이켜 버리면 안 된다. 손으로 잘게 쪼개고 으깨고 빻아야 한다. 그래야만 손바닥의 오목하게 파인 가운데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향을 음미할 수 있다. 아삭아삭 씹어서 조각낸 상태로 혀 속에서 굴려야 한다. 이렇게 부서지고 쪼개진 부분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하나로 통일되면서 여러분이 시간을 투자한 그 작품 전체의 아름다움이 비로소 드러난다."(205쪽)

이는 나보코프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알려준 '문학을 대하는 실용 팁'의 일부지만, "훌륭한 유머가 번득이긴 하나 문학적 진부함이라는 황무지를 지닌 평범한 작가에 불과한"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강의보다는 '콘서티나 우주'처럼 다층 구조를 지닌 고골의 소설 세계를 음미할 때 특히 놀라운 힘을 발휘된다.

"러시아에 대해 무언가 알고 싶다면, 러시아 문학 독자가 흔히 찾게 마련인 '관념', '사실', '메시지'에 관심이 있다면 멀리해야 할 작가"(128쪽) 고골의 '4차원 텍스트'를 아코디언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며 고골이라는 '언어 현상'을 연주하는 나보코프의 언어는 그 자체로 음험할 정도로 관능적이며 매혹적이다(고골 파트는 이 강의록에서 유일하게 나보코프가 생전에 따로 <니콜라이 고골>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한 바 있는, 그야말로 한 편의 소설처럼 읽어도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재주넘는 다른 작가들은 다 이용하는 안전그물도 없이 어렵고 위험한 공중제비를 돌고 난"(62쪽) 뒤 천연덕스럽게 처음의 자세로 안착하는 고골처럼, 텍스트에 바짝 밀착하여 성애와도 같은 예술적 쾌감과 발견의 기쁨에 전율하다, 이내 청중 쪽으로 돌아서서 그 매혹의 메커니즘을 적확한 수사로 설명하며 강연자의 짐짓 객관적인 목소리와 거리를 되찾는 나보코프의 아찔한 곡예와도 같은 강의는 가히 이 강의록의 정수라 할만하다.(미주 3)

이제 여행을 시작하자

일독을 마친 문학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전혀 낯선 작품을 읽는 듯한 생경함을 느껴본 독자라면 절감할 "책은 읽을(read) 수 없다. 다시 읽을(reread) 수 있을 뿐"이라는 나보코프의 유명한 금언은, 사실 20여 년간 미국 대학의 강단에 섰던 '문학 교수' 나보코프가 새 학기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던 문학 작품을 대하는 기본 태도였다. 이제 러시아 문학에 대한 믿음직한 가이드북을 두 권이나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들의 안내를 받아 러시아 문학을 다시 읽는(비로소 제대로 만나는?) 여정을 한번 계획해보심이 어떨지.

#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와 관련된 아래의 일화들은 필자가 나보코프의 전기 자료 등을 참고해 작성한 것이다.

1) 1940년 5월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지인들의 도움과 대학의 단발성 초빙 강의나 '문학인의 밤' 같은 행사 등 가리지 않고 참석해서 받은 강의료로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던 나보코프는 11월 스탠퍼드 대학으로부터 다음 해 여름 '한 학기' 강의를 의뢰받고, 러시아 문학 전반에 대한 강의록을 준비한다. 자신도 그렇게 열심히 일한 적이 없었다(한 시간에 스무 쪽을 쓴 적도 있었단다)고 할 정도로 몰입해서 총 2천 페이지, 50분 강의를 100회 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을 불과 반년이 채 안 되는 동안 마련한다.

이후 이 강의록은 나보코프가 <롤리타>의 대성공으로 코넬 대학 교수직을 사직하고 스위스로 이주하기까지 20여 년간 미국 망명 생활의 생계 밑천이 되었고, 후에 수정을 거듭하여 더욱 완전한 형태를 띠어갔지만, 고골 강의록을 제외한 강의록은 모두 나보코프 사후에야 출판되었다. 사실 나보코프는 1970년대 초 강의록 출판을 고민하며 약 2년 간 원고 검토와 정리 작업에 돌입했지만 결국 출판을 포기하고 1972년 4월 "혼란스럽고 엉성함. 절대로 출판해서는 안 됨. 그 어느 것도!"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런데 나보코프가 강의록 최종고가 아닌 준비고의 한구석에 적는 바람에(!) 이 메모를 보지 못한 아내 베라 여사와 아들 드미트리 나보코프는 작가 사후 이 강의록의 원고들을 두 권으로 편집해 출간한다. 그중 한 권이 바로 이 서평에서 다룬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이다.

2) 프로이트와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도발적이고 신랄한 비난에 대한 항의 표시로 학생들이 수업 도중 걸어 나가곤 했다는 자극적인 일화보다는, 나쁜 문학작품의 문장 사례를 큰 소리로 낭독하기를 유난히 즐겨서("인용을 멈출 수 없어!"라고 외치며 신이 나서 낄낄거렸다고), 늘 교실 맨 앞줄에 앉아 충실한 조교 역할을 하던 부인으로부터 자제하라는 수신호를 받곤 했다는 일화 쪽이, 웃음과 감탄이 끊이지 않았을 나보코프의 강의 분위기를 더 잘 나타내는 듯하다.

나보코프의 강의를 수강했던 당시 학생들의 회고에서는, 기존의 수업 방식이나 교수에 대한 이미지를 깨는 나보코프 특유의 기발한 유머감각과 의외성이 공통적으로 지적된다. 한번은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를 강의하다 칠판에 작품의 테마(세대, 사회의식, 경제적 조건, 정치, 빈곤, 사회 환경) 별로 포물선과 지그재그선 등을 심각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그리면서 학생들에게 공책에 똑같이 따라 그리라고 엄한 어조로 몇 번을 반복해 말하더니, 결국 맨 마지막에 '예술 테마 선'이라며 커다란 곡선을 그려, 칠판 가득히 쓴웃음을 짓는 고양이 얼굴을 완성해 놓았던 일도 있었다고.

3) 강단 위의 교사는 적절한 목소리와 몸짓과 호흡으로 강의실 안 청중들의 호기심과 집중력을 계속 조율하면서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무대 위 배우에 가까운 바, '강의록'은 지문이 생략된 일종의 연극 대본과도 같다. 젊은 시절 무성 영화의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장래를 나름 진지하게 계획해보기도 했던 나보코프의 강의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물론 나보코프의 이런 '무대 위 배우'의 면모가 가장 큰 효과를 발휘했을 강의는 고골 강의였을 터. 나보코프는 매년 고골을 강의할 때마다 고골의 처절하면서도 웃긴 임종 장면을 고골이 빙의된 듯 실감 나게 연기해 박수와 탄식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이 당시 대학 강의를 녹음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나보코프의 탁월한 '연기력'과 웃음이 끊이지 않던 강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는 낭독회의 음성 파일이 얼마 전에 공개되었다. 이 링크(☞바로 가기)를 따라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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