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4시 경. 검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톤은 점점 올라갔다. 유우성 씨 간첩 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린 서울고등법원 형사법정에서 검사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유가려 씨 진술 번복 등의 신빙성 검증 작업이 항소심에서 증거 조작 논란에 가려져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증거 조작 논란이 간첩 사건 진실을 밝히는데 걸림돌이나 된 것처럼 당당했다. 공판 기일 추가 요구의 핵심 요지는 이 부분이었다. 이 쯤에서 세 가지 '꼼수'가 포착된다.
첫째 '꼼수'
국정원으로부터 조작한 증거를 받아 법정에 제출해놓고, 그 증거의 위조를 사실상 인정하고 철회해 놓고도, 검찰은 재판정에서 당당했다. "'위조'라고 하는 것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고 진상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조작된 증거를 제출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이현철 부장검사는 "위조 논란이 있지만 항소심에 제출된 기존의 증거로도 (간첩 입증이) 충분하다"며 "피고인이 간첩임이 분명한데 국민에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증거에 따라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일단 의문이다.
검찰의 '꼼수'는 간단하다. 위조된 증거 문건 3건은 증거 능력 판단 전에 철회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검찰은 위조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해,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 것처럼 피고와 재판부를 기망해도, 후에 위조됐다 판단될 경우 '당황하지 않고', 그냥 철회하면 '끝'이다. 얼마나 깔끔한가. 변호인 측 이의 제기가 없었다면 위조 증거가 그대로 인정됐을 것이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는 걸까.
둘째 '꼼수'
심지어 검찰은 유우성 씨의 출입경기록(출-입-입)이 전산 오류가 아니라는 내용을 입증하기 위한 전문가 소견까지 제출했다. 변호인 측이 "검찰이 이미 위조된 것으로 판명난 것을 (위조가 아니라고) 입증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반박할만 하다.
검찰의 논리는 중국 정부가 위조 문서에 대해 '정식 문서'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검찰의 증거조작 사건팀은 이미 수사를 통해 간첩 사건 팀이 제출한 문서의 위조 여부를 다투고 있다. "국정원이 고의로 증거를 위조했다"는 정황을 발견하고 이를 입증하려 총력을 다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들도 없지 않지만, 최소한 그렇게 전제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검찰 측은 "아직 위조로 판명나지 않았다"고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위조 여부에 대한 변호인들의 입장 표명 요구도 사실상 거부했다. 한 쪽에서는 위조임을 입증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한 쪽에서는 아직 위조 여부를 알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지 않고 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어디로 갔는가. 동료들의 입증 실패라도 바라고 있는 것인가.
위조된 증거를 제출하고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위조 증거를 제출한 검사들에 이미 면죄부가 주어진 것일까. 동료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상 날조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를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간첩 수사팀 검사들이 저리도 느긋한 이유를, 도저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셋째 '꼼수'
검찰의 '꼼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왜 검찰은 공소장 변경과 함께 추가 기일을 요구했을까. '진짜 이유'는 공판 과정에서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별개로 유우성 씨의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 여권법 위반 부분에 사기죄를 끼워넣기 위해 공소장 변경을 청구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청구한 것이 아니라 "다음 기일에 (다음 기일이 만약 허락된다면)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검찰의 요구를 들어줬다.
변호인은 강력 반발하며 "북한이탈주민 보호법 위반 부분은 우리만 항소를 한 부분이어서 우리가 항소를 취하하면 검찰이 공소장 변경 자체를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물론 변호인 측은 항소 취하라는, 극단적 선택까지는 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검찰 측이 유우성 씨와 변호인들의 사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듯한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재판부에 의해 공소장 변경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을 검찰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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