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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정원이 협력자 농간에 놀아났다고?

[민교협의 정치시평] 국정원의 국익은 간첩조작인가

검찰은 27일 중국 당국이 위조되었다고 회신한 문서 3건의 증거신청을 철회하였다. 3건의 문서란 유우성 씨의 북・중 출입경기록,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사실확인서, 싼허변방검사참 답변서를 말한다. 검찰은 싼허변방검사참 답변서가 위조된 것을 확인했고 나머지 2개의 문건도 위조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증거철회에도 불구하고 유 씨의 간첩혐의에 대해서는 공소를 유지한다고 하였다. 
  
유 씨의 출입경기록은 간첩혐의를 입증할 검찰 측의 결정적인 증거였다. 2013년 8월 1심 재판부는 유 씨가 탈북자 명단을 북한에 넘겼다는 혐의에 대해 유력한 증거로 제출된 동생 가려 씨의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결국 간첩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출입경기록은 항소심에서 새롭게 제출된 주요 증거였는데 이것이 위조되었음이 드러난 이상, 검찰의 올바른 자세는 간첩사건의 공소를 취소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나온 언론보도에 의하면, 국정원은 3개 문건의 위조는 자신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며 협력자가 저지른 것으로 몰아가는 듯하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여기에 맞장구쳤다. 그는 설마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했겠냐고 하면서, “국정원 협력자인 김 모 씨에게 국정원이 놀아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남재준 국정원장의 ‘팬’이라고도 하였다.
  
국정원 직원 권모 과장이 자살을 기도한 이후 검찰의 국정원 윗선 수사는 약간 제동이 걸린 분위기이다. 그런데 때를 맞추어 국정원의 전직 대공수사 직원들은 보도자료를 내면서 “국정원이 마치 엄청난 범죄 집단인 양 매도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들은 이번사건의 본질은 유우성 씨 간첩사건이고 증거조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로지 국가만을 위해 헌신”했는데 한순간에 “날조범이라는 딱지”가 붙여졌다면서,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다.  

설마 국정원이 증거조작을? 국정원의 범죄경력
  
정말 그럴까. 국정원이 정말로 협력자의 농간에 놀아났다면 국정원으로서는 그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을 테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정원 협력자인 김 모 씨는 국정원 직원이 요청한 일을 해주고 일정 금액의 보수를 받는 브로커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역할로 볼 때 그가 자발적으로 유 씨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여 국정원 직원도 모르게 출입경기록을 위조했어야 할 특별한 동기나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던 작년 12월 경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 모 조정관이 협력자 김 씨와 국내에서 수차례 접촉했다는 사실, 위조된 3개 문건을 입수하게 위해 국정원의 내부 기획회의가 있었음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국정원이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얼마나 간첩 만들기에 능숙했는지는 수많은 재심무죄판결이 분명하게 보여준다. 1970~80년대 간첩조작사건의 희생자는 대부분 납부어부, 월북자 가족, 재일동포들이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그들은 언제든지 ‘간첩’으로 ‘차출’될 수 있었다. 당시의 간첩조작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는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연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에는 체포영장제도가 없던 터라, 대개 임의동행이라는 탈을 쓰고 실제로는 강제연행과 불법구금이 관행처럼 자행되었다. 당사자는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지 못했으며, 짧게는 십 여 일에서 길게는 백 일이 넘는 동안 이들은 가족과의 연락조차 두절된 채로 골방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 불법구금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수사관들은 피의자신문조서나 진술서 등의 기재날짜를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간첩조작사건에서 증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불법구금은 고문 등 가혹행위와 자백강요로 이어지는 사건조작의 밑거름이었다.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강요된 허위자백은 간첩혐의의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구금은 법형식상으로는 임의동행 내지 보호실유치라는 임의수사의 외관을 쓰고 관행처럼 반복되었으며, 검찰과 법원은 이러한 불법구금과 고문 등의 인권유린행위에 대하여 철저하게 눈감아 왔다. 간첩조작사건에 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검사는 안기부의 불법수사에 대해 조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간첩혐의자들이 안기부에서 자백한 내용을 부인하면 ‘다시 안기부에 보내 조사받도록 하겠다’는 식의 협박을 가하기 일쑤였고, 또 실제로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다시 안기부에 보내기도 하였다. 
  
시대는 변했지만, 간첩조작은 여전하다. 바뀐 건, 간첩으로 차출되는 주요 자원이 납북어부, 월북자 가족 등에서 탈북자로 이동했다는 것뿐이다. 유우성 씨처럼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고 때로는 북한에 다녀오기도 한다. 이들의 절박한 사정은 국정원의 주요한 먹잇감이 된다. 북한에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시골 어부들, 어쩌다 월북한 친척을 둔 죄 아닌 죄로 월북자 가족들이 졸지에 간첩으로 둔갑될 수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만의 위험한 심증
  
과거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은 대부분 군사독재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간첩 만들기 프로젝트’를 수주한 하도급자에 불과한 조직이 아니다. 국정원 직원들, 특히 대공수사파트는 자신들의 심증을 굳게 믿는다. 사실 이것이 더 위험하다. 국정원의 전직 대공수사요원들이 말한 것처럼, 국정원 직원들은 국익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심증 때문에 증거를 조작하여 간첩사건을 만들어내는 일에 목숨을 걸어서야 되겠는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국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유우성 씨 사건은 처음부터 석연치 않은 증거들로 가득 차 있었다. 1심 재판 때 국정원과 검찰은 유 씨가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유 씨의 핸드폰사진을 증거로 제출하였는데, 그 사진들은 모두 중국 연길시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2012년 10월 입국한 동생 유가려 씨는 국정원이 관리하는 합동신문센터에서 약 6개월 간 수용되어 조사받았고 그때의 진술이 유우성씨 간첩혐의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당시에 국정원은 유가려 씨를 접견하려는 변호인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였다. 접견은 물론 서신전달도 불가능하였다. 변호인의 준항고가 있었고, 며칠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준항고가 있은 지 1년  여 만에 당시 유가려 씨에 대하여 국정원이 사실상 수사를 진행하면서도 변호사접견을 차단한 것은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하였다. 법원은 국정원 직원이 오빠가 처벌받고 나오면 함께 한국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말을 하는 등, 회유에 의한 심리적 불안과 중압감 속에서 진술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국정원이 유가려 씨의 진술을 얻어내는 과정은 피의자의 기본적 인권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면서 회유와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위법한 수사였던 것이다. 2013년 3월 4일에 유가려 씨의 법정증언이 있었다. 영상진술실에서 진술하는 것을 법정에서 모니터로 지켜보면서 증인신문이 이루어졌는데, 법정모니터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국정원 직원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고, 그녀는 진술하는 도중 그 직원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눈치를 보았다. 그 국정원 직원은 판사의 명령으로 영상진술실에서 쫓겨났다. 

국정원에 수사권을 주지 말아야 할 이유  
  
오로지 심증에만 근거한 그들의 수사는 모든 법적 절차와 인권보장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증거조작까지 해가며 그들만의 심증을 증명하려 한다. 확신범도 이런 확신범이 없다. 진정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오로지 심증만으로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그들이다. 그들의 심증대로 유우성씨가 진짜 간첩행위를 하였다면 합법적인 수사에서 확보된 증거를 내놓고 재판에 임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국정원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국정원은 해외정보뿐만 아니라 국내보안정보의 수집권한, 그리고 수사권까지 보유하고 있다. 밀행성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의 업무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적, 법치주의적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비밀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정보기관에 수사권을 주지 않는다. 그들의 과도한 ‘국익사랑’이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의 헌법적 가치를 무참하게 훼손해 왔음을 역사적 경험으로 터득하였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나치 시절 정보기관의 폐해를 경험한 서독은 동서 냉전의 와중에서도 정보기관의 권력을 분산하고 수사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했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기본적 인권 보장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근본가치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냉전적 사고와 자신들만의 심증이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국정원이 헌법 위에 군림하면서 막강한 수사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지, 우리가 2014년에도 이를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슬프지 아니한가. 대한민국은 정녕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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