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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지존파', '허재호 황제노역'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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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지존파', '허재호 황제노역' 본다면…

[편집국에서] 20년 전, 지존파 사건을 생각한다

한성주 씨가 미스코리아가 된 해였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이, 그것도 세칭 명문대 학생이 미인대회에서 입상한 사례가 드물었다.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대학가에선, 개인주의와 소비문화가 만개했다. ‘압구정 오렌지족’, ‘야타족’ 등의 신조어도 나왔다. 이걸 못마땅해 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젊은이들이 취업 걱정과 이념 갈등을 미뤄둘 수 있었던 드문 시기였다.

작가 이문열이 평역한 <삼국지>가 불티나게 팔린 해이기도 했다. 그해, 서울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학생이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부활한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었다고 했다. 그 한마디로, 이문열은 돈방석에 앉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배경이 된 해, 바로 1994년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때, 한 무리의 20대 청년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부자를 증오한다”라던, 지존파다. 두목 김기환은 당시 취재진 앞에서 “인육을 먹었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아쉽다”라고 했다.

지존파는 경찰이 붙인 이름이다. 실제 조직 명칭은 ‘마스칸’. 그리스어로 ‘야망’이라는 뜻이다. 궁핍한 형편에서도, 김기환은 공부를 잘 했다. 초등학교에선 반장을 도맡았다. 그 역시 <삼국지> 마니아였다.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었고, 조직원들에게도 읽으라고 권했다.

공부 잘 하던 <삼국지> 마니아는 어쩌다 살인마가 됐을까. 가난 때문이라고, 빈부격차 때문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는 말자. 어려운 환경에서도, 선한 본성을 잘 가꿔가며 살아가는 이들이 세상에는 훨씬 많다. 가난 때문에 범죄자가 됐다는 식의 단순 논리는, 누군가에게 심한 모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가정은 해볼 수 있다. 김기환은 법정 최후 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며 미술시간이 가장 두려운 시간이었다. (…) 어느 선생님은 수업 준비물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1년 내내 매로 때렸다.

(…) 미술 선생님이 단 한번만이라도 우등생에다 반장인 내가 준비물을 해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줬다면 내가 오늘과 같이 삐뚤어진 인간이 되지는 않았을 것 (…) 당시 선생님은 도둑질을 해서라도 준비물을 마련하라고 가르친 셈 (…) 세상이 가르친 대로 했을 뿐 후회는 없다.” (1994년 10월 20일자 <한겨레>, <경향신문>)

가난이 낙인이 되지 않는 학교 분위기였다면,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김기환은 범죄자가 됐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 지존파 두목이 되진 않았을 게다.

오렌지족과 야타족, 그랜저 승용차 타고 다니는 이들을 증오하던 지존파 일당이 연쇄살인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는 당시 불거진 대학 부정 입학 사건이었다고 한다. 부유층 학부모들이 일부 사립대학에 뒷돈을 주고 자식을 입학시킨 사건이다. 이 나라에서 대학 진학 여부는 사회적 신분을 결정한다. 그런데 절차가 불공정했다. 부모가 돈이 있으면 자식의 시험 점수가 나빠도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시험 성적으로 1등을 놓치지 않았으나 결국 학업 궤도를 벗어나야 했던 김기환이 느꼈을 분노와 절망을 짐작할 만하다. 지존파 두목이 범죄 방아쇠를 당기게 한 계기는 한때의 모욕이나 결과의 불평등이 아니었다. 절차적 정의가 깨진 걸 보고, 그는 세상과 연결된 끈을 잘라냈다.

딱 20년이 지났다. 소년 김기환을 엇나가게 했던, 가난이 낙인이 되는 학교를 바꾸기 위한 최소 조건, 예컨대 무상급식은 아직도 아슬아슬하다. 공정한 법절차 역시 까마득하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 원 황제노역’이 최근 논란이 됐다. 허 전 회장의 화려한 법조계 인맥도 함께 화제가 됐다. 요컨대 돈 있고 인맥 좋은 사람은 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가볍다. 논란이 커지자 검찰은 갑작스레 노역을 중단했다. 그러나 법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에 난 균열까지 봉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1994년 당시 지존파 일당을 체포했던 형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기환을) 조사하는데 먹고 싶은 거 있냐고 했더니 중국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6000원짜리 잡탕밥을 시켜줬었죠. ‘처음 먹어 보는 건데…’ 하면서 먹는데 가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 정말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일자리는 없고, 빈곤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는 거예요. 한해 평균 2만여 명의 사람들이 실종되는데 10~20%는 미제사건입니다. 지금도 지존파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보장할 수는 없어요.”

지금도 어디선가 증오를 삭이고 있을지 모를 ‘꼬마 지존파’, 그들이 허재호 전 회장 관련 기사를 읽지 않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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