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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월급 깎였다…통상임금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사례 속출…"노동부가 공범"

경기도 화성에서 산업용 테이프를 만드는 제조업체 보우테이프. 지난 1월 22일, '근로계약 재체결'을 알리는 공고문이 느닷없이 게시됐다. "2014년 1월부터 통상임금 범위가 변경됨에 따라 기존 상여금이 없어지기 때문에 전 직원은 변경 근로계약서를 다시 체결해야 합니다"란 내용이었다.

계약 변경을 일방 통보하는 것도 황당했지만, 구체적 변경 내용은 더욱 황당했다. 기존 상여금(기본급의 490%) '일부'를 기본급에 환산하고, 휴일근로 수당을 기본급 200%에서 150%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노골적인 임금 삭감안이었다.

경기도 안산의 한 부품 제조업체. 이곳은 상여금을 삭감하려다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이튿날 세 종류의 근로계약서를 만들어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상여금 삭감 대신 기본급을 일부 인상하거나 학자금 지원 등의 복리후생비를 일부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개별 면담을 진행한 후 '원하는 사람은 한 명씩 들어와 사인하라'는 말에 노동자들은 '술렁'였다. 결국 모든 이들이 동의를 해줬고 회사는 이를 근거로 개악된 취업규칙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노사협의회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억지 서류였지만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았다'는 형식만 갖추면 그만이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제공

"총액 맞춰줄게" 해놓고…알고 보니 '장기 임금 하락'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법정 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 범위가 일부 조정됐다. 사용자들은 지금도 '인건비 부담이 늘어났다'며 앓는 소리를 해대지만, 현실은 결코 노동자들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을 중심으로는 외려 사용주에게 유리한 임금 체계를 만드는 작업이 속속 진행 중이다 .

경기도의 한 제조업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곳 노동자들은 지난해까진 주 40시간에 매일 잔업 2시간, 토요일 특근 8시간씩을 일했다. 그 대가로 받은 월급은 190여만 원. 최저임금 시급으로 계산한 기본급(101만)과 400%의 상여금을 열두 달로 쪼갠 월할 상여(33만 원), 그리고 연장수당(56만)으로 구성됐었다.

통상임금 판결 후인 올해 초, 회사는 갑자기 정기 상여금을 없애는 대신 기본 시급을 6180원으로 올려주겠다고 했다. "임금 총액은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노동자들을 다독였지만 이는 사실 임금 삭감, 그것도 장기적인 임금 삭감이다.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2014년도 최저 시급을 적용받아 205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변경 체계에선 200여만 원으로 임금이 외려 준다. 결국 삭감된 임금을 보전하려면 일요일에도 나와 특근을 하는 수밖에 없다. 똑같은 시간(40시간)을 일하고 받는 급여(고정급여)는 외려 쪼그라든 결과다.


시급

소정

근로

시간

연장근로

시간

기본급

연장수당

정기

상여

고정

급여

변동

급여

월평균

급여

2013

4860

209

77.4

102만

56만

33만

135만

56만

192만

2014

6180

209

77.4

129만

72만

0

129만

72만

201만

5210

209

77.4

109만

60만

33만

145만

60만

206만

6180

209

111.8

129만

104만

0

129만

104만

233만

5210

209

111.8

109만

87만

33만

145만

87만

233만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회사는 '매달 불량을 적게 낸 조를 선정해 특별수당 5만 원씩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성과금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기본급이 최저임금을 훌쩍 넘어가 버린 점이다. 향후 몇 년 동안 회사는 기본 시급을 올리지 않을 우려가 크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박준도 기획실장은 "저임금 사업장에선 통상임금 판결이 외려 근로시간 증가와 임금 삭감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며 "상여금을 기본급을 돌리자는 얘길 들으면 이런 곳 노동자들은 자동으로 '더 일하란 거구나'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 외에도 '총액은 맞춰주겠다'고 구슬리며 연봉제나 포괄임금제로 일방적으로 전환하는 사용주들도 적지 않다. 고정상여금에 성과를 연동해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면서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불이익 변경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느닷없는 임금 삭감…고용노동부가 '공범'
주목할 점은 이러한 사용자 측 꼼수가 노동부가 지난 1월 내놓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저임금 중소․영세 사업장이 밀집된 지역에서 통상임금 관련 상담을 받고 있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이러한 사례가 고용노동부 지침 발표와 현장 순회 이후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노동부의 해당 지침은 '특정시점 재직 시에만'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명확히' 제한할 것,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로 개편할 것 등의 내용을 담아 사용주들에겐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하고 있다.

심지어 "재직 요건 추가로 통상임금에서 상여금을 제외할 경우엔 (노동자에게 불리하므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밝혀 임금 삭감 방법, 즉 취업규칙 개악 방법을 대놓고 사용자들에게 제시하고 말았다. 근로기준법(94조)에 따르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위핸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과반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박 기획실장은 "대법원 판결이 임금 삭감의 '방향'을 가리킨 것이라면 노동부의 지침은 사용자들에게 임금 삭감의 매뉴얼을 제공한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엄미야 부지부장은 "대법원 판결 직후엔 우왕좌왕하던 사업주들이 노동부에서 지침을 뿌리고 설명을 하러 다니면서 그걸 듣고 취업규칙을 바뀌는 사례들이 나타났다"며 "불이익 변경에 따지면 노동부는 강제적으로 변경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선택권이 없는 노동자들의 동의가 어떻게 강제에 따른 게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상여금과 휴일근로 수당 삭감을 일방 통보 받았던 보우테이프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 변경을 거부하고 얼마 후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현재는 임금·단체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민주노총은 이달 말께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통상임금 대응 매뉴얼'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민주노총은 노동계의 시각을 담은 '통상임금 대응지침'과 통상임금 대응 매뉴얼을 담은 <통상임금 법률대응 길라잡이>(민주노총 법률원 펴냄)을 발간했다. 이 책자는 발간 5일 만에 초판 4000부가 매진됐다고 민주노총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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