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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임금은 무조건 깎으면 좋은 건가?

합리적 임금체계 매뉴얼? "기업 위한 임금 '개악' 참고서"

고용노동부가 '합리적 임금 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했다. 기본급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단순화할 것, 연공성을 완화하는 직무급·직능급을 도입할 것, 상여금에 성과를 연동하거나 성과급 비중을 확대할 것 등이 제시됐다.

사실상 국민 경제 생활의 유일한 수단인 임금을 '축소해야 할 비용'으로 치부한 터라 "노동부가 기업을 위한 임금 체계 개악 '참고서'를 내놨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계는 강한 반발을 예고한 반면, 재계는 이날 발간된 매뉴얼에 상당히 만족하는 분위기다.

19일 정부가 발표한 매뉴얼을 보면, 정부는 연공급이 지배적인 현행 임금 체계가 근속에 따라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키운다고 문제 삼았다. 일의 가치와 생산성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아 '공정한 보상 체계'가 구축되지 못했다고도 했다. 인건비 부담을 느끼는 기업이 중장년을 조기 퇴직시키거나 신규채용을 꺼리고 비정규직 채용을 늘려 '고용 불안'을 만든다고도 평했다.

정부는 매뉴얼 전반에 걸쳐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를 만드는 방법을 단계 별․업종별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연공 승급에 따른 임금 상승분을 줄여나갈 것, 수당 또는 상여금을 기본급에 연동해 지급하는 것을 지양할 것. 연공급을 유지하더라도 개인의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호봉을 승급하거나 정기 승급을 최소화할 것 등의 방법이 제시됐다.

기업 여건에 따라 직능급 또는 직무급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며, 이때 업무의 난이도나 자격, 평가에 따라 임금 등급을 결정하라고도 설명했다. 매뉴얼에는 직무급 도입에 참고할 수 있는 37개 항목의 '평가표'도 제시돼 있다. 노동자의 90%가 여성인 병원 간호사를 상대로도 숙련급 또는 직무급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의 90%가 여성이라 출산․육아 등으로 직장으로부터의 이탈과 복귀가 빈번하다는 게 노동부가 든 한 이유다.

노동부는 연공 중심에서 성과 중심으로 임금 개편을 한다면 정부가 나서 '컨설팅'을 해주겠다고도 밝혔다. 이른바 '2014년 내 일 희망 일터 혁신 컨설팅 지원 사업'이다. 정년을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감액한 임금을 정한 한도 내에서 전액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면서 연공성을 완화했거나 직무급을 도입한 회사,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 등 6개의 '우수사례'를 소개했다.

▲ 고용노동부가 19일 발표한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의 한 페이지.


"저임금 체계에서 또 다른 저임금 체계로의 변화"

노동계는 이날 발표된 매뉴얼이 '기업 부담 완화'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외면했다고 비판한다. 현행 임금 체계가 고용 불안을 강화한다는 정부의 평가에도 동의할 수 없으며 외려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가 저임금․고용불안 문제를 더욱 키울 것이라는 우려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노동부의 매뉴얼은 젊은 저근속 노동자가 많던 시대의 저임금 체계(연공급)에서 중고령 장기근속 노동자가 늘어난 시대의 저임금 체계(직무-성과급)로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현행 임금 체계도 기업을 위한 것이었다. 기업은 충성하면 더 높은 임금을 주겠다며 저임금으로 젊은 노동자들을 유인했고, 장기근속자가 많아지면 희망퇴직 등을 활용해 사실상 정리해고를 해왔다"고 비판했다.

직무급 등의 도입은 회사의 자의적인 임금 책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회사의 자의적인 성과 측정에 의해서만 임금 상승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며, 노조의 단체협상을 통한 임금 상승이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력이 낮은 노동자 밑에서 관리를 받게 되는 경력이 높은 노동자들은 유․무형의 퇴직 압력을 받아 심할 경우 스스로 퇴직(은폐된 정리해고)하게 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통상임금에서 상여금 빼는 방법 알려주는 노동부

노동부는 이날 매뉴얼에서 성과와 연동되는 상여금을 지급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는 변동성이 있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없다고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따라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 확대를 우려하는 기업들에 "상여금에 성과를 연동하면 통상임금에 안 넣어도 된다"고 설명해주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변동 상여 또한 노동자 간 경쟁을 부추겨 노동 강도 강화와 성과에 비춘 임금 저하를 부를 것"이라며 "성과 경쟁을 빌미로 높아지는 성과에 비해 임금은 상대적으로 하향 평준화될 것이며 임금 차별도 격심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동부의 매뉴얼은 현재의 임금 체계로 원청·장기근속 정규직과 하청·단기근속 비정규직 간 격차확대가 유발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초임을 높이거나 하청․단기근속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면 해결되는 문제"라며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임금을 상향 평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임금 체계는 사회를 흔들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노사정의 균형 있는 합의를 거치지 않고 사용자의 이해만 반영했다"며 "노동자가 삶을 영위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임금을 깎을수록 좋은 비용으로 여기는 박근혜 정부의 생각이 개탄스럽다. 수십·수백억씩 받는 재벌사 임금을 제한하고 10년~20년을 일해도 똑같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에게 호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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