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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에 간첩 오고 안정 속에 번영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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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에 간첩 오고 안정 속에 번영 온다"?

[프레시안 books] 존 르 카레의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이념으로 뭉친 자생적 첩보망이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첩보계의 상식…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 중 옮긴이 서문

세계가 ‘이렇게’ 바뀌어야 하며 그것이 옳다는 믿음. 설령 그 세계로부터 배반당하거나 그 세계가 자신의 이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에도 그 믿음을 고수하는 것은 애처롭거나 어리석거나 어떤 면에서 숭고하고 경이롭다. 어쩌면 그 네 가지 감정 모두가 결합됨으로써, 인간이라는 연약한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꼿꼿한 최대치의 의지에 대한 경탄을 자아낼 것이다.

존 르 카레의 일련의 스파이 소설의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는 그런 감정들을 바쁘게 오간다.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최용준 지음, 열린책들 펴냄),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펴냄), <스마일리의 사람들>(조영학 옮김, RHK 펴냄)을 읽다보면, 우리는 조지 스마일리에게 강력하게 감정 이입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유순한 인상 너머로 ‘서커스’(영국 정보부를 일컫는 은어) 최고의 두뇌와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 그를 질투하거나 겉모습에 깜빡 속아 넘어가서 무시할지언정, 그를 싫어하는 이들은 없다. 심지어 천적 카를라마저도 조지 스마일리에 대해서는 일종의 존경을 표했다.

▲ 1981년 BBC 드라마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 조지 스마일리를 연기한 알렉 기네스. ⓒBBC

그러나 그의 속내는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그토록 사랑하는 조국의 안위를 수호하는 정보부 활동에서 그는 자꾸만 상처받는다. 그는 자신이 구세대일지언정 제2차 세계대전 무렵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구해내고 거짓 유토피아의 광고에 사람들이 현혹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싸웠던 최후의 전사 세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보부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더 세력다툼과 알량한 안위에 매달리고, 국가의 이익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죄 없는 요원들을 희생시키거나 심지어 적을 보호하는 행위를 자행한다. 스마일리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것을 도와야 하고, 남들에게도 강요해야 한다. 스마일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내 앤은 습관적인 불륜과 이어지는 별거로 그를 한층 나약하게 만들었고, 존경하고 따르던 상사 ‘컨트롤’은 의심과 편집증에 사로잡힌 미친 노인네라는 불명예 속에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가 재능을 인정하고 존중했던 동료들, 이를테면 알렉 리머스, 짐 프리도라든가 코니 삭스 같은 이들은 조직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버림받거나 ‘좋은 시절’, 그러니까 정보부가 굳건하게 위치를 지킴으로써 영국이 세계의 일부이며 세계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그 좋은 시절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대에 뒤떨어진다.

스마일리는 대의명분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그 간극 사이에서 다른 이들처럼 배신하거나 미쳐버리거나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택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무리하거나 불합리한 요구라고 생각되면 그는 가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사랑하는 독일 고전시의 세계로 파고들었다. 권력에 대한 야심이 없기 때문에 원치 않는 일에 발을 담그기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취조실에서 만난 적국의 무시무시한 스파이 카를라에게도 ‘저 사람을 나라고 생각하자’라고 여기며 카를라에게 ‘독백’한다. 배신자 ‘두더지’를 추적할 때조차 그는 자신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늙은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의 이 같은 의혹과 머뭇거림이야말로 존 르 카레의 소설에 더없이 낭만적이고 서글픈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마법의 순간이다.

죽은 자를 깨우는 전화

▲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존 르 카레가 영국 외무부에 근무하던 1960년 무렵(표면상으로는 외무부 직원이었지만, 당시 그는 영국 방첩부(MI-5) 혹은 정보부(SIS)에 속한 스파이였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첫 소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썼다. 데뷔작답게 다소 미숙하고, 분명한 인과관계를 선호한다. 스마일리는 선하고 지적이고 감상적인 ‘영웅’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명백하게 죽을 상황인데도 냉혹한 암살자 앞에 빈손으로 뛰어들어 “광기의 에너지”에만 의존한 채 “서투른 어린애처럼 주먹을 날”리며 “돼지 새끼, 돼지 새끼!”라고 외친다. 그리고 악당은 죽고, 영웅은 살아남는다.

하지만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후 스마일리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확연해지는 국가 정보기관의 타락에 대한 염증과 스파이 세계의 비인간성에 대한 각성과 분노가 여기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이고, 이미 종전 이후 바뀐 상황에 대한 냉소가 곳곳에 지뢰처럼 밟힌다.

나토 연합과 미국인들이 심사숙고해 만든 극단적 수단은 스마일리의 정보부 전체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 넘치는 재능에도 박봉을 받으며 일하던, 영감 가득했던 소수의 아마추어리즘은 거대한 정부 기관의 능률, 관료주의, 음모로 대체되었다.

스마일리의 시대는 “17세기”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그는 언제나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전쟁이 끝나기 전, 스파이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엄청난 활약을 펼치던 그 시절은 다들 자원과 정보가 부족한 시대였고 아직도 영국이 전 세계 강대국 위치를 고수할 수 있던 무렵이다. 재력으로나 지력으로나 영국이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던 시기에는 스마일리 같은 용감하고 똑똑한 스파이가 일종의 기사도적 정신으로 세계를 구원한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전쟁이 한창인 1940년대가 ‘좋은 시절’로 기억된다는 잔인한 아이러니를 주목한 채 조금 더 나아가 본다면, 1960년대 무렵에 이르러 물리적 전쟁은 어느 샌가 까맣게 잊히고 재건과 번영을 향해 모두들 질주하는 와중에, 그 같은 고귀한 이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스마일리는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변화 속에 섞여들기 버거워하며, 그 변화에 너무나도 잘 적응하는 이들을 보며 분노한다.

나는 나이 들어 가고 있어…연금도 생각해야 하고…실직도…하지만 당신과 거짓을 함께하지는 않을 거야, 매스턴.

스마일리는 시대와 불화하지만, 결코 그 불화가 결정적이거나 치명적이지는 않다. 여전히 세계는 그를 인정하며 필요할 때는 언제든 그의 덜미를 잡아채 다시 한 번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는, 그리하여 언제나 그 어긋난 균열을 의식하면서도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은 수많은 평자들이 지적하듯, 습관적인 외도를 즐기는 아내 앤과 스마일리의 관계가 명백하게 상징하는 바다) 그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언제든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청난 오만” 때문에 러시아를 싫어하고, 러시아의 스파이들을 미워한다. 그것은 집단 속의 개인, 개별적인 것을 사랑하는 스마일리에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가치다. 그렇기 때문에 ‘서커스’ 내에서 차근차근 진행되는 변절에도 끝없이 자신의 재능을 바치거나, 그 안의 변절자를 찾아내 ‘청소’를 하고 나면 다시 한번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희망하며 차마 떠나지 못한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에서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이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자 60년대 영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케임브리지 5인방’ 스파이 사건의 실마리를 던져준다는 것이다. 존 르 카레는 담담한 어조로, 왜 그렇게 수많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매료되었고 심지어 자발적으로 러시아에 투항하여 조국을 배반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당시는 사회와 옥스퍼드 대학의 공산주의가 밀월 관계에 있었으며, 스마일리는 그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독일과 이탈라이의 파시즘, 일본의 만주 침공, 스페인의 프랑코 혁명, 미국의 불황,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 전역을 휩쓸고 시나간 반유대인 열풍이 있었다. (…) 노동당과 연립 정부의 실패는 많은 지식인들에게 공산주의만이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었다.

▲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 : KGB 공작관의 회고록>(유리 모딘 지음, 조성우 옮김, 한울 펴냄). ⓒ한울
즉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 : KGB 공작관의 회고록>(조성우 옮김, 한울 펴냄)의 저자 유리 모딘이 단호하게 주장한 것처럼, 당대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유럽의 파시즘적 동향에 큰 우려를 표하던 젊은이들은 “유럽의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저항한다는 아주 소박하고 고결한 임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이미 볼셰비키 혁명을 이룩한 러시아와 힘을 합치는 것이 자신들의 ‘진짜’ 조국을 배신한다기보다, 오히려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더 고차원의 애국심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존 르 카레는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 인류를 사랑한다고 믿었으며 서로 싸우면서 세계에 대항해 싸운다고 믿었다”라고 냉소적인 한 마디를 덧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이르러 존 르 카레는 고독한 영웅 스마일리의 낭만적 모험담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신의 믿음을 고수하기 위해 자신의 믿음과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스마일리의 복잡한 고뇌를 탐험한다. 존 르 카레 자신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후기에서 “제도와 규칙을 일단 받아들인 다음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싸우는 과정이 결혼 생활과 직업에 대한 내 관계를 지배하고 있었다”며 미쳐버린 이데올로기 냉전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이 안겨주는 좌절감과 철저한 고립감을 소설로 해소했음을 고백한 것처럼, 이후 작품들은 ‘변절’ 이후를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했던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의 세계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중 스파이의 진실

1963년 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주인공은 또 다른 영국 스파이 알렉 리머스다. 그는 냉전 시대 첨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앞에서 자신이 애써 구축한 조직이 붕괴하는 걸 목도한 뒤 참담한 기분으로 영국으로 돌아왔다. 상사는 “전쟁이 끝난 뒤 우리의 방법, 그러니까 우리와 상대의 방법은 거의 같아졌다네. 우리 정부의 정책이 자비롭다는 이유만으로 상대편보다 덜 무자비할 수는 없다는 뜻일세”라고 전제하며 이중 스파이 공작에 그를 끌어들인다.

I Know You know I Know.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에서 스마일리는 사건을 정리하는 글을 쓰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라고 제목을 붙인 바 있다. 결국 ‘앎’이 치열한 첩보전에서 승기를 잡는 유일한 방법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적지에서 날아온 망명자도 귀한 존재지만 적지의 핵심에 파고들어가 그들의 현재 진행형 정보를 빼내올 사람이 더 중요해진다.

리머스는 늙은 너구리여서 감시당하는 것을 알아도 당황하지 않았다. 베를린에서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감시자를 알아내지 못하면 그만큼 곤란해졌다. 그것은 감시자들이 더욱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이쪽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감시당하는 걸 알고 있다는 것조차 이중 스파이 리머스에게는 정보의 총량에 더하는 정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의 당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진실을 깨닫고 경악한 연인 리즈가 “당신은 어느 편이에요? 대체 당신은 어떻게…?”라고 부르짖을 때 리머스는 거칠게, 자기혐오에 사로잡혀 대답한다.

“당신은 스파이를 뭐로 생각하는 거야? 스파이가 성직자나 성인이나 순교자라도 되는 줄 알아? 스파이는 허영심 많은 바보들의 한심한 행렬이야. 물론 반역자들이라고도 하지. (…) 그들이 런던에 수도승처럼 앉아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비교하고 있는 줄 알아?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를 죽였을 거야. (…) 하지만 지금은 안 돼. (…) 당신이 찬미하는 어리석은 대중들이 밤에 침대에서 단잠을 잘 수 있게 하려면 그 자가 필요하니까. 당신과 나 같은 평범한 서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 자가 필요하니까.”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강렬한 클라이맥스는 이중 스파이의 아이러니를 거의 카프카적 상황극으로 표현한다. 즉 고발자만 있는, 피고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양쪽 모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지만 그 진실이 덫이 되어 결국 그 자신이 죄인임을 확증하는 굴레가 되어버린다. 진실을 말함으로써 거짓말을 말하는 이상한 논증이 이어진 다음, 배신자는 애국자로, 애국자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재판을 주관하는 의장의 말은 더없이 무섭고도 희극적이다.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게 이 사건의 요점이죠. (…) 당신이 알 수 없다는 게 당신의 공정함을 보장해 주겠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서 스마일리는 조연으로만 살짝 등장하는데, 영국 정보부의 이중 스파이 게임을 총지휘하며 자신들의 이중 스파이가 살아남아야만 영국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그 잔인한 게임을 강제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선 한발 더 나아가, 그전까지는 지휘자였던 스마일리 자신이 이중 스파이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함정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탐정은 사건의 기원을 하나씩 소거하면서 추적하다가, 결국 자신이 완전범죄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가리고 있었음을, 어쩌면 그 자신이 결정적인 증거였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한다. 늙은 오이디푸스는 ‘서커스’의 핵심 멤버들 중에 소련의 이중스파이가 스며들었다는 제보를 받고 그를 찾아 나서지만, 그것은 애국심의 총체와도 같은 이 조직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짓이 된다. 자신의 동료들을 “원초적 수치심”으로 몰아넣는 사냥을, 그 자신의 손으로 단행해야만 한다.

스마일리의 아내 앤의 말처럼, “배신 없는 충성이 어디 있나요?”라는 아이러니는 여기서 거의 극에 달한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거짓의 위치를 공고히 지켜준 것처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선 이중스파이의 교묘한 방해 공작이 오히려 그의 엄청난 능력으로 칭송받는 잘못된(그리고 낭만적인) 추론이 어떤 거대한 허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가슴 아픈 풍자가 된다.

“한 인간을 파괴시켜도 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어. 이 고통과 배신의 뒤안길은 어디에선가 끝나야만 해. 그렇게 되지 않으면 미래는 없는 거야. 하지만 미래는 나타나지 않고 끔찍한 현재의 상황만 자꾸 복제되어 계속 등장하고 있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얼마나 여러 번 갈가리 찢긴 걸까? 아니면, 그와 반대로 얼마나 길들여진 걸까? 예를 들어, 우두머리라면 누구에게나 기꺼이 무릎을 꿇는 정도까지? 여러분, 전 두 분 모두께 충실히 봉사했습니다. 황혼을 맞은 최고의 이중 스파이가 한 말이다.” (<스마일리의 사람들>)

죽은 자, 거울을 보다

(이 부분에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마일리 시리즈 중에서도 특별히 ‘카를라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소설들이 있다. 카를라가 등장한 첫 번째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였고, 2편에 해당하는 《The Honourable Schoolboy》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으며, 카를라와 스마일리의 최후의 대결을 그리는 마지막 작품이 <스마일리의 사람들>이다. 이 소설은 아예 노골적으로 단언한다.

“하지만 우린 친구조차 믿어선 안 돼. 적은 두렵지 않아. 정말로 두려운 상대는 친구들이야.”

영국을 위해 정보를 물어다주던 러시아의 이중스파이 블라디미르가 망명해오자 그의 이용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영국 친구들의 환대를 기대하며 입성한 블라디미르는 현실적인 냉대 앞에서 전락을 거듭하고 결국 비참하게 살해당한다. 스마일리는 블라디미르의 죽음에 자신의 천적이자 모스크바의 전설인 ‘늙은 여우’ 카를라의 단 하나의 약점이 숨어있음을 깨닫는다.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존 르 카레 지음,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카를라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카를라는 스마일리의 단 하나의 약점, 사랑하는 아내 앤을 이용하여 그의 눈을 멀게 했다. 최후의 진실을 깨닫고 배신자 빌 헤이든을 제거한 뒤에도 스마일리와 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고, ‘서커스’ 역시 스마일리의 활약을 전적으로 기쁘게 여기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스마일리를, 예언자 카산드라처럼 증오했다. 카를라는 그렇게 스마일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조국과 결혼에 대한 충성심 모두를 망쳐버렸다. 그리고 <스마일리의 사람들>에 이르러 스마일리는 고스란히 카를라에게 되갚아 준다.

그 와중에 그는 자주 망설인다. 카를라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순간, 지금까지 조직이 무너져도 스스로의 신념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위안할 수 있었던 그 마지막 끈마저 놓치게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그토록 미워했던 러시아 스파이와 자신이 똑같아졌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이렇게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지도자는 없었으며, 지도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사실만 깨닫고 말았다. 그를 향한 유일한 제약은 자신의 이성과 양심뿐이었다. 결혼과 공공에 대한 봉사 정신도 빼놓을 수는 없다. 사회에 평생을 이바지했건만 남은 거라곤 나 자신뿐이군.

조지 스마일리의 소중한 동료였던 코니 삭스는 더 무서운 예언을 내뱉는다.

“총성은 이제 끝났어, 조지. 그게 문제야. 모두가 회색이라고. 짝퉁 천사들이 짝퉁 악마와 싸우는 격이잖아. 전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총성도 들리지 않는 전쟁이라니.”

그런데 소설이 진행될수록, 전작에선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구멍들이 눈에 보인다. ‘제럴드’, 혹은 ‘모울(두더지)’, 혹은 빌 헤이든, 혹은 (빌 헤이든의 실제 모델인) 헤럴드 ‘킴’ 필비, 그리고 카를라(이마저도 진짜 이름이 아니다)가 텅 비어 있다. 조지 스마일리는 ‘모울’을 손아귀에 넣기 직전, "무대 위의 배우와 마찬가지로, 그는 커튼이 올라가기 직전, 안티클라이맥스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위대한 것들이 결국 사소하고 야비한 것으로 위축되고 말리라는 예감에 압도되었다"고 했지만, 그 ‘사소하고 야비한 것’의 또 다른 일면을 스마일리의 시점에서 그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 감정은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 : KGB 공작관의 회고록>의 결말에서 느껴지는 당혹스러움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죈헨, 톰, 스탠리’라는 암호명을 썼던 헤럴드 ‘킴’ 필비(그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빌 헤이든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메트헨, 힉스’라 불렸던 가이 버제스, ‘존슨, 토니, 얀’으로 불렸던 앤서니 블런트, 암호명 ‘와이즈, 리릭, 호머’였던 도널드 맥클린, 케임브리지 5인방의 최후 말이다. 대부분 러시아로 망명했던, 그리고 엄청난 결단력으로 영국에 남아 모든 수모와 의심을 견뎠던 이 이중간첩들은 정말 누구였을까?

▲ <스마일리의 사람들>(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RHK 펴냄). ⓒRHK
앤서니 블런트의 말처럼 “1930년대 중반에 이것은 양심의 문제였습니다. 반파시즘 투쟁을 하지 않는 것은 나라를 배반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라고 스스로를 변호했던 이들이, 영국에서 그리고 러시아에서 자신들의 이상이 결국 ‘사소하고 야비한 것’으로 시들어갔다고 느꼈을까? 그 비극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그 위험천만했지만 숭고했던 삶 전부가 부정당할 텐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빌 헤이든처럼, “이건 아주 미학적 판단일세”라고까지 말할 순 없을지라도, 어쩌면 그것은 떨쳐낼 수 없는 중독이었을까?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여러 겹의 눈이 천성이 되어버리고, 순진무구하고 평범한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된, 비밀과 음모가 그 자신이 되어버린 삶. 이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존 르 카레도, 유리 모딘도 알 수 없는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특히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 그려지는 카를라의 모습은 너무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어쩌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도 그렇고 이 소설에서도 카를라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은 간접화법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스마일리가 유령이나 환상과 싸우는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거울을 향해 섀도 복싱을 하는 스파이. 르 카레의 첫 소설 제목이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였던 것은 그리하여 뒤늦게 의미심장해진다.

스마일리 역시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 정보부에서 은퇴한 늙은이일 뿐이며, 어떤 의미에선 1970년대 스파이 세계에선 도저히 생존 불가능한 존재다. 심지어 이 소설에는 “역할을 다했지만 여전히 명부에 남아 있는 요원들”, 즉 “죽은 요원들과 접선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인 ‘라이프라인’이라는 직통전화도 존재한다. 스마일리는 그야말로 이미 ‘죽은 자’다. 그러나 정보부는 염치없이 ‘죽은’ 그를 무덤에서 끌어내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망령을 추적하라고 부추긴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첫 전화는 죽은 자의 마지막 사냥으로 이어진다. 그 사냥의 피날레는 늙은 여우의 생포이겠으나, 스마일리는 앞장서서 승리의 뿔피리를 불지도 않는다. 이건 거대한 진혼곡이지만, 쾌감도 카타르시스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존 르 카레가 이제 이런 애국심은 더러운 정치 파워 게임으로 넘어갔을 뿐이라며 순진하게 탄식한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이미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정치는 말 그대로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르 카레는 “나보다 나은 인물이며 숭고한 이야기의 일부”라고 일컬었던 조지 스마일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설교조의 개념들은 물론 선동적인 개념까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추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고귀한 인물의 탄식이라는 필터를 거쳐서 들어오는 현실이 더욱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존 르 카레의 스마일리 시리즈는 고귀하지 않은 현실을 고귀하려 노력했던 인물의 눈을 통해 생생하게 증거한다. 시들지 않는 국가 안보의 망령은, 더 악화되어갈 뿐인 미래를 예감하며 눈을 돌리는 이들보다 한때 짧게나마 이념과 혈통에 대해 순애보를 간직했던 이들의 과거에 반사될 때 그 야비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2011년 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Working Title Films

냉전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한국에서 스마일리 시리즈를 읽는다는 건 현실의 지속과도 같았다. 35년 만에 뒤늦게 찾아온 <스마일리의 사람들>을 끝으로, 이젠 스마일리와 작별하고 스마일리가 등장하지 않는 존 르 카레의 다른 소설, 그러니까 헌책방에서 구입만 한 채 계속 책등만 바라봤던 <러시아 하우스>(절판, 김영사 펴냄)와 함께 <원티드 맨>(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영원한 친구>(박현주 옮김, 열린책들 펴냄)를 펼쳐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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