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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딸'이 대통령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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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딸'이 대통령인데…

[편집국에서] '박근혜 창조경제', 믿음 안 가는 이유

한국에서 지식이나 기술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학위나 자격증이 대접받을 뿐이다. 이런 포장 안에 담긴 지식이 대접받는 건 아니다. 반면, 인맥이나 부동산의 가치는 대체로 과대 평가돼 있다. 고위 법관이나 관료가 로펌으로 옮겨가면서 받는 거액연봉이 그가 지닌 지식의 가치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인맥 때문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의 집값이 온전히 사용가치 때문이라고 믿는 경우는 없다.

인맥이나 부동산으로부터 얻는 이익은 일종의 ‘지대’다. 확보하기가 어렵지, 얻은 뒤엔 큰 노력이 들지 않는다. 지대추구 경제가 활성화 된 곳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기술 개발에 쏟을 시간과 돈을 인맥과 부동산 확보에 쓰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들고 나왔을 때, 조금은 반겼었다. 이런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좋은 인맥과 부동산을 물려받지 않은 사람이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해서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역동적인 곳으로 바뀔 게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질없는 기대였다. 박 대통령 본인이 지대추구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해 왔던 대표적인 경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기득권을 넘어서는 창조나 도전을 한 사례가 없다. 거대한 부동산을 가진 영남대, 육영재단 등에서 이사장을 지낸 이력이 그렇다. ‘창조경제’란 지대추구 경제의 반대말에 가깝다. 평생 ‘지대’에 의지해서 살아왔던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에 대단한 진정성을 갖고 있기를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박 대통령이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3대 추진 전략과 15대 핵심 과제, 100대 실행 과제 등이 담긴, 거대한 계획이다. 그간 말만 무성하고, 실체가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창조경제’ 역시 조금은 구체적인 꼴을 갖췄다. 그러나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거비와 가계부채가 ‘민생의 걸림돌’이라면서, 주택 구입자에 대해 대출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런 정책은 ‘민생의 걸림돌’을 더 키울 뿐이다.

내년까지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오프라인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창조’, ‘혁신’ 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게 오프라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엔 마을마다 새마을 지도자가 있었다. 이들이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초가지붕을 석면슬레이트 지붕으로 뜯어고치도록 독려했다. 당시엔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란 걸 몰랐다. 그저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겠거니 했다. ‘창조’, ‘혁신’ 등을 정부 주도로 이룬다는 발상에선 새마을 운동의 어두운 그림자가 떠오른다. ‘조국 근대화’건, ‘창조경제’건, 단기 목표를 정해놓고 돌격하는 방식으론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이게 만약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이게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앞서 박 대통령의 이력이 지대추구 경제인의 전형이라고 했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 집단에 속하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아마 이 점이 그의 프로필에서 거의 유일하게 약자에 속하는 부분일 게다.

다들 알다시피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다. 그리고 여성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은 남성 중심의 인맥 구조에 짓눌려왔다. 시험 성적이 지식이나 창의성을 온전히 측정하는 척도는 아니다. 그러나 성적 좋은 사람을 굳이 차별할 이유 역시 없다. 각종 시험에서 여성이 좋은 점수를 내는데도, 기업과 관공서의 유리 천정은 여전하다. 여성이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자리로 진출하는 비율은 아직 낮다는 뜻이다. 의사결정에서 배제돼 있는데, 창의성이 무슨 소용인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창의성도 쓸모가 있다.

유리 천정이 여전한 이유 가운데 상당부분은 지대추구 경제와 관계가 있다. 한국은 인맥 사회인데, 고위층과의 인맥은 룸살롱 등 음습한 공간에서 만들어진다. 과거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은 그렇다. 이런 인맥을 독점한 남성 역시 지대추구 경제인이다. 이런 구조를 깨고, 여성의 창의성을 해방시켜야 창조경제에 더 가까워진다.

그러나 현실은 까마득하다. 얼마 전, 육군과 공군 사관학교에서 여성 생도를 차별하는 일이 있었다. 여성이 수석을 차지하자, 평가방식을 바꾼다고 했다. 군인에겐 신체적인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이 논거인데, 허무맹랑하다. 사관학교는 미래의 지휘관을 키우는 곳이다. 지휘관에겐 지식과 창의성을 포함한 총체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여성이 시험성적이 좋으니까, 평가방식을 바꾸겠다는 건, 미래의 의사결정자 자리에서 여성을 배제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똑똑한 여학생은 사관학교에 지원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군 수뇌부가 보낸 셈이기도 하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창조경제는 기득권 경제, 지대추구 경제의 반대말이다. 남성의 불합리한 기득권을 깨지 않는 한, 창조경제는 요원하다.

기억하자. 이 나라에서 가장 힘 센 사람, 바로 대통령은 군인의 딸, 즉 여성이다. 그런데도 남성 중심 기득권 구조가 여전하다면, 우린 대체 대통령 선거를 왜 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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