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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노린 '악령', 버젓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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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수환 추기경 노린 '악령', 버젓이 살아 있다

[편집국에서] 선종 5년, 필요한 건 추모만이 아니다

지난 일요일(16일)은 김수환 추기경 선종 5주기였다. 김 추기경은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어른다운 어른이 드물던 시대에 김 추기경은 믿고 따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른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김 추기경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사제로 서품됐다. 지상의 삶을 마무리한 건 2009년. 그 사이 한국 현대사는 격동했다. 전쟁과 학살, 병영 같은 공장을 바탕으로 한 압축 성장, 거듭된 쿠데타와 그에 맞선 민주화 운동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이어졌다. 백성 노릇 하기 힘든 시절, '길 잃은 양'들이 마음 둘 곳 찾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김 추기경은 그런 시대에 상처 입은 많은 이를 보듬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있는 것이자 사회 속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가난한 이에 대한 적극적 관심 등 교회의 변화를 천명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결정, 더 나아가 낮은 곳에 임한 예수의 가르침과 궤를 같이하는 일이었다. 종교인으로서 당연한 책무에 충실한 이가 많지 않던 시대에 김 추기경은 자신의 길을 갔다.

독재 정권으로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대한 추기경의 소신 발언은 권력자들을 뜨끔하게 했다. 그와 반대로 많은 이들은 추기경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했다.

김 추기경이 1971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전국 생중계 미사에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한 일, 서슬 퍼런 권력자 전두환을 만났을 때 "서부 활극"에 빗대 12.12쿠데타의 문제점을 지적한 일,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에 고통스러워한 일 등은 지금도 회자된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공권력의 명동성당 진입을 막은 것도 많은 사람에게 잊기 어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과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를 다 넘어뜨리고 난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아무에게나 빨간딱지 붙이기를 즐기는 이들의 눈엔 시쳇말로 '좌빨'로 비치겠지만, 김 추기경은 사회주의 혹은 좌파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자신을 투사로 규정한 적도 없었다.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했기에, 그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한 독재 정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실제에 가깝다.

'추기경이 정치 문제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집권 세력의 볼멘소리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민주화 운동 세력의 아쉬움 섞인 불만을 동시에 들은 것도 그런 사정과 관련 있다. 말년이던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밝혀 적잖은 이들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한국인들의 여정에서 김 추기경이 한 역할을 지나치게 미화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레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김수환 추기경 홈페이지

외형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그대로인 현대사의 '악령'

종합적인 고찰과 별개로, 한국 민주주의가 김 추기경에게 적잖은 빚을 졌다는 건 분명하다. 민주주의를 갉아먹은 '악령'들이 김 추기경 같은 이들마저 노린 데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악령'의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때가 있었다. 1990년 보안사 이병이던 윤석양의 양심선언을 통해서였다. 군 정보 기관인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가 정계, 노동계, 종교계, 학계 등 각계 인사 1300여 명을 무더기로 사찰해왔다는 폭로였다. 김대중·김영삼·노무현 같은 야당 정치인은 물론이고 김 추기경도 정보 기관의 검은 손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89년 보안사에서 만든 청명 계획의 단속 대상에도 김 추기경은 포함돼 있었다. 계엄령이 떨어지면 검거 및 처벌할 인사 923명을 선정해 사찰한 사안이었다. 대상자들의 인적 사항, 예상 도주로 및 은신처, 체포조, 가둬둘 장소까지 정해둔 무시무시한 계획이었다. 군부 독재에 맞서다 암살당한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주교 사건은 한국 현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었다.

군부 독재의 시대는 지나갔고 '악령'은 사라졌다고 안심해도 좋은 상황일까? 그렇지 않다. 본질은 군 본연의 임무와는 거리가 먼 불법 행위를 조직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대선 개입 논란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군 정보 기관의 민간인 사찰 혹은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대선 개입 논란이라는 다른 외형으로 나타났지만, 정치에 대한 불법 개입이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 문제를 방치하면, 민간인 사찰을 비롯한 다른 형태의 정치 개입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군이 정치 개입 논란에서 자유로웠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윤석양 양심선언 이후에도 민간인 사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폐지됐던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대면 보고를 부활한 이명박 정권 시절, 기무사 소속 현역 대위가 쌍용차 관련 집회 장면을 몰래 촬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 대위의 수첩에 군과는 무관한 민간인 감시 기록이 적잖게 담겨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던 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이 사건에 대해 2012년 대법원은 민간인 사찰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고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국민과 헌법이 부여한 임무에만 충실하며 정치 개입 논란에서 자유로운 군을 만드는 것을 과거의 과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19일 국방부는 사이버사령부의 중립성 강화 방안 등을 담은 사이버사령부 발전 방향을 발표했다. 정치적 중립에 어긋나는 지시가 내려오면 이를 신고해 처리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 등이 그 방안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 개입 논란에서 군을 자유롭게 할 것인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다.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이 제기된 후 그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군 당국이 취한 태도가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품게 했다는 점도 이런 의문과 무관하지 않다. 군 당국이 그런 의문과 의구심을 앞으로 어떻게 해소할지 지켜볼 일이다.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은 김 추기경을 비롯한 종교인까지 노린 현대사의 '악령'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많은 사람에게 환기시켰다. 사이버사령부뿐만 아니라 국정원을 비롯한 여타 주요 국가 기관의 불법 정치 개입 의혹까지 염두에 두면, 그 '악령'은 버젓이 살아 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이 코앞인 지금까지도 국가 기관들의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이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은 점은 우려를 더하게 만든다. 선종 5년, 추기경에 대한 추모만이 아니라 '악령'들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 편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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