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이 결국 진상조사에 나섰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17일 국회 법사위 업무보고를 통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항소심에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가 조작이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대해 "입수 경위, 확인 과정을 철저하게 다시 확인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전날 "철저한 진상규명"을 주문하며 "위법 행위가 드러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현재 중국 정부가 '위조된 문서'라고 결론을 내린데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은채, 자료 입수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반박을 내놓은 상태다.
황 장관의 발언에 비춰보면 검찰은 자체 조사를 통해 증거물 입수 절차상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우선 따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검찰의 자료 입수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거나, 확인 절차가 미흡했다는 경미한 수준의 과실을 인정할 경우, 문서의 원출처로 지목된 국정원과 외교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수순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절차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핵심에서는 다소 비켜나 있다. 결국 조작 여부와 관련한 의혹의 열쇠는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에 주재하고 있는 국정원 직원이 쥐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 국정원, 외교부 우왕좌왕…열쇠는 국정원 중국 파견 직원이?
주한 중국 대사관은 지난 13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 조회 신청 답변서를 통해 "검사 측에서 제출한 화룡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조회결과(조회)'와 삼합변방검사참(세관)의 '유가강의 출입경기록 정황설명서에 대한 회신(회신)' 및 화룡시 공안국이 심양 주재 대한민국총영사관에서 발송한 공문(공문) 등 3건의 문서는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된 문서는 크게 조회 문서, 회신 문서, 공문 문서로 볼 수 있다.
검찰과 외교부, 국정원의 말은 조금씩 다르다. 검찰은 조회 문서와 회신 문서는 국정원 측으로부터, 공문 문서는 외교부 측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공문은 "(출입경 등 자료에 대한) 조회 문서를 발급한 사실이 있다"는 사실만 중국 선양 화룡시 측으로부터 확인받은 문서다.
'공문 문서'만 놓고 보자. 검찰과 외교부의 설명은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마저 위조라고 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검찰은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한다. 검찰은 공문 문서를 두 차례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두 건의 공문 문서 팩스 번호는 다르게 찍혀 있다. 즉, 외교부는 단 한 차례만 공문 문서를 발송했는데, 검찰은 팩스 번호가 다른 두 개의 문서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이날 검찰이 제출한 공문 두 건을 들고 나와 상세하게 비교하며 "(두 공문은) 검사가 제출한 문건이라도 완전 다르다. (공문에) 두 가지 버전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외교부가 검찰에 제공한 공문은 진짜고,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문은 가짜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문제의 공문이 위조라고 공식 확인했다. "외교 라인을 통해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검찰 역시 조작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교안 장관은 "검찰이 조작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에 상응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두 개의 문서, 조회와 회신 문서는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검찰이 밝혔다. 외교부는 공문을 받은 부분만 사실이고 그 외에 두 건의 문서는 모른다고 했다.
결국 국정원이 전반적인 조작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정원은 조작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지난 14일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해당 내용(조회와 회신 문건 등 두 건)은 중국 선양 영사관을 통해 입수한 것으로 사실과 부합한다"며 "재판 과정에서 입증해 나갈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노컷뉴스>는 이날 외교부 등 관계자 말을 빌려 "선양 영사관에는 (조회와 회신 문건) 문서 수신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영사관에 문서 수신 기록이 없는데, 국정원은 영사관을 통해 입수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조작은 국정원 직원이 한 것…국정조사, 특검으로 규명해야"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법사위 회의에서 "이것(조작)은 영사관에 나가 있는 국정원 직원 IO(정보관)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양 지역은 북중 접경 지대로 정부는 국정원 직원을 영사관에 파견하고 있다. 이 지역은 민감한 곳이어서 국정원 뿐 아니라 북한, 중국 등의 정보 기관원 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박 의원은 "검찰이 국정원의 기에 눌려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 이것은 공문을 조작한 것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검찰이 조사를 해서 진상이) 밝혀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것은 국회로 넘겨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과거 일본에서 검찰의 서류 조작 사건으로 관계 검사들이 다 구속됐고 검찰총장 사퇴한 전례가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국정조사와 특검을 동시에 요구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서 드러난 사실조차 최대한 삭제하려던 이들이, 없는 간첩을 만들어내는 데서는 타국 외교문서까지 위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외교문건 조작은 유신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도대체 역사를 몇 년이나 후퇴시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국정조사를 통한 사실 규명과 특검을 통한 엄벌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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