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부정'이라는 이념 공세
혹시 들어보셨는지, '국민권익위원회'라는 정부 조직을. 대부분 사람에게는 그리 익숙한 곳이 아니리라. 이름만 가지고는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탓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장관급' 행정 기관이다. 말만 위원회고 위원장이지 다른 정부 부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규모만 많이 작다. 그 전부터 있던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등 세 개 기관의 기능을 합해 2008년 2월 말 새로 만들어졌다.
국민 권익, 고충 처리, 청렴…. 기관 이름은 전부 뜻이 좋다. 어째 보통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 같지 않은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모양새다. 혹 정부 내 야당 같은 것인가.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하다. 이 위원회가 지난 2월 5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4년 계획이 그렇다. 핵심 가운데 하나가 "국가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촘촘한 감시, 환수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관련 자료)
뭐 이 정도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 내용. 4대강 사업이나 성능 미달의 무기 구입, 정체불명의 자원 외교 같은 예산 낭비가 아니다. 대신 '복지 부정'이 떡하니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예산 낭비도 써놓기는 했다. 그러나 분야별로는 '복지'를 유일하게 명시했다. 구체적인 방안까지 보면 대상이 더 분명해진다. 대통령 보고에서는 이미 설치, 운영 중인 '정부 합동 복지 부정 신고 센터'를 통해 부정 사례 신고를 활성화한다고 밝혀 놓았다.
'활성화'라고 하니 진작부터 이 사업을 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낯이 익다. 지난해부터 복지 부정을 뿌리 뽑는다는 사업이 한창이었는데, 책임 부처가 다름 아닌 국민권익위원회다.
되돌아보자. 우선 시작이 떠들썩했다. 무얼 목표로 했든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복지 부정을 신고하라고 중앙 일간지 여러 곳에 광고를 냈으니 말이다(이 그림이 바로 그 광고이다). 광고 효과가 정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광고비로 적지 않은 돈을 썼을 것이다.
그 후 '정부 합동 복지 부정 신고 센터'를 운영해서 100억 원 이상의 부정을 적발했다는 정부 발표는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관련 자료) 적발된 사례를 요란하게 광고한 것도 과거 하던 대로다.
그리고 다시 복지 사업 부정 수급 특별 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12월 10일부터 올해 3월 19일까지 100일간 특별히 신고를 받고 포상도 한단다. 세 자리 전화번호도 박아놓았으니 화재나 응급 환자, 간첩 신고에 버금간다. 지금도 위원회의 홈페이지(☞바로 가기)는 부정 신고를 독려하는 내용이 먼저 뜨도록 되어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런 일을 하는 줄 잘 몰랐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고 센터 이름부터 정부 합동이니 위원회는 기껏해야 실무를 맡았을 것이다(그래도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런 일에 앞장선다는 것은 '유체 이탈'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정부 전체가 하는 일이고, 이 정부의 중심 과제라고 해야 맞다.
부정 수급자를 적발했다는 뉴스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기초생활 수급을 받는 '억대 자산가'를 무더기로 적발했다는 언론 기사는 잊을 만하면 나타난다. 좀 더 선정적이려면 과거에는 그랜저, 요즘은 외제차를 몰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복지 부정 바람잡이는 장기간이고 규모가 크며 조직적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문제를 더 '키우는' 이 정부의 의도, 더 정확하게는 '문화' 정치다. 오명이나 낙인을 붙여서 복지를 공격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숨은, 그러나 진정한 목표가 아닌가 싶다. 복지라고 말할 때 마치 연관 검색어처럼 부정, 밑 빠진 독, 도덕적 해이 등이 떠오르게 하는 것.
이런 과정을 통해 복지는 나머지 사회로부터 분리된다. 복지 수급자는 당연히 사회의 비정상 '섹터'로 바뀐다. 정상이 아니고, 벗어나야 하는 것이며, 고쳐져야 하는 질병. 이것이 복지고 복지 수급자라는 것을 문화로 각인시킨다.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학생이니 '선진' 사례도 많이 참고했을 터. 복지 부정 놀음으로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복지 여왕'만한 게 있을까(레이건 자신이 이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말도 있다). 그는 1976년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시카고의 한 부정 수급자를 복지 부정의 대표적 사례로 들면서 복지를 공격했다.
복지 부정은 "여덟 개의 이름, 서른 개의 주소, 열 두 개의 사회 보장 카드, 존재한 적도 없는 네 명의 남편"을 가진 '여왕'으로 상징화되었다. 우리의 그랜저나 외제차 대신 거기서는 캐딜락이 등장했다.
영국에서도 차마 웃지 못 할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 2012년 8월 영국 노동연금부는 프랑스의 자문 회사 아토스와 4억 파운드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관련 기사). 노동 능력을 평가해서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희한한 것은 당시 노동연금부가 추정한 부정 수급의 규모는 약 200만 파운드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데이비드 스터클러·산제이 바수 지음, 안세민 옮김, 까치 펴냄)).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는 데에 200년간의 부정 수급에 해당하는 돈을 썼다. 배보다 배꼽이 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걸 영국 보수당 정부가 몰랐을까. 그럴 리가,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과 미국, 영국의 복지 부정 '공격'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복지의 '자격'을 따지자는 것이다. 충분히 가난해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야 하며, 정말로 일을 못할 정도로 장애가 있어야 한다.
자격은 꼼꼼하게 평가해야 하고, 거기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세금을 쓰는 점은 같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른바 '자산 조사'라는 것이 대표 격이다(소득과 재산 등등을 실제로 조사하는 것). 그러나 이런 조사는 결과적으로 대상자를 분리하여 딱지를 붙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위축과 '자기 축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는 공통점은 침소봉대. 이런 공격에는 으레 사례가 등장하고, 그것도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것들을 내놓는다. 그랜저와 캐딜락이 그렇고, 의료 기관을 몇 백 군데를 전전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편견과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 합동 복지 부정 신고 센터'를 시작한 이후 100일 동안 '무려' (정부 정책 브리핑의 표현 그대로다) 100억 원을 적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적다는 복지 예산도 2014년에만 100조가 넘는다. 그런데 '겨우' 백 억?
직접 비교하기는 적당치 않다. 그러나 아무리 대강 계산해도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이번에 들인 부정 적발 비용은 얼마나 될까). 물론 이게 적은 돈이 아니라거나 그건 괜찮다는 소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말들의 맥락과 의도다.
최종적으로는 문화 정치를 통해 복지와 복지 수급자를 주변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복지는 정상 사회에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이미지 속에 갇힌다. 또한 '부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찾아내고 처벌하는 것이 복지의 본질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계속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대통령 보고는 복지 요구에 대응하는 이 정부의 기조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보편적 복지가 아님은 물론이고, 가장 극단적으로 복지 대상을 선별하고 분리하는 것. 분리된 복지 수급은 곧 오명과 낙인이 되고, 잠재적으로 범법자일 수 있다는 것.
기조를 이렇게 잡았으니, 정부에다 복지와 복지 수급자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시민의 깨어 있는 의식과 복지 '운동' 정도가 그나마 압력이나 안전판이 될 수 있을까.
그 새 동력이 떨어진 복지 국가의 꿈. 자칫 복지가 소수나 주변으로 몰릴 판이다. 아무래도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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