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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PD "종편까지 생기니 '빵 셔틀'만 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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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주 PD "종편까지 생기니 '빵 셔틀'만 늘었네요"

[방송사 비정규직의 설움 ①] "방송직도 최저 임금·근로기준법 적용해야"

지원준(42) 씨는 16년 차 베테랑 외주 제작사 PD다. 1998년 지역 방송에서 FD로 일을 시작한 그는 수없이 많은 방송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알 만한 프로그램으로는 <무한지대 큐>, <불만제로>, <브이제이(VJ) 특공대> 등이 있다.

방송 일이 겉보기에 화려한 것과는 달리, 그의 노동 조건은 건설 현장과 꼭 닮았다. 근로 계약서를 쓰지 않는 점, 프로그램 건당 임금을 받는데 그 임금이 한 달 뒤에야 나온다는 점, 외주 제작사가 낮은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임금을 떼어먹어 체불 임금이 많다는 점이 그랬다.

1998년 그가 FD를 했을 때 임금이 주당 20만 원, 월 80만 원이었다. 그것도 당시로서는 "꽤 잘 받은 편"이었다고 했다. 프로그램이 방영하는 날에 쉬고 그 다음날 오후에 출근해서 6일 동안 '풀'로 일한 대가가 그랬다. 조연출의 경우 일주일 평균 68.44시간 일하고, 월 평균 10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2792원. 올해 최저임금 5210원의 절반가량이다.


"외주 PD에게 무료로 딸 결혼식 영상 찍으라고 시키기도"

▲ 한국독립PD협회의 지원준 PD. ⓒ프레시안(최형락)
그의 임금은 10년 넘게 거의 변함이 없다. 지난해 벌어들인 돈이 약 2000만 원(월 평균 167만 원)이라고 했다. 다른 직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방송문화진흥회가 PD, AD, FD, VJ 4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해 2009년 발표한 '방송연구지원 사업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년 차 PD를 포함한 외주 방송직군의 연 평균 임금은 2619만 원이었다. 이들은 하루에 11.8시간씩 평균 주 5.8일 일했다.

공중파 방송과 외주 제작사가 전형적인 갑을 관계에 놓인 탓이다. 방송사의 결정으로 외주 제작사끼리 피 말리는 경쟁을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욕 먹어서 바꿨지만, 모 방송사가 예전에는 5일짜리 아침 방송에서 6개 제작사를 뽑아놓은 후에 매주 꼴찌 팀을 탈락시켰어요. 우리가 아이템 리스트를 가져가면 방송사가 선정을 해요. 촬영을 어떻게 하는지는 귀찮으니 간섭 안 해요. 편집해온 거 보고 '재미없다'고 해요. 그렇게 꼴찌 팀이 빠지면 뒤에 대기 팀을 다시 올리는 식으로 했었어요. 우리는 프로그램 건당 돈을 받는데, 탈락되면 다음 주 일이 없어지는 거거든요. 채택되기 위해서 매주 경쟁하니 피 말리는 스트레스였죠."

정부가 '방송 산업의 발전과 방송 시장의 과점적 구조·수익 편중 등을 해소하기 위해' 외주 제작 제도를 도입했을 때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법에 따른 외주 프로그램 의무 편성 비율을 보면, KBS 1TV는 24%, KBS 2TV는 40%, MBC·SBS는 35%, EBS는 20%다.

지 PD는 현실은 '동반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일례로 2004년 KBS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 4%를 했을 때, 외주 프로그램 제작비가 25%(최대 40%) 삭감됐다. 그는 "신문 기사가 나온 뒤에야 계약서 쓰러 들어오라고 했다"며 "노사협약이 체결된 날 기준으로 제작비 삭감이 소급 적용됐다"고 말했다.

정규직 가운데 훌륭한 사람도 많지만, 간혹 인간적인 설움을 겪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FD 할 때 카메라 감독들이 물 떠오라고 시키곤 했는데, 솔직히 그때는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을 못 했다"며 "그런 지시들이 당연한 것, 혹은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런 일까지 생기나 싶었던 건, 정규직 CP가 딸 결혼식이 있는데 외주 PD보고 그걸 찍어서 편집하라고 했어요. 땡전 한 푼 안 주고…. 그러면서 마치 대단한 아량이라도 베풀 듯, 결혼식 뷔페는 먹고 가라고 했다는 거예요. 아는 분이었는데, 어디 하소연도 못 하더라고요."

저작권에 대한 갑을 관계도 있다고 했다. 그가 2003년 이탈리아에서 부패 관련 취재를 할 때였다.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을 위해 이탈리아 법원에 잠입한 그는 그 자리에서 경찰에 체포됐지만, 기지를 발휘해 취재에 성공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 만든 영상이었기에 기념으로 촬영 원본 테이프를 간직한 그는 한 달 뒤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과 전혀 상관 없는 공중파 PD로부터 "내 프로그램에 촬영 원본을 쓰고 싶으니 테이프를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내가 나만의 노하우로 촬영한 것인데, 왜 대가 없이 줘야 하느냐"고 따졌지만, "계약서에 따른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촬영 원본의 소유권이 외주 제작사나 제작자가 아닌 방송사에 있다는 '불공정' 계약 내용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결국 "애꿎은 제작사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아무 대가 없이 원본을 넘겨야 했다. "그날 너무 속상해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

외주PD가 사라진다면? 방송 '올 스톱'

만약 외주 제작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 PD는 "드라마, 뉴스, 일부 예능 빼고 올 스톱이 되고 다 재방송만 방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국 내 인력으로 억지로 감당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외주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질을 보장할 수 없고, 방송 시간을 다 채울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2004년께 모 공중파 방송사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생겼다고 했다.

"외주 제작사가 만들던 아침 방송을 일주일 분을 툭 떼어서 내부로 가져갔어요. 어떻게 만드나 보자는 심경으로 아침에 TV를 켰는데, 20분 이상을 못 보겠는 거예요. 전날 촬영해서 밤 새워 편집하기 싫으니, 당일 새벽에 지자체 축제를 즉석 중계하는 거예요. 원래 길게 말한 걸 잘라서 요점만 편집해야 하는데, 편집을 안 하니 주절주절 삼천포로 빠지는 인터뷰 내용이 다 그대로 나갔어요."

방송국이 직접 담당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외주 인력,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제는 방송이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이를 테면 어제는 <1박2일>을 촬영하던 감독이 내일은 <런닝맨>을 찍는 식이에요."

그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려면 밤샘 노동이 필수는 아니라고 했다. 2주일에 한 편을 만들도록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면 인건비 때문에 한 편당 제작비가 두 배로 오른다고 했다. 단가를 줄이기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밤을 새는 구조라는 것이다. 일주일에 편당 받는 돈은 40만 원. 외주 인력들이 월 160만 원을 받으며 아침 방송을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정규직들이 가져갔던 아침 방송 프로그램은 석 달을 못 버티고 다시 외주로 넘어왔다고 했다. 제작비는 제작비대로 깎이고, 그동안 일도 못한 뒤였다.

종편도 '갑질'…일부 외주 PD, 시스템 구축 후 '팽'당해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 PD는 "종편이 생기면 납품 대상이 많아질 줄 알았다. 지상파 더러워서 일 못해먹겠다는 사람이 종편 가면 돈은 적어도 인간 대우는 해주겠거니 싶어 간 경우도 많았다"며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놈이 그놈"이라고 잘라 말했다.

▲ 한국독립PD협회의 지원준 PD. ⓒ프레시안(최형락)
그는 "모 종편이 출범 3개월 뒤 제작비를 (원래 합의한 금액보다) 500만~600만 원씩 훅 깎았다"며 "프로덕션들이 그 돈 가지고 만들 수 없다고 우르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뉴스가 우르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독립제작사협회는 2012년 3월 <채널A>를 상대로 불공정 거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외주 PD들이 종편에 희망을 걸었던 것은 "우리끼리 그러진 않겠다"는 연대감에서였다고 했다. 종편이 출범할 당시 '외주 출신'이었다가 종편 정규직으로 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지 PD는 "알고 보니 외주 인력은 초반 시스템 구축을 위한 도구였을 뿐, 가면 갈수록 팽당해서 쫓겨나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텅 빈 사무실만 쭉쭉 있었어요. 그러니 외주 PD를 데려다가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지상파 PD는 이미 구축한 시스템 위에서 일 해왔기 때문에 초반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을 모르거든요. 외주 PD들이 텅 빈 사무실에 기계 깔아놓고, 카메라 수급해놓고, 서류 시스템을 만드는 사소한 것까지 다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외주 PD 출신들이 자꾸 쪼이는 거예요. 아는 PD는 혼자 프로그램만 6개를 맡았어요. 못 견디고 나가라는 거죠. 체력이 달려서 나가는 사람들이 나왔어요. 그 자리를 다른 케이블 방송이나 공중파 인원들이 채웠어요. 한마디로 팽당한 거죠."

"방송직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고 싶다"

지원준 PD는 공중파 방송과 종편을 '일진'으로, 외주 제작사를 '왕따'로 비유했다. 새로 일진(종편)이 전학 오면, 기존 일진(공중파)의 권력이 약해질 줄 알았는데, 왕따에게는 '빵 셔틀'할 거리만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불공정 거래에 대한 정부의 시정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진(종편) 넷이 전학 오면, 일진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니 왕따(외주PD)들은 '빵 셔틀'이 적어지리라고 기대했어요. 웬걸. 기존 일진(공중파)이 새로운 일진(종편)한테 요만큼 자리 주고 거기서 살라고 한 거예요. 저는 새 일진은 하다못해 '기존 일진이 빵 3개 뜯어먹으면, 우리는 1개만 뜯을 테니 우리한테 붙으라'고라도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빵은 여전히 3개씩 내고 있고, 방 선생(방통위)은 왕따 문제에 관심이 전혀 없어요."

지 PD는 "방송판은 치외법권 지대"라며 "방송 영상 계통에도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말단인 조연출부터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상 최소한의 조항들을 적용함으로써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라도 규제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외주PD '을'의 설움, 정부가 나서야"

지난해 10월 참여연대와 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외주 제작사 대표와 독립 PD 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도 '불공정 거래' 관행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방송 제작 과정에서 방송사로부터 계약서를 송부 받는 시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3%만이 "제작 이전"이라고 답했다. 45.8%는 "제작 시작 이후에 받는다"고 했다. 방송사가 결재하는 과정에서 '제작비가 삭감된다'는 응답은 62.5%에 달했으며, '후불 정산 된다'는 응답은 37.5%였다.

응답자들은 "방송사의 방송 시간 변경으로 대금 지급이 수개월 지연된다", "사전에 구두로 약속한 제작비를 계약 체결 시에는 일방적으로 삭감한다", "추가 제작비가 들어가는 변경을 요구하면서 제작비는 동일하게 지급한다"고 부연했다. 외주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충으로는 "너무 낮은 제작 단가와 제작 기간", "일방적인 내용 변경 요구 혹은 방송 편성 변경" 등을 꼽았다.

또 저작물의 저작권 91.7%는 방송사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81.3%는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저작권 포기 계약을 강요했다"고 답했다. 성우, 배우, 작가 등은 재방료를 받지만, 외주 제작사 대표와 독립 PD의 97.9%는 재방료를 전혀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방송사의 외주 제작사에 대한 불공정 행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방통위와 공정위 등 감독·규제 기구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70.5%(복수 응답)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외주 제작사들의 단결과 단체협상권 쟁취'(35.4%), '방송사 자율 노력'(14.6%) 등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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