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조간 신문 사회면이 일제히 '부림사건' 재심 판결 소식을 전했다. 그 중 <조선일보>의 기사가 유독 눈에 띈다.
<조선일보>는 이날 12면에서 "부산 지역 최대 공안 사건인 이른바 '부림 사건'의 재심 청구인 5명에게 33년 만에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부산의 학림(學林) 사건'이라는 뜻을 가진 부림 사건은 최근 영화 '변호인'이 흥행하면서 더 주목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사 마지막에 "1981년 당시 수사 검사에게 '지금은 우리가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상록 씨는 1997년 사망해 이번 재심에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는, 진위조차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깨알같이' 집어 넣은 것이다. 이상록 씨가 이 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주인공은 고영주 변호사. 부림사건을 수사한 공안검사 3명 중 한명이다.
고 변호사는 지난 1월 12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 피의자였던 이상록 씨가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 변호사의 주장은 확인할 길이 없다. 이번에 무죄 판결문을 받아든 피해자 고호석 씨는 <미디어오늘> 인터뷰를 통해 "고영주 검사의 이 같은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처음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이상록 씨라고 인물을 특정하지 않았다가 부림사건 관련자들의 근황이 알려지고 이상록 씨가 돌아가셨다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부터 이 씨를 특정하기 시작했다"고 반박했다.
고 씨는 "그런 진술을 했다면 검찰 입장에서는 유리한 내용이기 때문에 신문 조서나 법정에서 나와야 될 얘기인데 조서나 법정에서도 그런 얘기가 단 한 번도 오고간 적이 없다.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돌아가신 것을 악용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애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씨는 이어 "우리 모두 40일 정도 되는 기간에 불법감금, 고문, 폭행 속에 지냈고 검찰로 넘어갔을 때는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그 상태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사와 사상 논쟁을 했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부림 사건 무죄 판결 후 고영주 반응은? "기억이 안나"
<조선일보>는 이날 자에 고 변호사의 '반박 인터뷰'도 실었다. 무죄 판결이 나온 마당에 과거 수사 검사의 반박을 기사로 실어준 셈이다. 고 변호사는 이번엔 사법부에 화살을 돌렸다. "사법부의 좌(左)편향성을 어떻게 바로잡을 방법이 없고, 선배 판사들을 모두 소신도 없고 엉터리 판결을 한 것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는 말을 이상록 씨가 해왔다고 주장했던 고 변호사는 이 인터뷰에서 "(고호석 씨 등 5명의) 피고인들을 내가 직접 조사했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름들은 대충 기억이 난다"는 말을 했다.
1월 12일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제가 부림사건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것이 이 사건이 워낙 크기도 했지만, 수사 중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고 변호사가 지금 와서 '기억력'을 따지고 있는 셈이다.
고영주 변호사 대표적인 극우 인사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4일 문재인 의원 등 노무현 정부 청와대 인사들을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며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赤化)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던 인물이다.
<조선일보>가 '공산주의 사회', '심판'이라는 사자(死者)의 확인되지도 않은 말을 굳이 부림사건 관련 기사에 집어 넣은 의도는 무엇일까. 부림사건 무죄 판결을 보도하는 방식은 이해하기 어렵다. 발언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면 최소한 고호석 씨 반론 정도는 넣을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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