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부 기초생활 수급자의 수급액이 축소되거나 수급권이 박탈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저 생계비' 개념이 사라지면서 빈곤층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24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국민기초생활보장 지키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정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방안 문제점에 대한 기자 설명회를 열고 "박근혜 정부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기초생활 보장 제도를 후퇴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초생활 보장 급여 쪼개서 수급권자 늘린다?"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 최종 제시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안'의 핵심은 '최저 생계비' 개념을 해체하고, 기초생활급여를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으로 쪼개서 책정하는 것이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현행 기초생활 보장 제도의 핵심인 최저 생계비 개념은 식생활과 의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최저 생계비를 없애고, 병든 사람은 의료 급여, 굶어죽는 사람에게는 생계 급여를 주는 식으로 분해해서 개별적으로 접근하면 생존권을 전혀 보장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부 방안에 따르면, 일례로 월 150만 원의 소득 인정액이 있는 서울의 4인 가구는 한 달에 4만 원가량의 '주거 급여'를 받는 대신 '기초생활 수급 가구'로 분류되는 식이다.
정부는 이러한 식으로 기초생활 보장 제도가 '맞춤형 급여 체계'로 전면 개편되면, 수급권자가 현재 83만 가구 수준에서 최대 110만 가구로 늘어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연석회의는 적은 예산으로 수급권자를 늘리려면 일부 기존 수급권자들의 급여가 축소되거나 수급권 자격이 박탈된다고 지적했다. 기존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급여를 빼앗아서 다른 빈곤층에게 나눠주는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정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기초생활 보장 제도 예산은 최저 생계비 인상률 5.5%에도 미치지 못하는 3%(2600억 원) 늘리는 데 그쳐 오히려 축소됐다. 지난해 6월 국회 예산 정책처도 '기초생활 보장 사업 평가 보고서' 통해 개별 급여화를 추진하면 오히려 예산이 8.2% 축소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재량형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수 있어"
각 정부 부처의 장이 자의적으로 기초생활 급여와 수급권자 선정 기준을 정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법 개정안은 최저 생계비 개념을 없애는 대신 중위 소득을 고려한 '최저 보장 수준'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때의 기초생활 급여와 수급권자 선정 기준을 각 부처 장에게 위임했다.
문진영 연석회의 정책위원장(서강대 사회복지학 교수)은 "이번 개편안은 중위 소득의 일정 비율을 염두에 두고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기초생활 보장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라며 "사회 보장 제도에 기초한 제도가 아니라 정부의 여력과 의지에 따라 축소 가능한 '재량형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찬진 위원장은 "지금까지 기초생활 보장 예산은 국가가 책임지고 실시해야 하는 '경성 예산'에 포함됐으며, 국가가 채무를 조달해서라도 예산을 편성하도록 돼 있었기에 한 번도 역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개편안에 따라 '국가 채무'가 아니라 국가 재정 상황에 따라 예산이 자의로 책정되도록 바뀌면, 고립된 빈곤층을 상대로 하는 기초생활 보장 예산은 우선순위로 확보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빈곤 척도를 중위 소득 기준으로 변경하면 급여 수준이 최저 생계비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게 책정한 예산은 재정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삭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윤영 연석회의 집행위원(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개편안은 기초생활 보장 사각지대를 적극 해결하기는커녕 더 고착하고 악화할 것"이라며 "현재 시급한 것은 이름만 그럴듯한 '맞춤형 개별 급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저 생계비 인상,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 등 기초생활 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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