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농어촌 원격 의료 시범 사업' 지역인 강원도에서 공공 병원인 강릉의료원과 원주의료원을 각각 매각, 민영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의사-환자 간 '원격 의료' 도입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꼭 필요한 공공 병원은 매각을 추진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노조 강원지역본부는 5일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원도의회와 새누리당은 지방의료원(공공 병원) 매각 강요, 압박을 중단하고 지방의료원 발전을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복지부 국책기관, 원주의료원 민영화·강릉의료원 매각 방안 제시
강원지역본부는 "최문순 도지사는 지방의료원에 대한 투자 확대와 안정성 담보를 약속했지만, 여전히 새누리당과 강원도의회의 입장은 지방의료원 매각"이라며 "강원도에 매각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도록 압박해 5년간 매년 지방의료원 발전을 위해 지원하기로 했던 예산안마저 모두 삭감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16일 열린 '강원도 지방의료원 발전 방안 연구 용역 공청회'에서 도내 5개 공공 병원 가운데 강릉의료원과 원주의료원을 매각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보건산업진흥원이 중간 발표한 보고서에는 원주의료원에 대해 "진료 및 경영 성과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 강원도 공공 의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민영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이 보고서는 '의료원 민영화를 통한 재배치 방안'을 제시하며 "원주의료원을 민영화 절차를 통해 의료 취약 지역으로 재배치한다"면서 "민간 의료기관도 공공 의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므로 의료원 민영화로 인한 문제점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적었다.
강릉의료원에 대해 이 보고서는 "요양병원으로 기능을 전환하거나, 대학에 매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매각 방안에 대해 "강릉권역의 종합 병원과 병상 공급 수는 이미 높은 수준이나 고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3차 의료기관은 부재한다"며 "대학(학교법인)이 강릉의료원을 인수해 부속 병원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공공 병원의 경영 수지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민영화와 매각을 추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원도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강원도 지방의료원 경영 개선 현황' 자료를 보면, 강원 지역 5개 공공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전년 대비 10.2% 늘었고, 의업 수입은 13.5% 늘었다.
복지부, "원격 의료와 병행해 공공 의료 확충"한다지만…
특히 강원도는 복지부가 꼽은 '농어촌 취약 지역'으로, 지난해 8월부터 도 전역이 보건소 의사-방문 간호사 간 원격 의료 시범 사업 지역으로 지정됐다. 강원도에서 시행되는 의료인 간 원격 의료는 현재 정부가 도입하려는 의사-환자 간 원격 의료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정부는 이 사업을 큰 틀에서 '원격 의료 시범 사업'에 포함해 홍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벽오지 환자를 위해 의사-환자 간 원격 의료를 추진"한다고 누차 밝혀 왔다.
지난해 12월 10일 '원격 의료법 수정안(의료법 개정안)'을 발표할 당시, 복지부는 자문자답을 통해 "병원이 없는 도서·산간 지역 주민들에게 (원격 의료보다) 공공 의료 확충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질문한 뒤, 답변에 "공공 의료 확충 및 의료 취약지에 대한 정부 지원은 원격 의료와 병행해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복지부는 또 "원격 의료로 재벌에 퍼줄 돈으로 부족한 공공 의료기관을 확충하고, 기본적인 의료 접근권을 향상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적고, "원격 의료는 국민 편의 증진 및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해 추진하는 것이며 이와 병행하여 공공 의료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제2의 진주의료원 사태 벌어지나?
강원도 공공 병원 매각이 확정되면 '제2의 진주의료원 사태'가 벌어진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강행한 진주의료원 폐업도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강원지역본부는 "강원도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지방의료원에 대한 폐업과 매각의 압박이 진행됐다"며 "이 때문에 우수한 의료진들이 지방의료원을 떠났으며, 투자가 가로막힌 지방의료원은 다른 민간 의료기관보다 낙후된 상태로 10년을 버텨왔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충분하지 못한 지원이 공공 병원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강원지역본부는 "새누리당과 강원도의회가 강원도 지방의료원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진주의료원 강제 폐업 이후 지방의료원 육성 정책을 발표한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다가오는 6.4 지방 선거에 공공 병원 민영화를 추진하는 후보들이 절대 당선되지 못하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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