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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약속>을 보며 <삼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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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약속>을 보며 <삼성을 생각한다>

[편집국에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개봉관 축소 유감

먼지 묻은 기억 하나. 연말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데,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김용철 변호사. 한번 만나자는 게다. 얼마 뒤, 부천에 있는 빵집으로 내가 찾아갔다. 당시 그가 일하던 곳이다.

그때가 2009년 초였다.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으로 일하다 나와서 양심고백을 했던 그가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삼성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검사 시절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 말이다.

<삼성을 생각한다> 못 낸다는 출판사

당시 김 변호사가 내게 파일을 건넸었다. 양심고백 이후, 그가 구술했던 내용을 다른 변호사가 받아서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그 파일 내용을 기초로, 내가 원고를 새로 정리했다. 도입부와 마무리 부분을 새로 써넣고,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내용을 다듬었다. 김 변호사와 대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고, 일부는 빼기도 했다. <프레시안> 편집국의 허락을 받아서, 다른 업무는 좀 쉬는 대신, 매일 부천의 빵집으로 출퇴근했다. 그렇게 해서 원고가 완성됐다.

당시엔 출판이 어려우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웬걸. 원고를 출간하기로 했던 출판사가 갑자기 말을 바꿨다. 그래서 규모가 작은 신생 출판사를 찾아갔는데, 거기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책을 내겠다더니, 결국 말을 뒤집었다. 책을 내기가 부담스럽다는 게다. 아니, 무섭다고 했다.

삼성이 테러집단인가?

일상 업무까지 잠시 접어두고 달려들었던 일인데, 결과가 빛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영 안타까웠다. 그렇게 막막한 기분으로 몇 달을 보냈다. 다행히 한 후배의 소개로 알게 된 출판사에서 원고를 출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이듬해 초, 책이 나왔다.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이다. 책이 나오자, 반응이 뜨거웠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터졌다. 신문사들이 이 책의 광고를 거부한 것이다. 거기엔 이른바 진보 언론도 포함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출판사가 광고비를 내겠다는데도, 광고를 싣지 않겠다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몸으로는 이해가 된다. 살갗이 오톨도톨해지는 두려움. 그걸 고려하면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책 팔아서 낸 수익, 광고 수주로 얻은 이익을 압도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게다.

그런데 따져보자. 대체 두려워 할 게 뭐란 말인가. 삼성이 테러 집단인가? 그렇지 않다. 기업일 뿐이다. 물론, 힘이 센 기업이다. 그러나 정당한 출판 활동, 언론 활동을 찍어 누를 힘이 있는 건 아니다.

삼성 비판 서적 내도, 잘 살고 있다

결국 <삼성을 생각한다>는 15만 부 넘게 팔렸다. 책을 낸 출판사도 돈을 제법 벌었다고 했다. 나를 포함해서 이 책을 내는데 관여했던 이들 역시 잘 살고 있다. (☞ <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되기까지)

삼성 비리 고발한다고 해서, 야산에 파묻히는 것 아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에야,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듯 했다. 이전에는 이른바 진보언론도 삼성을 무서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이 무렵을 지나면서부터는 이른바 보수언론도 삼성에 대해 조금씩 비판 목소리를 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내는데 관여한 사람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건 이 대목이다. 우리 사회가 삼성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것.

다들 삼성을 두려워 한 건, 당연히 삼성이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이 발휘하는 막강한 힘은 정당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문제는 후자인데, 그건 다시 둘로 나뉜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관리해 온 촘촘한 인맥에서 비롯된 것과 '삼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

삼성의 힘 때문에 공포가 생기고, 공포가 다시 힘을 키운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삼성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건 이런 악순환을 깨고 삼성의 부당한 영향력을 축소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약속> 개봉관 축소, 예매율 1위 영화가 왜?

4년 전 기억을 다시 꺼낸 데는 계기가 있다. 오는 6일 개봉을 앞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엉뚱한 논란에 휘말렸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피해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극장체인이 개봉관을 축소했다는 게다. 영화 배급사 측에 따르면, 메가박스는 예매를 받던 상영관수를 15곳에서 4일 오후 3곳으로 줄였다. 영화 개봉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런 결정을 내린 셈인데, 영화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특히 이 영화가 같은 시기 개봉작 가운데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거의 정확히,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당시와 겹치는 상황이다. 당시에도 출판사와 신문사는 스스로 돈 벌 기회를 걷어찼다. 잘 팔릴 원고의 출간을 거부했고, 살림이 넉넉지 않은 신문사가 광고 수주를 마다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측에 부탁한다. 대단한 정의감을 발휘해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기를, 삼성을 너무 무서워하지는 말기를 바랄 뿐이다.

▲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지난 2007년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왼쪽)와 그의 아버지 황상기 씨.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이들의 사연을 소재로 삼았다.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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