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간 지방선거 일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전남지사 출마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 원내대표는 20일 <프레시안>과 한 단독 인터뷰에서 중앙 정계에서 호남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명분론’과 전남지사 출마를 통해 호남을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역할론’이 충돌하고 있다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안철수 의원 측에 대해 하고 있는 비판도 이어갔다. 박 전 원내대표는 전날 안 의원의 ‘정개특위 해산’ 주장에 대해 “그것을 보면서 모든 정치권 인사나 언론이 ‘아직도 안철수는 멀었구나’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저번에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양보를 받을 차례’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안 의원 자신이 나오겠다면 박원순 시장도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정당과 정당으로 얘기하는 것은 개인 차원을 떠난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집권 2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운 불통’이 어디 있나”라며 “소통은 적군과도 하는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적군인 북과도 남북 대화를 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청와대 경험을 들어 “박 대통령이 왜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밑에 맡겨도 다 유능하고 잘하는데 혼자 하려고 하니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고언을 했다.
다음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국장이 진행한 이날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전남지사 고민중…안철수, 고향인 영남 가서 이겨 오라”
프레시안 :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박 전 원내대표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 전남지사 출마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주 광주 강연회에서 ‘중진 밀알론’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현재 고민이 뭔가?
박지원 :실질적으로 중앙(정계)에 있는 분들도, 또 호남의 많은 지식인이나 여론 주도층도 ‘호남에서 유일하게 하나 남아있는 너마저 지사로 내려와서 안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당대표가 못 되든, 대선후보가 못 되든 지금의 목소리라도 내 주는 것이 호남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길이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다.
또 그 분들의 주장이 좀 이상론적이라고 한다면 ‘현실적으로 민주당은 호남이 텃밭이기 때문에 호남을 지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이 전국을 다 놓치게 되는 불행한 일도 나온다. 지금 선거를 앞두고 1등 후보가 나와야지, ’안철수 현상‘이 앞으로 3~4개월 내 어떻게 진화되려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위험부담이 있다. 호남을 지키는 구심점 역할, 너의 경험과 경륜과 인맥으로 고향을 발전시키고 후배들을 키워주는 그런 역할도 해주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명분론’과 ‘역할론’이 충돌하고 있고, 저도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프레시안 : 아직 고민 중인 것 같은데, 결단 시기는?
박지원 :아직은 좀더 추이를 봐야 한다. 서울시장 선거를 봐도 여권에서의 후보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지 않은가. 사실상 호남은 우리 민주당이 여당인데, 우리가 앞서 후보를 내서 ‘안철수 신당’이 대적 후보를 내게 하는 것보다 좀더 기회를 보는 것이 좋다. 지난번에 제가 ‘중진 차출론’을 내면서 ‘안철수 신당’ 쪽 후보들이 가라앉아 버렸지 않았나. ‘안철수 신당’의 상승세를 꺾는 그런 결과는 저만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박 전 원내대표 측근에서는 ‘안 나가실 것’이라고도 하던데?
박지원 : (웃음) 안 나간단 말 안 했는데?
프레시안 : 전남지사 ‘차출론’이 나온 배경을 보면 ‘안철수 신당’에 호남에서의 선거 결과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고 특히 전북 지역은 유권자들이 신당에 많은 기대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남 민심을 어떻게 보시나?
박지원 :지금 우리 국민들이 정보를 ‘생산’하지는 못해도, 유입된 정보의 확대 재생산은 굉장히 잘 한다. 제가 방송 인터뷰에 나가서 ‘안철수의 새 정치는 구(舊)정치’라고 했다. 국민의 바람은 안 의원이 (지난해 재보선) 부산 영도에서 이겨오기 바랐지만 당선되기 쉬운 서울 노원에 가서 이겼다.
이번에도 국민의 바람이 박근혜·새누리당 정부의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기 고향인 부산·영남에 가서 지방선거를 승리해 와야 하는데, 당선되기 쉬운, 야권이 강한 호남과 수도권에서 하려고 한다. 이것은 새로운 정치가 아니라 당선되기 쉬운 곳을 찾아가는 구 정치 아니냐. 지역구도를 허물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켜려고 하는 것 아니냐.
안 의원의 능력은, 그가 만약 지금도 정치권에 나오지 않고 서울대 교수로 있었다면 여야 대통령 후보로 60~70%는 나왔을 것이지만 자꾸 검증하니 27~28%로 내려갔다. 그런데도 여야 합쳐 제일 높으니 인물은 인물이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들한테 이거냐 저거냐 분명히 얘기해주는 메시지가 필요한데, 안 의원은 한 두 템포만 느린게 아니라 서너 템포, 다섯 템포가 늦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안철수 별 것 아니다. 숲이다. 멀리서 보니 아름답지만 들어가서 보니 별 게 다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나. 새 정치가 구정치 되고, 인물론이 퇴물론 되고.
또 ‘안철수 신당’에 모이는 사람들도 있다. 정당은 ‘무리 당’(黨)자를 쓰는데, 민주당에서 실패한 세력, 낙천자들과 ‘주변 기웃세력’들이 모이니 (유권자들이) ‘너희들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제가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그게 먹힌 것 같다. 실제로도 호남에서 안 의원 쪽으로 모이려던 괜찮은 분들이 출마를 주저하게 됐고, 이낙연 의원, 주승용 의원도 안 의원 쪽 김효석 전 의원보다 높게 나온다. 물론 제가 제일 높지만. (웃음)
그러나 모른다. 왜냐, 수도권과 호남에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 일했던 장관 등 훌륭한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 중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가는 분이 나오면 또 바람이 불 수 있다.
프레시안 : 방금 ‘안철수의 새 정치는 서울과 호남을 공략하는 구정치’라고 했는데, 안 의원 입장에서는 민주당과 노선에서 공통되는 부분이 있고, 민주당의 쇄신 필요성도 있으니 외부에서 충격을 줘서 민주당을 바꾸려는 부분도 필요하다는 반론이 가능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박지원 :안 의원이 우리 민주당에 회초리를 치려는, 반성하게 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외과적인 효과는 있다. 안 의원 쪽에서도 저한테 ‘박 전 원내대표는 통합의 큰 역할을 해야지 왜 안철수를 자꾸 비판하느냐’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은 ‘러브콜’이다. 내가 누차 언론에서 한 말이 있다. ‘안철수 민주당 들어오라. 들어오면 나부터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 의원은 ‘친노’ 때문에 못 들어오겠다는 것 아니냐. 그렇다고 해도 친노를 정치공학적으로 이겨야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래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돼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이겨야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 친노가 무섭다고 못 들어오면 안 된다. 63빌딩에 사는 새누리당 앞에 민주당은 5층 연립주택에 산다. 그 앞에 또 구멍가게 차려가지고 5층 빌딩, 63빌딩을 이기겠나?
선거는 이기려고 나오는 것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민주당을 먹어야 더 큰 것을 먹는 것인데, 그런 용기를 안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국가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철저한 자기 철학과, 권력을 어떻게 잡겠다는 철저한 권력욕이 합쳐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 됐다. 지금 안 의원처럼 해서 대통령 되겠나?
제가 처음부터 ‘민주당 오라, 안 오면 제2의 문국현 된다’고 했다. 어제(19일)도 기초공천제 폐지 입장 번복을 규탄하면서 ‘정개특위 해산하라’고 했는데 말이 안 맞다. 정개특위가 기초공천제만 하는 데가 아니라 교육감 선거 등 여러 가지를 다 논의하는 곳이다. 고무신만 거꾸로 신으면 진리가 있는 게 정치인데, 한계를 노정시키는 것을 자꾸 본다. 어제 그 회견을 보면서 모든 정치권 인사나 언론이 ‘아직도 안철수는 멀었구나’ 할 것이다.
“김황식, 서울시장 나올 테면 나오라”
프레시안 : 안 의원 얘기에서 자연스럽게 서울시장 선거 얘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의원이 ‘이번에는 양보받을 차례’라고 한 것이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박지원 : 그럼 안 의원은 자기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나? 자신이 2011년에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했다고 하는데, 그 때는 안철수 개인이었다. 만약 지금도 안 의원이 ‘내가 시장 후보로 나갈 테니 박 시장이 양보하라’고 했다면 박 시장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과 정당으로 얘기하는 것은 개인 차원을 떠난 것이다. 그런 것 역시 자신의 한계를 노정시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서울시장 선거 여당 후보로는 김황식 전 총리가 출마 의지를 시사하고 있다. 어떻게 보는지?
박지원 : 제가 오늘 아침 트위터에 김 전 총리와 관련해서 ‘지지도 1등이라면 출마하리라 본다. 선거는 2등, 3등이 출마하면 패배하니까.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단연 1등’이라고 썼다. 2등, 3등인데 선거에 나오는 것은 지려고 나오는 것이다. 관료 출신들은 그런 배짱이 없다.
프레시안 :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분열될 경우 승리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박지원 :얼마 전에 문재인 의원을 만나서도 그 얘기를 했는데, 어떻게 우리 민주당은 문재인의 (대선 득표율) 48%는 기억하고 나경원의 (서울시장 득표율) 48%는 잊는지 모르겠다. 박원순 대 나경원 선거에서 사실 박원순 시장 선거운동을 가장 잘 해준 분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고, 나경원 후보였다. 그런데도 48%를 받더라. 왜 편리하고 이익이 되는 것만 생각하느냐, 그게 민주당의 반성 부족을 의미하지 않느냐 하는 얘기다.
우리나라 정치 구조를 보면 태생적으로 호남을 빼고는 보수가 기본적으로 40%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60%를 가지고 시대정신에 맞는 캠페인을 새누리당이 하느냐, 야권이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데, 야권은 60%를 가지고 분열한다. 이번 화성 보궐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가, 아무리 고향이라도, 당시 이석기 사건 와중에도 8%가 나왔다. 통합진보당은 자체적으로 당선될 힘은 없어도 후보를 낙선시킬 힘은 갖고 있다. 그러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합, 연대를 얘기한 것이다. 이념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통합'은 아니고, 연합·연대를 해서 의원 수를 주고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화해서 이기라는 것이 '연합·연대 단일후보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입에서는 한 번도 ‘통합하라’든가, 진보, 좌파 소리가 안 나왔다. 최대로 나온 게 ‘중도개혁’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구조다. 그런데 분열하면? 총선에서 수도권을 보면 대개 인구 30만에 국회의원 1석인데, 그중 유권자가 한 20만 되고 투표율이 60%면 12만이 투표장에 나온다. 거기서 3~5% 정도, 3000-6000표를 통합진보당이 자생적으로 갖고 있다. 그걸 다 가져가면 야권이 다 떨어진다. 15대 총선 때 그렇게 3000표 미만으로 수도권에서 50석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김 전 대통령이 ‘통합’이 아닌 ‘연합·연대 단일후보론’을 내세웠다. 분열하면 불 보듯 진다. 선거는 지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진보세력도 자기 가치관을 위해서라도 좀더 가까운 민주당을 도와 줘야지.
그런데 현재는 통합진보당과는 어떤 경우에도 연합·연대를 안 하기로 했다. 야권은 진보세력도 통합진보당, 정의당으로 분열돼 있고, 중도개혁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으로 분열돼 있다. 또 민주당이 126석으로 너무 크니까 친노-반노 프레임으로 분열시키려고 한다. 민주당이 그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 (내부적으로도) ‘저 놈은 친노다, 저 놈은 반노다’ 하는데, 김대중과 노무현이 합쳐져야 민주당이 된다. 제가 분명한 ‘반노’ 아니냐. (웃음) 그래서 제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중앙당에 있어야 하고, 다음 대선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전국 1000만 호남 향우들이, 호남에 살건 어디에 살건 저를 보면 상징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전남지사 안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도 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몇 번의 선거연대 경험에서 ‘민주당이 공동의 결실을 독식한다’는 피해 의식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박지원 :그건 그렇지 않다. 수도권에서, 호남에서 많이 줬잖나. 안 줬으면 하나나 됐을까? 우리가 분단국가이니, 진보는 수십 년 후 집권을 (목표로) 두고 가치관을 세워나가야지 당장은 안 된다. 내가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을 할 때, 강기갑 비대위원장에게도 광역·기초단체장을 요구하지 말고 광역·기초의원을 요구하라고 했다. 그러면 민주당이 호남에서 과감히 20%까지도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단체장을 양보하면 진다.
프레시안 : 지방선거가 야권에도 재편 또는 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을 텐데, 민주당은 김한길 대표가 ‘통렬하고 담대한 변화’를 강조하고 있고 최근 당직개편도 하는 등 쇄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당 지도부에 조언을 한다면?
박지원 :지금은 우리 민주당이 총체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당내 문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김한길-전병헌 ‘투 톱’이 잘하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잘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언론과 국민이 평가할 문제다.
“지방선거 끝나면 朴 레임덕 본격화할 것…‘자랑스러운 불통’? 그런 게 어딨나?”
프레시안 : 6월 지방선거의 의미와 결과를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오가고 있다. 야권 입장에서 정치질서와 리더십이 재편되는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여당까지 포함해 본다면 집권 2년차에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큰 틀에서 어떤 의미가 될 것이라고 보는가?
박지원 :큰 틀에서 보면 정권심판론은 조금 빠를 것이다. 박 대통령이 긍정적인 국민 평가를 받는 게 대북정책과 외교이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도와주고 있다. (웃음) 대일, 대미, 대중외교에 이어 계속 해외로 다니면서 주도권을 갖고 있다.
저는 6월 선거 후 오히려 본격적으로 레임덕이 온다고 본다. 왜냐 하면 새누리당에서도 차기 대선후보군들이 나오고, 민주당도 본격 나설 것이다. 그러면 정치권은 현직보다는 차기를 보고, 국민 시선도 그리 옮겨간다. 지금 박근혜 정부를 보면, 역대 이런 정권이 없다.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여당에서 대통령 하겠다고 두 사람이 나서는 일은 어느 정권에서도 없었다. (김무성 의원과 김문수 경기지사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 편집자)
프레시안 : 아직 ‘정권심판론’은 이르다고 본다면 전반적 판세가 여당에 유리할까?
박지원 :저는 정권심판론은 이르다고 보고, 그런 프레임으로 가면 민주당에도 또 손해다. 그러나 여당이 유리하지는 않다고 본다. (민주당은) ‘대통령 견제’로 가서 박 대통령의 불통 정치를 심판하자는 쪽으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조만간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이들 중 상당수가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기대 때문에 보수 정권의 연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자랑스러운 불통'이 어쩌면 현 정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을 가장 근거리에서 모셔본 입장에서, 현 정권의 난맥상 중 최우선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는 무엇인지, 또 참모진 입장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조언하신다면?
박지원 :‘자랑스러운 불통’이 어디 있나? 원래 소통은 적군하고도 하는 것이다. 북은 어떤 면에서 적군 아니냐. 그런데도 남북대화도 한다. 그런데 야권이 적군인가? 야당, 반대세력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라 짬짜미다. 그게 자랑스러울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외교를 나갔는데 대변인 없이 나가는 역사를 본 적이 없다. 차라리 대변인 직제를 없애서 홍보수석이랑 겸직을 시키든지 할 것이지. 이런 것을 보면 박 대통령은 ‘내가 할 테니 국민 당신들은 보라’ 이런 것 아니냐.
기초공천 폐지 문제도, 국정원 개혁도 국회가 하라고 맡겨 두고 ‘여야가 합의하면 받겠다’고 하면 된다. 여당이 다수당이기도 하니 그러면 조정이 다 된다. 기초공천 폐지를 보면, 정개특위는 관습적으로 만장일치다. (정개특위 위원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분명히 반대할 것이다. 그러면 유지가 되는 것인데, 왜 나서서 욕을 먹나. 정치를 모르는 것이다. 세상에 지도자가 나 혼자라는 그런 마음으로 하면 아무 것도 못 한다. 밑에 맡겨도 다 유능하고 잘 한다. 집단의사결정(group decision making)으로 조직이 결정을 하게 해야지,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하니 비판을 받지 않느냐. 그렇게 하면 나라도, 박 대통령도, 국회도,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불행해진다.
프레시안 : 최근에 박 대통령이 개헌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 놓이는 것 같다.
박지원 :그렇다. 여당이 다수당 아니냐. 원래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게 국회다.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 때도 새누리당이 ‘문재인도 증인으로 나오라’고 나오면서 흐지부지됐고 국정원개혁특위도 정개특위도 여야 간사가 합의해야 위원회가 열릴 수 있다. 남북관계특위 위원장을 맡아 뭘 해보려 해도 여야 간사가 합의를 안 해주면 회의를 못 연다.
이런 국회라는 장을 왜 활용하지 못하고 청와대에서 자신이 결정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나. 요즘은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도 부모가 ‘나 믿고 따르라’ 하면 안 따른다. 그런데 국회의원, 국민이 그런 걸 따르겠느냐?
프레시안 : 좀전에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의 평가 이야기를 했는데, 일반 유권자들은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기조를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전문가층에서는 다른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박지원 :(북한 상황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은 경제 제재, 중국은 군사적 제재가 있지 않을까 싶다. 굉장히 위험하다. 중국이 압록강, 두만강변에 군사시설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상치 않다. 과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핵 없는 세계’를 만들겠다고 했고, 이란 문제가 풀리면서 하나 남은 게 북한이다.
박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이나 남재준 국정원장의 ‘2015년 통일’ 이런 발언들은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을 보고 한 수를 더 짚은 것으로 보인다. 언론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십 년 (화해협력정책) 해 온 것을 한 방에 털어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2월 국회가 또 북한인권법으로 가면 여당은 ‘규제’로 민주당은 ‘지원’으로 가서 종북 논란이 나올까 걱정된다. 대선개입 특검, 철도파업 같은 대 관심사들을 놔두고 왜…. 햇볕정책이 뭐가 잘못이냐. 그러면 전쟁하자는 것이냐. 핵개발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햇볕정책을 하기 전에도, 할 때도, 안 할 때도 북은 핵개발을 했고 지금처럼 (한국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하고 있어도 소형·경량화하는 핵기술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햇볕정책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키면서 교류하자는 것인데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똑같다.
프레시안 : 지난 1년여가 민주당 뿐 아니라 박 전 원내대표에게도 파란만장한 시기였다. 2012년 대선 때는 ‘이-박 연대’라고 언론의 지목을 받기도 했고, 그해 가을에는 양경숙 공천헌금 사건, 여름에는 솔로몬 저축은행 사건이 있었다. 결국 저축은행 사건은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소회를 말한다면?
박지원 :이명박 정부 5년간 6번의 고초를 겪었다. 한화, 태광, 씨앤, 고려조선, 양경숙, 저축은행 사건까지. 그런데 결국 하나도 안 걸렸다. 최근 법조계에서 들려오는 바에 의하면 무죄판결 이후에도 다른 건을 하나 내사하다가 내사종결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11년간 제가 계속 검찰 주목 대상으로 있지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야당이니까 정권을 향해 직격탄 날리는 거지, 없는 사실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청문회도 내가 7명을 낙마시켰는데, 낙마할 이유가 있으니 낙마한 건데 왜 나를 죽이려고 하나. 제가 미국 현지에 갔을 때도 저에 대해 뒤지더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런 건 안 했으면 좋겠다. 아니할 말로, 국민의 정부 때 제가 뭘 했든 살인 말고는 다 공소시효 지났다.
프레시안 : 최근에 집안에 경사도 있었는데, 올해 지방선거도 있는 중요한 시기다. 정치인 박지원의 포부를 밝히자면?
박지원 :딸 시집보낸 지 오늘로 33일째다. (웃음) 지방선거 역할에 대해서는, 제가 후보가 되든 안 되든 열심히 하겠다. 앞으로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저를 필요로 하는 일은 몸을 사리지 않고, 감옥가는 일이 있어도 할 말은 하겠다. 나의 꿈은 여전히 ‘초대(初代) 평양대사’다. (웃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