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15일 공개 채용 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안을 발표했다. △'찾아가는 열린 채용'제도 도입 △전국 200개 4년제 대학 총·학장에게 인재 추천권 부여 △19년 만에 서류 전형 제도 부활 △삼성 직무 적무 적성 검사(SSAT)에 대한 의존도 낮춤 등의 내용이다.
삼성 미래전략실 이인용 사장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기존의 열린 채용과 기회 균등의 정신을 그대로 살렸다. 입사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고 사회적 부담이 가중되는 것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개편안"이라고 설명했다. '입사 사교육 시장'이란 삼성 고시로 불리는 SSAT를 둘러싼 과열 경쟁을 뜻한다. 삼성 입사의 첫 단계인 SSAT에는 매년 약 20만 명이 응시해왔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대학 총·학장에게 부여한다는 '인재 추천권'이다. 삼성은 삼성 입사자 배출 실적과 대학 정원 등을 고려해 학교별로 추천 인원을 배정할 것이며 올해 5000명 정도를 추천받겠다고 밝혔다. 찾아가는 열린 채용과 인재 추천제로 발굴된 구직자에 대해서는 서류 전형이 면제된다. 즉, 서류 전형 단계를 뛰어넘고 바로 SSAT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대학과 기업이 협업해 인재를 선별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구직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대학이 기업의 서류 전형 업무를 대신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또 인재 추천권을 둘러싸고 경쟁이 과열돼, 대학생들이 대학을 취업 심사 기관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올해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한 권 모(여·25) 씨는 "삼성이 채용 제도를 바꾸면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에 삼성이 SSAT를 바꾼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때 취업 준비생도 아니었는데 주변에서 하도 이야기해서 알았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삼성이 하면 다른 기업도 다 따라 한다'는 통설도 언급했다. 이 때문에 구직자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미 인재 추천제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아무래도 교수한테 잘 보이려고 더 노력하게 되지 않겠나. 그리고 연줄 있는 사람이 더 추천받을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모(남·25) 씨는 "대학 총장이 몇천 명 되는 학생들을 어떻게 다 파악하겠나. 결국 자기소개서나 스펙을 가지고 뽑을 텐데 그러면 기업의 서류 전형과 다른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인재 추천제도, 지원서에 스펙 한 줄 더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학교의 눈치를 보게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박 씨는 "대학 총장들은 대개 학생이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학생운동을 하면 싫어한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다들 취업에 목숨 걸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혹시나' 싶어서 등록금 인하 운동에라도 참여할 수 있겠느냐. 나는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모(여·27) 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추천권을 얻으려고 학교의 눈치를 보면서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변질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리나 학회 활동도 제약받지 않겠나. 예를 들어 기업을 비판하는 활동을 하는 동아리나 학회에 학교가 제동을 걸 때, 나서서 항의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서류 전형이나 인재 추천제나 결국 똑같은 건데 인재 추천제를 무슨 혁신적인 제도처럼 말하는 건 조삼모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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