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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가 되기를 거부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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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가 되기를 거부한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포토르포] 충북 옥천 유성기업 고공농성 현장에서

유성기업 사태는 2011년 터졌습니다. 밤새 일하는 주·야 맞교대를 낮에 일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로 바꾸자는 노사 합의를 사측이 지키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노조는 이에 항의하며 부분 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직장 폐쇄로 맞섰습니다. 농성에 돌입한 노조원들을 사측의 용역 깡패가 무참히 테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이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90일간의 파업 끝에 23명이 해고되고 106명이 징계를 받은 이 사태는 2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13일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충북 옥천의 22미터 광고탑에 올라 경영진의 불법 행위 처벌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현장을 찾았던 정택용 사진가가 고공농성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2013년 8월 26일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내려온 뒤 온 나라의 고공농성이 잠시 사라진 적이 있다.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데 고공농성만한 것은 별로 없다. 한진중공업, 전주 버스 사업장,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아산공장, 현대자동차, 재능교육 등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던 고공농성은 걱정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졸아붙게 만들었던가. 땅 위의 농성장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고공농성 없는 시기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평화도 잠시, 10월에 들어서자 고공농성장은 다시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하긴 근본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현장이 버틸 리가 없다.

10월 3일 김인철 진흥고속 지회장이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춘천시외버스터미널 앞 30여 미터 높이의 조명탑에 올랐다. 복수노조 인정과 연장·휴일 근로수당 등 미지급 임금 지급을 사측에 촉구하며 터미널 앞에서 77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10월 10일엔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배진호 조직부장이 단체협약 불이행, 사측의 한국노총 설립 지배 개입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서재 1차 동화아이위시 현장에서 "어용노조 해체",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며 50미터 크레인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14일엔 권오준 수석부지부장, 박경태 금호지구장도 올라갔다.

10월 13일 유성기업 충북 영동공장 이정훈 지회장과 충남 아산공장 홍종인 지회장이 2011년 유성기업 사태 때 용역깡패를 동원해 창조컨설팅과 손잡고 노조파괴를 일삼고 복수노조 설립에 개입하는 등 각종 불법을 저지른 경영진의 조속한 처벌을 요구하며 충북 옥천의 지상 22m 높이 광고탑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홍종인 지회장은 2012년 10월 21일부터 2013년 3월 20일까지 151일 동안 아산공장 앞 굴다리에 매달려 고공농성 하다가 건강악화로 내려온 지 약 반 년 만에 다시 하늘로 올라야 했다.

▲ 충북 옥천의 한 광고탑. 유성기업 노동자 2명이 이곳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택용

이 사이에도 10월 6일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KD센터 업무 외주화에 따른 고용안정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KD센터에서 일했던 이상언 전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장이 공장 안 건물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다가 10월 말 내려왔고, 10월 28일엔 장기파업 중인 김호열 사무금융노조 골든브릿지지부장이 건물주의 기습적인 농성천막 철거에 항의하며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본사 2층 난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약 12시간 만에 경찰에 진압되는 등 10월에만 다섯 곳에서 고공농성이 벌어졌고 현재 세 곳에서 고공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한 곳도 쉬운 싸움이 없고 안타깝지 않은 곳이 없지만 2011년부터 봐 온 유성기업은 반 년의 시간을 두고 두 차례를, 그것도 같은 사람이 하늘로 올라야 해서 더 마음이 불편하고 눈길이 가는 곳이다.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 이윤엽 파견미술 판화가의 올빼미 그림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문구는 2011년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처지를 가장 잘 말해주는 문구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주·야 맞교대로 인한 야간노동은 사람의 몸에 맞는 노동형태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몸과 가정은 야간노동 때문에 망가져 왔다. 회사와 노동조합은 2011년부터 '주간연속 2교대'를 실시하기로 2009년에 이미 합의했다. 그러나 당시 현대차, 기아차 등에서 진행 중이던 교섭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부품 납품업체가 먼저 실시할 수는 없었다. 합의이행 지연, 직장폐쇄, 용역 폭력, 공장 밖 생활이 이어졌고, 비록 공장으로 돌아갔지만 노동자들이 두 차례의 고공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노사갈등이 2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17명의 노동자를 구속한 사법당국이 국회 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회사 쪽의 부당노동행위가 드러났는데도 경영진에 대해서는 처벌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공농성은 하늘로 올라간 사람만 고생하는 농성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땅에서 지키는 사람들도 함께 고생해야 하는 농성이다. 땅에 있는 사람은 한두 끼 굶을 수도 있을지언정 하늘의 사람을 굶게 할 수는 없다. 세 끼를 챙기는 일도 만만찮다. 날이 추우면 따뜻하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비가 내리면 어떻게든 덜 맞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늘 사람들의 대소변을 받아 치워야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고공농성 장소를 지키며 잠을 자야 하는 누군가도 있어야 한다.

고공농성의 하루를 밖으로 알려내야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경찰이나 용역이 오면 막아내야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짧게 또는 길게 농성계획을 세워야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연대를 모아내야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늘로 올라간 사람들이 외롭지 않게, 고립되지 않게 만들어야 할 수많은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농성 19일째,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이정훈, 홍종인 두 노동자가 하늘로 올라간 옥천IC 근처 광고탑을 찾아갈 수 있었다. 홍종인 지회장은 아산공장 앞 굴다리에 매달려 농성할 때 몇 번 찾아갔던 사진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밥은 먹었는지 챙겨주는 상황은 정답지만 동시에 짠한 슬픔도 느끼게 한다. 허공에 갇혀 한 가닥 '생명줄'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 챙겨주는 '밥'이라니…….

왜 파업을 하고 왜 올라가야 했는지 알려 달라는 말 대신 '있는 그대로만 알려 달라'던 유성기업 노동자들. 널리 알려 보려고, 그래서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내 보려고 하늘로 올랐건만 자신들의 일로 '소설'을 쓰는 언론들이 그만큼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해도 노동자의 파업이라면 무조건 백안시하는 이 사회 분위기가 언제야 바뀔까. 자기한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는 '성장'과 '경제'를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의 '불법' 파업 소식에는 혀를 끌끌 차는 이 분위기. 자기도 일하는 노동자면서 생각은 마치 기업 운영하는 사장님 같은 이 분위기.

그러거나 말거나 광고탑과 그 아래 천막의 분위기는 활기차다. 아침에 교대하는 노동자들이 서로 반갑고 월, 수, 금 저녁에 촛불문화제에 함께하러 오는 사람들 얼굴이 반갑다. 아산과 영동에 떨어져 있던 노동자들이 동고동락하며 작은 웃음들이 끊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싸움이 정당하다고, 이길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기운이다.

함께했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담긴 사진이지만 같은 방향으로 발자국 하나 더하는 마음으로 그간 유성기업의 모습들을 엮어 본다.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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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공장 지회장과 홍종인 아산공장 지회장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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