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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모욕, '명예 훼손 죄' 처벌에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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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모욕, '명예 훼손 죄' 처벌에 반대합니다"

[인터뷰] 한국 '표현의 자유' 고발한 유종성 교수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유종성 교수는 대한민국 법치의 수준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19대 총선(2012년 4월 11일)을 앞두고 아내(유승희 민주당 의원)를 지지하는 메일 하나가 문제였다. 검찰이 이 메일을 놓고 '허위 사실 유포'라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유종성 교수는 문제의 이메일에서 <신동아> 2010년 4월호 기사 등을 염두에 두고 유승희 의원의 상대 후보 정태근 전 한나라당 의원을 놓고서 이렇게 말했다.

"정태근 씨가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피해자라고 자처하지만, 정 씨 자신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부인의 컨벤션 회사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싹쓸이 수주하여 한해에 187억 원을 버는 등 권력 남용을 통한 축재의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신동아> 2010년 4월호 기사 참조)."

검찰의 기소에 응답해 1심 법원(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 부장판사 이범균)은 지난 8월 8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선거법 위반을 놓고서 징역형을 선고한 것. 법원은 "정 씨 부인의 컨벤션 회사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상당히 수주한 것"을 인정하고서도 '권력 남용을 통해 관급 공사 수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며 부정 축재 의혹 주장은 허위 사실로 보았다. "의혹"이라고 표현한 대목은 부수적인 것이라는 해석도 뒤따랐다.

유종성 교수는 즉각 항소했고, 2심 법원(서울고법 형사6부 : 부장판사 정형식)은 6일 1심 판결을 뒤집고 검찰이 기소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유 교수는 송사 과정에서 같은 대학 스티븐 해거드 교수와 논문 '한국의 표현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 in South Korea)'도 발표했다.

두 달 새에 지옥과 천국을 오간 유 교수를 <프레시안>이 만났다.


검찰은 '허위 사실' 공표-법원은 웃음거리 판결

프레시안 : 선거법 위반 혐의로 뜬금없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유종성 : 좋은 정치를 실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아내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고자 보낸 메일 하나로 이런 험한 일을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죠. 다만 한국 사회의 속살을 정면으로 직시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 정치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번 일이 큰 자극이 되었죠. 덕분에 해거드 교수와 한국의 표현의 자유 후퇴를 점검한 논문도 썼고요.

프레시안 : 지난 8월, 1심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유종성 : 애초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어요. 심지어 검찰은 징역 6개월의 1심 판결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즉각 항소했습니다. 저만 항소한 게 아니에요. (웃음)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검찰의 항소 이유서를 보면서 혀를 찼습니다. 법 집행 기관의 공소장과 항소 이유서에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으면 안 되잖아요?

프레시안 : 검찰의 공소장과 항소 이유서에 허위 사실이 포함되었다고요?

유종성 : 네, 문제의 이메일에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라는 표현이 있어요. 검찰은 이를 놓고 "합당 과정에서 (정태근 씨의) 당적이 변경된 것일 뿐 자신의 적극적인 의사로 당적을 변경한 것은 아니므로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정 씨 측의 주장일 뿐 검찰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제시한 게 없고요.

심지어 정태근 씨가 2000년 1월에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적극적인 의지로 입당했다는 증거를 재판 과정에서 제출했는데도 검찰은 이를 무시하고 허위 주장을 계속해요.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정 씨가 한나라당 입당의 변을 말한 것, 또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입당 기념사진을 찍은 보도가 있습니다. 복수의 언론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명백한 사실은 부인하고 정 씨가 한나라당에 입당한 일이 없다고 우기니 어처구니가 없죠.

프레시안 : 2심에서 모조리 뒤집어지긴 했습니다만, 1심 판결도 문제작이더군요. (웃음)

유종성 : <신동아> 2010년 4월호를 보면, 정태근 씨 부인의 컨벤션 회사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압도적으로 수주한 사실이 나와요. 저는 그 보도에 근거해서 정 씨가 "권력 남용을 통한 축재 의혹이 있다"고 이메일에 적었죠. 1심 재판부도 정 씨 부인의 회사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상당히 수주한 사실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권력 남용을 통해 축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니 허위 사실 유포라는 논리였죠?

유종성 : 맞습니다. <신동아> 2010년 4월호는 정태근 씨 부인의 회사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압도적으로 수주한 사실을 보도했을 뿐, 정 씨가 권력 남용을 통해 축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니 제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되는 논리인가요? 하나씩 따져보죠.

누가 봐도 <신동아>의 그 기사는 정태근 씨가 권력 남용을 통해 축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거였죠. 이건 정 씨가 곧바로 <신동아>에 정정 보도 요청을 한 걸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 씨 스스로 이 기사를 자신을 향한 의혹 제기로 받아들인 거죠. 그래서 다음달(<신동아> 2010년 5월호)에 정 씨의 반론이 실렸습니다.

<신동아>를 읽는 독자는 물론이고 정태근 씨 본인도 이 기사를 권력 남용을 통한 축재 의혹으로 받아들이는데, 1심 재판부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한 꼴이었죠. 거기다 저는 <신동아> 보도가 사실인지 100%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의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그런 표현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라면서 무시했어요.

프레시안 : 결국 1심 판결이 모두 뒤집어졌습니다.

유종성 : 대한민국 법원이 최소한의 합리성은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증명해준 셈이죠. 1심 판결의 모든 내용을 조목조목 다 뒤집었으니까요.

▲ 유종성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교수(오른쪽)와 유승희 민주당 국회의원. ⓒ유종성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명예 훼손 죄 없애라"

프레시안 : 일단 무죄를 선고받긴 했습니다만, 이번 송사에서 느낀 점이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송사 과정에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를 놓고서 연구도 진행했죠.

유종성 : 일단 명예 훼손을 형사 처벌하는 한국의 법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습니다. 강양구 기자도 명예 훼손으로 고생해본 적 있습니까?

프레시안 : 있습니다. 지금도 대형 병원 한 곳이 명예 훼손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해서 고생 중이죠. 취재를 공동으로 했던 타사 기자의 경우에는 형사 고소까지 당했더군요.

유종성 : 명예 훼손에 대한 형사 처벌이 표현의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어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2010년 6월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을 방문했을 때 형법상 명예 훼손 죄의 폐지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반 사무총장의 모국인 대한민국은 명예 훼손에 대한 형사 처벌이 표현의 자유를 막는 수단으로 쓰이죠.

프레시안 : 외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유종성 : 일단 1997년 이후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명예 훼손의 비형사 범죄화 캠페인을 벌인 결과 유럽의 열다섯 개 나라에서 형법상 명예 훼손 죄를 완전히 삭제했습니다. 인권 후진국으로 거론되는 러시아조차도 2011년 형법상 명예 훼손 죄를 삭제했어요. 2012년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면서 부활되긴 했지만요. 하지만 푸틴도 징역형과 같은 자유형은 재도입하지 못하고 벌금형(刑)이나 사회봉사형만 강제할 수 있도록 제약을 뒀습니다.

영국은 2010년 1월 형법에서 명예 훼손 죄를 삭제했고, 민사상 명예 훼손 죄를 놓고도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만 책임을 인정하는 새로운 명예 훼손 법을 2013년에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은 심지어 허위 사실을 공표하지 않아도 즉 사실을 말하고도 명예 훼손 죄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어요.

프레시안 : 형벌도 5년 또는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혹하죠. 10여 년간 형법상 명예 훼손으로 기소된 숫자도 늘고 있죠?

유종성 : 아래 그림을 보면 1987년부터 2011년까지 명예 훼손 죄로 기소된 추이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거예요. 더 심각한 것은 '민주주의의 꽃'인 그래서 어느 시점보다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선거 공간에서 '후보자 비방 죄' 혹은 '허위 사실 공표 죄'로 형사 처벌하는 숫자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이죠.

ⓒ대검찰청

프레시안 : 미국은 어떻습니까?

유종성 : 미국의 경우에도 열다섯 개 주에서 후보자에 대한 허위 사실 형사 처벌 규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에 엄격한 요건("실제 악의(actual malice)"가 명백하고 "신뢰할 만한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문화되었어요. 그나마 대부분의 주(35개 주)에서는 민사상 명예 훼손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죄는 후보자에 대한 공적 검증을 가로막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명예 훼손 죄도 정부, 기업, 공인에 대한 감시를 가로막죠.

유종성 : 맞아요. 언론이나 시민이 이른바 '실체적 진실'을 100% 확인한 다음에 의혹을 제기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당장 검찰도 100% 확인하고서 기소하나요? 그렇다면 검찰이 재판에서 지는 일은 없어야죠. 그렇다면, 선거 공간 또 정부, 기업, 공인을 놓고서는 가능한 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해야죠.

명예 훼손 죄, 강자들의 공권력 사유화

프레시안 : 형법상 명예 훼손이 없으면 사회적 약자가 명예를 훼손당하고서도 하소연할 길이 없다는 반론도 있어요. 민사 소송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들만 법에 하소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유종성 : 강 기자나 <프레시안>을 명예 훼손으로 형사 고발한 이들 중에 힘없는 서민이 있었나요?

프레시안 : 대부분은 공직자, 정치인, 기업 등 힘 있는 이들이죠.

유종성 : 맞습니다. 미국에서 과거에 명예 훼손 형사 사건을 분석했더니 대부분 공직자, 정치인과 같은 공인이나 기업인과 같은 부자였습니다. 사회적 강자들이 민사 소송에 더해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용도로 명예 훼손 죄를 활용하는 거예요. 명예 훼손 죄를 통해서 강자들이 공권력을 사유화하는 겁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명예 훼손은 언론 탄압, 야당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시에라리온에 가서 형법상 명예 훼손 죄의 폐지를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죠. 그렇다면, 반 총장은 대답해야죠. 그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의 형법상 명예 훼손 죄 역시 폐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국이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려면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이 한국 정부에 권고한 대로 당장 형법상 명예 훼손 죄를 폐지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형법상 명예 훼손 죄 또 민사상 명예 훼손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합니다. 한 번 그런 일에 휘말리고 나면 당장 저부터 기사를 쓸 때 자기 검열을 하거든요. (웃음)

유종성 : 형법상 명예 훼손 죄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바로 위축 효과죠. 방금 자기 검열을 지적했습니다만, 다른 기자가 또 시민이 형법상 명예 훼손 죄로 처벌받는 걸 보면서 입을 꾹 다물게 됩니다. 그리고 혹시 형법상 명예 훼손 죄로 걸리지는 않을지 자기 검열을 하게 되죠. 그 자체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겁니다.

프레시안 : 형법상 명예 훼손 죄가 없으면 뜬소문이 진실인양 유포되리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요.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파급력을 염두에 두고서요.

유종성 : 해거드 교수와 쓴 논문의 맨 마지막에 존 스튜어트 밀을 인용했습니다. 밀은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표현의 자유는 100%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첫째, 그것이 옳은 주장이라면 인류는 오류 대신 진리를 얻을 기회를 가지니 당연히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죠.

그런데 밀은 설사 틀린 주장이라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왜냐하면, 틀린 주장은 논쟁을 통해서 진리를 더욱더 돋보이게 할 테니까요. 즉, 틀린 주장 역시 그 자체로 사회적 효용이 있다는 지적이죠. 밀의 이런 지적을 염두에 두면, 당장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뜬소문이나 허위 사실을 법으로 단죄할 게 아니라 사회가 여과하도록 해야죠.

프레시안 : 그런 여과 과정을 통해서 그 시민 사회가 더욱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군요.

유종성 : 그렇죠. 그런 점에서 진보 진영 역시 표현의 자유를 놓고서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모욕했다고 일부 언론과 누리꾼을 형법상 명예 훼손 죄 등으로 고소했죠. 과연 저들을 형사 처벌하는 일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지금 이 순간에 되새기는데 긍정적인 도움이 될까요? 저는 민사상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프레시안 : 틀린 주장이라도 100%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밀의 주장을 진보 진영 역시 되새길 필요가 있겠군요. 2심 판결에서 무죄 선고 받는 것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유종성 :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지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해프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말해도 검찰과 법원이 이를 허위라고 탄압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요. 앞으로 한국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형법상 명예 훼손 죄, 또 선거 공간의 허위 사실 유포 형사 처벌 규정 등을 폐지하는데 <프레시안>을 비롯한 언론도 앞장서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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