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청소 노동자인 임영희(가명·57) 씨가 농을 건넸다. 18일 지하 휴게실에 있던 동료 최명자(가명·66) 씨가 임 씨에게 눈을 흘겼다.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이들의 월급은 130여 만 원. 세금 등을 떼고 나면 124만 원을 손에 쥔다. '부자 노인'들의 월급 실태다. (☞ 관련 기사 : "남학생 오줌 담긴 페트병에 한숨만 푹, 위장병은 기본")
최 씨는 기초노령연금을 받지 못한다. 남편이 국민연금을 37만 원 받고, 2억 원이 조금 넘는 집을 가진 탓이다. 젊은 시절 공장에서 '여공'으로 일하며 지난 40년 동안 한 푼 두 푼 모아 마련한 '내 집'이다. "젊어서 악착같이 벌어서 겨우 집 한 채 장만했는데, 이제 늙어서 노령연금이나 받나" 했던 기대는 날아간 지 오래다.
정부가 상위 30% '부자 노인'으로 분류한 최 씨의 남편(77세)은 '4대 중증질환'에 걸린 경험이 두 번 있다. 8년 전엔 심근경색 수술을, 6년 전엔 암 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매년 암 검사(추적 관찰)를 받고 있다. 검사비가 1년에 400만 원(월 33만 원) 정도 들고, 심근경색 약값이 매달 5만 원 조금 넘게 든다. 국민연금 급여 전액을 의료비에 쓰는 셈이다.
남편의 투병 과정을 지켜본 최 씨는 곧바로 암 보험과 상조회에 가입했다. 매달 15만 원을 낸다. 남은 돈 119만 원으로 두 부부가 산다. "부자는 무슨, 최저임금이지 무슨 부자야." 최 씨의 말을 들은 임 씨가 농을 거둔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소득 하위 70%를 가르는 월 소득인정액 기준은 노인 부부 133만 원, 홀몸 노인 83만 원이다. 근로 소득 45만 원이 공제되지만, 홀몸 노인이라면 130만 원을 받고 일하는 이 대학 청소 노동자는 기초노령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130만 원-45만 원=85만 원).
휴게실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김지숙(가명·66) 씨가 "그럼 우리 아저씨(남편) 돌아가시면 나도 기초연금 못 받겠네"라고 말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월세방에서 근근이 사는 김 씨의 남편은 뇌졸중으로 투병 중이다.
▲ 청소 노동자. ⓒ프레시안(최형락) |
"내가 설마 상위 30%일 줄이야"
다른 건물 지하 휴게실에서 만난 청소 노동자 박금자(가명·69) 씨도 기초노령연금을 못 받는다. 1998년 월급이 34만 원일 때부터 이 대학에서 일했다는 박 씨는 "내년에 학교를 졸업(정년퇴직)해서" 걱정이 한 가득이다. 74세인 남편도 "갈 데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자기네 애들(대학생, 고등학생) 챙기기도 바쁜"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지도 못한다.
내년이면 기초연금 대상자가 되는 이정남(가명·64) 씨는 맞벌이라서 기초연금 대상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IMF 사태로 실직한 남편은 1998년부터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다. 남편 월급 103만 원과 이 씨의 월급 130만 원을 합치면 이들 부부는 소득 상위 30% 안에 들어간다.
이 씨 부부는 서른두 살짜리 막내아들을 "장가 보내기 위해서" 없는 살림에 차곡차곡 저축하고 있다. 이 씨는 전립선에 이상이 생긴 남편이 "병원에 가서 카드를 20만 원씩 긁는" 게 속상하다.
이들은 기초노령연금 수급 자격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주면 주고 말면 말지 어쩌겠느냐"며 체념했다. 그러나 자신이 '소득 상위 30%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이정남 씨는 "(정부가) 20만 원 준다고 했을 때, 막연히 '나도 되겠거니' 했지, 내가 설마 상위 30%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묘한 세대 갈등도 불거졌다. 아직 50대인 임영희 씨는 "대기업이나 전두환 같은 사람들한테 못 받은 세금 찾으면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돌아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며 "50대가 문제"라고 말했다. "(50대는 국민연금이나 세금을) 붓고 못 탈 수도 있다니까? 바닥나기 쉽다니까? 옛날엔 80세면 돌아가셨는데, 이제 100세까지 사시니까…."
최명자 씨는 "공장에서 죽어라고 일해서 아들들 결혼할 때 전세자금을 대줬다"며 "죽을 동 살 동 품어놓으면 (결혼한 자식들이) 자기 새끼들만 챙긴다"고 토로했다. 최 씨는 "안 먹고 안 쓰니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지, 젊은 애들 마냥 자장면 하나 펑펑 사먹을 돈 없다"고 했다. 최 씨는 정부에도 아무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안 준다고 하는데 무슨 기대를 해? 아프면 병원 가야 하고, 누구 10원 한 장 줄 사람 없으니까 죽어라고 모아야지."
내년에 퇴직하는 박금자 씨는 그 "죽어라고 모을" 시간도 없어서 초조하다. 박 씨는 "'빽' 있는 사람들은 집 있고 차 있어도 공공 근로를 할 수 있는데, 나는 늙었다고 누가 써먹겠느냐"고 억울해 했다.
이정남 씨가 생각하는 소득 상위 30%를 물었더니 "한 달에 (나 혼자) 200만 원 정도 벌면, 생활비나 병원비 내기에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근데 나라가 돈 없다는데 어쩔 거여"라면서도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리 심정 알까"라고 반문했다.
"높은 자리 앉아서 부족한 걸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심정 알까? 그 사람들한테 이 돈 갖고 살아 보라고 하고 싶어요. 돈 130만 원 받고 한 달 살아 보라고."
한국 노인 빈곤율 48.6%, OECD 평균 4배…압도적 1위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기초연금을 받아야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기초연금을 수급 자격을 둘러싸고 어르신들끼리 싸운다"며 "소득 하위 70% 어르신들에게만 10만~20만 원 지급해서는 노인 빈곤율 해소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17일 기획재정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8.6%에 달하며,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2.4%(2010년 기준)보다 4배가량 높아 압도적인 1위다. 2위인 호주(35.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2007~2010년 노인 빈곤율 상승폭(2.6%포인트) 또한 한국이 OECD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2008년 국민연금개혁위원회 회의 당시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를 현행 소득 하위 70%에서 30%로 축소하자고 발언한 바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문 후보자는 지난 12일 인사청문회에서 "필요하신 분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항상 제 주장이었고, 70% 수준은 범위가 너무 넓다(고 봤다)"고 답했다. (☞ 관련 기사 : 문형표 "박근혜 공약 보니 '재정 많이 들겠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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