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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 자처하는 아베, 日 국민과 분리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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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군국주의' 자처하는 아베, 日 국민과 분리 대응해야"

[인터뷰] 문정인 "한미동맹 만병통치론 위험, 남북관계 개선 필요"

2013년은 이른바 '이시아 패러독스'가 한층 심화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동아시아지역이 군사안보적으로는 가장 불안정한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지난 2012년말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거침없는 우경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11월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함으로써 중일 갈등은 한층 심화됐다.

나아가 아베 총리는 지난 1일 신년사에서 "강한 일본을 되찾기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면서 일본의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수정 움직임을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31일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자폭 특공대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관람한 이후 "감동했다"는 소감을 밝히며 일본의 군국주의와 재무장화가 본인의 신념과 닿아있음을 분명히 했다.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일본 우경화를 두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삐걱거렸던 한일관계는 지난해 12월 26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이로 인해 당분간 한일 정상회담은 열리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일본 총선이 있는 2016년까지 한일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14년 격동의 동아시아는 어떤 행로를 걸을 것인가? 남북, 한일, 중미, 중일 관계의 앞날은 어떠한가? 우선 일본의 우경화를 예단하기보다는 아베 정부와 일본 내 평화세력을 분리해 대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대처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학교 문정인 교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첨예화되거나 담합하면서 두 나라가 지역 질서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우리가 협력할 상대는 사실 일본밖에 없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운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의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문 교수는 아베와 일본 국민들을 분리시키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대다수 일본 국민과 우리가 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쉽지 않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일본 국민은 평화를 애호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성숙된 국민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며 "만약 아베 총리와 일본 국민을 싸잡아서 비난하면 국민들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베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한편으로는 지난해 11월 23일 중국이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간 대립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양국의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고 보기만은 힘들다. 경제적으로 양국이 여전히 상호 인질 (mutual hostage)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이 갖고 있는 외화 보유고의 상당수가 미국의 국·공채에 투입돼 있고, 미국에 투자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개선돼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한미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도 지속할 이유가 없게 된다"며 "그러면 한중관계도 편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박인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과 대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아베 신조(왼쪽에서 두 번째)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주변국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다. 아베는 스스로를 '우익 군국주의로 불러도 좋다'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신설, 특정비밀보호법 강행 처리, 집단적 자위권 행사, 그리고 궁극적으로 평화헌법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이 이같은 행보를 하는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심지어 미국도 최근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나섰는데?

문정인 : 아베 총리의 행보는 우발적이라기보다는 계획된 것으로 본다. 지난해 9월 말부터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왔다.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본 개념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일본의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에 기초한다. 세계 평화에 공헌함으로써 일본의 평화에도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아베 총리 스스로의 표현을 빌자면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 군대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는 평화헌법 9조 1항의 무력의 행사 및 전쟁 포기와 2항의 정규군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또 아베 총리는 최근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NSC 출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1967년에 제정된 무기수출 3원칙 (공산국가와 유엔 제재 국가 그리고 국제분쟁 당사국에 무기를 팔지 않는다는 원칙) 수정 입장도 밝힌 바 있다. 군사력을 증강하고 더 나아가서 평화헌법 9조 2항 바꾸겠다는 이 모든 것이 아베가 말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다.

프레시안 :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는 다분히 모순적으로 들린다.

문정인 : 학계에서 통용되는 적극적 평화주의와 아베 총리가 말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학계에서의 적극적 평화주의란 전쟁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면서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는 '적극적 공세주의'로 이는 이명박 정부가 제안했던 적극적 억지 개념, 즉 군사적 억지력을 키워서 전쟁을 방지한다는 구상과 비슷한 것이다.

일본이 역사 문제에 대해 깨끗하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는다면, 그가 말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게 크게 문제될 소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베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자신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대한 반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입장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받아들이기는 굉장히 힘들다.

아베가 말했던 일련의 발언을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는 "침략의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식민지 침략을 침략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다. 또 지난해 9월 26일 뉴욕 허드슨연구소에서의 연설에서 아베는 "나를 우익 군국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했다. 군국주의자들은 침략전쟁의 장본인들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베는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이 하나도 없다. 이렇다 보니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의 군사력 증강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군사력 증강의 목적이 방어적인 것이 아니라 침략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차대전 이후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던 기본 노선은 앞에서 살펴본 평화헌법 9조 외에, 방위력 행사도 자위를 위한 최소한에 한정한다는 전수방위, 또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제성장에 전념하겠다는 요시다 독트린 등 크게 세 가지였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이러한 노선을 모두 바꾸겠다고 나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기존의 원칙을 다 엎어버리겠다는 것인데, 아베 총리가 이런 강수를 두고 있는 구체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문정인 : 우선 개인적인 신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 당시 총리였던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려고 했었다. 여기에 일본 역사에 대한 자긍심도 있을 것이다. 군국주의와 태평양전쟁의 원인을 놓고 일본 우파들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방어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은 미국 등 서방세력의 침탈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전후 맥아더 군정청이 만들었던 자학사관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일본이 지난 20년간 '헤이세이(平成)'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자괴감과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데, 이에 대한 치유책으로 민족주의적 정서가 발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06년 첫 총리로 취임했을 때 '아름다운 일본'을 내세웠던 아베가 2012년 말 두 번째 집권한 후에는 '강한 일본'을 중심에 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일본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면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일본이 매몰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부상도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일본이 이에 대해 상당히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위기감에 대응하기 위한 충격 요법으로 아베가 우경화 카드를 꺼내 든 것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정치 변수를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베가 인기가 떨어져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는 강수를 뒀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잘 되어 인기가 올라가도 그 힘을 받아서 신사 참배를 강행할 수 있고, 반면에 아베노믹스가 잘 안 돼서 지지율이 떨어져도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이런 충격 요법을 쓸 수도 있다. 결국 국내정치적인 요인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아베로 하여금 공세적 행보를 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프레시안 : 미국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나왔다.

문정인 : 동맹 관계를 넘어 원칙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때문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야스쿠니 참배가 그 전쟁을 미화시키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미국 국민 어느 누가 그걸 좋아하겠나. 가장 큰 피해국이니까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그런 반응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프레시안 : 일본 내부의 국내 정치적인 변수를 살펴보면, 사실 아베 총리가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지지율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그리고 신사 참배는 말씀하신 대로 미국까지 원칙적인 문제가 있어 실망스럽다고 하는데, 소프트 파워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일본에 손해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문정인 : 여기서 조심스럽게 봐야 할 관전 포인트가 있다. 만약에 한국과 중국에서 아베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국민까지 다 싸잡아 비판하면 일본 국민들이 아베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베가 그런 '연루 전략'을 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일본 국민들은 상황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일본 국민과 아베를 구분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일본 국민은 평화를 애호한다고 본다. 실제 여론도 그러니까 이를 존중해주고 우리의 비판은 아베와 우경화 된 정치인들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데, 싸잡아서 비판하면 아베가 생각하는 국내 정치적 목적이 달성되는 셈이 된다.

프레시안 : 일본 여론을 보면 헌법 개정과 정상국가화까지는 동의하지만, 안보는 기본적으로 미·일 동맹에 의존하는 것을 선호하지,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는 등 지나친 군사화에는 반대가 더 많다고 하던데 어떻게 보나?

문정인 : 집단적 자위권 행사까지는 추진할 수 있다고 보는데 평화헌법 9조 2항 개정 문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아베 정권은 개헌 발의를 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 의원 총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일본 헌법 96조 1항을 '3분의 2'가 아니라 '단순 과반수'로 우선 개정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평화헌법 9조 2항을 개정하는 문제는 전쟁의 상흔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헌법 개정이 자신들에게 주는 혜택과 편익보다는 이것이 가져오는 손실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국민도 많은 것 같다.

프레시안 : 올해 일본의 행보는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집단적 자위권 사례를 보면 정부 방침은 아직 확정 안된 것 아닌가?

문정인 : 일본으로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헌법을 개정하거나 아니면 기존 헌법 내에서 9조 2항을 재해석하는 방법이다. 동맹이 위협을 당했을 때 일본 자위대가 가서 도와줄 수 있다는 방식으로 헌법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내부적 논쟁이 있겠지만 특별비밀보호법이 통과됐고 NSC를 설치했으니 다음 수순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프레시안 : 한국은 일본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일각에서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기 전에는 정상회담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막기 힘든 상황에서 역사 인식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은 계속 추궁하되 대화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일본과 관계를 지금과 같은 불통으로 가져가는 것이 나은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수준에서 대화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문정인 : 대다수 일본 국민과 우리가 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쉽지 않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일본 국민은 평화를 애호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성숙된 국민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아베 총리와 일본 국민을 같이 묶어버리면 국민들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베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면 한일관계는 정말 어려워진다. 이때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나?

▲ 연세대학교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앞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첨예화되든가, 담합하면서 두 나라가 지역 질서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우리가 협력할 상대는 사실 일본밖에 없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다만 현 상황에서 한일 간 단독 정상회담은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내 여론을 무시한 채 일본과 단독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선은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고려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기반으로 박 대통령이 3국 정상회담을 끌어내야 한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갈등을 풀어보겠다는 외교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도 좋지만 A급 전범 위패 14개는 다른 곳으로 분사시키라는 생산적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또 위안부 관련해서도 아베에게 아무리 개인적 신념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그에 따른 과거 발언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프레시안 :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우리가 너무 앞서 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도 우리가 너무 앞서서 예단하고 비판하는 것이 일본 내의 평화주의 세력에게는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는데?

문정인 : 우선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해서는 우리 외교부 대변인의 초동 대응이 굉장히 정확했다고 본다. 당시 조태영 대변인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결정하는 문제는 일본의 국내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간섭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거나 한국의 주권을 저해, 또는 한국 헌법에 저촉되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생겨 주한미군이 위험하다고 하면 일본 자위대는 주한미군을 지원해주러 올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게 주권적인 문제고 헌법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위대가 우리 땅에 발을 들여놓는 문제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한국에 있는 미국 시민들이 대피시키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치자. 그러면 수송기로 이들을 실어서 보내야 하는데 미국의 수송기가 모자라면 일본의 수송기가 올 수도 있다. 전투부대가 모자라면 전투부대가 올 수도 있고. 일본의 정보 자산이 한반도에 투입될 수도 있다. 즉 미국의 필요에 의해 일본 군사력이 한국에 들어와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 됐을 때, 일본이 우리와 동맹관계는 아니지만 미국과는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미국을 위해 한국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우리는 대비해야 하는데, 그것을 외교부 대변인이 아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일본 자위대의 전력은 세계 4~5위 정도 된다. 이 정도면 말만 자위대이지, 실제로는 어엿한 군대인 셈이다. 실질적인 군사력이 이 정도인데 형식적으로 일본이 전수방위만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위선이다. 이런 위선을 넘어서 일본이 정상국가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상국가화의 목적이 정말 세계와 지역의 평화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과거와 같은 침략 전쟁이 재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냐에 따라 얘기는 달라진다. 만약 후자와 같은 우려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면 우리는 찬성할 수 없고 한일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정상국가가 되려면 군국주의로 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 일본의 지도자는 과거 침략전쟁의 잘못을 확실하게 인정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정리 안 하면서 정상국가로 넘어가겠다는 것은 수용하기 힘들다.

중국 방공식별구역 확대, 팽창주의적 조치인가 방어적인 대응조치인가

프레시안 : 지난해 11월 23일 중국의 동중국해 상공 방공식별구역 선포도 동북아 긴장을 높였던 사건 중 하나였다. 과거사 문제에 관해 한국과 중국이 공동보조를 취해 왔는데 여기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또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 좋은 것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그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나.

문정인 :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미국과 일본에서 주로 제기되는 부정적 해석인데,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 한 것은 자국의 패권을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려면 지난 1986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류화칭(劉華淸)이 수립했던 중국의 장기 해양전략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당시 류화칭은 해군 사령관이었다. 그가 세운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장기 전략은 2000년까지는 제1도련, 즉 일본-오키나와-대만-남중국해를 경계선까지 해상 방위력을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이어 제2도련, 일본-사이판-괌-인도네시아를 경계선으로 하는 해상 방위력을 2020년까지 구축하고 마지막으로 2050년까지는 미국처럼 5대양 6대주를 다 관할할 수 있는 원양해군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류화칭은 이 계획을 1986년에 세웠고, 미국도 사실상 이 보고서에 기초해서 아태 지역에서의 해양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방공식별구역 확대는 중국이 자국의 해양과 영공의 외연을 넓혀간다는, 일종의 지역 패권을 획책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에서 보면 중국의 자위적인 측면이라는 해석도 있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방공식별구역은 미국이 1951년 일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1950년 미 본토를 시작으로 1951년에는 한국과 일본 주변 해역에 이를 설정했다. 미국이 스스로 영역을 정해서 해당 구역에 들어오기 30분 전까지는 자신들에게 통보해달라는 것인데, 일본이나 한국 영공에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알아 놓고 예방 조치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군이나 일본 공군이 중국에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을 때는 이게 큰 쟁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일본 공중자위대가 계속 훈련을 하고 있고 미국도 여기에 합류하고 있다. 그럼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해서 이를 30분 전에 알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어도와 센카쿠열도까지 포함해서 기존의 한국, 일본의 방공식별구역과 중첩되게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자신들이 약하기 때문에 참고 기다렸지만, 이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려 놓은 방공식별구역을 더 이상 간과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중국 군용기가 진입하면 한국은 오산의 미 7공군 사령부로, 일본은 미사와의 미 5공군 사령부로 바로 관련 정보가 전달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우리도 군사적 능력이 있는데 왜 너희들만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는가,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있는데 우리는 왜 못하나"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또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고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자의적으로 선포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큰소리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중국이 남중국해로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가 중국의 팽창주의를 반영하는 것이고, 이를 중국이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문정인 : 그것은 좀 두고 봐야 한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도 미국의 행보에 따라,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는 저서 <온 차이나>(On China)를 통해 세계 1차 대전 발발 원인을 분석하면서 중국의 부상을 위협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위 저서의 결론 부분을 보면 '크로우 메모'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 메모는 1907년 영국 외무성에 근무했던 에어 크로우라는 심의관이 작성한 것이다. 당시 빌헬름 2세 하의 독일이 앞으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외교 안보적 행보를 취할 것인지를 분석한 메모다. 크로우는 독일이 1차적으로 유럽대륙 제패를, 2차적으로는 세계제패를 꿈꿀 것이기 때문에 대영제국의 해군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독일에 대한 견제외교를 하나의 정책 처방으로 내놓았다.

키신저는 이 메모가 세계 1차 대전을 가져온 먼 원인(Remote Cause)이 됐다고 분석했다. 당시 독일에 자유주의 세력이 많았고 얼마든지 그들과의 협상을 통해 전쟁이라는 파국을 피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영국이 빌헬름 2세의 독일을 수정주의 세력으로 파악해서 이를 견제하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1차 대전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키신저는 이와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거 5000년의 중국 역사를 보면 중국은 패권국가였고 한족이 중원을 차지했을 때는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중국의 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운영해나가는 데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서 G2 모델로 풀어나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런 학파를 흔히 '상하이 학파'라고 부른다.

▲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문제는 워싱턴에는 상하이 학파보다 '크로우 학파'가 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학자들은 죤 미어샤이머, 아론 프리드버그를 비롯해 거의 다 크로우 학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고, 미국 패권에 도전할 수밖에 없으니 미·중은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들 주장은 기본적으로 '한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 있을 수 없다'면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구 상에 두 개의 패권국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로의 이동'(Pivot to Asia)라는 것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키신저 같은 중국전문가들의 지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패권 고수에 충실한 신(新)현실주의자들의 주장을 더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신현실주의자는 앞서 언급한 크로우 학파와 비슷한 견해로 중국의 부상은 미국과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프레시안 : 말씀을 듣고 보니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만은 어려워 보인다.

문정인 : 주권국가에는 일단 영해가 있고 그다음 배타적 경제수역, 그리고 대륙붕 경계가 존재한다. 이어도는 한국, 중국,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모두 접해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세 국가들은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했다. 여전히 협상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중국이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이런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만들 필요가 뭐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밝혔는데 그 구상은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있는 것 아닌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관련 국가들끼리 위기관리협의체 만들라고 일본에 제안했는데 일본이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바이든이 말한 위기관리협의체는 사실 한국이 중국과 일본에 제안했어야 한다. 한중일이 만나서 영토 문제도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방공식별구역의 중첩 구역은 중·일 간 갈등이 있는 곳인데다가 한국과 중국 모두 이어도 문제는 쟁점화시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3국이 대화를 통해 신뢰가 구축되면 이는 자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미국과 중국은 상호 인질 관계?

프레시안 : 미국으로 시각을 돌려보자.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 이란과 잠정 핵 협정 타결했다. 이미 2011년 말부터 협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이 이란과의 화해를 바탕으로 중동지역을 관리하려는 것 같다. 올해 이란 핵문제가 완전히 타결돼 중동지역이 안정화될 경우 미국은 외교와 군사력을 동아시아에 집중하면서 미·중 대결이 심화되지 않을까?

문정인 : 2011년 당시에는 핵 협상까지 갈 것이라고 전망하지 않았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와 군사행동론이 지배적 여론이었다. 그보다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정치적 생명을 걸고 열심히 뛰어서 나온 결과라고 본다. 또 이란도 하산 로하니라는 온건파가 정권을 잡았고. 로하니는 클린턴 전 대통령 당시 이란의 외무장관이었다. 핵 협상 대표이기도 했으며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그의 카운터 파트였다.

이외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케리 국무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유대계 로비 세력의 반발을 막아준 측면도 크다. 또 유럽연합(EU)의 외교안보 고위대표인 캐서린 애슈톤이 케리 장관을 받쳐준 측면도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고 본다. 지난 11월 중순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는데 그때만 해도 그는 미·이란 간 핵 협상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미국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 중 하나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철수 이후 힘의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미국은 자국의 힘을 아시아-태평양 쪽으로 옮겼다. 큰 맥락에서 보면 이란과 핵 협상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현재의 이란 핵 협상은 힘의 배분보다는 케리 장관의 개인적 노력이 크게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이 경제적인 차원에서 중국을 포위하고 고립시키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문정인 : 중국에서 그렇게 인식한다. 그런데 TPP는 기본적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안에서 봐야 한다. 1994년 APEC에서 '보고르 선언'을 채택하는데 선진산업국들은 2010년까지, 개발도상국은 2020년까지 무역을 자유화하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선언이 난항을 겪게 된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세안 국가들은 자발적인 순응을 해야지, 제도화된 강제적인 규정을 만들면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 APEC이 두 입장으로 나뉘어졌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과 아세안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 등으로 갈라졌다.

이 상황에서 2006년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가 TPP 논의를 시작했고 2008년에는 미국,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 참여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일본도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보면 TPP가 중국의 고립을 염두에 둔 미국의 전략적 포석으로 보기는 힘들다. 오바마는 1기 때부터 미국 경제가 사는 길은 수출이고, 그 대상 지역은 아시아-태평양, 주요 수출 에이전트는 중소기업이라고 못 박고 있었다. 아시아 태평양에 초점을 맞춰 미국 경제의 부흥을 추구했기 때문에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TPP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 본다.

TPP가 중국을 견제하는 도구라는 의심은 일본이 TPP에 참여하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은 한미 FTA의 타결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래서 미·일 FTA 협상에 별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한미 FTA가 타결되자 일본만 외톨이가 된 입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TPP 협상에 뛰어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 협상에 일본이 동참하니까 중국으로서는 자신에 대한 포위전략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TPP에 들어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TPP에 참여하려면 우선 정부 조달 정책 및 서비스 시장 자유화, 그리고 지적재산권 문제 등 중국 입장에서 양보할 것이 많다. 중국이 아무리 무역자유화를 한다고 해도 아직은 국가 자본주의 나라 아닌가.

프레시안 : 한때 미·중 간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를 상징했던 이른바 '차이나메리카'라는 용어가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이러한 의존관계가 많이 깨졌다는 분석이 있다. 그만큼 양국의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고.

문정인 :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고 보기만은 힘들다. 경제적으로 양국이 여전히 상호 인질 (mutual hostage)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갖고 있는 외화 보유고가 3조4000억 달러 이상이다. 그런데 이 중에 1조3000억 달러 정도가 미국의 국·공채에 투입돼 있다. 게다가 미국에 투자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없는 미국도 상상할 수 없고 미국 경제가 파탄 나면 가장 큰 피해자도 중국인 셈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경제적인 공생 관계가 깨지면 전쟁이 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가능성도 그리 높아 보이진 않는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이후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을 때 지정학적인 변수들도 상당히 많았다. 경제적으로 팽창하고 있던 독일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유럽 가운데에 갇혀 있다 보니 생존 공간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동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자원 패권과 관련된 것인데 대공황이 올 즈음 서구에서는 옐로 페릴(Yellow Peril)라는 이른바 '황화(黃禍)론'이 제기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는데 1920년대 섬유 부문의 수출을 보면 일본이 유럽 국가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에 대한 견제가 심하게 들어왔다. 반면 당시 석유, 고무 등 자원 판매와 관련해서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이 거의 독점적인 시장을 갖고 있었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팽창의 배후에는 이런 지정, 지경학적 고려 사항도 있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6월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함께 거닐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번 회담은 양국 정상의 첫 공식 회담자리였다. ⓒAP=연합뉴스

현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어가는 흐름도 있는데, 그때보다는 서구와 아시아가 경제적으로 훨씬 상호 의존성이 높고 유기적으로 연계돼있기 때문에 정면충돌을 피할 해결책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중·일 간 갈등에서 미국의 입장이나 역할은 어떻게 봐야 할까? 방공식별구역 대응에서도 미국과 일본 입장이 약간 다르다. 미국이 정말 동아시아 갈등에서 안정자 역할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본을 끌어들여서 중국 봉쇄를 하려는 것인가?

문정인 : 미국이 어려운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아는 미국은 이 지역에서의 전쟁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긴장 상태는 유지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래야 그들의 아시아-태평양 전략과 자국군의 전진 배치를 정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 그리고 전략적 안정이 실현되면 주한, 주일 미군의 존재 이유는 약화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현재 상황에서 동북아 평화의 장애 요인으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지정학적 사고가 되살아나고 있는 점이다. 로버트 카플란의 저서 <지리의 복수>(Revenge of Geography)는 중국의 부상을 지정학적인 틀로 보고 있다. 이 틀을 이용해 미·중, 중·일 간 갈등을 역사의 필연처럼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두 번째는 민족주의 문제다. 한중일이 과거사 문제로 민족주의적인 대립을 하고 있다. 물론 과거 역사는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외눈박이가 되지만 과거 역사에 집착하는 자는 두 눈을 다 잃은 사람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 한중일 3국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을 깨는 것이 민족주의다.

정확히는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가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자, 심지어 평범한 사람까지 민족주의적 정서로 기울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아베의 행보로 인해 한국과 중국에서 강한 반일 감정을 표현하면, 일본에서는 그만큼 더 민족주의가 강해진다. 그러면서 한중일 사이에 민족주의라는 연계 고리를 통한 적대적 제휴관계가 형성된다. 악순환이다.

세 번째는 국내 정치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경향이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부추겨지고 강화된다는 뜻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략적 이익을 국가나 지역의 대승적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민족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교묘하게 악용하고 남용한다. 여기에 언론이 조연으로 나서게 되면 이를 더 부추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북아의 이러한 상황은 과연 진짜 현실일까? 이것은 만들어진, 즉 상상된 현실(imagined reality)이다. 민간 차원에서 세 나라의 국민들이 만날 때는 별로 나쁜 감정이 없다. 그러나 공식적 차원에서는 갈등이 증폭되고 재생산된다.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돌파구 마련해야

프레시안 : 지난해 12월 북한에서는 장성택 처형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보고 처음에 든 느낌이 "이래서야 남북대화 할 수 있겠나"라는 것이었다. 남북관계의 앞날, 어떻게 보나.

문정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개선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은 있다. 우리의 기준, 또는 보편적 기준으로 봤을 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절차를 거쳐서 장성택이 처형됐는데, 이는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고모부인 장성택을 저런 방식으로 처형한, 아주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지도자인 김정은과 우리 대통령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는 여론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만난 역사가 세계적으로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닉슨과 마오쩌둥(毛澤東)의 만남을 들 수 있다. 닉슨은 1950년대 아이젠하워 밑에서 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매카시즘의 선봉에 섰던 사람이다. 그런 닉슨이 1972년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대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수교의 틀을 이끌어 냈다.

당시 미국 내에서 마오쩌둥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가. 1950년대 후반 대약진 운동을 전개하면서 3000만 명의 아사자를 내고 문화대혁명을 통해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장본인 아닌가. 이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닉슨은 마오쩌둥과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당시 미국의 정서로 보면 대단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박 대통령도 마음으로는 내키지 않더라도 이러한 발상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럼 왜 북한과 만나야 하나. 우리가 현 상황에서 외교를 잘 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한국이 19세기 말의 조선과 같은 형편없는 군주 국가는 아니다. 이제 한국은 누가 함부로 쉽게 넘보지 못하는, 최소한 중견국의 지위를 갖고 있다. 다만 안보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당장 위로는 북한이라는 적이 있다. 한미동맹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한미동맹만을 강조하다 보면 중국과 사이가 나빠지게 된다.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 때문에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해결하려면 남북관계 개선밖에 답이 없다. 남북관계가 개선돼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한미동맹에 과도하게 의존을 할 필요가 없다.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도 지속할 이유가 없게 된다. 그러면 한중관계는 편해지고 그런 상황에서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미국은 독수리 훈련이나 키 리졸브 등 한미 합동군사훈련 때 지난해처럼 전략무기를 대규모 전진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 대북 군사 억지, 대중 견제, 한국 내에서의 독자 노선, 특히 핵 보유 주장 불식, 그리고 미국 내 국방 예산 확보 등 여러 이유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럴 경우, 북은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중국 또한 긴장할 것이다. 결국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하다 보면 남북 간 긴장은 악화되고 한중관계 역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중국은 미국의 전략폭격기인 B-2, B-52 등이 한국에 전진 배치되는 것을 대북견제용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들에 대한 견제로 받아들인다. 한미 군사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중국은 북한과 가까워지고 러시아도 끌어들이면서 북방 3각 관계를 구축할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남방 3각 동맹이 필수적인데, 현재의 한일 관계로 보아 이 역시 쉬워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우리에게 어렵게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한미동맹 만병통치론'은 위험하다. 물론 동맹은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이 아무리 우릴 도와준다고 해도 지금처럼 강대국이 된 중국 옆에 있는 한국은 미국의 안보 우산만으로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미국이 아무리 우리에게 대단한 안보 공약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중국과 적대적 관계를 갖게 되면 우리에게 오는 안보 위협은 이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그만큼 우리가 현명해져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 개선이 모든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신다. 하지만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되면서 현재 남북 간 별다른 대화나 교류가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와중에 3월이 되면 다시 한미 군사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당장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문정인 : 대통령이 물밑 접촉과 막후 접촉을 구분해서 북한과 막후접촉을 통해 관계 개선을 타진했으면 좋겠다. 물밑접촉은 비(非)정부 행위자를 통해 북측과 소통을 하는 것인데, 비정부 행위자이기 때문에 잡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물밑 접촉은 안 해도 좋다. 하지만 국정원, 통일부, 청와대 관계자 등 정부 당국자들이 북측과 막후에서 접촉을 할 필요는 있다. 막후에서라도 뭐가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아야 대응을 할 것 아닌가? 이번 장성택 처형 건도 마찬가지다. 장성택 처형이라는 중대 사건이 있었을 때 이 사건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 것인지는 북한 당국자와 만나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국정원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대북 막후 접촉을 시작해서 장성택 문제를 비롯해 경제개방 문제 어떻게 할 것인지 북한에 직접 물어보고 협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막후 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 재개하자, 금강산관광 재개해 줄게", "5.24조치는 우리도 당장 풀기는 곤란하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면 단계적으로 풀겠다. 우리도 명분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등등의 말이 오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북한과 입장 정리하고 나중에 그것을 통일부가 공개적으로 하면 된다. 지금 이러한 과정이 없는 것이다.

프레시안 : 막후 접촉을 말씀하셨는데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 막후 접촉을 통한 북한과의 소통이 가능한가?

문정인 :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가 소통한다고 하면 북한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현 정부가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한 저런 정권과 어떻게 대화하느냐"는 국내 여론이 있으니 공개적으로는 못할 것 아닌가. 그러니까 비공개로 하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금도 시민사회단체들의 방북 승인을 잘 안 해주고 있는데 이런 것도 선택적으로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프레시안 : 6자회담 재개 문제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한국이 나서면 가능한 것인가?

문정인 : 우리 정부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일각에서는 대북 제재를 지금보다 강화시켜서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받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북한과 교섭해본 결과 과거와는 달리 양보할 것 같다는 의견이라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면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18일 북경 조어대에서 열린 6자회담 10주년 회의에서 북한이 중국말을 잘 듣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러시아도 6자회담 재개에 동참하고 있는 구조다.

만약 시간이 우리 편에 있다고 생각하면 6자회담 재개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간이 북한 편에 있다면, 북한의 핵 무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면 우리한테는 어려운 상황이 된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중국과 긴밀하게 협력해서 6자회담 재개 판을 만들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6자회담 재개가 남북관계 개선에 하나의 촉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병행 추진하면서 상호 선순환 관계를 가져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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