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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차 우체국 비정규직 "우린 노비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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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3년 차 우체국 비정규직 "우린 노비가 아니에요"

[2013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입상작·④] 우체국 비정규직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아름다운 재단이 함께 진행한 '2013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에 입상한 글 5편을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네 번째 글은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13년 차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나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탤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인의 소개를 받고 2000년 서울우편집중국에 취직하게 되었다. 이후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2011년 12월 31일 서울우편집중국의 폐국으로 동서울우편집중국으로 일터를 옮기게 되었다.

13년 동안 주간 근무, 야간 근무, 격일 근무 등 웬만한 형태의 근무는 모두 경험해보았다. 지금은 오후 1시에 출근해 10시간 정도 직장에 있다가 온다. 수만 건의 우편물을 수십 명이 처리해야 하는 정신없이 바쁜 강행군이다. 이렇게 고된 일을 하다 보니, 근무하다 다치는 경우도 정말 많다. 사소한 부상이나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다닌다. 하지만 치료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나오겠다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도 돈다.

일하는 곳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어느 일터가 안 그렇겠느냐만 내가 일하는 곳은 덥다, 춥다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이 안 될 정도다. 건물이 단열이 잘 안된다고 한다. 에너지 절약 정책 때문에 냉난방도 대폭 줄었다. 저마다 쿨팩, 손난로 등을 가져와서 버티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일이 바쁠 때면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이렇게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월 100만 원 정도다. 정규직 공무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10년을 넘게 일하였지만, 2012년까지 명절마다 고용하는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임금을 받았다. 일도 고되고, 잘 오르지도 않는 낮은 임금 탓인지 젊은 사람들은 얼마 하지 못하고 그만둔다. 젊은 사람들이 자꾸 빠져나가면 일이 그만큼 힘들어지지만, 그들이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알고 있으니 차마 붙잡을 수가 없다. 오히려 입을 모아 다른 일을 찾았으면 하루빨리 그만두는 게 낫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40~50대다. 한창 돈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연장근로에 목을 맨다. 하지만 연장근로 역시 회사가 정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작년엔 인건비를 절약한다는 명분으로 야간 근무가 없어졌다. 야간 근무가 없어져도 처리해야 할 우편물은 그대로다. 야간 근무가 없어진 만큼 낮에 강도 높게 일해서 주어진 물량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 일은 더 힘들어졌지만 야간 수당을 받지 못해 생활은 더욱 팍팍해졌다.

근무시간 축소의 원인은 비단 인건비만이 아니다. 얼마 전엔 절도 사건이 잦다는 이유로 소포계의 주말 근무를 없애버렸다. 주말마다 고객에게 배송되어야 할 휴대전화를 누군가 훔쳐간다고 했다. 우편 배송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시스템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소행이라고 했다. 회사는 범인을 잡고 보안상 취약점을 개선하는 대신, 주말 근무를 없애는 방식을 택했다. 빈대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주중에도 우편물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 추석을 앞둔 동서울우편집중국. 우편집중국에서는 택배와 우편물을 분류한 뒤 전국 각지로 배송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내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일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대신 '파트'로 불렸기 때문이다. 파트와 정규직들은 한 곳에 섞여서 일을 했다. 우리와 같이 일하는 정규직들은 기능직 공무원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정규직들이 퇴직한 자리는 하나둘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정규직은 일부만 남고, 우편 분류는 모두 비정규직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수가 늘어나도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정규직들이 명절 상여금을 탈 때, 비정규직 우리는 일을 못 해 줄어드는 급여를 걱정해야 했다. 명절 쇠느라 써야 할 돈을 생각하니 더 이상 명절을 반길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성과급 역시 우편물 대다수를 다루는 우리가 아닌 정규직에게만 돌아갔다. 비정규직도 명절 급여와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될 때까진 1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물론 그 액수도 정규직에 비하면 어림없는 액수다.

비정규직에게도 호봉제와 유사한 등급제가 있지만, 사측이 일방적으로 만든 것이지 누구도 납득할만한 근거가 없다. 1등급 근로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4등급 근로자와 비교해 하루에 1920원 가량을 더 받을 뿐이다. 게다가 동서울우편집중국 내에 1등급 근로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사실상 최고 등급인 2등급 근로자들은 4등급 근로자보다 하루에 1120원을 더 받는다.

등급 산정 기준 역시 이해할 수 없이 제멋대로다. 업무 경력보다는 어느 계열에서 일을 하는지를 중심으로 등급을 산정하기에 숙련자가 초심자보다 등급을 더 낮게 받는 일도 생긴다. 2012년까지는 야간 근무자가 주간 근무자보다 등급이 낮았다. 야간 수당이 이미 지급되고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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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조금이나마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자신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 비정규직들이 받고 있는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대내외에 알렸고, 일부는 시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못했으며 지금도 많은 장벽이 남아있다.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되자, 회사에선 노동자들에게 우정노조 가입을 적극 권유하기 시작했다. 우정노조는 우체국에 비정규직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노조다. 조직원 구성과 활동 방향 모두가 정규직 위주다. 사실상 우리의 노조 활동을 견제한 것이다.

회사에서 비정규직들의 사활이 걸린 연장근로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집회 때 연장 근로를 강제하지 말고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참가자 두 명을 지목해 앞으로 모든 연장근무를 하지 말라고 했다. 강제로 안 하려면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 직원 중 하나가 우리 조합을 탈퇴하게 되었다.

우리 노조의 간부 중 두 명은 회사에서 재계약을 해주지 않으려 해서 아예 일자리를 잃을 뻔했다. 비정규직들이 전체가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한 후에야 겨우 일터에 돌아올 수 있었다. 대놓고 조합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재계약은 없다는 말을 들은 사람도 있다. 각종 규칙을 입맛대로 적용해 무리하게 징계하려 한 사례는 말할 수도 없이 많다. 정당한 투쟁에도 생계 위협을 걱정해야 하니 노조 가입을 망설이는 사람들 역시 많다.

ⓒ연합뉴스

일부 정규직들 중 우리가 정당한 권리를 찾아가는 것에 대해 정규직이 받아야 할 몫을 떼어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권리를 찾는 것은 원래 받았어야 할 몫을 찾아온 것에 불과하다. 비정규직까지 복지 포인트를 주느라 정규직 몫이 줄어버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복지 포인트가 줄어든 것은 우정사업본부의 적자가 원인이지, 비정규직 때문이 아닌데도 말이다.

회사 내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이렇다 보니, 근거 없는 편견에 입각한 폭언을 듣는 경우도 많다. 조합원 중 한 명은 노래를 듣다가 어디 감히 회사에서 빨갱이 노래를 듣느냐는 황당한 말을 들었다. 그가 듣고 있었던 노래는 트로트 가수 주현미의 노래였다. 우리나라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주현미의 노래가, 단지 노조원이 들었다는 이유로 '빨갱이 노래'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차별과 탄압이 공공기관인 우편집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언론 인터뷰 등으로 외부에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때면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는 일이 많다. 하지만, 동서울우편집중국과 나아가 전국의 우편 비정규직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에서 솔선수범하기는커녕 차별을 자행하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은 공허한 외침으로 들릴 뿐이다.

얼마 전 우정사업본부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서 주관하는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15년 연속 1위를 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우리도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고객 만족'의 이면에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노동과 희생이 숨어있다. 휴대전화 도둑을 잡는 대신, 휘황찬란한 유리건물을 짓지 않고 단열성이 우수한 건물을 짓는 대신, 비정규직을 때린다. 동서울우편집중국의 노동자 700명 중 400명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행정공무원을 제외한 현장 노동자만 따지면 비정규직의 비중은 더 늘어난다. 대부분의 현장업무를 처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늘 동네북 신세다.

비정규직 노동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빨갱이, 공산주의 운운하며 매도하려는 이들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있다. 하지만 난 오히려 그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봉건제 신분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일을 열심히 잘하면 임금을 잘 받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 아닌가? 단언컨대 우편 업무의 생산성은 비정규직들이 훨씬 뛰어나다. 이는 우리 작업장을 하루만 구경해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1인당 처리하는 우편물의 양이 훨씬 많으며 숙련도도, 근로 의욕도 더 높다. 일을 더 잘하는데도 정규직에 입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금과 복리후생 면에서 막대한 차별을 받는다면 그것이 신라의 6두품이나 조선 시대의 서얼 차별과 무엇이 다른가 묻고 싶다.

정규직이 성골 귀족이나 양반이 아니듯이, 비정규직은 상민이나 노비가 아니다. 고용의 형태가 다를 뿐, 그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다. 그러나 우리는 회사의 만만한 먹잇감 취급을 받고 있다. 우편 업무의 1차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소모품 취급하며 근로 의욕을 낮춘다면, 고객 만족도 1위의 우편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기계에 들어가는 톱니바퀴도 녹슬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뻑뻑해지면 기름칠을 하는데, 사람은 지쳐 그만둘 때까지 혹사당하는 현실이 말이 되는가.

노조가 생긴 이후로 우정본부를 포함한 많은 단체에 호소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약속을 하지만, 실질적인 추진 의지 없이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방치하는 것은, 민간 기업에는 차별 허가증을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선거만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공허한 약속 대신 진정성 있고 내실 있는 개혁을 원한다.

2013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입상작 보기
▲ 노조 설립 반년 만에 34일 파업, 그리고 승리…비결은? / 티브로드
▲ 죽어라 일하고 80만 원, "누가 뭐래도 내 소원은 비정규직" / 식당 노동자
▲ "네가 말 잘못하면 감방 간다"더니 돌아온 건…/ 학교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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