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여전히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좋은 성적으로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 혹은 대학 재학 중이나 졸업 후 취직해서도 대출받은 학자금을 갚기 위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많다.
최근 들어 장학금 수혜 규모가 확대되고 대출 이자가 낮아지는 등 예전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장학 제도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 복지에 '종착점'이 없듯이 여전히 개선할 부분들이 남아 있다.
'복지 국가' 중 으뜸으로 꼽히는 노르웨이는 어떤 각도에서 평등한 교육에 접근하고 있을까? 노르웨이는 1인당 국민소득(GNI)이 2012년 기준 9만8860$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이다. (세계은행 세계개발지표, 상기 표기된 금액은 Atlas Method를 이용해 산출됨. 세계은행의 구매력평가지수를 이용해 산출된 1인당 국민총소득은 6만6960$이다.)
1950-1960년대 전후만 해도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가 없던 노르웨이가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된 데에는 1960년대 후반 북해 유전 발견 덕이다. 현재 석유 산업은 노르웨이 산업구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평등한 교육'에 대한 원대한 계획은 노르웨이가 유전을 발견하여 산업이 발달하기 전인 1947년에 시작됐다.
당시 노르웨이는 학생 복지 계획의 하나로 'Lånekassen(로네카센, 학자금 지원 기금)'을 조성해 첫해 2200명의 학생들에게 한화 약 6억 원에 해당하는 학자금을 지원했다. 현재는 2011-2012학년도 기준 한화 약 4조 원에 상당하는 금액이 학자금으로 지원되고 있다. 노르웨이 학자금 지원 기금의 중요한 핵심 역시 지원금 규모가 아닌 '모든 이가 지리(지역), 연령, 성별, 교육, 능력, 경제적·사회적 조건에 제약받지 않고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데 있다.
▲ 로네카센(Lånekassen) ⓒLånekassen |
우리나라에서 '학자금'이라 하면 학교에 내야 하는 등록금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노르웨이의 국립대학교에는 학비가 없다. 따라서 '학자금 지원'이라고 하면 대학 생활 동안 필요한 생활비 지원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노르웨이 사립대학교 학생 수는 전체의 15% 정도로, 우리나라 사립대학교와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15%는 노르웨이의 Norsk Samfunnsvitenskapelig datatjeneste의 통계에서 인용했다. http://dbh.nsd.uib.no/dbhvev/student/registrerte_rapport.cfm)
노르웨이는 부모의 경제 능력에 상관없이 고등교육을 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학자금 지원이 가능하다. 1년에 한화 1700만 원, 방학 기간인 6월과 7월을 제외한 총 10개월 동안 월평균 170만 원이 생활비로 지급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봄∙가을 학기가 시작되는 1월과 8월에는 교재 구입비, 집 보증금 등 340만 원 정도가 지급되고, 그 외 2월부터 5월, 9월부터 12월까지는 매달 130만 원 정도가 지급된다. 학부 과정이 3년, 대학원 과정이 2년인 노르웨이의 고등교육 과정을 고려할 때 일반 학부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3년 동안 총 5100만 원의 생활비를 정부에서 지원받는 셈이다. 이 중 40%(약 2040만 원)는 장학금으로 학생들이 추후에 정부에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금액이며, 나머지 60%(약 3060만 원)는 학생들이 취직을 한 후 상환을 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판단되는 시점부터 낮은 이자율로 상환이 요구된다.
장학금은 매 학기 학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30 ECTS(유럽 학점 시스템, 보통 1학기 3개의 정규 강의에 해당한다)를 이수한 학생에게만 해당하며, 30 ECTS 학점을 이수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대출금으로 남게 된다. 부모와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에도 장학금 수혜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지원 받은 금액은 100% 모두 대출금으로 간주된다. 또한 학생 본인의 수입 혹은 보유 재산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 장학금 비율은 줄고 대출금 비율은 늘어난다. 이는 학자금 상환 비율에 학생의 경제력이 고려되는 것으로, 여기에서 부모의 경제력(수입, 재산)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GNI가 높은 만큼 물가도 만만치 않아서 사실 로네카센에서 제공되는 학자금(생활비)가 넉넉하다고 볼 수는 없다. 기숙사 생활을 한다고 해도 한 달 평균 집세가 80만 원 정도이므로, 나머지 비용으로 식비, 교통비, 여가활동비 등을 모두 해결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는 학생이 있으며, 대부분은 여름방학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대학교 1~2학년 학생들은 전공 관련 인턴십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공에 상관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는 편이다. 노르웨이 최고의 공과대학인 NTNU(Norges teknisk-naturvitenskapelige universitet) 학생들도 1, 2학년 여름 방학 동안에는 정원사, 주유소, 전화 상담원 같은 아르바이트를 주로 한다.
노르웨이의 임금은 우리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성인 최저 시급이 2만2000원 정도이기 때문에 여름 방학 내내 8주 정도를 일하면 세전(稅前) 600만 원 넘게 벌 수 있다. 이렇게 여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저축한 돈과 로네카센에서 받은 돈으로 노르웨이의 평범한 학생들은 생활비를 충당한다.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으며, 학생들도 '부모는 부모, 나는 나', '대학생이면 이제 성인이고 내 생활은 내가 알아서 한다'와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 노르웨이 친구들에게 한국에서는 부모의 경제력이 대학 진학과 결혼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면 상당히 의아해한다.
▲ NTNU 대학교 본관 ⓒNTNU |
그렇다면 사립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떤 장학 혜택을 받을까. 물론, 로네카센은 사립대학교를 다니거나 해외에서 유학하는 학생에게도 학비를 지원한다. 노르웨이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의 사립대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생활비와 별도로 매년 1000만 원 정도가 지원된다. 하지만 '장학금'이 포함되지 않으므로, 지원금은 순수 '대출금'으로 간주돼 추후에 상환해야 한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립대학교인 한델스호이스쿨렌 BI(Handelshøyskolen BI, 경영대에 해당)은 1년 학비가 1300만 원이다. 이를 감안하면 지원금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300만 원 정도는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할 수 있다.
북유럽 이외의 국가에서 유학하는 경우에는 노르웨이에서 공부할 때와 마찬가지로 1년에 1700만 원의 생활비가 지원되며(40% 장학금, 60% 대출금, 30 ECTS 학점을 매 학기 이수하는 경우), 학비는 최고 연 2100만 원까지 지원된다(이 중 장학금은 최고 550만 원까지 지원, 나머지는 대출금이다).
대출금 상환 기간은 20년이며, 고등교육을 마친 7개월 이후 상환이 시작된다. 월 상환 금액은 본인의 경제력과 대출금의 규모에 따라 다르며 취직을 하지 못하였거나 다른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환 유예도 가능하다.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기간 동안에는 대출금에 이자가 전혀 붙지 않으며, 고등교육이 끝난 직후부터 이자가 계산된다. 그리하여 첫 상환금은 졸업 후 처음 7개월 동안 계산된 이자만을 납부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자신이 로네카센과 협의한 상환 계획대로 1년에 4차례씩 원금과 이자를 납부한다. 노르웨이 국립대학교에서 3년 동안 공부한 경우, 졸업 이듬해부터 20년 동안 1년에 네 차례씩 한 회에 54만 원 정도를 상환하면 된다. 2013년 기준으로 이자율은 2.6% 정도이다.
▲ 오슬로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 ⓒAftenposten, STEIN J. BJØRGE |
노르웨이는 부모의 경제력이 아닌 로네카센을 통해 모든 학생이 비슷한 경제력을 가지고 대학 생활을 하는 나라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경제적 제약 없이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주는 것이다. 비싼 사립대학을 가면서 부모에게 죄송해하는 학생도 없고, 경제력이 부족해서 가고 싶은 외국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도 보기 힘들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지원을 해주는 사회 복지 시스템에 대한 믿음과 부족한 경우 아르바이트로 충당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자리해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