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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울대 총장님, 이게 정녕 대학 맞습니까?

[기고] 김세균 '명예교수 임명 보류' 사태, 납득할 수 없다

오연천 총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정치학과 대학원생입니다. 새 학기를 맞아 법인 서울대 경영에 매진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쁘실 텐데 무척 실례가 많습니다. 그래도 꼭 한 가지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이렇게 편지를 남깁니다. 아직 학생인지라 경륜은 부족할지언정 진심을 담아 쓴 글이오니 사뿐히 지르밟아 넘기지 마시고 한 번쯤 꼭 읽어봐 주시길 간곡히 청해 올리는 바입니다.

며칠 전, '희망버스'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정치학과 김세균 교수의 명예교수 임명이 보류됐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2011년 6월, 김세균 교수는 시민들과 함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동승하여 35m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 중이던 김진숙 씨를 만나기 위해 부산 영도조선소에 들어가 집회를 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이를 이유로 교과부가 견책 징계를 내린 것이 서울대 명예교수 탈락의 이유더군요.

▲ 김세균 교수는 실천적 지성으로 살아왔다. 사진은 2008년 2월 18일 '한미FTA 비준 동의안 처리 반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모습. ⓒ뉴시스
자초지종이 궁금하여 조금 더 살펴보니, 교과부는 "23년간 교수로서 성실히 근무한 점을 참작하더라도" 김세균 교수의 "행위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고, 서울대는 "재직 기간 중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거나 사회적·윤리적 물의를 일으켜 학교나 교수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킨 사실이 있다고 인정된 때에는 명예교수 추대를 하지 아니할 수 있어 명예교수 심사 대상에서 김 전 교수를 배제했다"고 합니다.

총장님. "대학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내고 이에 대한 해답을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곳입니다." 지난주 2013학년도 서울대 입학식장에서 총장님이 하셨던 말씀입니다. 하여,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김세균 교수의 용납될 수 없는 행위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김세균 교수가 크게 손상시킨 서울대의 명예는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혹시 이번 명예교수 임명 보류 결정이야말로 서울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느 곳에서든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월 26일 있었던 제67회 졸업식에서 총장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지난주 월요일 입학식장에선 또 이렇게 말씀하셨죠. "서울대는 참다운 휴머니즘을 가꾸어 사회 공동체 전반에 대한 관심과 헌신을 중시하는, 그리하여 세상의 어두운 곳을 두루 살펴 보듬을 줄 아는 참된 인재를 육성하고자 한다." 불과 한 주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총장님, 기억나시죠?

총장님의 말씀에 정확히 부합하는 실천적 지성을 한평생 가꿔온 김세균 교수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희망과 연대한 죄'입니다. 공공성의 철저한 상실로 인해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으로 점철된 날것 그대로의 천박함만이 지배하고 있는 이 미친 세상 속에서, 지식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능인만이 판치는 캠퍼스에서, 그저 한 줌의 희망이나마 건져내보고자 거리의 낮고 궂은 자리를 데우는 데 연대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 죄라면 그는 분명 유죄입니다.

그러나 총장님. 대학의 진정한 명예를 담보하는 것은 산적한 사회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 섬세하고 진지한 문제의식과 이에 기반을 둔 단호하고 지속적인 실천과 연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공공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정직한 분노를 공유한 공동체일 따름입니다. 오늘날 서울대에 한 줌의 명예나마 남아 있다면 그 또한 과거 우리 사회 민주화에 헌신했던 김세균 교수를 비롯한 무수한 선학들에게 많은 부분 빚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총장님. 우리 사회 그늘진 곳을 누비며 '희망과 연대한 죄'를 물어 23년간 헌신해온 노교수의 명예를 짓밟는 곳이 대학이라면, 그 참혹한 폐허에선 단 1g의 희망도, 서푼짜리 명예도 움틀 수 없습니다. 단언컨대 그곳은 더 이상 대학일 수 없습니다. "부디 배움의 터전에서 더 이상 야수의 발톱이 자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십시오." 정년퇴임식장에서 이 말을 끝으로 47년간 몸담은 서울대를 떠난 국문과 권두환 교수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과연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요컨대, 김세균 교수의 명예교수 임명 보류 사태는 우리에게 긴박하고도 엄중한 질문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김세균 교수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문제일 수 없습니다. 대학과 지식인의 사회 참여 자체를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후학들의 문제의식을 현저히 왜곡시킬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감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장님과 대학 당국이 생각하는 명예란 무엇입니까? 지식인과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지금 여기 우리 앞에 놓인 이게 정녕 대학이란 말입니까?

'실천적 지성' 김세균 교수가 손상시킨 서울대의 명예가 대체 무엇입니까

물론, 어쩌면 한편으로 총장님께서는 조금은 억울하다고 느끼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세균 교수의 탈락이 '명예교수 후보 추천 과정에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서울대 행정당국의 앙증맞고도 궁색한 해명 뒤로 숨고 싶으신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비록 이번 문제에 대한 여론의 질타를 이기지 못해 뒤늦게 밝힌 것일지언정, 서울대 측이 "정치학과가 다음 학기에 김 전 교수의 명예교수 수여를 요청하면 징계 사실을 고려해 다시 심사할 수 있다"고 밝혔으니 이제 할 만큼은 다 한 것 아니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총장님.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교과부로부터 '자율성' 확보야말로 2011년 서울대 법인화 강행 추진의 가장 큰 명분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교과부 견책 결정의 부당함을 지적하지는 못할망정, 모교에서 23년간 봉직해온 노교수의 명예교수 임명마저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법인 서울대'의 현주소라면, 총장님이 말씀하셨던 그 자율성은 대체 누구를 위한 어떤 자율성이란 말입니까? 혹시라도 이번 결정이, 서울대 법인화에 끝까지 반대하여 교육 공무원 신분을 유지해온 김세균 교수에 대한 징벌적 차원의 '자율적' 조치는 아닐 것이라 믿고 싶을 따름입니다.

총장님. 김세균 교수를 비롯한 시민들의 희망버스 운동과 한진중공업 관련 국회 청문회에도 불구하고 김진숙 씨는 무려 309일간 하늘 위에서 매일같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든 끝에야 한진중공업 사측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 자본과 노동의 역관계란 이토록 압도적인 불균형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김세균 교수와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탔던 것은 이러한 부조리에 맞서 최소한의 균형을 확보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자 함이었습니다. 만약 이런 움직임이 없었다면 이는 또 다른 참사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김진숙 씨가 고공 크레인 위에서 내려온 이후 한진중공업 사측은 노조를 상대로 158억 원이란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이는 결국 일련의 과정에 절망한 젊은 노동자 최강서(35) 씨가 목숨을 끊는 참극으로 귀결되기도 했습니다.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을 요구하는 사측의 횡포는 그를 자살이란 강요된 선택으로 내몰았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서른다섯의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 최강서 씨는 유서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어내려 갔습니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총장님. 지금,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김세균 교수가 연대하고 소통하려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우리 사회 약자들의 갈 곳 잃은 절망과 분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검찰과 교과부는 '기소'와 '징계'란 칼을 휘두르며 한사코 이러한 소통과 연대를 가로막아왔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이 한심한 행렬에 서울대가 연대하려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연대의 대상과 지향을 다시 한 번 재고해 주시길 정중히 청합니다. 모두 입만 열면 '소통'을 말하는 이 시절, 대학이 우리 사회 약자들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길을 꿈꾸는 것은 정녕 그저 철부지의 미몽에 불과한 일입니까?

총장님.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미 하늘에 올라 있거나 다시금 오르고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 목숨을 건 고공 농성이라도 하지 않는 한 세상 그 누구도 그들의 참담한 심정과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하루하루의 고단한 삶에 지친 시민들은 노동자들의 마지막 몸부림마저 외면하기 십상인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김세균 교수가 일생 동안 궁구해 온 실천적 지혜는 바로 이처럼 난마처럼 얽힌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를 정조준하여 왔습니다. 이런 김세균 교수에 대한 명예교수 임명은 서울대가 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황량한 캠퍼스…이 매끈한 침묵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총장님. 매순간 '멘붕'을 강요하는 이 미친 세상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입에 발린 얘기들은 도처에 넘쳐나지만 도대체 어떤 시스템이 우리를 이토록 아프게 하는지 그리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얘기해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진짜 멘토들은 가히 멸종 위기인 것이 오늘의 대학입니다. 매순간 육박해오는 우리 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에 응답하려는 치열한 학문적 긴장감과 열정을 대학에서 찾아보기 몹시 어려워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김세균 교수가 떠나가는 대학의 풍경은 이토록 황량합니다.

그럼에도 캠퍼스는 어김없이 조용합니다. 언제나 너무도 바쁘지만 여전히 조용합니다. 저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도, 연쇄 자살도 그저 다른 세상의 얘기일 뿐입니다. 저는 이 시공간의 미려한 고요함에 숨이 막힙니다. 이 매끈한 침묵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잡문이나마 끄적거리며 조약돌이라도 던져보려 하는 건 아마도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김세균 교수의 명예교수 임명 보류 소식에 쓰라려하며 총장님께 이 무례한 편지를 쓰고 있는 건 제 용기의 발로이기 이전에 저를 짓누르는 두려움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릅니다. 대학의 침묵은 대학에 대한 외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1월 29일, 김세균 교수는 서울대 교수로서 마지막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개 정년퇴임 교수의 마지막 수업은 성대한 공개 고별 특강 형식을 취하곤 합니다. 그러나 김세균 교수는 이 또한 허례허식에 불과하다는 평소 지론에 따라 그 흔한 공개 퇴임 강연 마저 사양했습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제자들이 건네준 꽃다발을 안아든 김세균 교수는 이내 환하게 미소 지으며 꽃다발에서 한 송이씩 꽃을 뽑아 학생들에게 던져주며 23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총장님.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소박하지만 단단한 도도함이 무엇인지 보여준 김세균 교수, 그의 이름 석 자 앞에 '명예교수'라는 최소한의 예우가 하루속히 함께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동시에, 이번 문제의 해결 과정을 통하여 김세균 교수의 사회 참여를 억압해 온 검찰과 교과부 측은 물론, 모든 정년퇴임 교수에게 부여해왔던 훈장 수여마저 누락했던 정부 측에 대한 합당한 문제 제기가 자율적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직 그 길만이 서울대와 '대학'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지난 2월 28일 권두환 교수가 남긴 정년퇴임식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 주시길 간곡히 청하면서 긴 편지를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배움의 터전에서 더 이상 야수의 발톱이 자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십시오."

2013년 3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박천우 올림

▲ 서울대학교(자료 사진). ⓒ연합뉴스

추신 : 총장님이 발행하는 <대학신문>에서 게재를 거부했습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애초 이 글의 축약본을 서울대 교내 <대학신문>에 투고할 예정이었습니다. 김세균 교수에 대한 명예교수 임명 보류 사태는 전 사회적 이슈이기 이전에 1차적으로 교내 사안임이 분명하기에 교내 공론장을 통한 문제 제기가 적실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외부 매체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서울대 교내 공론장의 역량이 아직은 이 정도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게재 지면 확정 확답을 받은 후 글을 투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학신문> 측은 전격적으로 이 글의 게재 불허를 통보해 왔습니다. <대학신문> 편집장에 따르면 게재 불허 통보의 이유는 제 글이 "편지글 형식인데다 무엇보다도, '진지한 비판'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총장님께서 발행인으로 계시는 <대학신문>에서 총장님을 거명하며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다시금, "이게 대학인가?"란 질문을 하염없이 되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컨대, 아무쪼록 총장님께서는 <대학신문> 측의 참신하면서도 왜소한 판단에 함몰되지 않는 경륜을 발휘하시어, 이 글을 '진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주시길 재차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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