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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8조 원 투자' 발표에 담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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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8조 원 투자' 발표에 담긴 비밀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2세대 차량을 둘러싼 물량 경쟁

D2SC. 이건 GM이 개발 중인 어떤 신차의 개발명, 일종의 코드네임이다. GM이 신차에 붙이는 코드네임의 네 글자는 각각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뭐, 아주 어려운 방식으로 붙여놓은 것은 아니니 지금부터 간단하게 암호 해독을 해보도록 하자.

맨 앞 글자는 차량 설계의 뼈대가 되는 플랫폼 명칭으로 'D'는 델타 플랫폼을 의미한다. GM이 개발한 델타 플랫폼은 우리가 흔히 '준중형'이라 부르는 차급(아반떼, 포르테 등)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숫자는 이 플랫폼의 '세대명'을 뜻하는데 '2'는 델타 플랫폼의 2세대를 뜻한다.

세 번째 글자는 차량의 형태를 말하는 것인데 'S'는 세단을 뜻하는 단어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글자는 출시되는 브랜드명으로서 'C'는 쉐보레(Chevrolet)의 머리글자이다. 따라서 'D2SC'란 GM의 델타 플랫폼에서 설계된 2세대 세단 승용차로서 쉐보레 브랜드로 나올 차량, 즉 '차세대 쉐보레 크루즈'를 말한다.

2세대 'XX'

하지만 완성차업체가 자신이 개발 중인 차량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는 일은 거의 없다. 디자인 하나라도 새 나갈까봐 보안에 만전을 기한다. 차세대 크루즈 역시 처음에는 'D2XX'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뒤의 'XX'라는 자리에 어떤 코드네임이 붙을지 미지수(X)로 남겨놓은 채.

이와 유사하게 GM이 개발 중인 차명 중에는 'G2XX' 혹은 'E2XX'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감마 플랫폼 기반에서 개발 중인 2세대 차량, 엡실론 플랫폼 기반에서 개발되는 2세대 차량이라는 뜻이다. 세단 형인지 해치백인지 크로스오버(SUV)인지, 혹은 쉐보레 브랜드인지 아니면 오펠이나 뷰익, 캐딜락 브랜드인지는 알려지지 않은 차량들이다.

그나마 앞에 붙은 'D2', 'G2', 'E2' 등의 이름으로 이들 신차의 차급(세그먼트)을 예상할 수 있고, '2세대'라는 명칭을 통해 앞선 1세대 차량에서 파생된 신차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GM감마 플랫폼의 대표적인 차종은 쉐보레 아베오와 트랙스이다. 따라서 'G2XX'라 하면 해치백의 경우 아베오와 유사한 차량, SUV의 경우 트랙스와 유사한 차량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GM은 'XX'라는 말을 일종의 유행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지난달 22일 한국GM 부평공장을 찾은 GM 해외사업본부 사장 팀 리는 직원들에게 경영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GMK 20XX'. 한국GM(GM Korea)의 21세기 전망, 뭐 이런 의미로 붙였다고 봐야 할까?

한국GM의 전망?

그런데 팀 리 사장의 경영 설명회는 어두운 내용으로 채워졌다. 언론들은 곧바로 "향후 5년간 8조 원 투자" 등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것처럼 대서특필을 해댔지만, 대부분 완성차업계의 현실이나 GM 자본의 속성과 최근 행보를 잘 모르고 쓴 기사들이었다.

8조 원이 엄청난 규모의 투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GM은 매년 1조~1조2000억 원가량을 한국GM 유지를 위해 지출해왔다. 여기에는 설비 유지와 회사 운영을 위한 제반 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지출한 비용을 제하고 나면 2조 가량 투자가 늘어나는데, 이 정도 비용이면 신차와 파워트레인 2~3종 개발에 소요되는 수준이다. 8조 원의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았는데 한국 언론들만 GM을 앞다투어 찬양해준 꼴이다.

다만 팀 리 사장과 한국GM 호샤 사장이 구체적으로 밝힌 내용이 몇 가지 있는데, 각 공장별로 향후 어떤 차종을 투입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 차세대 크루즈 생산에서 제외된 군산공장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군산공장에는 차세대 캡티바를 투입하기로 확정했습니다."

어라? 캡티바는 현재 부평 2공장에서 생산 중인 차량인데? 그럼 부평 2공장에 후속 차종은 뭐가 있다는 거지?

"대신 부평 2공장에서는 현재 LG와 공동 개발 중인 전기차를 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어안이 벙벙….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거지? 따져 물을 겨를도 없이 설명은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창원공장에서는 차세대 경차가, 부평공장에서는 차세대 감마와 차세대 엡실론 차가 생산될 것입니다." 이 얘기들이 '5년간 8조 원 투자'와 어우러지며 장밋빛 미래처럼 데코레이션(치장)이 얹어졌다.

심지어 차세대 크루즈 생산에서 제외된다는 결정으로 미국 GM본사 직접 방문 등 원정 투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군산시와 지역단체들은, 차세대 캡티바가 군산공장으로 올 것이라는 발표가 나오자 시내 곳곳에 "환영" 플래카드를 내걸고 축제와 파티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 한국GM 차량을 애용하자는 내용의 플래카드. ⓒ오민규

파티를 벌일 때가 전혀 아닌데…

오히려 정반대이다. 경영 설명회 내용은 한국GM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실 이번 경영 설명회는 팀 리 사장의 한국 방문 세리머니 비슷하게 치러진 것이어서, 외형적으로는 뭔가 대단한 투자를 벌일 것처럼 포장만 해놓았을 뿐, 그 뒤부터 한국GM의 호샤 사장은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의 생산 비용이 상승했다"며 구조조정 가능성을 매우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아래 그림은 이번 경영 설명회에서 팀 리와 호샤 사장이 내뱉은 말들을 토대로, 2015~2016년 한국GM 각 공장별 생산 모델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현재와 비교해본 것이다. '차종 및 생산 비중' 항목에는 각 차종이 개별 공장에서 차지하는 생산의 비중을 함께 표현했다. 이를테면 "스파크(92.3%)"라고 적힌 대목은, 창원공장 전체 생산량 중 스파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92.3%라는 의미로 읽으면 된다(생산 비중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2개월간의 생산량을 합산한 수치를 기준으로 삼았음).

ⓒ오민규

시각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머지않은 미래에 단종(생산 중단)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모델은 붉은색, 차세대 신차 모델은 푸른색, 신차가 아니라 현재 모델을 부분 변경하는 방식으로 이어갈 차량은 회색 박스로 표현해 보았다. 회색 박스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량이 줄어들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놀랍게도 각 공장별로 푸른색과 붉은색 박스가 꼭 하나씩 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어느 공장이건 차세대 신차 1종을 배정받았고, 반대로 기존 차종 중 하나씩은 예외 없이 조만간 생산이 중단된다는 것이다. 그 외의 다른 차종들은 모조리 회색에 해당한다.

좋게 표현해 보자면, 공장별로 신차 하나씩 배정해서 이걸로 먹고살라는 얘기이다. 그래서인지 공장별로 플랫폼도 겹치지 않게 배정해 놓았다. 창원공장은 경차 플랫폼, 군산공장은 델타 플랫폼, 부평 1공장은 감마 플랫폼, 부평 2공장은 엡실론 플랫폼으로 특화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에 불과하다. 각 공장에서 생산 비중이 높은 차종과 향후 투입될 차세대 신차가 꼭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창원공장과 군산공장의 경우, 현재 생산되는 주력 차종(스파크, 크루즈)과 향후 투입될 신차들의 플랫폼이 일치한다.

하지만 부평 1, 2공장의 경우 주력 차종(트랙스, 캡티바)과 향후 투입될 신차(감마, 엡실론)가 일치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평 2공장은 생산량의 무려 2/3를 차지하는 캡티바가 군산으로 옮겨가는 반면, 현재 생산량의 30% 수준인 말리부 후속 신차가 투입되는 것에 불과하다. 중형차인 말리부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부평 2공장의 미래 역시 상당히 불투명해진다.

여기서만 그쳐도 다행?

상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군산공장으로 투입될 예정인 차세대 캡티바 역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GM은 최근 감마 플랫폼에서 쉐보레 트랙스(오펠 모카)를 출시하기 전까지는 주로 SUV 부문에서는 '쎄타' 플랫폼을 활용해 차량을 설계해왔다. 쎄타 플랫폼에 기반한 대표적 차량이 쉐보레 캡티바와 쉐보레 에퀴녹스(Equinox)이다.

쎄타 플랫폼은 델타 플랫폼보다 약간 긴 편이어서, SUV 개발 시 5인승으로도 7인승으로도 설계가 가능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점이 바로 단점이 되는데, 세그먼트 자체가 너무 애매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소형 SUV나 중형 SUV로 특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도저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GM은 최근 글로벌 플랫폼 통합 작업을 진행하면서, 과감하게 쎄타 플랫폼에 기반을 둔 SUV 차량을 델타 플랫폼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쉐보레 캡티바와 에퀴녹스 모두 개발명의 앞 두 글자가 'D2'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간단히 말해 소형 SUV로 특화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그동안 쎄타 플랫폼에 기반을 둔 SUV의 글로벌 차량 대표 주자는 캡티바가 담당해왔다. 에퀴녹스는 미국에서 80%가 판매되는 등 오직 북미에서만 판매될 뿐이었다. 반대로 캡티바는 미국에서 거의 구경할 수 없는 차였다. 한국의 6밴과 유사한 택시회사용 차량이나 렌트카 용도로 쓰일 뿐이었다.

그런데 GM이 플랫폼을 델타로 옮기면서 글로벌 전략을 바꾸었다. 앞으로 델타 플랫폼에 기반을 둔 SUV의 글로벌 대표 차량 역할은 에퀴녹스가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캡티바의 자리를 에퀴녹스가 꿰차게 되므로, 군산공장으로 온다는 차세대 캡티바의 지위는 과거보다 상당히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미 잔업과 특근이 거의 사라진 군산공장의 미래 역시 많은 물음표에 둘러싸이게 된다는 얘기이다.

정비(A/S)와 CKD 외주화까지

GM이 준비한 "GMK 20XX"에는 직접 생산 라인만이 아니라 다른 부문에 대한 외주화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다. 정비(A/S) 부문 시설이 노후하고 비용이 많이 드니까 외주화하는 것이 좋겠다, CKD 부문 역시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소싱(Sourcing)에 변화를 주는 것이 좋겠다 등. 결국은 모두 외주화(Outsourcing)하겠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그동안 언론 노출을 즐기지 않았던 한국GM 측은, 최근에만 (각각 별도의 사안으로) 기자 간담회를 3차례나 진행했으며,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팀 리 사장의 경영 설명회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임금 소송'이 비용 압박 요인이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한국 제조업 노동자들이 집단 소송으로 제기해온 '통상임금 소송'을 의미한다. 대법원에서도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는 판례를 확고하게 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상임금 소송이 어디 한국GM만의 문제인가? 제조업 노동자들, 특히 정기 상여금을 오랜 기간 받아온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해당되는 문제이다. 그래서 팀 리 사장 역시 이것이 한국GM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은근슬쩍 이런 얘기를 던진다. "회사와 노동조합, 한국 정부가 잘 협력해야 한다."

어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세계 각국에서 신차 물량과 현지 공장의 미래를 담보물로 해서, 각국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온 GM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심상치 않은 메시지이다. 한국GM의 미래를 판돈으로 해서 무슨 일을 벌이겠다는 것인지?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한국GM의 문제는 다른 기업 노동자들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쳐다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만간 박근혜 정부가 제조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무슨 개혁을 하자고 나올 것인지를 지켜보면, 그 답은 의외로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내 하도급법 제정, 탄력적 노동 시간제 확대, 노동시간 계좌제, 임금 삭감 수반하는 노동시간 단축….

지난주부터 현대기아차는 주간 연속 2교대를 본격적으로 시행했고, 한국GM 역시 이번 주부터 2주 동안 주간 연속 2교대 시범 실시를 진행한다. 엄밀히 말하면 '주간 연속 2교대'는 심야 노동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만이 아니라, 이러한 물량 경쟁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노동자들의 열망을 담고 있었다. 노동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노동자들 스스로 통제하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생산량 만회 문제는 신규 공장 설립과 실업자 신규 채용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기아차의 해결 방식으로 신규 공장 건설과 실업자 신규 채용이 아니라 노동 강도를 높여 단축된 노동시간 안에 기존 생산 물량을 모두 만들어주고 그 대신 기존 임금 수준을 보전받는 방식이 선택되었다. 물론 노동시간을 줄였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물량 경쟁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노동시간 단축과 월급제를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가야 한다. "D2XX", "G2XX", "M2XX" 등에 집착하다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 "GMK 20XX" 저 XX 자리에 들어갈 두 자릿수가 뭘 의미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보통의 회사들은 'Vision 2010' 등 어떤 목표치를 정해놓고 그것을 몇 년 안에 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어놓지, 숫자 자체를 미지수로 남겨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XX' 그 숫자의 해까지만 영업을 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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