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차이를 통해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에 각국이 어떻게 임하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문제가 문제로 진지하게 다루어지며, 올바른 해결방안을 위해 주력하는 자세도 선진국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일 것이다.
고통만을 경험했을 세살배기 꼬마의 생애
태어날 때부터 짧은 생애를 비극적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공포와 단말마적인 고통, 비명과 절망만을 몸서리쳐지게 알았을 세 살짜리 아이는 차디찬 겨울 아버지라는 작자의 폭력에 희생되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곳은 미국의 할렘가나 남아시아의 슬럼가가 아니었다. 부국들의 모임이라는 OECD 회원국,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은 공중파 뉴스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으며, 단지 일간지의 귀퉁이를 초라하게 장식했을 뿐이다.
세 살배기 꼬마를 살해할 만한 이유를 찾는 것 자체가 전적으로 무의미하지만, 경찰 발표에 따르면 피해자와 부자관계를 맺고 있었던 남자는 아이가 자신과 피가 섞인 친아들이 아닐 것 같다는 추측을 빙자해서 습관적으로 아이를 두들겨 팬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웠던 순간에 생모도 아동학대를 막을 조력자로 나서지 못했고 오히려 남자가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그녀는 또 다른 생명을 잉태 중이라는 이유로 구속되지 않고 남은 아이들 곁에 있다.
흡사 기르던 개 한 마리를 때려서 죽인 후 건성으로 사체를 처리하는 것처럼, 부모라는 작자들은 아이가 비명횡사한 뒤 한 달이나 집에 방치시키다가 두 장의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차디찬 공사장에 내다버렸다. 우연히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어서 체포된 이후에도, 부모들은 별다른 반성의 기미를 나타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영국과 한국의 차이, 아동학대에 대응하는 방식
이 사건에 대한 대응방식은 소위 선진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선진국에서도 아동들이 가정폭력이나 교통사고, 성범죄 등으로 인해 숨지는 경우가 있다. 충격적인 아동학대의 실상을 들여다볼 대표적인 사건이 몇 년 전 영국을 들쑤셨던 피터의 죽음이다.
온라인 채팅과 섹슈얼리티에 중독돼 있던 피터의 생모와 동거하던 형제들이 피터를 숱하게 학대해서 결국 숨지게 한 사건이다. 피터의 어머니는 학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폭행을 말리면 파트너가 자신을 떠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사건을 못 본 체하며 경찰이나 사회복지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해자가 피터의 턱을 때려 커다랗게 멍이 들자, 사회복지사가 아동의 건강상태를 살피러 방문할 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턱에 잔뜩 묻혀서 폭행사실을 교묘하게 위장하기도 했다. 죽어서 발견된 피터의 온몸은 형언할 수 없는 극심한 상처로 얼룩져 있었으며 특히 머리 곳곳에 깊은 외상이 즐비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전 영국이 요동치게 들끓었으며 황색언론을 포함한 전 영국의 미디어가 연일 피터의 사망사건에 상당량을 할애하며 헤드라인으로 장식했다. 영국인들은 아이를 직접 때려서 살해한 형제에게만 분노하지 않았다. 아이가 학대를 당할 때 가장 직접적으로 폭행을 막을 수 있었던 의무를 도외시한 채, 채팅에 심취했던 어머니를 가해자들과 차이 없이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관련자들이 인신공격을 받아서 자살충동을 느낄 만큼 가혹하게 내몰렸다. 피터를 보호할 책임이 할당된 사회복지사들과 보건의 등이 줄줄이 사임해야 했다. 법정판결에서도 피터를 직접 폭행해서 숨지게 한 형제뿐만 아니라 피터의 생모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영국정부는 사건 이후, 학대가 우려되는 아이들을 집중 관리해서 더 이상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공언했다.
아무도 추모하지 않는 아이의 불행한 죽음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디어의 무관심으로 인해 이 사건은 충분히 이슈로 부상하지 않은 채 묻혔다. 아이의 충격적인 죽음 이후 법정구속된 이는 유일하게 아이의 생부뿐이다. 어느 누구도 징계를 당하거나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피해자에게는 어떠한 존엄성과 인권도 없다는 듯, 아이를 위한 추모행사뿐만 아니라 장례식도 숫제 열리지 않았다.
지난달 이 기사를 접한 후 한동안 충격과 악몽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고문실 같은 음침한 방에서 날마다 처절하게 학대를 당했을 어린아이의 고통을 생각하니, 부채감으로 온전히 잠을 이루기조차 어려웠다. 아이가 생사를 다투며 매일매일 고통으로 으깨지며 절규했을 그 무수한 밤에, 나를 비롯한 우리들은 왜 그 아이를 진작 지켜주지 못했을지 하는 생각은 쓰디쓴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지나가다 무심코 넘어져도 쓰린 마당에,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작디작은 아이를 폭행했을 때 얼마나 아프고 외로우며 서러웠을까. 앙증맞은 여린 몸으로 혼자 고문을 감당했을 아이의 고통은 왜 3년이나 그치지 않고 이어졌을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단 그 아이의 위령제라도 소박하게 열어주자는 결심을 품었다. 경찰서를 비롯한 여러 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이의 거주지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소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 숨진 아이가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 거주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건이 보도된 지 3일이 지날 무렵 화양동주민센터를 찾았다. 역시 주민센터 어디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것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실무자들과 협의를 거친 후 주민센터 귀퉁이에 아이를 위한 추모의 자리를 조촐하게 마련했다. 인형 두 개, 아이가 먹을 만한 부드러운 빵 한두 개, 귀여운 캐릭터가 박힌 사탕과 초콜릿, 국화꽃 한 다발, 이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한 지인들이 읊조리며 썼던 글이 담긴 카드 몇 장을 방명록과 함께 정성스레 놓았다.
주민센터는 죽은 아이의 이름과 주소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우려한 바대로 장례식이 치러지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 비참하게 숨진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은 고작 생부를 철창 안에 가두어놓는 것 말고는 부재했다. 다만, 구청과 협의해서 조만간 장례절차가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 ⓒ박정준 |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장례식
이런저런 신산스러운 일들로 분주했던 일정을 뒤로 한 채, 3월 18일 다시금 화양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주민센터를 다시 들른 첫째 이유는, 위령제를 하기 위해 놔두었던 여러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보다 예정대로 아이의 장례식이 무사히 잘 치러져서 영령이 잘 쉬고 있는지, 아이를 학대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던 부모들에 대한 처벌과 교화상담은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꼬박 1주일 동안 놔두었다"는 것치고는 방명록에 글을 남긴 사람들이 몇 명 되지 않아서 아이에 대한 무관심을 씁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일찍이 아이가 숨진 장소 근처에 위패라도 설치하자던 안이 부동산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불발에 그쳤다는 까칠한 인심까지 회상되었다.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주민센터 담당자가 아직 아이의 장례 진행여부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 아이의 영은 어디에서 쓸쓸하게 한을 품으며 떠돌고 있을까 생각하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적어도 상황은 2월 중순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더더욱 아이의 죽음이 깊은 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암담함뿐이었다.
아이가 살았던 동네는 소수의 부동산부자들과 극빈층들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곳이라고 한다. 아동학대가 빈민층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섣부르고 위험한 편견일 것이다. 이 사건을 아버지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과도하게 연관 짓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이 사건 말고도, 한국에서는 아동들이 부모라는 사람들에 의해 학대를 당하다가 급기야 사망에 이르렀던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아직 한국에서는 아이의 생명권이 성인과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는지, 자식을 숨지게 한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비교적 단기형을 선고받기 일쑤라고 한다. 이들은 석방된 이후에도 또 다시 자식이나 아내를 학대하는 경향이 농후하다고 알려져 있다.
스웨덴에서는 아이의 행복이 우연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주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해서 아이의 건강과 발육상태뿐만 아니라, 성적학대를 포함해서 아이들이 행여 학대를 당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점검한다. 게다가, 의료진에서부터 교사, 이웃은 아동학대를 발견한 즉시 경찰서를 비롯한 관할당국에 신고하도록 의무로 지정되어 있다.
만일, 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심각한 학대 성향을 보일 경우, 아이는 사회적인 개입으로 부모와 격리되어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다. 피해아동들은 일차적으로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상담사와 지속적인 의논을 거치며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지, 새로운 가구로 입양을 원하는지, 아니면 사회복지사들과 공동체가구 형태로 거주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만일 아이가 부모의 집으로 복귀하겠다고 결정할 경우, 아이는 특별보호관리대상이 되어서 더욱 면밀하게 학대여부를 관찰받게 된다.
스웨덴에서는 아이의 행복이 우연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설령 아이가 문제가 다분한 집에서 성장하더라도,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으로 최악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끈다. 가정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개입이 실시된 데는, 개인의 인권을 지키는 것은 개인들뿐만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에 닿아 있다.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폭력으로 숨질 경우, 전국 각지에서 아이가 희생된 장소 근처에 임시로 추모장소를 설치한 뒤 헌화하거나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카드를 수놓으며 연대와 추모의 마음을 공유한다.
한국에도 아이를 지킬 제도가 있었다면
만일, 우리도 위험한 부모로부터 학대어린이를 떼어놓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수시로 학대의심 아동들을 방문해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인력이 있었다면, 그 아이는 지금 어딘가에서 해맑게 웃으며 뛰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정부는 학대받는 아이의 문제를 더 이상 각 가정의 일에 맡기는 작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아이 돌봄은 가정과 사회가 함께 키워내는 공동의 책무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부모로부터 속절없이 매를 맞으며 마음과 몸이 참혹하게 멍들고 있을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우선 국가가 막아내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더불어, 죽은 아이의 형제들이 지금도 살고 있을 화양동의 단칸방에 사회의 관심을 쏟아야 한다. 학대를 방관했던 어머니의 개과천선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맡기는 태도부터 지양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죽은 아동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아동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묘안을 짜야 한다.
덧붙임 : 죽은 아이의 장례식 여부는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광진구청의 사례관리자는 "개인보호를 지켜야 하는 의무뿐만 아니라 사망 관련 정보는 열람불가"라는 이유로 장례식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다. 죽은 아이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는지 알고 싶은 민원자의 '사적인' 요구사항을 풀어줄 책임이 자신들에게 없다며, 개인적으로 알아서 가해어머니와 만나서 장례식을 열었는지 알아보라고 윽박질렀다. 담당 공무원의 "개인정보 으뜸" 태도는, 왜 아이의 죽음이 이처럼 무관심 속에 묻히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알려주는 현주소 같다. 이미 아기는 죽었고 생부는 철창에 갇혀 있다. 폭행으로 숨진 아이의 장례식이 열렸는지 여부가 왜 비밀에 속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아기의 죽음으로 인해 아무 것도 개선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죽은 아이는 살아있는 자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가리기 위한 비밀로 사라지고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이 사건의 피의자는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피의자의 가까운 지인이라는 이는 <프레시안>에 전화를 걸어와 "이미 아이의 장례식을 치뤘고 화장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알려진 것과 사실관계는 다르다"며 "재판이 끝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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