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여름을 재촉하는 어느 날, <우리 안의 우주>(닐 투록 지음, 이강환 옮김, 시공사 펴냄)의 두꺼운 책 표지를 넘기면서 대뜸 만나는 몇 개의 사진들 때문에 내용으로 들어가는 길을 홀랑 잃어버렸다. 사진들의 미로를 지나 만난 '들어가는 글'에서 지은이인 이론물리학자 닐 투록은 그의 책이 학술서적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저 물리학의 몇몇 주요 아이디어를 설명할 것이라고, 균형 잡힌 역사를 전달하거나 중요성에 따라 적절히 배분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주는 이해할 만하다"라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한다.
▲ <우리 안의 우주>(닐 투록 지음, 이강환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
놀랍게 설득력이 있는 그의 화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물리학의 다양한 장(場)으로 유영하게 만든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의 다음을 기다리게 한다. 그러면서 우주와 그에 대해 기술하는 과학, 그리고 과학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려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수학 시간에 한번쯤 들어봤던 피타고라스를 위시하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수학자들의 이름이 난무하는 가운데, 18세기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불쑥 나선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우주, 그리고 과학의 이상적인 모습을 설파하고 있다. "과학에 대한 열정을 마음껏 충족시켜라. 그러나 과학을 인간의 행동과 사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인간적으로 만들어라." 투록은 이렇게 흄을 인용하며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과학과 사회의 분리는 위험하다. 특히 당신이 과학을 일반적이고 개방적이고, 관대하고,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독단적 주장에 반대하고 불확실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과학은 여러 면에서 사회의 모범이 된다."
이야기 시작부터 냉큼 정해놓았던, 이 책은 학술서적이 아니라는 그의 약속은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색이 바래진다. 물리학 교과서에 적힌 물리학자란 물리학자들의 이름들은 다 들먹인다. 고대의 철학자, 수학자들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중세 천문학자들로부터 현대의 첨단 이론물리학자들의 이름도 거침없이 논한다. 마치 한편의 물리학 교본 요약본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런데 지루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난해한 수학공식도 없다, '하나의 방정식의 세계'에 기술된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를 제외하고(209쪽). 제발 이 페이지부터 들추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체를 통틀어 나오는 수식이라고는 아인슈타인 공식과 이 수식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복합성을 지닌 수식이다. 그래도 해야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래도 그 페이지부터 읽어야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 수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그 페이지 이후로 계속되니 그를 따라가라는 힌트를 건넬 수밖에 없다.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수식을 열거하지 않으면서 물리적 개념을 잘 설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4시간에 걸친 뉴욕행 비행 중에 옴짝달싹 못하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던 옆자리 승객에게 우주 팽창에 대해 설명하며 느낀 좌절감은, 개인적인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사회적 관심에 대한 과학적 소통의 부재와 고립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 즉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나 자연 현상들에 대한 인지로부터 시작되는 투록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핵심적 기술을 위한 도구인 수학에 대한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거쳐 인지적인 예술에 잠깐 머물다가,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배관 역할'로서의 일상적 활용과 응용의 장르에 도달한다. 우주를 지배하는 기본 법칙들을 연구하는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는 물리학의 기반을 다지던 르네상스 시기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논리적 추론, 관측, 실험으로부터 시작한다.
갈릴레오와 마찬가지로 아웃사이더였던 뉴턴은 중력법칙을 통해 천상과 지상의 법칙을 발견해냈다. 뉴턴의 물리학은 달의 인력 때문에 생기는 밀물과 썰물, 행성들의 궤도, 유체의 흐름, 포탄의 궤적, 다리의 안정성, 운동, 힘, 중력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들을 설명해준다. 전기와 자기, 그리고 빛을 통합하는 전자기 법칙을 발견한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물리학에서 음인 실험과 양인 이론을 구성하는 두 축으로 볼 수 있다. 수학에 익숙하지 않았던 패러데이는 강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실험을 통해 물리학 발전에 기여했고, 젊은 천재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통찰을 아름답고 강력한 수학 이론으로 정립하며 물리학의 기본 법칙을 완성해 나갔다.
그들의 새로운 발견은 기존의 법칙들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모순을 드러내었고 기존 이론과의 일관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전자기파에 대한 개념과 빛의 성질에 대한 설명도 등장을 하게 된다. 기존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도전은 기존 물리 체계에 대한 인식의 경계를 넓히려는 것이다. 전자기장 이론은 양자역학이라는 신세계로 우리를 인도했고,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관점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플랑크, 아이슈타인, 보어의 획기적인 이론들을 통해 빛과 원자구조의 양자적인 본성이 드러나고 오일러 공식을 이용해서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기수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에 의해 전자의 위치나 속도는 익숙하지도 않고 직관적으로 설명되지도 않는 허수의 배열로 드러나며 고전적인 세계에서 사라졌다.
양자이론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것이었지만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추론의 승리다. 이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상관되는 시공간(spacetime)의 개념을 이끌었다. 시간은 공간의 또 다른 차원이 된 것이다. 맥스웰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시간, 공간, 중력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며 상대성 이론을 정립하였고 이는 우주 전체를 기술하려는 물리학자들의 노력에 또 다른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우주 배경 복사, 양자 요동, 빅뱅의 특이점, 순환우주, 인플레이션이론, M이론 등은 모두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는 큰 그림의 조각들이다.
여기에 열거된 수많은 이름과 이론들에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닐 투록은 우주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지극히 사소한 경험을 시작으로 할머니 무릎 위의 아련한 옛이야기처럼 놀랍도록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리학자들의 인간적인 면이나 발견에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곁들여 흥미를 더한다.
그의 이런 시도는 그저 단순히 물리학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과학과 사회의 분리를 염려하는 그의 생각이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나고 자란 아프리카에 대한 애틋한 애정과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이 책 곳곳에 묻어나는 것도 이 때문일 듯하다. 조화롭고 조용한 자연 속에서 이기적인 행동과 어려운 문제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복잡한 사회 속의 우리가 우주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냉혹한 진화를 겪어낸 현재 우주의 지도를 찾아내며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다.
과학은 발견에 대한 것이며, 우주와 그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 인간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답을 찾고 있고 새로운 문을 열어줄 설명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우주의 지도는 우리 손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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