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서야 '노동자의 변호사들'이 보다 적확한 제목임을 알 수 있었다. 최규석의 만화로 구성된 제3부 "변호사들"이 위의 의문에 대한 정직한 답을 주고 있다. <노동자의 변호사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들의 활약상과 법률원 설립 역사를 함께 보여주고, 2부 "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 사건 10장면"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부터 전교조 시국 선언 사건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굵직한 노동 사건을 소개한다. 이어서 3부 최규석의 만화가 조금 생뚱맞게 혹은 돌출하여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생뚱맞은 것은 본문의 텍스트가 (어떤 예고도 없이) 지면을 꽉 채운 만화로 전환되기 때문이지만, 돌출되어 보이는 것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노동 사건을 담당했던 실제 변호사들의 일상과 생각이 가감 없이 전달되는 장면들 때문이다. 배우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에, 인터뷰어와 함께 극중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노동자인 변호사들의 삶
▲ <노동자의 변호사들>(민주노총 법률원·오준호 지음, 최규석 만화, 미지북스 펴냄). ⓒ미지북스 |
일반 독자의 눈으로 볼 때, 이 책은 언론을 통해 다소 단편적으로 취급되었던 주요 노동 사건들이 실제로는 어떠한 맥락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실제 법원에서 다툰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고 있다. 법률 용어나 '법률가 문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노동관계 법률이 현실에서 어떤 모순을 갖는지 자연스럽게 설명해주는 것은 <노동자의 변호사들>의 큰 미덕이다.
그 미덕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최규석의 "변호사들"에 자꾸만 눈길을 주게 된다. 그 눈길로, "근래 들어 다소 위상이 흔들리고는 있지만 변호사는 여전히 폼 나는 직업의 대명사"라거나, 변호사 신분으로 민주노총 법률원을 다니는 것이 "복권에 당첨돼 놓고도 당첨 안 됐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대사를 수정해주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는 이제 '폼 나는 직업'이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하고,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비유는 거의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말이다.
변호사 취업 시장의 현실
2013년 현재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신규 변호사들이 진입하는 취업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하다. 판사(로클럭)나 검사, 대형 로펌 같은 다수가 선호하는 '좋은' 자리는 변호사 배출 인원의 10퍼센트 남짓에 불과하다(법학전문대학원과 사법연수원을 합하여 2012년 신규 변호사는 대략 2500명 정도이다). 불과 몇 년 전 '콧대 높은' 변호사들의 선택지 중 후순위에 불과했던 사내 변호사 자리는 상대적인 고용 안정성을 이유로 몸값이 치솟고 있고, 5급 사무관으로 채용되던 공무원 변호사 자리 대신 이제 6급, 7급까지 직급이 내려간 채용공고가 나고 있다. 한 때 미국 사회학계에서 논의되었던 전문직의 프롤레타리아트 화(化)는 한국 변호사 사회에서 매우 급속도로 실제 진행되고 있다.
변호사의 '무산계급화 현상'이 사회적으로 옳은 것인가 아닌가는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렇게 엄혹한 취업 조건에서도 여전히 홀로 가시밭길을 가고자 하는 어떤 변호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조금 낯설고 신기해 보인다(영등포 사무실에서 매일 야근을 하면서 삼각김밥과 사발면으로 밤을 지새우는 법률원 변호사들이란!). 이를테면, 법률원 변호사들 외에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이나 공감, 어필과 같은 변호사 그룹은 '착한 변호사들'의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일정하게 존재함을 보여준다.
변호사와 대학생
변호사와 비교하여 한국에서 대학생 신분의 역사를 반추해보는 것도, 이쯤에서 의미 있을 법하다. 한국의 7~80년대 대학생이 갖는 사회적 지위는 '88만원 세대' 내지 자조적 잉여 그룹으로 분류되는 현재의 대학생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던 것이었다. 지금 세대의 대학생들이 한 때 그들과 같은 대학생들이 이른바 사회 변혁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공장에 들어갔던 시절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른바 애국적 사회 진출 운동을 고민했던 대학 졸업반과 '원서질'만 수십 수백 번을 해야 하는 취업 준비생 사이에는 얼마나 넓은 간극이 존재하는가.
7~80년대 대학생들 모두가 사회 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들이 생래적으로 지금 대학생들보다 지적·도덕적으로 성숙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당시의 시대적 조건에 조응했던 것이고 무언가에 매진하고 나서도 잃을 게 별로 없다는 현실적인 고려도 했을 수 있겠다. 그러나 80년대 대학 정원 자율화 조치 이후 대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저하되면서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깨달은 후에, 대학생들은 화염병을 던졌던 손으로 곱게 입사 원서 표지를 포장했을 뿐이다.
착한 변호사를 어떻게 양성할 수 있을까
한때 사회적 지분과 발언권을 갖고 있던 대학생 지위의 급격한 변동만큼이나 심한 변화가 변호사 직군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으로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 변경되고, 법조 시장 역시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해 완전 개방을 예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변호사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3년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새내기 변호사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변호사법 제1조 제1항)으로 하고 있을까. 이제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변호사의 지위는 대학 4학년의 그것과 더 가깝게 맞닿아 있다.
변호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진로 고민 상담은, '대형 로펌 vs. 판사(로클럭)'에서 '송무 변호사 vs. 사내 변호사'로, 급기야 '대기업 일반직 vs. 6급 공무원'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취업 시장에 나선 변호사들은 고용 안정성과 월급 실 수령액, 비용이나 교육 지원 조건을 매우 면밀히 비교하고, 꼼꼼하게 검토하여 자신의 첫 직장을 결정한다. 아마 배출되는 변호사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저 vs. 고민들은 더 다양화되고 (선배 변호사가 보기엔) 더 질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착한 일'을 하고자 하는 변호사들의 수 역시 이와 함께 줄어들 것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이직률이 높다고 지적하는 이 책의 우려는 그래서 충분히 우려스럽다. 3년을 버티는 변호사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법률원이 이들에게 어떤 직업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걱정되는 점은 '착한 일'을 하길 원하는 변호사들이 점점 적어지면서 어쩌면 법률원도 변호사를 제대로 채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어떤 평등주의는 사회취약계층이 법조인 진출을 하지 못할 것을 매우 우려한다(그 다른 단면으로 의사나 변호사가 돈을 많이 못 번다거나 폐업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좋아하는 일반인들이 있다). 하지만, 사회취약계층이 법조인이 되는 비율이 조금 낮아지더라도 법조사회 안에서 사회취약계층을 위해 제대로 일하는 변호사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더 좋은 방향 아닐까? 사회취약계층의 변호사업계 진출은 계층 이동의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착한 변호사들을 양성하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더 중요하다.
변호사 예비시험제도 논의에 한 마디
일반적인 편견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전형은 의무적으로 5퍼센트 이상의 사회취약계층을 선발하도록 하는 특별전형이 존재하며, 등록금 등을 보조하는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기존 사법시험 제도가 사회취약계층을 배려한 사실이 있던가? 현실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학원 강의와 신림동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연간 수천만 원의 비용은 오히려 사회취약계층에게 더 높은 진입 장벽으로 기능한다. 사법시험이 사회취약계층에게 좀 더 친화적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실증적인 데이터나 연구 결과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왜곡된 평등주의와 능력지상주의만이 구제도를 옹호한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는 변호사 예비시험제도는 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전형에서 특별 전형의 비율을 확대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예비시험제도가 도입된다면, 그 취지에 맞게 과감하게 사회취약계층으로 시험 대상을 한정하는 것은 어떤가. 압구정동과 대치동에서 나고 자라서 민주노총 법률원에 입사하는 변호사는 왠지 어색해 보인다. 차상위계층 출신 자녀가 사회적 배려를 통해 변호사가 되고, 스스로를 돕는 변호사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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