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런 나를 트랜스젠더라거나 성전환자로 부르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그것도 나를 안전하게 호출하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한 마디로 단언하지 못하는 복잡다단한 것으로 이루어졌고 성장했으며, 모르긴 몰라도 그건 이 세상에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누구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인권운동사랑방 엮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
그럼에도 지금 나를 떠올리는 당신은, '소수자'라거나 '차별'이라는 말을 유령처럼 떠올리며 나를 향한 복잡하고 불쾌한 시선을 지우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큰 가슴'이라거나 '진한 화장' 혹은 '걸걸한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다행인 일이다. 성전환자이기에, 마흔 셋이기에,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이 없는 싱글이기에, 게다가 여성이기에, 당신들이 떠올리는 차별은 갖가지 모양으로 내 삶의 시간들 속에 점점이 박혀있다.
그러나 차별이라는 말에는 처음부터 경계가 없었다. 그 용어에 어떤 경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이나 '사회'라는 말의 경계만큼이나 넓고 광범위할 것이다. 우리가 '차별'이라는 말에서 어색함이나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낯설어서가 아니라 그 용어를 우리의 삶 속에서 감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지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차별'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에이 뭘 그런 걸!'이라거나, '아유, 당장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요, 뭘'이라는 말들로 아무데나 처박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차별의 감정을 경시하며 나와는 상관없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안에서 차별을 깨닫는 일은 어쩌면 의외로 쉬운지도 모른다. 가장 쉽게 말하자면 그건 모성의 육체에서 탯줄을 끊고 떨어져 나와 본질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인간으로써, 누구에게나 결핍의 의미로 존재하는 '고독'이나 '고립'과 닮아있을 것이다.
'내가 좀 특이하지'라는 말 안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라는 갸우뚱거림 속에 차별과 소외는 존재한다. 어떤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가 버려지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아무도 떠올릴 수 없는 그 외로움 속에 차별과 소외의 숨결이 남아있다.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살려달라고 외쳐보아도,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참혹한 현실 속에 그건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모습으로 내 온 생애 위에 슬그머니 드리우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 모든 시간들 속에 차별과 소외는 우리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핥으며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번도 고독하거나 외로워본 적 없던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차별받고 소외받는, 앞으로도 무수히 여러 번 그렇게 될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그 누구도 차별의 경계 바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차별과 소외라는 거울로 들여다보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인권운동사랑방 엮음, 오월의봄 펴냄)에서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정치적이고 혹은 종교적인 입장의 차이를 떠올려야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들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일이다.
이다음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옭아맬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들을 여기 이 책 속 일곱 명의 인물들이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픈 줄도 몰랐던 우리들 자신의 상처를, 혹은 내가 저지른 잔인한 짓들의 부끄러움을,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을, 이들이 되짚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혼모라는 이름이 아니라 힘겹게 소중한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은 귀한 일을 한 사람으로서 승민의 이야기가, 트랜스젠더나 전과자라는 이름이 아니라 인간이 휘말릴 수 있는 삶이라는 풍파와 혼란에 휩싸였던 혜숙의 외침들이, 동성애자라는 이름이 아니라 '어쩌다가' 그렇게 되기도 하는 우리들 모두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정현과 서윤의 불안한 말들이 인간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더듬는다.
HIV 감염인이라는 낯선 말이 아니라 건강한 우리들의 건너편에서 질병의 고통을 견디고 있는 민우의 목소리가, 이주민이라거나 외국인이라는, 우리들도 국경을 넘으면 당연히 받게 되는 똑같은 손가락질을 견디고 있을 미안한 사람들인 수민과 타파의 서툰 말들이, 그리고 내 노동과 일상의 편리함의 건너편에서 내 대신 이중고를 겪고 있는 사람들로서 장애를 가진 이숙과 계약직 노동자 명희와 영석의 담담해서 더욱 아픈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구석을 찌르고 있다.
차별이라는 이름은 우리들 모두의 등 뒤에 붙어있는데, 어리석게도 우리는 가슴에 차별을 단 사람들만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이다. 내 등 뒤에서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 하는 줄도 모르고, 가슴에 새겨진 누군가의 차별을 외면하거나 그들을 비난하는 부끄러운 짓들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이, 각박해졌다고 한탄하면서 각박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는 '불쌍하다, 도와달라' 애원하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이런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며 당당하고 용기 있게 살아있다 말하는, 당신들에게도 언젠가 그런 차별과 소외가 다가올 테니 그 시간들을 이렇게 이겨내며 생존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라 말하는, 어쩌면 그건 시리고 차가운 길을 먼저 지나간 고마운 발자국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그만 오만과 이기심의 껍데기는 벗어버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길. '순리'나 '신의 뜻'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당신들의 무지(無知)를 포장하지 마시고 당신 곁에서 당신보다 더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수신확인'하시길. 당신들의 고독과 소외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가 닿을 수 있도록. 우리만 말고, 당신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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