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다른 친구의 보고서를 보고 사뭇 놀랐는데, 행성의 중력, 표면의 구성 성분과 밀도, 대기 성분 등 환경을 고려하여 가능한 생물체의 모습을 설계하였던 것이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싸하게 여겨졌다. 이것이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제프리 베넷 지음, 이강환·권채순 옮김, 현암사 펴냄)가 나에게 준 비슷한 느낌이었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그들과 만나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각종 음모론의 좁은 틀에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과학의 세계로 들어오기를 권한다."
▲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제프리 베넷 지음, 이강환·권채순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
'만약 외계 생명체가 UFO를 타고 와서 지구 상공에 나타난 것이라면 그들은 얼마나 똑똑할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쉽게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것이다. 우리는 지구 밖을 나가서 아직 발견하지 못 했고, 발견할 만큼 멀리 나가지 못했으니까. '얼마나 더?'라는 질문에 그는 "광활한 우주에서 찾아올 정도로!"와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을 정도로!"로라고 한다. 참으로 깔끔하고 명쾌한 답변이자 시작이다.
'그러면 별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라는 질문이 솟아난다. 태양의 크기를 참깨 정도라고 가정하고 서울시청 앞에 참깨 하나가 놓여 있다고 하자. 가장 가까운 별은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수원 정도에 참깨만한 크기로 있다. 보이지도 않을 것이며 얼마나 광활한지 감이 잡힐 것이다. 물론 저자는 서울이 아니라 미국의 워싱턴으로 비유했지만, 이 책은 이렇게 사실을 가지고 설명 한다.
외계인과 UFO. 이런 용어는 과학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천문학을 하는 과학자들은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도 가끔 받았는데, 미생물 정도의 생명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책에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적어도 우주에 탐사선을 보내는 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그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유로파에 얼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는 탐사 계획은 중간에 고의로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혹시나 유로파에 존재하는 생명을 오염시킬까 걱정한 것이다. 지구에서 출발한 우주선이 유로파에 충돌하여 지구로부터 묻어온 미생물로 오염될 가능성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다.
사실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모두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가뭄이 심한 마을에서 어느 날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우제를 지내러 마을 사람 모두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데 단지 한 소녀만 우산을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그 소녀의 마음이 아닐까. 가능성에 대해 믿음.
'우주와 생명'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바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외계인을 찾는다면, 혹은 우주에서 생명의 근원을 찾는다면 생명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혹은 무엇을 찾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는가. 어려운 문제다. 사전적 정의를 봐도 저명한 사람들의 생명의 정의를 봐도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우주 속의 생명을 탐구해 나가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정한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저자는 제4장('생명이란 무엇인가') 장에서 "인류는 과학에 근거하여 우주 어딘가에 생명이 존재할지 아닐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한다. 아마도 인류의 우주 중심 증후군에 대해 약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겠다.
한때 우리 스스로가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인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모든 행성이 지구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여겼다. 코페르니쿠스 시대가 되어 태양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을 때의 그 아찔함. 그렇게 무언가 상실했다고 생각하니 영 기분이 좋진 않지만, 현상에 대해 드디어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 때의 그 짜릿한 쾌감. 그것에 대한 기억을 다시 생물학적으로 기대해 보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된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아찔하고도 짜릿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서서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는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의 존재조차 미생물들 덕분이다. (…) 미생물들이 없으면 모든 식물과 동물의 생명은 파멸될 것이다. 반대로, 미생물들은 식물과 동물 없이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이후 대부분의 시기 동안 그렇게 생존해 왔다. 우리는 지구의 생물학적 우주 중심이 아니며, 우주의 나머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지구의 자원을 주인처럼 활용하고 있는 인류 문명이 더 이상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를 상당히 겸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예전의 코페르니쿠스 시대의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처럼 말이다.
제5장('생명이 시작되다')에서는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디에서 생겨났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이 유일하게 살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층 탐사에 의한 지질학적 증거로부터 일련의 유기분자들이 생물학적 대상으로 넘어가는지에 대해 지구 환경에 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지구 하나의 예제만을 가지고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생물과 그들의 진화 및 멸종에 대한 이야기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특히, 우리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극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이나 생명체의 이야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마냥 흥미롭다. 빛 에너지가 없는 심해라던가 초고온 혹은 저온에서도 생존하는 생명이 있다는 것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생명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들, 혹독한 환경을 가진 곳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이 책은 TV 속 드라마처럼 한 장을 읽고 난 후 자연스럽게 다음 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달을 포함하여 태양계 행성들의 모습을 하나하나씩 들어볼 수 있다. 달은 태양과의 거리가 지구랑 비슷하여 액체 상태의 물이 발견될 수 있는 구역에 있지만, 달의 어느 곳에도 액체 상태의 물이 없다. 달은 엄청난 충돌에 의해 지구로부터 튕겨져 나간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가설에 의하면, 충격에 의한 열이 달의 모든 물을 증발시켰을 것이라고 한다. 금성은 온실 효과에 의해 더욱 뜨거울 것이며 화성은 춥고 건조하다. 여전히 혹독한 환경이지만, 극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미생물들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흥미롭다.
"지구는 적당한 크기와 태양으로부터 적절한 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만약 위의 두 가지가 조건의 전부라면, 나는 지구 같은 행성이 아주 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주에 다른 문명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증가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별이 태양처럼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면, 지구처럼 서식 가능한 구역에 놓일 행성이 있을 것이다. 다른 별이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것을 외계 행성계라고 한다. 최초의 외계 행성의 발견은 1995년에 이루어졌으며, 놀라운 속도로 발견의 개수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는 700여 개 이상의 항성이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고 발표되고 있다. 태양만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보편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밤하늘의 밝은 별들을 보면서 우주에서의 나의 위치와 우주에서의 나의 나이를 상상하며 나는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보며 어렸을 적 나에게 그 답을 조금씩 해 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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