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머, 빨리 꺼지란 말이다!
에리카가 꿈꿨던 명령권자 '그'가 나타난 듯하다. 20대 중반의 제자 클레머가 마흔을 눈앞에 둔 에리카를 열정적인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 눈빛을 눈치 챘지만 무관심으로 응대한다.
그렇지만 그녀 역시 그에게 끌리고 간혹 우회적인 방식으로 유혹한다. 그녀는 그에게 정신착란으로 죽은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배려 혹은 특별한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미끼로 "남자의 호감을 밑바닥까지 끄집어내 받으려는 것"(91쪽)이므로 유혹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녀는 흔들리는 마음보다 더 강력한 두려움을 느낀다. "제발 그것이 달걀만한 우박이 아니기를, 그래서 그녀에게 구멍을 뚫어놓지 않았으면!"(93쪽) 우선 그녀는 예비된 사랑의 정열 앞에서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상세히 본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이별 통보하며 던진 말 "널 지독히 사랑해!", 키스하기 전에 던진 말 "널 죽도록 증오해!") 흔들리는 자는 정열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 정열의 심연이 자신을 파괴할지도 몰라서 두렵다.
에리카는 늙어간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자신을 갈망하는 사람은 클레머가 마지막일 것 같다. 그녀는 두려워하다가 이후에 격분한다. 그 때문에 이런 약한 생각에 빠졌으므로. 그녀는 노여워하며 속으로 외친다. "클레머, 빨리 꺼지란 말이다!"(144쪽) 에리카는 그를 "삶의 두려운 도전"(100쪽)으로 여기고 혐오한 나머지 그가 사라져주기만을 바란다.
그녀의 판타지는 이렇다. "그녀는 길고 진한 포옹을 꿈꾸는데 그것은 포옹이 이루어지는 즉시 왕비처럼 남자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다"(146쪽) 이렇듯 스스로 근사한 여자임을 확인하는 것은 에리카의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그녀는 자기애를 허물어뜨릴 위험을 목숨 걸고 피해야 한다. 또한 그녀는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어머니의 명령을 따르고 싶다.
▲ <피아노 치는 여자>(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어머니, 음악, 규칙과 명령으로만 구성된 에리카는 이들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잘 모르는 것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 에리카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갑자기 무언가 변할까 더욱 두려워한다. 모태 솔로들이여, 공감하시는가?
그러나 에리카는 클레머에게 끌리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할 수도 없다. 그와 사랑을 나누면서 떠나는 여행을 저도 모르게 상상한다. 그러나 바로 직후 늙은 어머니의 편안한 품을 그리워한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진자다.
클레머를 쫓아내다시피 뿌리친 에리카는 그러나 그를 미행한다. 자기 감옥에 갇혔기에 직접적인 육체적·감정적 접촉은 감히 시도할 수 없지만 끌림조차 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를 미행하지만 그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클레머에 의해 촉발된 관능은 관음으로 변질된다. 그녀는 공원에서 섹스하는 커플을 훔쳐보고 더불어 흥분하여 소변을 본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클레머에 대한 욕망을 처리한다. 스스로는 못하므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정열을 소진한다. 가련하게도, 연애 불능증의 극단이다.
묵묵부답인 에리카를 자극하고자 클레머는 젊은 아가씨들과 장난치며 논다. 에리카는 클레머를 아는 척조차 하지 않는다. 이 허울뿐인 무관심에 클레머는 상처받지 않는다. 그 거부가 끌림을 은폐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클레머와 장난치던 아가씨의 외투 호주머니에 깨진 유리 조각을 넣는다. 음악 연주자의 손에 끔찍한 상처를 입혔으니, 잔인한 복수다. 결국 질투를 유발하여 관심을 환기하는 고전적인 수법에 에리카는 넘어간다. 그녀는 그 날 클레머와 처음으로 육체적 접촉을 시도한다.
질투로 자극 받아 처음으로 몸을 교환하기로 한 에리카. 그러나 에리카의 방식은 독특하다. 그녀는 고압적인 자세로 명령하고 금지한다. 자기를 애무하지 말라고, 입 다물고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희열이나 고통으로 소리를 내지 말라고.
그녀는 그의 성기에 고의로 고통을 준다. 성기를 만지다가 그가 고조될 때 갑자기 그만 두며, 그가 애원해도 다시 만지지 않고 관찰만 한다. 그는 점점 위축된다. 에리카는 그를 철저하게 감독하며 명령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에리카는 왜 클레머를 학대할까. 줄곧 지속된 감정, 그러니까 그에게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를 증오하게 되어서, 또한 질투를 유발하면서 자신을 괴롭힌 그를 처벌하고자, 젊은 여자들에 대한 증오를 해소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지배욕과 증오로 표현하는 어머니의 가학성을 모방하고 학습했다.
이런 에리카에게도 변화의 조짐이 찾아든다. 그녀가 비록 그에게 사랑을 기대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모욕만을 주었지만, 그는 변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녀는 점점 유혹에 빠져든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그녀는 급기야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이는 대단한 사건이다.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야 자기 껍질을 벗어버릴 수 있으므로. 실상 아무것도 아니란 느낌처럼 에리카가 바란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탈피를, 파옥(破獄)을 시도한다. 세상과 조우하기 위해서. 성공했을까?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때리고 모욕해 줘
사랑에 굴복하기로 한 에리카는 중대한 결단을 한다. 그에게 원하는 것을 적은 편지를 건넨다. 소설의 클라이맥스인 편지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놀랍게도!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너의 체벌이야. 나를 벌하며 욕하고 멍청한 노예라고 불러줘. 노끈과 가죽 띠와 사슬로 나를 묶고, 나일론 속옷과 스타킹으로 재갈을 물리고, 그 입마개를 고무관으로 몸에 다시 묶어. 내가 복종을 거부하면 큰 소리로 위협하고, 손등으로 얼굴을 때려. 강간하겠다고 위협하고, 내게 오줌을 눠.
긴 편지 단락마다 따라붙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신경 쓰지 마."(269쪽)
클레머를 사랑해도 좋다고 생각해서 마음의 빗장을 풀려고 결심한 에리카의 첫 번째 행동이 이러했다. 과연 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에리카의 독백을 긁어모아 풀어 쓴 이유는 이렇다. (에리카의 사도 마조히즘에 대해서 많은 독자들이 단편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 기제는 보다 복잡하며, 한번 정리해 봄직하다. 백과사전적인 심리 해설이 이 소설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1. 어머니에 대한 증오 : 괴로운 감옥을 지어준 원흉인 어머니를 지배자의 위치에서 강등시켜 그 자리에 클레머를 대신 올려놓는다. 지배자를 바꾸는 것으로,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노린다.
2.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 그녀는 어머니를 배신한 원인을 외부의 폭력으로 돌리면서 죄의식과 책임감을 덜고 싶다.
3. 깊이 각인된 복종 욕망 : 그녀는 비록 지배자를 바꾸었지만 여전히 지배당하고 싶다. 복종에 익숙해진 에리카는 더 큰 복종을 바란다. 복종도 쾌감이며, 쾌감은 항상 더 센 것을 바라게 되어 있으므로.
4. 어머니에게서 학습한 지배 욕망 : 에리카는 어머니에게 지배당하면서 언젠가는 자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리라고 꿈꿨다. 그녀는 기대한다. 클레머가 그녀를 지배할수록 지배의 쾌감에 길들여져 결국 그녀에게 종속될 것이라고. 그의 종으로 위장함으로써 그를 종으로 만드는 셈이다. 이때 그는 자신을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종에 불과할 것이다.
5. 사랑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 : 에리카는 숱하게 사랑에서 상처를 받아왔다. 그녀는 생각한다.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지배욕으로 꽁꽁 결합된 관계가 사랑의 유통기한을 길게 만든다고. 그녀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 근거이다. 그녀들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때로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무엇보다 그녀들의 관계는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다.
6. 사랑의 견고성과 진정성 실험 : 그녀는 그의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한계, 그의 복종이 그녀의 헌신을 끄집어낼 수 있는 한계를 실험하고 싶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지적인 탐구욕이기도 하지만, 잔인한 시험 심리이기도 하다.
7. 우월감과 나르시시즘을 버리고 싶음 : 그녀는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을 찾음으로써 나르시시즘을 폐기하고 싶다.
8. 자기 처벌 : 그녀는 음악계의 최정상이 되라는 어머니의 기대를 배반했다는 뿌리 깊은 죄책감과 좌절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처벌하고 싶다. 어머니가 부여한 과도한 의무에 반감 못지않게 죄책감을 느껴왔던 것이다.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얽혀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유가 두 가지 더 있다. 지금까지 에리카의 방식은 타인을 지배하고 학대하는 방식이었다. 클레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 방식을 버림으로써 그녀는 자기 감옥을 부수려 하지 않았을까.
(클레머의 사랑을 밀어낼 때 에리카는 가학적이었고, 수긍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피학적이 된다. 감옥을 부수려는 의지의 발현으로, 사디즘을 마조히즘으로 교체한 셈이다. 그녀 딴에는 혁명인가. 그러나 결과는 고작 마조히즘이다. 감옥은 얼마나 견고한가.)
또한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봤듯 인간은 행복 앞에서 막연히 두려움을 느낀다. 행복에의 두려움으로 에리카는 사랑을, 학대하라는 명령으로 왜곡해서 표현했을까. 우월감의 짝패인 열등감을 강하게 느끼는 에리카는 자기가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사랑 받고 싶은 기대를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 못하는 에리카는 결핍된 영혼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잔혹한 편지를 써서 건넸으면서도 클레머가 편지의 내용을 무시해버리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진정한 사랑의 발로로서 말이다.
그의 복종을 원하는 마음 이면에는, 그를 자기 방식에 굴복시킴으로써 자기 껍질을 고수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누구나 특히 사랑할 때 자기 방식을 고수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기 힘들다.
그러나 자기 방식이 고통스러울 때 사람은 그것을 깨고 싶은 욕망도 강하게 느낀다. 클레머의 거부를 원하는 에리카의 심경은 물론 자기 감옥을 부수고 싶은 욕망의 발로이다. 누구나 자기 감옥을 부수고 싶겠지만, 이것은 물론 쉽지 않다. 감옥을 부수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에리카의 내적 분열은 계속된다. 편지를 다 읽은 다음, 에리카는 그가 갑자기 때릴까봐 겁을 집어먹지만 속마음과 완전히 반대되는 말만 지껄인다. 오래 전부터 이처럼 맞고 싶었다는 둥.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가 다정한 반응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당황한 클레머는 때리지는 않지만 욕설을 퍼붓는다. 클레머가 떠난 후 에리카는 어머니에게 강제로 애무와 키스를 퍼붓고, 그녀를 때린다. 클레머에게 좌절된 욕망을 어머니에게 대신 발산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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