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처럼 '보수'가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를 탐구하고자 쓰인 책이다. 허시먼은 책의 집필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내게는 대칭에 대한 타고난 욕구가 있는 것 같다. 마셜이 말한 세 가지의 연속되는 진보적 추진력을 비판하고 공격하고 조롱하는 근본적인 방법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또 다른 세 가지 대칭 명제들을 발견했다. 내가 찾아낸 것은 세 가지 근본적인 반동적/반작용적 명제들인데, 나는 이것을 역효과 명제(perversity thesis : 엉뚱한 결과를 낳는 명제), 무용 명제(futility thesis), 위험 명제(jeopardy thesis)라고 부른다." (27쪽)
이런 허시먼의 의도에 따라서 이 책의 구성도 역효과(perversity), 무용(futility), 위험 (jeopardy) 이 3가지 명제를 설명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 책의 원제는 "Rhetoric of Reaction : perversity, futility, jeopardy"인데, 부제가 책의 내용 전체를 잘 요약하고 있는 셈이다.
허시먼은 1915년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경제학자다. 그는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던 젊은 시절에는 프랑스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기도 했던 열혈 실천가였다. 청년 시절 전쟁터를 쫓아다닐 정도로 열정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 온 세 가지 논리>(앨버트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
이제 허시먼이 요약한 세 가지 반동의 수사를 살펴보자. 첫째, 역효과 명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빚을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허시먼은 시민권의 예를 든다. 시민권의 성립과 관련해 중요한 진전이 있었던 프랑스 혁명에 대해 아담 뮐러는 이렇게 의미를 깎아내린다.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종교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은 더욱더 깊은 노예 상태로 빠져들지 않고는 자신을 억압하는 어떤 구속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는 증거를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38~39쪽)
간단한 말을 빙 돌려 적었지만, 결국 프랑스 혁명 덕분에 독자적 인간은 더 구속되었다는 얘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바쳐 추구했던 구체제의 전복과 혁명이 결국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보수는 늘 이런 식의 논리를 내세워 변화의 의미를 평가 절하하고 변화를 위한 시도를 무색하게 한다.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산업 재해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마련한 '산재 보험'을 보는 보수의 시각에서 이런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보수는 '산재 보험이 도입되면 노동자들은 일부러 자신의 손발을 자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역효과 명제는 '사회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시도는 늘 의도한 것을 이뤄내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이런 반동의 논리에 의하면 사람들이 혁명적인 기획을 추구할 때마다 애당초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결국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는 정반대 방향의 흐름을 동시에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둘째, 무용 명제를 한 문장으로 쓰면 이렇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즉, 실용성이 없다는 얘기인데 이 명제는 어디선가 자주 들어본 것 같다. 군사 독재 시절 데모하고 집에 들어온 운동권 학생에게 부모님이 많이 하시는 말씀이랑 비슷하다. '니들이 암만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놈들아!'
허시먼은 무용 명제의 한 예로 토크빌의 반동적 수사학을 제시한다.
"토크빌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고문서 연구에 기초해, 행정의 중앙 집권화로부터 소규모 자작농의 확산에까지 이르는 떠들썩한 평가를 받은 프랑스 혁명의 성과들이 실제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지어 토크빌은 그 유명한 <프랑스 인권 선언>이라는 것조차도, 그것이 1789년 8월에 엄숙하게 선언되기 훨씬 전에 구체제 하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제도화된 것임을 입증하려 했다." (81~82쪽)
토크빌의 주장대로라면, 프랑스 혁명의 성과라는 것은 어차피 구체제에서 내려온 산물이다. 이 논리에 힘입은 반동은 '구체제 전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옮겨 갈 수 있는 논리적 동력을 얻게 된다. 그들의 논리 속에서 프랑스 혁명은 굳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될 사건이었던 것이다.
보수파들은 '프랑스 혁명'과 '보통선거권'과 '복지 국가' 등 주요한 정치사적 변화들이 모두 '소용 없었다'라고 평가 절하해 버리는 것을 좋아한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이 도대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토크빌) 보통선거권으로 과연 세상이 달라졌는가?(파레토) 복지 국가는 '약속한 것'을 얼마나 가져다 줄 수 있는가?
지금 상황에서 얼핏 들으면 이런 역사적 상과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 매우 얼토당토하지 않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보수의 논리는 상당히 정교하고 세련되었다. '파레토 최적'이니, '과두제의 철칙'이니 하는 유명한 개념도 따지고 보면 보수의 논리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선거권 확립을 통해 사회 권력을 민주화 하겠다는 야망은 파레토의 눈에 가소로운 것이었다. 파레토는 소득과 부의 분배를 연구한 결과 그 분배가 언제 어디서나, '파레토의 법칙'으로 알려지게 되는 매우 불평등한 고정불변의 패턴을 따르고 있음을 발견해냈다. (…) 파레토에게는 현대 사회가 사실상 금권정치임이 분명했다. 허풍선이 민주주의는 금권정치의 실상을 숨기고 있는 가면에 불과했다. 미헬스가 주장한 과두정치의 철칙 역시 모스카와 파레토의 생각을 빼닮게 모방했다." (111쪽)
셋째, 위험 명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위험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위협할 것이며 복지 국가는 자유와 민주주의 모두를 위협할 것'이라는 요즘도 보수 언론의 칼럼에서 볼 수 있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인식을 심기 위해 반동은 정교한 논리를 추구한다. 허시먼이 대표적인 사례로 뽑은 것은 하이에크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 서문에서 "우리가 민주적 시스템을 위해 치러야할 대가는 국가의 활동을 동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제한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자유에 해로운 영양을 미치는 사회 보장 계획 같은 것"을 비판하며 "사회 보장을 위한 노력이 자유에 대한 사랑보다 더 강해지는 경향"에 대해 펄쩍 뛴다. 그는 <자유의 본질>에서도 다음과 같이 복지국가에 대한 상세하고 전면적인 공격을 개시한다.
"자유는 정부가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독점적 권한을 가지게 될 때 치명적으로 위협받는다. 그 권한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개인에 대해 임의적으로 강제력을 사용할 것이다." (162쪽)
반동의 수사학은 이렇게 진보의 길이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자유와 복지 논쟁이 전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허시먼이 파악한 보수의 논리대로라면 아마도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복지'에 대한 '자유'의 공격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이렇게 세 가지 기본 명제를 통해 반동이 지배력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책이 제목을 통해 언급하고 있는 '보수'를 현재 한국적인 정치 지형 속에서 진보파와 대립되는 보수파로 인식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사실 앞에서 언급된 세 가지 명제는 그 의미를 일반화시켜서 생각해 볼 때, 굳이 보수층만의 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책이 강조하고 있는 반동의 레토릭 세 가지는 비단 보수층만의 무기라기보다는 논리적인 장애물을 설치하고 싶은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것들이다.
최근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개시되었을 때, 같은 진보 세력 안에서도 '그것을 하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역효과 명제), '해봤자 소용없다'(무용 명제), '오히려 무상 의료를 방해할 위험이 있다'(위험 명제) 등의 논리로 이를 거부했다. 허시먼이 언급한 세 가지 명제는 어떤 주장, 행동 요청이 제기될 때, 이를 거부하는 논리적 수법이다.
따라서 책의 본문에서도 보수라는 용어보다는 '반동(reaction)'이라는 개념을 주로 쓰고 있다. 허시먼이 정리한 세 가지 명제는 보수의 논리라기보다는 주로 변화와 행동을 촉구하는 시도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하거나 장애물을 설치할 때 쓰는 세 가지 기본 수법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사실 세상에는 객관적으로 역효과가 나오는 일도 있고, 객관적으로 효용이 없는 것도 있고, 객관적으로 위험한 것도 있기 때문에 역효과, 무용, 위험 같은 세 가지 명제 자체를 모두 보수의 논리라고 부정해 버릴 수는 없다. 우리가 이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보수의 논리'라기보다는 '논리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 그 자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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