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사건이란 안기부의 불법 도청 내용이 세상에 폭로된 사건이다. 이 폭로는 삼성의 최고위 인사들이 1997년 대선에 영향력을 미치고자 정치 자금의 전달을 모의하였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기타 삼성이 곳곳에 영향력 행사를 기도하는 내용이 폭로되었는데 이때부터 삼성 공화국이라는 용어가 저널리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삼성 관련하여 또 하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은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사건이었다. 김 변호사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삼성의 총체적 비리를 폭로하였다. 삼성 공화국 논란은 불이 붙었다. 한국의 정계, 관계, 학계, 언론계 모두가 삼성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분출하였다.
유행이 되어 버린 삼성 비판
삼성 비판은 유행이 되었다. 진보 진영에 서 있다는 논객들 치고 삼성 문제 한 번 안 때려 본 사람이 없다. 삼성 비자금으로부터 시작해, 삼성생명 이재용 관련 배임, 대선 자금 제공, 삼성SDS BW 저가 발행, 삼성에버랜드 CB 저가 발행 등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이 나라의 공적이 된 듯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를 통해서 삼성 비리를 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최근에는 김상봉, 조국, 우석훈 박사 등 다수의 진보 지식인들이 함께 모여 <굿바이 삼성>(꾸리에 펴냄)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그야말로 삼성 문제를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환기시키고 삼성 문제의 해결을 염원하는 진보 논객들의 총체적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번 물어보자. 과연 무엇이 변했는가? 2005년 이후부터 지속된 삼성 폭로, 삼성 죽이기는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답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 죽이기는 오히려 삼성을 키워주었다. 대중들은 이제 '삼성은 역시 대단해', '아무리 떠들어도 안 돼'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또 삼성 죽이기는 재벌들 사이에서 지도자 삼성의 위치를 확실하게 세워주었다. 삼성이 앞에서 매를 대신 맞고 꿋꿋하게 버텨온 셈이다. 사실 삼성만 불법 비자금 만들었는가. 재벌은 다 그런 것을. 기억을 깊이 더듬지 않아도 한화그룹과 CJ그룹의 비자금 수사, 형제 싸움으로 드러난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의 구속이 있지 않았는가? 재벌이 맞을 매를 지난 몇 년간 죄다 삼성이 맞아 왔으니 기타 재벌들은 삼성을 형님으로 모셔야 할 판이다.
X파일, 양심선언 사건 이후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특검이 실시되었다. 몇 명이 옥에 갔을 뿐이다. 삼성은 2006년 2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고, 2008년에는 '삼성 쇄신안'을 발표하여 그룹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고 이건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09년 겨울에 특별 사면된 이건희 회장은 퇴진 후 23개월 만인 2010년 4월에 삼성 경영을 위해 보란 듯이 복귀하였다.
삼성 문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
▲ <민주주의 체제하 '자본의 국가 지배'에 관한 연구 : 삼성그룹을 중심으로>(이종보 지음, 한울 펴냄). ⓒ한울 |
내부 사정에 훤한 인사가 비리를 폭로한들, 시민단체가 팻말을 들고 길거리에 나가 본들, 공권력이라는 특검이 실시된들, 이제 그것은 칭얼거림이요, 징징대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이제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볼 때다. 마음을 가다듬고 '왜 안 되는가'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과학적 분석으로 찾아볼 단계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종보가 저술한 <민주주의 체제하 '자본의 국가 지배'에 관한 연구 : 삼성그룹을 중심으로>(한울 펴냄)라는 새로운 책은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무엇을 말하는지 보자. 저자는 이 책에서 "어떻게 민주 정부에서 다른 어느 시기보다 더 '강력한' 자본의 권력이 작동되는가?"라고 질문한다.
노무현 정부와 같은 민주 정부하에서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자본의 국가 지배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민주 정부에서 자본의 권력화가 작동되는 메커니즘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대자본은 어떻게 국가를 통제하고 계급 지배를 유지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먼저 민주주의 체제란 자본에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제는 열린 공간 체계(open system)로 작동된다." "민주화는 시민들 혹은 민주화 운동 세력만의 해방이 아니라 자본의 해방으로도 귀결될 수 있다."
따라서 저자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의 국가는 시민사회 운동 세력과 기업 혹은 자본의 각축장(battlefield)이 된다." 민주화 이후의 국가는 일종의 전략의 장으로서 계급 세력, 계급 분파 세력, 이익집단이 전략을 펼치고 이익을 추구하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틀 안에서 저자는 민주주의 체제하 자본의 국가 지배 전략에 대해 실증하고 있다. 실증 분석은 3개의 영역, 즉 정당과 의회를 매개로 구성되는 제도 정치권, 행정 기구와 사법 기구가 중심인 국가 기구, 그리고 언론, 학교 등이 중요한 매개가 되는 시민사회 영역으로 구분하여 실시한다.
구체적으로 3개 영역별로 실증 분석의 내용을 보자. 저자에 따르면, 제도 정치권 영역에서 자본은 "선거 자금의 제공과 이와 연계된 자본가의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민주화 세력의 정치를 압도하고 제도 정치권의 다양한 분파들을 포획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의 담론적 동력이었던 '민주 대 반민주'라는 정당 체제의 균열선을 점차 희석했다."
국가 기구 영역에서 자본은(삼성은) "주요 행정 관료와 사업 관료에 대한 포획 전략을 통해 반독재 정치 분파와 행정·사법 관료 간의 각축 과정에 우회적으로 접합하면서 파워블록 내부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 영역에서 자본은 "사회적 책임성 요구를 전략적으로 흡입하면서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저항을 무디게 만들어갔다." 더 나아가 "삼성은 친기업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유통을 통합하며 헤게모니적 지위를 강화하는 접합제로 활용했다."
삼성과 재벌의 구조적 지배력에 주목해야
이종보의 연구는 삼성 문제가 이제는 저널리즘에서 논의되는 것을 넘어 삼성 지배력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요청된다는 시기적 측면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노력이다. 자본 권력의 힘이 국가 지배에 작용하는 세 가지 경로 분석을 통해 삼성과 재벌의 이익이 관철되는 메커니즘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동안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중구난방으로 제기되던 문제들을 종합하여 사회과학의 체계성으로 다시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큰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저자가 민주주의 역설이라고 말하는 "어떻게 민주 정부에서 다른 어느 시기보다 더 강력한 자본의 권력이 작동되는가"의 의문은 합당한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자본 권력이 독재정부 하의 자본 권력보다 더 강력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삼성 문제가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거보다 자본 권력이 더 강력해졌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나마 민주화가 진척되었기 때문에 독재정부 하에서 노출되지 못한 것들이 불거지고 있고, 그러한 현상들을 자본 권력의 국가 지배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이 책은 현 시점에서 우리가 풀어야하는 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쉬운 구석이다. 앞서 말했듯이 삼성과 관련하여 이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제 '왜 안 되는가', '무엇이 국가 권력도 무위로 만드는가' 따위의 질문일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노력을 위해서는 한국 자본주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본이 지배하는 시스템, 재벌이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자본은 지배 계급으로서, 재벌은 지배 계급 분파로서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개념은 한국 시스템을 지배하는 전체 재벌 중 삼성이 현재 선두주자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 앞서 언급했던 문제 '왜 안 되는가'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찾아야 한다. 이미 국가론을 연구한 풀란차스는 이 문제를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나의 시스템 안에 A라는 지배적인 세력이 있으면 A 세력과 국가에는 '객관적 관계'가 있다. '객관적 관계' 속에서 국가는 A 세력의 이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자동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A 세력과 무슨 인적 네트워크 관계가 있거나 서로 예뻐해서가 아니라 (이런 측면에서 객관적 관계이다) A 세력의 구조적 지배가 존재하면 자동적으로 '친 A 세력'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A 세력이란 바로 자본이고 독점자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본이고 재벌이다.
이를 테면 사회학과에 홍길동 세력이 있다고 하자. 홍길동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학교를 휘어잡았던 엄석대처럼 지배적이다. 그러면 사회학과 학생회(국가)는 학생회장(대통령)이 누가 되든 시간이 지나면서 홍길동 세력(자본, 재벌)의 이익에 충실하게 기능하게 된다.
학생회장(대통령)이 누가 되든, 좀 포악한 성격의 1대 회장 일동이든, 2대 회장 이동이든, 아니면 뒤이어 나타난 좀 민주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3대 회장 삼동이 그리고 4대회장 사동이든, 홍길동 세력이 그 반의 지배적인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한, 학생회는 결국 홍길동 세력이 원하는 대로, 그 세력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굴러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둘 사이의 '객관적 관계' 아래에서, 즉 홍길동 세력과 학생회장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든 없든, 설사 학생회장이 이전에 홍길동과 맞장을 뜬 이력이 있더라도 학생회의 기능은 홍길동세력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구조적 지배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것이 '왜 안 되는가'의 답이다. 한국 사회에 비단 삼성 공화국, 재벌 공화국만 있는가? 우리 한국 사회는 '서울대 공화국'이요, '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공화국'이다. 전라도는 '민주당 공화국'이요, 경상도는 '한나라당 공화국'이다.
구조적 지배가 심한 것은 학교 시스템이 좋은 예이다. 우리는 학교의 다양성 부재를 걱정하고 동종교배를 우려한다. 그러나 못 고친다. 명문 A대학은 A대학 학부 출신의 교수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이 경우 구조적 지배가 있다. 큰마음 먹고 B대학 출신의 교수를 총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그 B대학 출신의 총장은 낙마하고 말았다.
풀란차스는 오래 전에 "좌파 정당이 집권해도 별 기대하지마!" 이렇게 말했다. 자본이, 그리고 독점자본 분파가 구조적으로 지배하는 시스템에서 좌파 정당이 혹시 집권한다 해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2005년 X파일 사건 이후 그렇게 열심히 폭로하고, 호소하고, 특검해도 안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나라의 시스템에는 재벌의 구조적 지배가 존재하며 삼성은 선두주자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고민할 문제이다. 풀란차스도 자본이 구조적으로 지배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고민하다 '민주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라는 방향만 제시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삼성과 재벌이 구조적으로 지배하는 시스템에 변화를 가하는 시도는 그러므로 매우 진지한 이론적 노력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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