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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를 '원인-결과' 분석만으로 풀어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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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를 '원인-결과' 분석만으로 풀어낸다고?

[프레시안 books] 엘리 골드랫의 <초이스>

출판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의 하나가 '자기 계발/(자기) 경영' 관련 서적이다. 독자들의 식지 않는 호응 덕분에 대형 베스트셀러가 계속 이어지는 분야다. 하지만 인기에 비하면 이상하리만치 이런 책들에 대한 비평은 드물다. 학자건, 서평가건, 출판 담당 기자건 진지하게 따지려 들지 않기는 매한가지인데, 아무래도 자기 계발서 비판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은 탓이 아닐까 싶다.

자기 계발서를 비판하기 어려운 건 이런 책들이 철저히 '대중의 상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계발/(자기) 경영' 서적들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개인의 습관, 행동 유형, 심리 개조를 통해 성공의 길을 제시하려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성공(또는 변화)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대전제로 삼기 마련이다. 둘째 유형은 조직 문제를 다루는 책들이며 '조직이 바뀌면 모든 게 바뀐다'는 '상식'을 철저히 신봉한다. 리더십을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셋째는 첨단 기술 활용에서 성공을 모색하는 책들인데, 이런 책들의 전제는 '기술이 혁신을 부른다'는 또 다른 '상식'이다.

자기 계발서가 피하는 골치 아픈 질문

따로따로 보면 모두 맞는 말 같지만, 세 가지 주장을 나란히 세워놓으면 양상이 달라진다. "변화의 원동력은 1)개인인가 2)조직인가 3)기술인가?"라고 물어보자.

이는 사회과학, 특히 커뮤니케이션학 같은 분야에서 전형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이다. '행위자-(사회) 구조-과학기술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것인데, 내로라하는 대가들도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한다. 그만큼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자기 계발/(자기) 경영' 서적들은 이 문제를 살짝 피해간다. 세 가지 요소의 관계 따위는 싹 잊고 하나에 몰두하는 게 전형적인 수법이다. 입맛에 맞는 사례들을 양념으로 쳐가면서 말이다.

▲ <초이스>(엘리 골드랫·에프랏 골드랫-아쉬라그 지음, 최원준 옮김, 웅진윙스 펴냄). ⓒ웅진윙스
물론 이런 분류법에 딱 들어맞지 않는 책들도 꽤 있다. 최근 번역되어 나온 <초이스>(최원준 옮김, 웅진윙스 펴냄)도 그렇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물리학의 법칙이 개인 간 문제나 경영 문제를 푸는 데도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자기 계발/(자기) 경영' 서적과 꽤 다른 이야긴데, 그만큼 더 논란이 될 만한 주장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books' 편집자가 서평 대상으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자연과학의 법칙이 과연 인간사 또는 사회 문제를 풀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서평을 써달라는 게 편집자의 주문이었다.

이 책의 독특함은 저자의 이력에서 비롯된다. 저자 엘리 골드랫은 이스라엘 물리학자인데, 1980년대 '제약 이론'(TOC·Theory of Constraints)이라는 것을 제시하면서 경영 이론가로 이름을 얻었다. 제약 이론을 풀어쓴 소설 <더 골>은 전 세계에서 8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초이스>는 이 이론의 밑바탕이 된 사고방식을 심리학자인 자신의 딸과의 대화 형식으로 다룬 책이다. 둘의 대화는 아버지가 작성한 기업 경영 개선 보고서 몇 개를 소재로 삼아 진행되며, 대화가 이어질수록 딸은 '명쾌하게 생각하는 방법'에 다가간다.

엘리 골드랫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세상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2)이 단순함은 원인-결과의 관계로 표현할 수 있다. 3)핵심 원인-결과를 파악하려면 자연과학적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4)핵심 원인-결과를 파악하면 조화로운 해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자연은 극히 단순하고 또한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는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말이다.(83쪽) 다만 엘리 골드랫은 뉴턴의 '자연'을 '세상'으로 확장한다. 복잡한 인간관계나 기업 경영도 뉴턴의 '자연'과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을 '세상'으로 확장하는 건 논리적으로 명백한 오류다. 자연이 단순하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이는 '자연적 사실'일뿐이다. 여기서 인간관계도 단순하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도출될 수는 없다. 하지만 논리학보다 더 호소력이 강한 게 역시 '상식'이다. 말을 살짝 비틀어 '(자연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작동하듯) 인간관계나 기업 경영의 문제 또한 어떤 원인의 결과다'라고 말하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세상만사에는 모두 근본 원인이 있다는 말을 누가 감히 헛소리라고 할 수 있겠나?

인간-사회 구조-자연의 상호 작용

하지만 이 주장 또한 위에 거론했던 사회과학적 질문 곧 인간-사회 구조-기술의 관계 관점에서 따지는 순간 흔들리기 시작한다. 기업 경영 문제의 근본 원인이 사람 문제일 경우 그걸 해결하면 조직의 문제점이나 기술적 한계도 해소되는가? 아니면 기업 조직의 문제나 기술적 한계의 원인을 해결하면 사람 문제는 장애가 안 되는가? 이렇게 물으면 골드랫은 "순환 논리는 명확하게 생각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244쪽)고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순환 논리가 아니다. '모든 문제에는 핵심 원인이 있다'는 말이 상식적이라면, '기업의 문제는 보통 인력, 조직 구조, 기술적 문제가 얽히고설키면서 생긴다'는 말 또한 상식적이다. 이렇게 말하면 골드랫은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들이 현실을 복잡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32쪽)라고 개탄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하다는 소리를 하자는 게 아니다. 세상사는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는, 좀 더 엄밀하게 표현하면 '인간 주체,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 과학의 영역인 자연·환경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된다는 이야기다. 복잡한 게 아니라 상호 작용에 따라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소리다.

여기까지 말하면 다른 자연과학자들까지 들고일어날지 모르겠다. 반과학주의나 과학에 대한 인문학 우위론 따위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그런데 이는 인문학적 접근인 동시에 자연과학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면 17~18세기 물리학자 뉴턴이 아니라 20세기 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한테 의지한 주장이다. 두 학자는 <앎의 나무>(최호영 옮김, 갈무리 펴냄)라는 책에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세계에서 접촉과 관계의 의미를 아래 인용문처럼 강조한다.

"유기체의 다양성이 여실히 보여주듯이 생명체란 다양한 구조적 경로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한 가지 관계나 한 가지 가치의 최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133쪽)

"의식과 정신은 사회적 접속의 영역에 속하며, 그 영역에서 의식과 정신의 역동성이 작용한다."(262쪽)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한 모든 것에는 피할 수 없는 윤리가 담겨 있다. 이 윤리의 준거는 인간의 생물학적·사회적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다."(275쪽)

"우리가 가진 세계란 오직 타인과 함께 산출하는 세계뿐이다."(278쪽)

이들의 과학이 '우리의 상식'에도 훨씬 더 부합하지 않는가?

덧붙임

1. 책에 등장하는 기업 경영 개선 보고서는 모두 유통과 관련된 것이며, 골드랫의 해법은 '적기 공급 생산'(JIT)과 비슷한 방식을 납품-생산-도매-소매에 최대한 적용하자는 게 핵심이다. 이 방식의 장단점은 유연 생산 체제로 유명한 일본 자동차 업체 도요타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2. 위키피디아를 보면 골드랫의 '제약 이론'(TOC)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 이스라엘 경영학자 댄 트리치(Dan Trietsch)의 논문 '제약에 의한 경영에서 임계(臨界)에 의한 경영으로(From Management by Constraints to Management by Criticalities)' (☞
바로 보기)
2) 그의 또 다른 논문 '결함 있는 '제약 이론'에서 위계 구조적으로 균형을 잡아가는 임계로(From the flawed "Theory of Constraints" to Hierarchically balancing Criticalities)' (☞
바로 보기)
3) 브라질 학자 알레샨드리 리냐리스(Alexandre Linhares)의 논문 '제약 이론과 제품 배합 결정의 조합적 복잡성(Theory of constraints and the combinatorial complexity of the product-mix decision)' (☞
바로 보기)

3. 골드랫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치밀하고 논리적인 추론과 검증 태도는 본받을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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