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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의 시대, 우리 모두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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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의 시대, 우리 모두는 예술가!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예술과 다중>

<제국>(2000), <다중>(2004), <공통체>(Commonwealth, 2009)를 출간하여 찬사, 비판, 논쟁으로 전 지구를 뜨겁게 달군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가 쓴 예술에 관한 책을 접하며 사실 나는 기뻤다.

네그리에게는 "혁명적 투사", "당대 최고의 지성"이란 수식 어구가 함께 따라 다닌다. 이런 수식 어구는 전 지구적 사회운동의 중요한 논쟁과 행동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자신의 정열적 지성을 표현하며 운동과 긴밀히 호흡했기에 붙여진 것이다. 이런 그가 예술이란 단일한 주제로 <예술과 다중>(심세광 옮김, 갈무리 펴냄)을 썼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의 형식도 매력적이었다. 가상 인물인 지안마르코, 카를로, 지오르지오 등과 실존 인물인 프랑스어판 번역자 마리 막들렌느, 스페인어판 번역자 라울 산체스 등 9명에게 보내는 서신의 형식를 취한 이 책은 그 형식에서도 특이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서신이란 형식은 무게감 있고 진중한 그의 창의적인 사유에 조금 더 쉽고 부담 없이 몰입하게 해주는 훌륭한 장치이다.

▲ <예술과 다중>(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심세광 옮김, 갈무리 펴냄). ⓒ갈무리
편집자이면서 한 명의 독자이기도 한 나에게 이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리고 다른 독자들에게도 기쁨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옮긴이와 나는 이 기쁨이 더욱 증대되길 바라며 이 책에 소개된 낯선 개념과 이름을 설명하는 주석과 예술 작품을 찾아 추가했다. 이것은 원서에 없는 작업이라 다소 고되기도 했지만 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하나의 예술적 행위라 여기며 작업했다.

이 책의 이름은 "예술과 다중"이다. 곧 이 책의 주요 주제는 예술과 다중에 관한 것들이고, 9편의 서신 하나하나에는 그 사유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 네그리는 각각의 서신에서 추상, 포스트모던, 숭고, 집단 노동, 아름다움, 구축, 사건, 신체, 삶정치 등의 테마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테마 속에서 이탈리아의 시인 자코모 레오파르디,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무용가 피나 바우슈, 시인 샤를 보들레르, 작가 오스카 와일드, 화가 에두아르 마네, 구스타브 쿠르베 등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와 그들의 시대를 가로지르고, 시와 소설, 연극, 그림, 조형 예술, 영화, 무용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 예술사를 창조적으로 횡단한다. 네그리의 이런 폭넓고 다양한 사유는 독자들을 신비한 체험 속으로 인도하며 예술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조명하게 도와준다.

9편의 서신에 담긴 주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반적인 질문을 넘어 '우리 시대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혹은 '지금 여기에서 예술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며 그에 대한 심도 있는 대답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늘날 예술과 예술을 통한 활동에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는 이들에게는 어느 하나 놓칠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것들이다.

네그리는 <예술과 다중>에서 예술이 무엇이며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네그리는 1970년대 이래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전 지구로 확산되어 우리들의 삶 전체를 포획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예술 역시 상품세계의 일부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자본주의에 찌든 공허하고 헐벗은 주체들과 그들이 만든 예술상품 시장들뿐일까. 우리가 가는 길은 공허의 길일뿐인가. 역사는 이렇게 끝나는가. 네그리는 단호히 말한다.

"공허는 한계 따위가 아니라 하나의 통로이다. (…) 예술 행위를 시장으로 환원하는 저 일상적인 모욕을 피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술 작품의 특이성은 매개도 상호교환 가능성도 아니며 오히려 절대적인 것을 재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인데] (…) 사적인 방법으로 예술을 재영유화하는 것, 예술 작품을 가격으로 환원하는 것은 예술을 파괴하는 것이지요. (…) 예술은, 가격으로 환원된 단일성에 여러 특이성으로 이루어진 다중을 대립시키기 때문에 반시장인 것입니다. 시장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혁명적 비판은 여러 가지 특이성으로 이루어진 다중이 예술을 향유하기 위한 하나의 장을 구축합니다."('지오르지오에게 보내는 편지―숭고에 대하여', 85~87쪽)

즉, 우리는 시장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시장의 가격환원성에 반대하며 반시장적인 특이한 다중예술론을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중(Multitude)이란 어떤 존재인가. 한국 사회는 다중의 폭발적인 힘을 2008년 촛불 집회를 통해 생생하게 경험했다. 우리는 '경찰군대'의 물대포에 맞서 싸우다 물처럼 유연하게 흩어졌다 다시 모이고, 매일 새로운 행진 경로를 구축하며 다양한 구호를 외치고 퍼포먼스를 하는 그들을 다중이라 불렀다.

이처럼 민중, 시민, 대중과 구분되는 이들은 공통의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개인이 특이한 주체성이다. 노동이 날이 갈수록 언어화-정동(affect)화-정보화되어 비물질화되고 네트워크화되는 오늘날 다중은 집단적으로 재/생산하는 힘이다. 그리고 네그리는 아름다움이 다중의 집단노동을 통해 생산된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새로운 존재의 아름다움이고 집단적 노동을 통해서 구축되는 초과, 노동의 창조력에 의해 생산되는 초과인 것입니다. 아름다움의 사건을 결정하는 이 생산, 즉 아름다움의 생산은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노동입니다." ('마씨모에게 보내는 편지―아름다움에 대하여', 113쪽)

이렇게 다중의 집단 노동의 창조력이 생산하는 초과가 아름다움일 때, 다중은 예술과 분리된 그 무엇일 수 없다. 다중의 모든 노동 속에는 항상 예술이 존재한다. 이것은 놀라운 선언이다. 우리가 모두가 예술가라는 선언이며 우리의 존재 자체가 예술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선언인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열정적인 다중예술 선언을 마음껏 즐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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